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23)
223 화 결착.
결착.
펄리와 다키아 둘 다 돌아올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돌아오질 않아 그 둘을 찾아 배를 나설 때에는 혹시나 밤이 깊어 그 둘을 찾아내지 못하면 어쩌지하고 걱정했었지만 그건 모두 쓸데없는 기우였다.
쾅! 쾅! 콰앙!!!
반쯤 뭉개져 잔해로 가득한 부둣가에선 거대한 물기둥들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끊임없는 파괴를 자행하고 있었고, 그 거대한 물기둥들 사이로 새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무척이나 날랜 몸놀림으로 그 모든 공격들을 유유히 피해내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크게 사고를 치고 있을 줄은 예상도 못 했는데.
나는 당장 뛰어들어 둘을 말리기에 앞서 저 둘이 대체 얼마나 부숴 먹은 지부터 빠르게 확인했다.
다행히 이곳은 길게 이어진 부둣가의 끝자락이었고, 주변 잔해들과 상황을 미뤄보건대 부둣가를 때려 부쉈을지언정 정박해둔 배를 직접 때려 부수진 않은 듯했다.
‘살햇!’
어머니는 뭐가 그리도 즐거우신 것인지는 몰라도 ‘싸워라! 부숴라!’라며 저 둘을 응원했다.
그 와중에도 둘의 싸움은 전혀 끝날 기미가 없었고, 이대로라면 우리가 북제국에 변상해야 할 금액만 점점 커질 게 분명했다. 거기다 내가 북제국의 법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이렇게 국가 소유의 부둣가를 다 때려 부수는 건 무조건 범죄일 게 확실했고.
이런 내 우려에 화답하듯, 저 멀리 어둑해진 북제국의 거리들 사이로 일렁이는 불꽃들이 빠르게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치안대인가.
그래, 이곳이 무법지대도 아니고 저렇게 난동을 부리면 공권력이 출동하는 게 당연했다.
어쩌지.
‘살햇!!!’
내 심란한 속도 몰라주시고 어머니는 그냥 이 상황을 한껏 즐기느라 바쁘셨다.
당장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둘이었다.
일단 펄리와 다키아를 말리고 도망쳐서 뒷수습을 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일단 저 둘은 싸우게 내버려 두고 당장 닥쳐 들어오는 저 치안대를 막아서고 높은 사람의 이름을 팔아서 당장 수습부터 하는 것.
선 말림 후 수습과 선 수습 후 싸움 말림인가.
나는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저울질하다 이내 후자로 마음이 기울었다.
전자는 북제국의 공권력을 무시하는 처사인데다 괜히 사건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았다. 어차피 저 둘이 싸우고 있는 곳은 이미 거의 다 뭉개져 버린 탓에 굳이 당장 말리지 않아도 뭔가를 더 깨부술 일은 없어 보이기도 했고.
“어머니.”
‘살해?’
“구경은 조금 있다가 다시 하시지요. 일단은 저쪽에서 몰려오는 이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봐야겠습니다. 일이 너무 커지면 곤란하니까요.”
‘살해…’
알겠다는 한마디. 나는 미련 없이 아직도 시끄럽게 파괴가 이어지는 ‘부둣가였던 곳’을 뒤로 하고 빠르게 다가오는 빛무리를 향했다.
일단은 가장 먼저 솔도스의 이름부터 팔아보는 게 낫겠지.
***
쾅!!!
거대한 물줄기의 주둥이가 바닥에 처박혔다. 펄리는 가볍게 몸을 돌려 기둥의 여파에서 벗어났다. 곧, 펄리가 밟은 바닥이 움푹 꺼지며 그녀의 무게중심을 흔들었고, 그와 동시에 뭉툭한 바위가 반대편에서 빠르게 쏘아졌다.
“슬슬 지루하네.”
펄리는 살짝 허리를 틀고서 발차기를 내질러 사람 몸만 한 바위를 옆으로 쳐냈다. 얻어맞은 바위는 그대로 날아 무력하게 바닥에 처박혔다.
그녀는 내뻗은 다리를 내리곤 피식 웃었다.
뭉개진 부둣가 곳곳에는 인위적으로 솟아오른 바위기둥들로 가득했다. 다키아가 펄리에게서 자신의 몸을 숨기기 위해 일으켜둔 기둥들.
펄리는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을 다키아를 향해 나른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슬슬 네 머릿속엔 이런 생각이 들 거야.”
좀 더 다양한 방법이 있음에도 펄리를 향해 날아오는 모든 공격은 어딘가 모르게 뭉툭했다. 고압으로 뭉친 물줄기도, 방금 날아온 뭉툭한 바위도.
그 모든 수단은 누군가를 죽이기보단 제압하기 위한 것에 가까웠다.
펄리는 그 점을 짚었다. 그녀는 선홍빛 혀를 뻗어 자신의 입술을 슬쩍 훑곤 말을 이었다.
“‘아, 차라리 죽이는 게 훨씬 쉽겠다.’ 이런 생각이 말이지.”
“제가 당신인 줄 알아요.”
퉁명스러운 한마디.
다키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펄리는 그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그녀의 위치를 손쉽게 찾아냈다.
아니, 진정으로 찾아내고자 했다면 다키아의 위치 정도야 진작에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애당초 그녀는 다키아를 깔아뭉개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사람이 대화를 할 땐 자기 얼굴을 내보이는 게 예의 아닐까?”
“먼저 예의를 안 차린 쪽이 누군데요. 바로 펄리, 당신이죠. 다 알면서 사람 속을 살살 긁어대기나 하고 말이죠.”
뚱한 목소리와 함께 다키아가 한 기둥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펄리는 그 모습을 보며 조금 더 진한 미소를 지었다.
“흐응.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도 괜찮겠어? 그러다 나한테 크게 혼나면 어쩌려고? 응? 응?”
“그러게요.”
낮은 뇌까림. 마력의 유동과 함께 다키아의 어깨 위에서 무척이나 날카로운 얼음의 창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얼음의 창은 한 치의 지체 없이 펄리를 향해 쏘아졌다. 펄리는 여전히 생글거리며 그저 조용히 한 쪽 손바닥을 내밀었다.
빠각.
빠르게 날아온 얼음의 창은 펄리의 하얀 장갑 하나 뚫지 못한 채 제 힘을 버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져 흩날렸다. 흩뿌려진 얼음 가루가 달빛을 받아 반짝여댔다.
펄리는 손을 툭툭 털곤 배시시 웃었다.
“어디까지 해도 괜찮을지 슬쩍 간 보는 거야?”
다키아는 조용히 펄리의 상태를 살피곤 피식 웃었다.
“제가 뭘 해도 당신을 일격에 죽이긴 쉽지 않겠네요.”
“맞아! 내 몸은 제법 튼튼한 편이거든! 히히.”
“설령 그게 진짜 몸이라고 해도, 죽지만 않는다면 수복교의 사제에게 데리고 가 살릴 수 있겠고요.”
“호오.”
펄리는 여태 지어 보였던 미소들보다 더 커다란 미소를 지었다.
“네가 드디어 제대로 해볼 마음이 들었구나! 나 기다려 주느라 지쳐서 살짝 삐질 뻔했어!”
다키아는 펄리의 미소에 시원한 미소로 답했다.
“닥쳐요. 당신 진짜 재수 없으니까.”
“말이 심해! 히히!”
그 말을 끝으로 둘은 기다렸다는 듯이 동시에 행동을 개시했다.
펄리는 자리를 박차고 다키아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다키아는 그에 응하듯 자신이 몸을 드러냈던 바위기둥 뒤로 몸을 쏙하고 숨겼다.
“히히!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야?”
거침없이 나아간 펄리는 다리를 채찍처럼 휘둘러 그대로 굵직한 바위기둥을 후려 차 깨부쉈다.
콰앙!
무너지는 기둥 너머 끊임없이 입술을 달싹이며 다키아의 모습이 보였다. 펄리는 손가락 끝으로 다키아를 겨냥하다 이내 다시 손가락을 거둬들였다.
“죽이면 안 되지. 암. 그렇고말고.”
신의 그릇을 탈취하기 직전인 작금의 상황에서 그녀는 아직 마르낙에게 미움을 받아선 안 됐다. 거기다 저 다키아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르낙의 마음속 저울, 그 위에 자신과 다키아의 목숨을 저울의 양끝에 각각 올려놓고 무게를 가늠한다면 백이면 백 그 저울은 다키아의 추가 올려진 방향으로 기울어지리라.
그러니 다키아는 크게 다쳐선 안 됐다. 마르낙의 화를 돋우는 건 그녀의 목적이 아니었으니까.
“역시, 죽이는 게 훨씬 쉽고 간편해. 그게 무슨 일이든 간에 말이야.”
펄리는 조금 더 번거로움을 감수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모든 상황은 자신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저 멀리서 다키아가 빠르게 땅을 짚는 모습이 보였다.
여태까지보다 훨씬 더 막대한 양의 마력이 요동쳤다. 다키아의 황금빛 두 눈이 밝게 빛나고, 북제국을 가로지르는 강이 제 몸을 토해냈다.
강이 토해낸 물이 거대한 용오름이 되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펄리는 작게 감탄했다.
“와오. 이건… 예상 밖인데.”
곧게 치솟아 오르던 용오름이 머리를 틀었다. 물로 이루어진 거대한 기둥이 살아있는 생명처럼 제 고개를 바닥에 처박기 위해 휘어지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휘어지는 용오름에서 낮은 울음이 깊은 울림을 담고 퍼져나갔다.
당장 내달리면 저 범위를 벗어날 수 있을까?
펄리는 용오름의 크기를 가늠하며 계산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피하면 재미가 없겠네.’
파직.
섬광이 튀었다. 펄리가 잠시 용오름에 한 눈이 팔린 사이 다키아는 또 하나의 주문을 완성을 한 뒤였다. 그녀는 한 손에 요동치는 번개를 창처럼 쥐고서 싱긋 웃었다.
“진짜 죽으면 많이 곤란하니까, 제발 죽지는 말아주세요.”
펄리가 무어라 대꾸하려던 그때, 다키아는 미련 없이 쥐고 있던 번개를 놓았다. 그녀의 손을 벗어나자마자 두 갈래로 갈라진 번개 중 커다란 줄기가 떨어져 내리는 용오름 속으로 스며들었다.
용오름이 번개를 품는 사이, 남은 한 갈래의 작은 번개 줄기가 다키아의 뇌전을 막기 위해 잽싸게 펼친 펄리의 손가락 끝을 지져버렸다.
펄리는 따끔하게 지져진 자신의 손가락을 보곤 히죽 웃었다.
“이거 큰일 났…”
콰아아아앙!!!
뇌전을 머금은 용오름이 펄리를 집어삼켰다. 다키아는 자신이 만들어낸 여파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외워두고 있던 주문을 끝맺었다. 바닥에서 솟아난 유선형 바위가 다키아를 감싸자 용오름의 여파가 기다렸다는 거칠게 바위를 두들기며 지나갔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다키아는 덜컥 겁이 들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있는 대로 다 끌어모아서 들이박긴 했는데, 펄리가 정말 크게 다쳤거나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그녀의 마음속을 스멀스멀 뒤덮었다.
다키아는 조금 다급하게 자신이 만들어낸 방공호 밖으로 나와 상황을 살폈다.
부둣가는 마치 거대한 용이 파먹기라도 한 듯이 내려앉아 미처 빠지지 못한 물들이 발목까지 차올라있었다.
“펄리…?”
바닥을 뒤덮은 물과 그 위에 어려 환히 빛나는 달. 그 어디에도 펄리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또 한 번 펄리를 부르려던 다키아는 순간 몰려오는 현기증에 몸을 휘청이다 겨우 중심을 다시 잡았다.
오늘 밤은 대규모 마법을 너무나 많이 사용해 버렸다. 탈력감이 그녀의 몸을 짓눌러댔다. 다키아는 직감적으로 작금의 상황을 이해했다.
이제 단 한 발의 마법조차 더 쓸 수 없었다.
그때, 차갑고 딱딱한 감촉이 그녀의 귓불을 짓눌러왔다.
“히히.”
졸지에 귓불을 깨물린 다키아가 질색하며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새하얀 장갑으로 덮인 손이 그녀의 목을 붙잡았다. 푹 젖은 채 흙탕물투성이가 된 펄리가 히죽 웃었다.
“이러면 내가 이겼지?”
다키아는 두 눈을 감고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래요. 당신이 이겼어요. 이제 어쩔…”
풀썩.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 다키아는 자신의 목을 감쌌던 손아귀가 풀리자 다시 눈을 떴다.
그제야 그녀는 펄리의 모습을 제대로 보았다. 흙탕물투성이가 된 새하얀 옷 사이로 흘러내리는 붉은 액체. 길쭉한 바위 파편 하나가 펄리의 옆구리를 꿰뚫고 튀어나와 있었다.
“퍼, 펄리! 괘, 괜찮아요?”
“너무 아파서 이미 두 번쯤 죽은 거 같아…”
“제, 제가 치료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줄게요! 조, 조금만 ”
다키아는 펄리를 안아 들고서 이제는 형체조차 남지 않은 부둣가 한켠을 내달렸다. 다키아는 달리는 내내 끊임없이 펄리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 정신 차리고 있죠?”
“…아니, 이미 반쯤 죽은 거 같은데…”
“미안해요. 제가 미안해요. 퍼, 펄리라면 크게 안 다칠 거 같아서… 동료 사이에 이렇게 심하게 하면 안 되는 건데…”
“…나한테 미안해?”
“정말 미안해요.”
펄리는 힘없이 눈을 감은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앞으로 나랑 좀 더 친하게 지ㄴ…”
펄리의 말은 제대로 끝을 맺지 못했다.
“혼자서 부둣가를 다 때려 부숴놓는 마법사를 대체 우리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 저 정도로 대단한 마법사는 처음 본다고.”
“까라면 까야지 어쩔 수 있나. 게다가 저 마법사도 살아있는 생물인 이상 한계는 있을 거라고. 신이 아닌 이상, 저렇게 벌여놨으면 적어도 오늘 밤엔 더 못 날뛰겠지.”
부둣가를 벗어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복면을 쓴 사내 다섯이 걸어 나왔다. 잘 손질된 가죽 갑옷과 검으로 무장한 사내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다키아는 펄리를 안은 채 눈살을 찌푸렸다.
“당신들은 누구죠?”
“누구긴, 낮에 너한테 추파를 던지다 뭉개진 녀석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지.”
“그분들을 다치게 한 건은 돈으로 보상해 드릴 테니, 지금은 조금 비켜주실래요?”
일단은 다친 펄리를 치료하는 게 우선이었다. 다키아의 정중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사내들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마음 같아선 돈으로 받고 싶은데, 우리 보스는 생각이 조금 다른가 봐. 우리한테 널 꼭 데리고 오라고 명령해서 말이지.”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 치료가 급한 사람이 있어서요. 치료부터 맡기고 이야기를 하는 게 어떨까요?”
“그것도 안 되지.”
사내 중 하나가 검끝으로 다키아 어깨 너머 그녀가 만들어낸 파괴의 현장을 가리켰다.
“솔직히 나는 너한테 시간을 주고 싶은데 말이야, 문제는 우리가 지치지 않은 널 제압할 자신이 없거든. 그냥 곱게 따라와 달라고. 마법사 아가씨.”
“제가 당신들을 따라가면 펄리는 어떻게 하고요.”
그는 눈짓으로 펄리의 상태를 확인하곤 고개를 저었다.
“이미 반쯤 죽은 거 같은데, 그냥 내버려 둬야지.”
“잠시만요.”
“그래, 곱게 따라오면 서로 편하고 좋잖아. 말이 잘 통해서 다행이네.”
다키아는 조심스럽게 펄리를 벽에 기대 앉히고 속삭였다.
“오래 안 걸릴 거예요.”
“흐응.”
“얼간이 같은 선택을 하는군.”
다키아는 조용히 검을 빼 들고 자세를 낮췄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덤비세요.”
“검? 역시 마법은 더 못 쓰는 게 분명…”
“빵!”
머리통 하나가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놀란 다키아가 고개를 돌리자, 펄리가 힘없이 미소 지으며 검지 손가락을 까딱였다.
“아직 한 발 남았어. 히히. 네가 많이 위험하다 싶으면 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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