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35)
135 화 꼽추 카투스.
꼽추 카투스.
“등 굽은 사내 말입니까?”
하긴, 그때 그 꼽추 사내의 등장이 무척이나 공교롭고 의심스럽긴 했다. 악마가 관련된 걸 안 이상, 너무 열심히 범인을 찾아낼 생각은 딱히 없어서 그냥 보내 주긴 했지만.
“예.”
딜겐트는 무척이나 진중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근육질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곱상한 얼굴. 이 남자는 수복교의 사제들이 가꾸는 비대한 근육이 아니었다면 여자깨나 울렸을 게 분명했다. 물론, 지금도 여자들에게 인기가 무척이나 많을 것이다.
여기서 이 자한테 내가 본 걸 말해 주는 게 옳을까. 아니면 입을 다무는 게 좋을까.
꼽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십중팔구 꼽추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는 있겠지만, 그에 따라 이번 일에 더욱 깊게 관여하게 됨은 필연적이었다.
내일 내 권한에 대한 공문이 내려오면 일행들이랑 같이 성물 수색에 나설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하지만 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 딜겐트의 눈빛에는 의미 모를 확신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내가 분명 꼽추를 봤으리라는 기묘한 확신이.
나는 마음을 굳혔다. 그래, 괜히 여기서 거짓말하다가 괜한 의심을 살 필요는 없겠지.
“봤습니다. 꼽추 사내는 제가 범인을 공격하기 직전 골목에서 튀어나와 범인에게 떠밀리는 바람에 크게 다칠 뻔했죠. 제가 그 사내를 받아든 덕분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만.”
“역시!”
자신의 의심이 들어맞았다는 사실에 그는 입술을 꾹 깨물고는 주변을 살폈다. 이내 딜겐트는 거리 한복판인 이곳은 오래 이야기하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내게 동행을 권유해왔다.
“잠깐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꾹꾹.
‘살해!’
딜겐트가 내게 권유한 그때. 여태 내 옆에서 닭꼬치 하나를 야금야금 해치운 어머니께서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그냥 저런 남자는 대충 무시하고 자기랑 단둘이 더 놀러 다니자고 졸라 왔다.
나는 딜겐트의 눈치를 힐끔 보곤, 봉투에서 새 닭꼬치를 꺼내 어머니의 손에 쥐여 드리고 딜겐트에게 물었다.
“혹시 오래 걸리는 이야기입니까?”
딜겐트는 어머니를 힐긋 보곤 고개를 저었다.
“그리 오래 걸리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일행분이 신경 쓰이시는 거면 내일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드려도 괜찮습니다.”
짧게 고민해 봤지만, 이런 찜찜한 이야기는 최대한 빨리 들어 두는 게 나을 거 같았다. 나는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려다 딜겐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어머니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살해?’
“긴 이야기는 아니라고 하니, 잠깐만 듣고 같이 대장간에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머니는 곰곰이 고민하더니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살해…’
네가 그러자고 하면 내가 별수 있냐는 대답. 사람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그 교묘한 방식은 어머니가 예전보다 성장했음을 뜻했다. 하지만 삐진 척을 하면서 데굴 눈을 굴리는 걸 보면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는 않았다 싶었다.
잠시 후, 어머니께선 내 눈치를 보다가 슬쩍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 그 손가락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간단했다.
“알겠습니다. 돌아가면 짐에서 꿀 사탕 하나 꺼내 드셔도 됩니다.”
‘살햇!’
어머니는 그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기야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고 가슴을 콩콩 치셨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딜겐트가 내게 물었다.
“일행분이 말을 못 하시는 겁니까?”
“예.”
잘만 말씀하시긴 했지만, 딜겐트가 보기에는 내가 혼자 말하고 어머니는 표정과 몸짓으로 대답하는 거로 보였으리라. 나는 그가 그대로 계속 오해하도록 놔두기로 했다. 마침 어머니가 말을 못 한다는 걸 알자, 딜겐트가 어머니를 보는 눈빛이 무척이나 호의적으로 변했기도 했고.
“말을 하고 할 수 없음은 사소한 문제지요. 아니, 오히려 사람들은 말로써 서로를 상처입히기도 하니, 적어도 말을 할 수 없는 자들은 자신의 혀로 타인을 상처입힌 적은 없었을 테죠. 어찌 보면 나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살해.’
어디서 필멸자 주제에 남의 신생(神生)에 훈수질이냐는 빈정거림. 딜겐트의 호의 어린 말에 어머니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이내 닭꼬치를 들지 않은 손의 중지를 치켜올려 내보였다.
딜겐트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어머니의 중지를 보곤 내게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나는 잽싸게 어머니의 중지를 꾹꾹 눌러 접어 드리고는 쓰게 웃었다.
“호의 어린 위로에 정말 감사드린답니다. 그리고 방금 손짓의 의미는 ‘우뚝 솟은 이 중지처럼 당신은 귀한 분’이라는 뜻이고요.”
“아하. 과연, 그런 뜻이었군요.”
딜겐트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런 귀한 칭찬을 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어디 보자. 이렇게 하면 되는 겁니까?”
그는 주섬주섬 자신의 오른 중지를 펴서 어머니를 향해 내밀었다. 그래, 이 근육질 사제는 자신의 단련된 중지를 어머니께 내밀며 덕담을 했다.
“당신께서도 귀하신 분입니다.”
‘살햇?!’
졸지에 그대로 돌려받은 어머니가 무척이나 당황했지만, 일단 대충 상황이 정리됐다.
“그럼 저쪽 주점에 가서 마저 이야기하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대충 눈에 밟히는 주점을 가리키자, 딜겐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좋습니다. 따라오시죠. 제가 사겠습니다.”
“감사히 얻어먹겠습니다.”
‘살(殺)!!!’
어머니께선 감히 자신에게 중지를 내보인 사제에 대해 펄펄 뛰며 분개했지만, 나는 그런 어머니를 사탕 두 개에 대한 권리를 약속함으로써 달랬다.
***
주점에 자리를 잡은 딜겐트는 능숙하게 점원을 불러 여러 가지 음식들을 주문하고는 우리에게 물었다.
“술은 드십니까?”
“술은 괜찮습니다.”
내 거절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긴 이야기는 아니니, 음식이 나오기 전에 얼른 끝마치도록 하죠. 일단 사제님께서 보신 그 등이 굽은 사내의 이름은 카투스라고 합니다.”
이름을 알아? 내가 의문 어린 눈으로 딜겐트를 바라보자 그는 내가 놀란 것을 다 이해한다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지난 이 주간 제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그 카투스라는 꼽추 사내는 아바드 피니쇼 님의 저택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받아서 처리하는 일을 하던 사용인이었습니다. 카투스는 그 굽은 등과 왜소한 체격과는 달리 본신의 힘 자체는 무척이나 장사였다고 하더군요.”
힘이 장사라. 그럼 그때 범인에게 쉽사리 밀려난 건 일부러 밀려나 줬던 건가.
“혹시 어째서 그가 이토록 잔인한 일을 벌였는지 짐작이 가는 바가 있으십니까?”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딜겐트는 잠깐 말을 끊고는 주변을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악마와 관련되어 있다고 하니, 어떤 기괴망측한 능력을 부릴지 몰라서 조심스럽군요. 여튼, 설명 계속하겠습니다. 카투스라는 남자는 태어나길 꼽추로 태어나 어린 시절 영주의 저택 아래 버려져 있었다는군요. 아바드 님께선 그런 카투스를 가엽게 여겨 거두고 키웠다고 합니다. 커서는 일자리까지 제공해 주면서 말이죠.”
“그렇다면 카투스에게 영주님은 은인이 아닙니까? 아무리 봐도 그 참혹한 학살을 저지를 동기가 없어 보이는데요.”
딜겐트는 쓰게 웃었다.
“분명 아바드 피니쇼 님께선 그런 그를 가엽게 여겨 여러모로 챙겨 주긴 했지만, 저택에서 일하던 사용인들은 그를 그다지 탐탁지 않아 했습니다. 전해 듣기론 그의 추한 외모, 답답한 일머리, 굼뜬 행동 등 여러모로 사랑받기는 힘든 이였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립되었습니다.”
그림이 그려졌다. 그 꼽추는 사용인들 사이에서 왕따 비슷한 것을 당한 건가. 하긴, 나와 말을 할 때 필요 이상으로 말을 더듬기도 했었지.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사람을 죽인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분명 다른 계기가 또 있었겠죠?”
“맞습니다.”
딜겐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인이 된 카투스에겐 연모하던 이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부엌일을 하러 고용된 하녀였죠. 그 하녀는 다른 이들이 카투스에게 데면데면하게 대할 때도 항상 친절하게 웃음 짓고서 그에게 몰래 먹을 걸 챙겨 주곤 했답니다. 거기서 문제가 생긴 겁니다.”
“어떤…?”
그 하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주아주 끔찍한 일이.
“얼마 전, 카투스는 그녀에게 고백했습니다. 자신에게 이렇게 대해 준 이는 당신이 처음이라며 평생 행복하게 해 주겠노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는 잠깐 말을 끌고는 슬픈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하녀에겐 그저 당혹스러울 뿐인 고백이었던 겁니다. 그녀는 그저 모두에게 호의로 사람을 대했을 뿐이었고, 그녀에겐 이미 다른 정인이 있었던 거죠. 그녀는 거절했습니다. 진짜 문제는 거기서부터 생겼죠. 그 광경을 봤던 다른 하녀가 있었던 겁니다.”
“저런.”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고백이 실패했는데, 그 광경을 본 다른 사람이 있었다고? 그것도 같은 직장 동료가?
딜겐트는 물로 목을 축이고 말을 이어나갔다.
“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카투스를 향한 조롱이 저택에서 넘쳐났죠. 그 과정에서 그가 느꼈던 감정이 무엇인지 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분명 그리 좋은 것은 아닐 테지요.”
“그래서 카투스는 저택의 사람들에게 복수한 겁니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아낸 건 여기까지인지라. 공식적으로 카투스는 그 참혹한 학살이 있던 날 죽은 거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아바드 님에게 넌지시 카투스가 의심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아바드 님께선 그 녀석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으시곤 이미 죽은 사람 이야기는 꺼내지 말라고 하실 뿐이었죠.”
“저런.”
딜겐트는 쓰게 웃었다.
“사람이 너무 좋은 것이 때론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실감하긴 이번이 처음입니다.”
소외받은 자의 분노가 표출됐다는 건가. 그의 분노가 무척이나 강렬했다면 악마에겐 그 분노라는 감정 자체가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 보였을 수도 있으리라. 그래서 힘을 베푼 건가. 그가 원하는 대로 행할 수 있는 힘을.
딜겐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시켰던 음식이 나왔다. 종업원이 날라 오는 음식들 사이에는 우리가 시키지 않았던 자그마한 음식이 무척이나 많이 놓여 있었다.
“아까 시키지 않은 것들도 나온 것처럼 보입니다.”
대답은 딜겐트가 아니라 종업원이 했다.
“딜겐트 사제님께선 일주일 전에 허리가 삐끗하신 저희 아버지를 아무런 돈도 받지 않으시고 치료해 주셨거든요. 그래서 많이 드시라고 제가 좀 더 챙겨 왔어요. 그럼 저는 다른 분 주문 좀 받으러 가 볼게요!”
여자 종업원은 딜겐트에게 윙크하곤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떠나갔다. 딜겐트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대가를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닌데, 이거 일단 주셨으니 감사히 먹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얼른 드시죠. 음식이 식겠습니다.”
딜겐트와의 식사는 예상보다 길어졌고, 그와 식사가 끝났을 때 대장간은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덤으로 어머니의 배는 무척이나 빵빵해졌고.
***
“호오. 이거 진짜 물건이네! 태어나서 어디든 수색해도 좋다는 공문을 내가 받아 보게 될 줄이야! 이것만 있으면 이 도시를 어디든 쑤시고 다녀도 아무 문제 없다는 거잖아!!!”
지젤은 아침에 병사 편으로 보내진 공문을 보곤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내가 악신의 숭배자 짓을 하면서 공권력을 등에 업어 볼 줄이야. 진짜 꿈에도 상상도 못 했어!”
내 옆에 앉아 있던 쟈멜이 지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젤은 옛날부터 저런 권력이나 지위에 관련된 걸 엄청 좋아했어요. 남들 위에 서는 걸 즐긴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마르낙 사제님께선 많은 것을 안 바라는 제가 언제나 지젤보다 충실한 심복임을 기억해 주세요!”
돈을 밝히는 쟈멜이나, 권력과 지위를 밝히는 지젤이나 친구라서 그런지 둘 다 그리 차이는 없어 보이는데.
“일단 그 공문은 지젤이 가지고 계십시오.”
“내가?”
“예, 그 공문을 가지고 지젤은 나머지 일행들과 함께 영주의 이름을 대면서 성물에 대한 수색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젤은 공문을 귀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곱게 접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가 공문을 가져가면 너는 뭐로 수색을 하게?”
“어제 딜겐트가 오늘 제게 같이 수색하러 다니자고 제안을 해 왔습니다. 저는 그와 함께 다니며 그가 악마를 추적하는 사이, 그의 옆에서 성물에 대한 흔적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나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굳이 제 성물 수색에 도움을 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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