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71)
171 화 반격.
반격.
“빨랑빨랑 움직여! 어서!”
밖에서 재촉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마치 언젠가 들어 본 적이 있기라도 한 듯이.
다행히 상단의 창고는 넓었고, 입구가 날아갔다고 해도 저들이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기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지젤이 가면의 눈구멍 너머로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이거 오히려 잘됐어. 어차피 우리는 이미 수색을 끝마친 뒤고, 지금 당장 내 권능으로 도망치면 우리가 훔친 물건들은 전부 쟤들이 훔친 셈이 될 거야. 둘 다 내 손을 붙잡아. 얼른 돌아가서 푹 쉬자.”
“응!”
쟈멜은 한쪽 손으로 보따리를 꼭 쥔 채, 냉큼 지젤의 손을 붙잡았다.
“넌 안 잡고 뭐 해?”
내가 얼른 그녀의 손을 잡지 않자 지젤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분명 지금 당장 그녀의 손을 잡고 떠나는 게 가장 쉽고 편한 길이긴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거슬렸다. 특히나 저쪽에서 쩌렁쩌렁하게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가 익숙하다는 점이.
나는 결국 마음을 굳혔다. 지젤의 손을 붙잡는 대신, 내가 들고 있던 어머니 몫의 보따리를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뭐야? 이거 대체 무슨 뜻이야?”
“맞아요! 마르낙 사제님! 얼른 지젤 손 잡고 돌아가요! 많이 안 피곤하시면 돌아가서 같이 카드 게임도 한 판 하고요!”
“두 분 먼저 돌아가십시오. 저는 잠깐 볼일을 보고 돌아가겠습니다.”
지젤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짧게 대꾸했다.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거 별로 효율적인 선택은 아니야. 최선의 선택도 아니고.”
“조금 늦을지도 모르니, 굳이 기다리지 말고 먼저 주무시면 됩니다.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는 돌아갈 테니까요.”
“그럼! 저도 남아서 도와드릴게요! 저 엄청 유능한 거 마르낙 사제님도 보셨잖아요! 보따리를 들고 가는 건 지젤 혼자 보내고요!”
“아뇨.”
만약 일이 내 예상대로 흘러간다면, 무척 많은 피가 흐를지도 몰랐다. 쟈멜은 심성이 착한 탓에 사람을 죽이는 데 있어선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는 데다, 굳이 쟈멜에게 마음의 상처가 될 만한 일을 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툭툭 두드려 주며 가면 뒤로 빙그레 웃었다.
“두 분 다 먼저 돌아가 계십시오. 도움 안 돼서 먼저 보내는 게 아니니 쟈멜은 너무 실망하지 말고요.”
콰드득!
무차별적으로 상자를 뜯어 대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이제 더는 한가롭게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다.
“지젤. 어서.”
내 단호한 재촉에 지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바보같이 들키지 마. 가자. 쟈멜.”
“마르낙 사제님! 그러지 말고요! 다시 생각해 보세욧! 저 진짜 도움 많이 될 수 있…”
쟈멜의 말은 완성되지 못했다. 바닥에서 일어난 새카만 그림자가 쟈멜과 지젤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그림자가 가라앉자 두 여인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두 보따리도 함께.
역시 지젤은 눈치가 빨라서 좋단 말이지. 그녀는 분명 내 눈빛에서 무언가 읽어 낸 게 분명했다. 물론, 내 기분 탓일지도 몰랐지만.
부서진 입구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바람을 타고 희미한 피의 향이 코끝을 간질거렸다. 경비병들을 죽이고 들어온 건가. 그게 아니면 밖에선 아직도 전투가 이어지고 있는 건가.
둘 다 좋았다.
일단은 이번 습격을 지휘하는 여자의 얼굴부터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어째서 목소리가 귀에 익는지 궁금했다.
목소리로 누군지 분간이 안 갈 정도면 딱히 많이 마주친 사이는 아닌 거 같은데 말이지.
겹겹이 쌓인 상자들 틈을 이용해 몸을 숨기고 천천히 나아갔다.
“야! 얼른얼른 부숴!”
“누군 놀고 있는 줄 아냐! 너나 빨리해 이 새끼야!”
무장한 습격자들이 워낙에 시끄럽게 부숴 대고 있는 통에 몸을 숨기긴 무척이나 쉬웠다.
다만,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창고 말고 다른 창고의 습격을 주도하러 잠깐 자리를 뜬 듯했다.
우지끈거리는 소리. 이 창고를 뒤지고 있는 적은 총 다섯이었다.
내 오른 팔목에 차고 있는 팔찌가 늘어나 순식간에 왼손등을 덮었다. 손등에는 발사되는 작살. 손목 아래에는 언제든지 튀어나올 수 있는 칼날.
나는 상자 사이에서 숨을 죽이고 첫 번째 희생자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뭐지? 이거 왠지 누가 먼저 뒤진 거 같…”
푹.
손바닥 밑에서 튀어나온 칼날이 정확하게 사내의 목을 쑤셨다. 단 한 번의 찌름이 하나의 생명을 꺼뜨렸다.
“어머니.”
자그마한 중얼거림과 함께 사내의 몸이 빠르게 부스러져 신성으로 화했다.
100의 신성. 혹시 몰라 실험해 본 건데, 이 신성을 감추는 목걸이는 내가 신성을 수확하는 동안 자연적으로 새어 나가는 신성 또한 감추어 주었다.
이건 좋네.
“뭐야? 겔? 이 새끼 갑자기 어디로 갔…”
푹.
나는 고요 속에서 차례대로 습격자들을 죽이고 신성을 흡수해 나갔다. 조용히 왼손을 뻗어 마지막 남은 적을 조준했다. 손등의 작살이 허공을 가르고 날았다.
휘릭. 푹.
“컥?!”
왼손을 슬쩍 잡아당기자 발사되었던 작살 끝과 연결된 금속 실이 순식간에 줄어들어 제자리로 돌아왔다. 마지막 남자까지 잊지 않고 신성으로 흡수했다.
[신성 : 18899 -> 19299]일단 이쪽 창고의 정리는 끝마쳤다. 만약 네 개의 창고에 인원을 균등하게 분배했다고 가정하면 적은 최소 15명은 더 있을 게 분명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곤두선 감각이 주변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뇌로 비집어 넣었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나는 차분하게 그 속에서 내게 필요한 것들만을 골라 내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씁. 이 새끼들 겁나 굼뜨네! 치안대 뜨기 전에 빨리 떠야 한다고 이 새끼들아!!!”
찾았다.
여인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문밖으로 튀어나온 나는 울퉁불퉁한 창고의 벽면에 손가락을 박아 넣으며 빠르게 벽을 타고 기어올랐다. 거대한 창고 지붕 위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자, 검은 무늬가 들어간 샛노란 가면과 함께 로브를 푹 눌러쓴 여인이 보였다.
이거 얼굴이 안 보여서 누군지를 모르겠네. 일단 벗겨 보는 수밖에 없나.
내가 지젤과 같이 가지 않고, 이곳에 남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도시 안에서 대놓고 일어난 폭발과 습격. 이번 습격은 마법사 협회 지부에서 벌어졌던 살인과 물제비호에서 일어난 기습, 그 둘과 형태가 무척이나 유사했다. 이 도시의 공권력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비켜!”
자그마한 중얼거림. 그리고 이어진 마력의 유동. 여인의 손아귀에서 피어난 불꽃이 단단히 잠긴 창고의 문을 터뜨렸다.
여자 마법사. 스승님의 말에 따르면 지부장과 비서를 죽인 셋 중 하나는 마법사일 게 분명하다고 했었지. 특히나 마법사 협회 쪽으로 갔던 여자가 마법사일 확률이 더 높고.
모든 게 점점 들어맞고 있었다.
저들이 바로 내 동료의 피를 흘리게 한 자들이라 이 말이지.
나는 지붕 위에서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렸다. 저 여자 마법사를 완벽하게 기습할 수 있는 순간을.
“어머니.”
‘살해?’
“매번 제가 가는 곳마다 여러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볼 때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게 들러붙은 고약한 운명이 아주 간절하게 피를 갈구하고 있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요. 지금 저기 죽어 있는 경비들도 혹시 제가 이 도시에 오지 않았다면 조금 더 오래 살지 않았을까요?”
‘살(殺)!!!’
그게 어째서 네 탓이냐는 외침. 어머니는 저기 저놈들이 지 손으로 죽인 거고, 어차피 우리가 오든 안 오든 죽어 나자빠질 놈들이었다고 대답해 오셨다.
‘살해살해!’
치안대가 오기 전에 얼른 그냥 다 죽여 버리고 신성이나 짭짤하게 챙기자는 제안. 여느 때와 같은 어머니의 말에 어수선하던 내 심정이 가라앉았다.
“하긴, 이미 다 죽었는데 여기서 제가 고민한다고 딱히 뭐가 바뀌진 않겠군요.”
여자 마법사가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것도 홀로. 딱 기습하기 좋게.
나는 가만히 때를 기다리다, 그대로 조용히 낙하했다. 정확하게 가면을 쓴 여자 마법사의 머리 위로. 내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여인이 위를 바라보았다.
“어…?”
하지만 그녀의 대처는 늦었다.
푹.
왼손바닥 밑에서 튀어나온 칼날이 그녀의 어깨를 깊숙이 찔렀다. 오른손을 가면 밑으로 비집어 넣어 여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왼손을 회수한 나는 물 흐르듯 연달아 공격을 이어 나갔다.
푹. 푹. 푹.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팔과 다리의 힘줄을 끊었다.
“으으으읍!!!”
억눌린 비명이 내 오른손바닥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왼손이 오른손 대신 버둥대는 여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으드득.
오른손으로 아직 멀쩡한 반대편 팔을 쥐어서 뼈째로 부서뜨렸다. 굳이 날카로운 날붙이가 없어도 내 손아귀 힘은 충분한 흉기였다.
나는 양 무릎으로 여인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젠 이 여자의 얼굴을 확인할 때였다.
검은 문양이 새겨진 노란 가면을 벗겨 내자 곧 여자 마법사의 정체가 드러났다. 역시 그녀는 나와 구면이었다.
‘아, 씨… 너 이 새끼, 길거리 다닐 때 뒤통수 조심해.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아주 조져 버릴 거니까!’
마법사 협회에서 갑자기 튀어나와서 어깨를 부딪쳐 왔던 여자. 그때 언뜻 스쳐 들었던 이름이 떠올랐다.
그래, 이름이 스피나라고 했었나.
그녀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그때 보았던 얼굴과는 사뭇 모양새가 달랐지만, 막상 생각해 보니 나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던 그 얼굴과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왼손바닥 밑에서 튀어나온 칼날을 그녀의 목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미끼를 던졌다.
“마법사 협회 지부를 터뜨리는 건 재미있었나. 정말 그런 식으로 방만하게 날뛰고도 무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냐? 어디 한번 대답해 봐라.”
나는 그녀의 입을 억누르던 오른손을 치우며 짧게 덧붙였다.
“쓸데없이 주문을 외우면 이 자리에서 바로 죽여 버리겠다.”
“퉤!!!”
슬쩍 고개를 돌려 피 섞인 침을 피해 냈다. 스피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이글거리는 눈빛을 노려보았다.
“그래, 엄청 재미있었다! 이 개새끼야!!!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들쑤시면 너 같은 놈이 이렇게 튀어나올 줄도 알았고!!! 이 빌어 처먹을 악신의 숭배자 새끼야!!!”
그런데 내가 악신의 숭배자인 건 대체 어떻게 안 거지?
“그리고 나 혼자 온 거 아냐!!! 이 씹쌔기야!!!”
섬뜩한 살기. 나는 딱 죽지 않을 정도로 스피나의 안면을 후려치고 그대로 앞으로 몸을 굴렸다.
날카로운 송곳이 정확하게 내 머리가 있던 자리를 꿰뚫었다.
“스피나! 야! 아직 살아 있냐! 아니, 이미 뒈졌나?”
“…곧 뒈지겠다. 이 새끼야… 왜 이렇게 늦었…”
스피나의 고개가 그대로 꺾였다. 투구를 쓴 사내는 스피나의 목을 짚어 보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살아 있네.”
저것도 무척이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는 곧 이 목소리를 어디서 들어 봤는지 깨달았다.
“…울토르?”
“뭐야? 너 내 이름을 어떻… 아니, 내 이름은 ‘독바늘’이다.”
그는 오른손엔 검, 왼손엔 뾰족한 꼬챙이를 들고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뾰족한 꼬챙이의 끝이 정확하게 내 심장을 가리켰다.
새카만 눈구멍 너머로 올곧은 눈빛이 나를 노려보았다.
“썩어빠진 황제와 붙어먹은 악신의 숭배자야. 그 부질없는 목숨 내가 여기서 거둬 주마.”
한마디. 저 한마디로 모든 퍼즐이 맞아 떨어졌다.
숨기는 것이 있던 비서. 그리고 그 비서의 권유를 거절한 지부장. 북부왕국에는 없지만 이곳에만 있는 인위적인 마법사들의 조직.
애초에 마법사들이 무언가 조직을 이룬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인 일. 그런 일을 억지로 해내려면 적어도 국가 단위의 지원이 필요했다.
제국 마법사 협회는 결국, 황제가 마법사들을 체계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 낸 조직이었던 건가.
비서가 지부장에게 했던 권유란 건 아마도 황제를 위해 일하라거나, 그게 아니라면 악신의 숭배자들의 일을 도우라는 것이었겠지.
저들이 우리를 죽이려 하고 다키아를 습격한 것도 우리를 무언가 오해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빼 들었다.
하지만 이젠 전부 아무 관계 없는 이야기. 대화와 타협은 누군가의 피가 흐르기 전에나 가능한 것이었다. 저들의 위협과 공격으로 내 동료의 피가 흐른 이상, 나와 저들 사이에 타협은 없었다.
핏자국이 남아 있던 다키아의 붕대를 떠올리자, 상투스. 그가 죽었던 그날의 광경이 겹쳐 보였다.
가슴이 부글댔다.
다키아의 핏값으로 울토르도 죽이고. 스피나도 죽이고. 나는, 아니 우리는 다시 떠난다.
가면 뒤에서 활짝 웃었다.
“너는 오늘 여기서 죽어. 그 옆의 여자도 같이.”
“죽는 건, 너다! 악신의 숭배자야!!!”
일렁이는 권능. 울토르, 그의 시간축이 비틀렸다. 틀어진 시계의 권능으로 가속된 송곳이 나를 향해 쏘아졌다.
선명한 녹색 문신이 내 피부 위를 타고 내달렸다. 증폭된 육체. 한계까지 쥐어짜인 근육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쥐어짠 힘이 폭발했다.
검날이 울토르를 따라잡았다.
“어떻…”
까아앙!!!
검면이 울토르의 이모탈리움 투구를 후려쳤다. 바닥에 처박힌 울토르가 엎드린 채로 일어나려고 용을 썼다. 투구의 입 구멍과 눈 구멍으로 피가 쏟아져 내렸다. 그는 쉬이 일어나질 못했다.
“쿨럭. 쿨럭.”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었는데. 실론 작품이 놈을 살렸다. 하지만 한 번만 더 후려치면 곧 죽겠지. 오래 끌 생각은 없었다. 다른 창고를 습격하고 있는 놈들도 모조리 다 죽여 버릴 생각이었으니까.
“잘 가.”
“부엉~”
장난스러운 속삭임 같은 외침.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창고의 지붕 위에 누군가 서 있었다.
어두운 갈색 로브. 로브의 모자 위에 마치 귀처럼 꽂혀 있는 깃털 두 가닥. 양어깨 위에 앉아 있는 한 쌍의 부엉이. 손에 쥔 기다란 지팡이. 난입자는 이야기책에서나 나올법한 마법사의 분위기를 풍겼다.
푹 눌러쓴 로브의 얼굴 구멍 너머로 보여야 할 얼굴은 인위적인 어둠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가녀린 체구로 볼 때, 로브의 주인은 여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부엉이를 닮은 로브를 쓴 여인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짧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짓누르는 달.”
순간, 무형의 압력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낯선 힘. 이건 권능도 마법도 아니었다. 그 둘과는 다른 무언가였다.
나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서서 여인을 올려다보았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여인이 내가 잘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바닥에 떨어진 울토르의 송곳을 집어 그대로 여인을 향해 던졌다. 여인의 손에 쥐인 지팡이가 다시 한번 춤을 췄다.
“떨어지는 별.”
새하얀 빛 한 줄기가 송곳을 쳐냈다.
“너는 누구지?”
“부엉~”
여전히 장난스러운 한마디. 지팡이 끝이 내 얼굴을 가리켰다.
“시원한 밤바람. 따뜻한 치솟음.”
이어지는 공격에 대비했지만, 여인이 노린 건 내가 아니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스피나와 울토르의 몸이 둥실 떠올라 여인의 옆으로 날아갔다.
당연히 그냥 보내 줄 생각은 없었다. 부패의 문으로 강화된 각력이 대지를 박찼다. 나는 가볍게 지붕 위에 착지해 여인을 노려보았다.
“곱게 보내 줄 생각은 없는데.”
그제야 여인이 처음으로 내게 대답했다.
“앞뒤 꽉 막힌 악신의 숭배자.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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