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69)
269 화 악취미적인 의문.
악취미적인 의문.
생각하자. 생각하자. 마르낙.
어떻게 해야 최대한 자연스럽게 카디쇼가 부패의 거인을 공격하지 않도록 유도하면서 부패의 거인과 함께 저 붉은 거인을 처리할 수 있을까.
“카디쇼.”
카디쇼가 예상을 넘어서 움직이기 전에 먼저 이름을 불러 멈춰 세웠다. 문제는 다음에 뱉을 말이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것.
– 가아아아아아아아악!!!
어느새 다시 몸을 일으킨 붉은 거인이 부패의 거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 번 튕겨 나갔었던 붉은 거인은 튕겨 나가기 이전보다 좀 더 커지고 좀 더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전투를 통해서 성장이라도 하는 것처럼.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앗 ! ! !
교차하는 포효 속에서 두 거인의 어깨가 맞부딪혔다. 그 묵직한 굉음과 진동에 대지마저 조금 흔들렸다.
몹시나 비슷한 크기의 두 거인이었지만 다만 다른 점이 있었다.
우리 쪽 거인이 좀 더 똑똑하고 강하다는 것.
– 그 아 아 아 아 아 앗 ! ! !
부패의 거인은 붉은 거인과 힘 싸움을 하는 대신 그대로 붉은 거인의 힘을 이용해 붉은 거인을 집어 던져버렸다. 붕하고 떠오른 붉은 거인의 몸이 수십 채의 건물을 뭉개버리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먼지와 잔해. 붉은 거인이 그사이를 비집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거대한 녹슨 식칼이 날아와 그대로 붉은 거인의 가슴팍 깊숙이 박혀 들었다. 부패의 거인은 허공에서 한 자루의 녹슨 식칼을 더 꺼내며 위협적으로 포효했다.
– 그 아 아 아 아 아 앗 ! ! !
– 가아아아아아악!!!
그에 화답하듯 붉은 거인의 포효가 뒤따르고 두 거인이 또 한 번 거세게 충돌했다. 붉은 거인이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그 덩치와 재생력 탓인지 부패의 거인이 붉은 거인의 숨통을 끊지는 못했다.
여기서 이제 내 참전이 필요한 시점인데.
“카디쇼, 일단…”
“…역시.”
나를 똑바로 노려보는 붉은 눈동자. 이미 내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 전부터 카디쇼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곧게 뻗어 나온 신성으로 일렁이는 붉은 빛. 그녀는 그 붉은 빛을 굳게 붙잡고서 나를 향해 말했다.
“저 거인, 마르낙 너와 관계가 있군.”
나는 악신의 사제들을 향한 사제들의 맹목에 가까운 증오를 너무나 잘 알기에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한 채 웃었다. 웃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했고.
“무슨 말씀을 하는지 당최 모르겠군요. 저는 정말로 저 거인이 뭔지 전혀 모릅니다. 감도 전혀 안 잡히고요.”
카디쇼는 말없이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내겐 수마디 말보다 그 침묵이 더욱 힘들었다. 최악의 경우 여기서 카디쇼와 한 판 드잡이질을 하는 걸 넘어 그녀를 죽여야만 할지도 몰랐으니.
내가 카디쇼를 죽여?
당장에 생각을 흩어버렸지만 깊은 회의감이 내 몸을 무겁게 적셨다. 어떻게 아무리 상황이 꼬였다지만 카디쇼를 죽인다는 경우를 고려할 수가 있지?
구정물 같이 차오르는 감정을 꾹 눌러 밀어냈다. 나는 내 무해함을 표현하듯 양손을 활짝 벌려 양 손바닥을 내보였다.
“카디쇼. 접니다. 마르낙. 그간 함께한 시간을 생각해보세요. 정말 절 못 믿으시겠습니까?”
“…”
붉은 눈 주변을 가득 채운 촉수 덩어리들이 꿈틀댄다. 촉수로 이루어진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왔다 올라가고 붉은 눈이 다시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보니 거짓말을 꽤 잘하는군. 마르낙.”
“그게 무슨…”
“아니, 거짓말을 잘한다기보다는 듣는이가 믿고 싶어 할만한 거짓을 잘 내민다는 편이 정확한가? 솔직히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네가 내미는 그 달콤한 거짓말을 믿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은은하게 일렁이는 붉은 빛덩어리가 정확하게 내 목을 겨눴다. 절대 꺾이지 않는 그 붉은 빛이.
“누구에게나 양보할 수 없는 선이 있는 법이지. 지금 이 순간이 내게는 그 선이다. 마르낙.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지. 전부 말해라. 진실되게.”
나는 여전히 웃었다.
“제가 말하면 그 진실의 무게를 감당하실 수는 있습니까? 카디쇼.”
“그것은 네가 염려할 부분이 아니다.”
“무슨 답을 원하시는 겁니까?”
손을 뻗어 내 목을 겨눈 붉은 빛을 밀어낸다. 봉의 끝이 예상보다 부드럽게 밀렸다. 나는 부디 그 부드러움이 카디쇼가 지금 가진 마음을 비추는 것이길 바랐다.
“…”
카디쇼의 대답은 없었다. 마치 내게 알아서 선택하라는 듯이.
어디, 대체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 거지?
거인 둘이 서로 맞부딪히는 굉음과 진동 속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처럼 고뇌했다. 지금 내가 내뱉는 말 한마디에 카디쇼와의 관계가 영영 틀어질 수도 있었으니.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냥 모르는 채로 이곳에 저와 함께 계시는 게 어떻습니까. 지금 한 발자국 나아가면 더는 돌이킬 수 없어집니다.”
“이것이 이유였군.”
카디쇼는 한 걸음 나아갔다. 나를 향해.
“그동안 내가 왠지 모르게 겉돈다는 느낌을 받은 이유가. 아마 나를 제외하곤 전부 마르낙, 네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의 긍정. 그 긍정의 뜻을 이해한 카디쇼의 표정이 꿈틀댔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을 붉게 일렁이는 두 눈을 제외하고는 온통 촉수로 뒤엉켜 있는 모습이라 쉬이 그 얼굴에 깃든 감정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묻겠다. 마르낙.”
잠깐의 침묵 후 카디쇼가 무겁게 말을 이어나갔다.
“저 거인은 네가 아는 거인인가?”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앗 ! ! !
또 한 번의 포효. 거인들의 맞부딪힘. 진동하는 대기. 들이마신 잔해의 흙먼지가 무척이나 칼칼하게 목을 긁어댔다.
다시 한번 거짓말을 할까. 카디쇼라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 주지 않을까. 아니, 악신의 신성이 관계된 이상 이 문제는 이제 카디쇼의 역린에 가까웠다. 어설픈 거짓말은 그녀의 화만 더 돋우겠지.
하지만 진실을 말했다간 신들이 심어놓은 사제들의 맹목적인 증오가 내게로 향할 텐데. 그 단 한 점의 이해도 최소한의 합리조차 없는 맹목적인 증오가.
긴 고민 끝에 나는 어려운 답을 내뱉었다.
“예.”
바로 긍정의 답을. 이 대답은 내가 동료라고 생각했던 카디쇼에게 보내는 내 마지막 존중이었다. 그녀가 비록 이 대답을 듣고 나를 적대하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카디쇼는 이미 대충 모든 사실을 눈치챈 듯했으니.
여기서 더 거짓을 보태봤자 그건 카디쇼를 기만하는 것일 뿐.
“예상하신 대로 저 거인은 제 아군입니다.”
“역시 그랬나..”
대답을 하면서도 나는 반사적으로 절망의 손잡이를 틀어쥐었다. 언제라도 카디쇼의 공격을 받아칠 수 있도록.
나는 카디쇼를 믿었지만, 광휘교 사제인 카디쇼는 믿을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 내가 카디쇼를 육체적으로 압박하는 사이 어머니가 총탄 몇 발을 박아넣어 잠시 무력화시키는 방법이 최선이겠지.
“…마르낙, 넌 악신의 숭배자들과 협력하고 있는 것인가.”
“모시는 신은 관계에 있어서 부차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람, 그 자체죠. 그들 또한 사람입니다. 카디쇼.”
“신성모독이다. 마르낙.”
“맹목에 사로잡히면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카디쇼.”
아직 그녀의 의심은 내가 악신의 사제라는 데까지는 닿지 못한 듯했다. 그렇기에 아직 대화란 것이 성립하고 있었다.
“그렇게 보고도 모르나? 악신의 숭배자, 그 종자들이 저지른 작금의 이 참상을 보고도? 오늘, 대체 몇이나 되는 무고한 자들이 목숨을 잃었는가?”
짓씹듯 말하는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차디찬 분노가 억눌려있었다.
“수천, 수만을 넘어 셀 수도 없는 이들이 죽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지. 마르낙! 정신을 차려라! 악신의 종자들은 용서할 수 없는 구제 불능의 쓰레기들이다! 그놈들이 네게 무어라 감언이설로 속삭였는지는 몰라도 전부 거짓이다! 전부 제 잇속을 챙기기 위한 거짓일 뿐이라고!”
카디쇼의 시각이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었다. 거기다 이 참상엔 내 소망을 위해 막지 않고 방조한 내 책임마저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런 나 또한 악신의 사제였고.
그렇기에 카디쇼의 말들이 내겐 무척이나 거슬렸다. 하도 내가 배운 양심을 긁어대는 통에.
“맹세해라. 마르낙. 악신의 숭배자들과의 모든 인연을 끊겠다고.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 내가 듣고 보았던 것들을 모두 없던 일로 간주하겠다.”
“이번에도 진실을 원합니까?”
“그렇다면?”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무슨 뜻이지?”
나는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작금의 간격은 검을 쓰는 나보다 봉을 쓰는 카디쇼에게 유리한 거리. 나의 간격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야만 했다.
그래도 나는 다시 한 걸음 뒤로 더 물러났다.
“카디쇼.”
검 손잡이에 올린 손을 떼진 않았다. 이건 내 목숨줄이니까. 스스로 신성을 품을 수 있는 상대는 언제나 내 질긴 목숨을 끊어낼 수 있는 위험한 적이었다.
아니, 아직 카디쇼는 적이 아니지만.
“이것만은 알아주십시오.”
“뭘 말인가.”
“저는 카디쇼를 동료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카디쇼 때문에 제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항시 당신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데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도 진실을 편히 다 말하지 못하게 되는데도 굳이 당신과 함께한 데는 제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상투스. 이 세계에 내버려 졌던 나의 구원자이자 내 삶의 스승, 그리고 내가 지향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 그래, 내가 그렇게 되길 바라마지 않는 존재.
카디쇼는 그런 그를 닮아 있었다. 자신의 자그마한 손해들을 얼마든지 감수하고 약자를 배려하며, 인간의 선의를 믿고 굳건한 자신만의 정의를 품은 사제.
내가 온갖 귀찮음을 감수하면서도 카디쇼를 데리고 다닌 건, 그녀에게 나름의 정을 붙인 것도 있었지만 사실 그녀가 어느 정도 바라마지 않는 내 이상의 모습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악신의 사제가 아닌 선신의 사제로서 내가 이 땅 위에 떨어졌다면 나는 카디쇼나 상투스 같이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엔 언제나 지독한 악취미 같은 한 가지 궁금증이 있었다.
과연 상투스는 내가 악신의 사제인 걸 알았더라도 그 눈보라 속에서 날 구했을까?
아니면 유지의 사제인 그는 사제로서 나를 죽이려 들었을까.
“카디쇼.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 같이 좋은 사람들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일렁이는 부패의 신성이 내 발끝에서부터 빠르게 내 몸을 뒤덮어갔다. 신성을 따라 암녹빛 문신이 은은한 빛을 내며 제 모습을 드러냈다.
내장부터 썩어나가는 격렬한 통증과 함께 내 육체는 전에 없을 정도로 강한 활기를 뿜어냈다.
내 신성을 목도한 카디쇼의 얼굴을 이루는 촉수들이 격하게 일그러졌다.
오늘은 드디어 내 지독히 악취미적인 의문 중 하나의 답을 들을 수 있는 날이었다.
악신의 신성이 넘치듯 흘러나오는 부패의 문을 빛내며 절망의 손잡이를 굳게 쥐었다.
뽑기 위해 쥔 것이 아니었다. 뽑지 않길 바라며 쥐었다.
“그러니 선택은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카디쇼.”
나는 부패의 사제로서의 내 모습을 아낌없이 드러낸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것이 바로 제 진실된 대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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