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77)
277 화 추가금.
추가금.
어두운 가운데 타닥거리며 흩날리는 불티. 식사를 갓 마친 다섯은 주섬주섬 자기 전에 뒷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교역도시 미세레에서 떠나온 지도 벌써 이틀째, 지금 이동속도면 내일 점심 때쯤이면 목적지에 도착할 터였다.
바로 잠을 자기엔 아직 밤이 그리 깊지도 않은 데다 다들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던 터라 도란도란 불가에 둘러앉아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저 ‘청소부’씨랑 같이 일을 해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사람 일이란 게 참 알다가도 모르겠는 거 같네. 하하. 포사,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싹싹한 태도로 이런저런 말이 가장 많은 건 자신의 이름을 케니라고 소개했던 사내였다. 그는 제법 잔웃음이 많은 데다 깔끔하게 잘생긴 얼굴이라 딱 보아도 여자들한테 인기가 제법 있어 보이는 종류의 사내였다.
아직 입이 살짝 심심한 터라 레페는 잘게 자른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생각했다.
‘접수원씨가 말해주기론 케니 씨도 한 인기 한댔지. 며칠 같이 지내보니 그 이유를 알겠는걸. 딱 싹싹한 여우 같아.’
반면 그와 2인조로 같이 다닌다는 포사라는 사내는 케니랑은 정반대되는 인상의 남자였다.
구릿빛 피부에 바싹 깎은 머리, 보통 남성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 케니랑은 다르게 말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말을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저쪽이 싹싹한 여우라면, 이쪽은 과묵한 늑대 같은 느낌이라 할 수 있지.’
상반된 인상의 2인조였지만, 둘 다 은패 용병이니만큼 육체도 잘 단련되어 있어 딱 둘이 다니면 취향이 다른 여자들 여심을 동시에 울리기 좋았다.
‘접수원 씨도 저 2인조가 요즘 가장 용병들 사이에서 인기가 제일 많은 2인조라고 했었지. 의외로 둘 다 생긴 거랑 다르게 여자 문제는 깔끔해서 더욱 가점 요소라고도 했었고.’
다만 여자 문제 쪽이 깔끔해도 너무 깔끔한 바람에 맨날 둘이서만 다니는 케니랑 포사를 동성애자로 의심하는 무리도 있다고도 했었다. 레페로서는 그다지 알고 싶지 않던 정보였지만 접수원이 워낙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통에 자연스럽게 알게 됐었지만.
‘저 둘이 여우와 늑대라고 하면 반면에 이쪽은…’
레페의 시선은 자연히 가만히 앉아 모닥불만 가만히 들여다보는 연에게로 향했다.
‘흠. 딱히 딱 어울리는 동물이 없네. 뭐가 좋지? 뭐가 좋을까? 개? 아냐, 개는 페르카한테 딱 맞지. 아니, 포르카는 개라기보다는 강아지에 가까워. 귀여운 강아지. 솔직히 저 연 씨라는 사람은 살아있는 생물이 맞나 싶은데 말이야.’
미세레를 떠나온 지난 이틀 동안 저 연이라는 남자는 정말 필요 최소한의 말만 내뱉었다. 그마저도 누가 먼저 말을 걸기 전에는 굳이 먼저 내뱉는 법이 없었다.
‘저렇게 말 안 하면 안 심심하나?’
다만 레페로서는 저 연이라는 남자가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씩 전혀 볼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과 페르카를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진짜 쳐다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레페가 육포를 한 조각 더 잘라 입안에 넣던 그때,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케니가 페르카에게 살짝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둘은 무슨 사이야? 단둘이 여행할 정도면 이미 그렇고 그런 사이인가?”
페르카는 볼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에요. 저랑 레페는 진짜 그냥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소꿉친구일 뿐이거든요. 케니 씨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전혀 아니에요.”
케니의 입가로 더욱 진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에이, 원래 다들 그렇게 시작하는 법이지. 소꿉친구가 어느 순간부터 여자로 보이기 시작하기도 하는 거야. 야야 부르다가 여보 여보 부르게 되는 셈이지. 안 그래? 포사?”
“그렇긴 하지.”
“아니, 진짜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요!”
같이 다닌 지 겨우 이틀이었지만, 저 둘은 어느새 페르카에게 친한 동네 형처럼 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의뢰주고 저 사람들은 고용인인데 말이야.’
그렇다고 해서 케니랑 포사가 딱히 선을 넘는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지적하기도 애매했다. 페르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레페는 굳이 따지자면 같이 다니기엔 저 둘 보단 연이라는 남자 쪽이 편했다.
‘케니는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아. 하도 말을 걸어대는 통에 저 사람들이 동행한 뒤로 페르카랑 둘이 이야기하는 시간이 거의 없어졌잖아.’
레페는 장작을 잡아 모닥불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부스럭대는 소리와 함께 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페는 고개를 들어 연을 잠깐 바라보았지만, 연은 별다른 말 없이 자신의 자리로 가서 누웠다.
‘나도 내 불침번 차례 때까지 그냥 잘까? 딱히 깨어있어도 별 재미 없는데.’
지금보단 차라리 페르카랑 단둘이 교역도시까지 여행할 때가 훨씬 재미있었다.
적어도 그때는 이렇게 소외당하는 기분이 아니었으니까.
레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페르카가 반응했다.
“벌서 자게?”
“응. 좀 졸려서. 내 불침번 차례 되면 깨워줘.”
“어, 응. 잘자. 레페.”
미련 없는 그 태도에 레페는 살짝 서운함을 담아 페르카를 째려보았다. 이미 그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케니랑 다시 떠들고 있었지만.
‘멍청이 페르카.’
***
다음날.
일행은 다행히 별일 없이 예상보다 조금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애초에 교역도시에서 겨우 삼일 거리인 이곳에 엄청난 괴물이나 도적들이 판을 치는 게 더 이상했으니.
넝쿨로 뒤덮인 담벼락과 잔뜩 피어나 있는 잡초들. 뒤덮인 식물들 때문에 거의 녹색에 가까운 저택을 보며 케니가 감탄했다.
“이런데 이런 건물이 있었을 줄이야. 확실히 여긴 페르카가 가지고 있던 지도가 아니었으면 쉽게 찾지는 못했을 거 같네. 오는 길이 조금 힘들기도 하고 말이지.”
첫날은 잘 닦인 도로 위를 걸었지만, 이틀째부터는 페르카가 가진 지도의 길을 따라 산속으로 이동하느라 거진 길을 새로 만들면서 쭉 이동했었다.
“저도 놀랍네요. 근데 안에 뭐가 남아있긴 할까 싶은데요. 방치된 지 너무 오래되어 보여서요.”
페르카의 말에 케니는 페르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싱긋 웃었다.
“혹시 모르지. 네 증조할아버지가 남기신 유산이라며. 저기 분위기만 보면 엄청 비싼 물건이 잔뜩 남아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고.”
“제가 보기엔 털려도 이미 진작에 다 털린 거 같아 보이는데요.”
“그거야 들어가 보기 전까진 모르지.”
페르카는 오래된 저택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이곳으로 향하는 지도는 얼마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것이었다. 지도엔 할아버지의 글씨로 ‘아버지의 저택’이라 적혀있었는데 신기한 지도를 찾은 페르카는 아버지에게 들고 갔지만 정작 페르카의 아버지는 지도에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었다.
자기가 한 번 찾아가 봐도 괜찮냐는 질문에 가보고 싶으면 굳이 말리진 않는다고 하며 흔쾌히 허락해주셨지만.
페르카가 증조할아버지의 유산 찾기 여행을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레페가 자기도 가보겠다며 따라붙은 게 이번 여행의 자초지종이었다.
“자자, 일단 들어가서 살펴보자고. 여기서 계속 구경만 하는 사이에 저 오래된 저택이 혼자 무너질지도 모르잖아?”
“그러는 편이 좋겠네요.”
케니가 앞장서고 그 뒤를 따라 일행이 저택에 들어섰다. 전혀 관리가 안 된 탓인지 저택의 바닥을 밟을 때마다 가끔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처음 지어질 때부터 꽤나 단단히 잘 지어진 듯 저택 내부의 구조물들은 별다른 이상 없이 멀쩡했다.
다만.
페르카는 저택 내부를 쭉 살펴보곤 쓰게 웃었다.
“진짜 이미 누가 한 번 싹 털어간 거 같네요.”
저택 내부엔 진짜 별다른 물건이 남아있질 않았다. 너무나 깔끔하게 털린 상태라 뭔가를 더 찾아볼 건덕지가 없어 보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 번 흩어져서 쭉 한 번 살펴보죠. 뭔가 발견하면 말해주세요.”
“그래.”
“응.”
일행이 흩어지고 해가 조금씩 기울 무렵까지 저택의 이곳저곳을 살폈지만, 딱히 챙길만한 물건은 발견되지 않았다.
페르카와 둘이 이곳저곳을 들쑤시던 레페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김 새네. 페르카네 아저씨가 왜 관심이 없으셨는지 그 이유를 알 거 같아. 가봤자 별것 없을 걸 이미 알고 계셨던 거야.”
페르카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이럴 거면 그냥 가지 말라고 하면 안 됐나? 왜 나보고 한번 가보라고 한 거지? 그냥 할아버지 살던데 한 번 구경해보라고?”
“페르카, 그 지도 한 번 다시 자세히 봐봐. 뭐 숨겨진 보물에 관한 단서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
“흐음. 딱히 별거 없는데.”
지도를 다시 펼쳐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지도 뒷면에 어지럽게 적힌 낙서 비슷한 무언가였는데 그림이라기엔 너무 선투성이였고, 제대로 된 글자라기엔 너무 뭉개져 있었다.
그때 불쑥 손 하나가 페르카의 앞으로 튀어나왔다.
페르카가 고개를 들자 어느새 나타난 연이 손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페르카는 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보여달라고요?”
“어.”
짧은 대답. 못보여줄 것도 없는지라 페르카는 순순히 지도를 연에게 넘겼다. 연은 뭉개진 낙서를 유심히 보더니 낙서를 보면서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레페는 그 모습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뭔가 알아낸 거 아냐?”
페르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낙서를 보고 뭔가를 알아냈다고? 말이 안 되는데?”
그래도 연을 따라가는 거 말고는 딱히 할 일도 없던 차라 둘은 연의 뒤를 쫓았다. 지도를 든 연이 향한 곳은 저택의 1층이었다. 계단을 내려온 그는 특정 기둥 앞에서 멈추더니 마치 숫자를 세듯 천천히 특정 방향으로 몇 걸음을 옮기다 직각을 꺾어 다시 몇 걸음을 옮기고를 반복했다.
이윽고 그가 멈춰 선 것은 1층에서 가장 자그마한 구석방이었다. 연이 지도를 바라보며 벽 여기저기를 꾹꾹 누르자 갑자기 턱 걸리는 소리와 함께 드르륵거리며 방 한구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잽싸게 열린 바닥을 이리저리 둘러본 레페가 눈을 반짝였다.
“계단이잖아! 밑에 뭔가 있나 봐! 저기라면 아직 털리지도 않았을 거 같은데?”
“그, 그렇네.”
“받아.”
연이 건넨 지도를 다시 받은 페르카가 두 눈을 끔벅이며 물었다.
“여긴 어떻게 안 거예요?”
연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
“뒤에 적힌 거 그대로 읽은 거뿐이야. 내려가 볼 거면 나머지 둘도 데리고 오던지.”
“그럴게요.”
뒤돌아 나와서 케니와 포사를 부른 페르카는 문득 자신이 고용주고 연이 피고용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내가 왜 부르러 갔지?’
너무 당연하게 데리고 오란 말에 자기도 모르게 몸이 먼저 움직였었다.
‘뭐, 누가 부르든 딱히 상관없는 일이긴 해.’
비밀통로 앞에 도착한 케니는 이걸 대체 어떻게 찾아낸 거냐며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이거 뭔가 엄청난 보물이 있을 거 같은데. 페르카, 네 증조할아버지는 원래 뭐하던 분이시길래 이런 비밀통로를 만들어놓으신 거야?”
페르카는 비밀통로의 계단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듣기론 저희 집이 원래는 귀족 집안이었대요. 증조할아버지 대에서 망해버렸지만.”
“뭐어?! 그건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페르카! 왜 여태 나한테도 안 알려준 거야!”
레페가 질책하자 페르카가 움찔하고는 레페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안 지 얼마 안 됐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아버지한테 들은 거란 말이야. 게다가 이미 대차게 망해버렸는데 귀족이고 아니고가 뭐가 중요해.”
“그래도! 나한테는 말해줬어야지!”
왜 너한테 꼭 말해야 하냐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했다간 레페가 더 대차게 삐질 게 분명해서 페르카는 튀어나오려던 말을 삼켰다.
“소꿉친구끼리 사랑싸움은 거기까지만 하고 일단 내려가 보는 게 어떨까? 응?”
“사랑싸움 아니거든요?!”
케니의 말에 짧게 반박한 레페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페르카를 노려보는 것으로 굳이 더 화를 내지 않았다. 당장은.
‘무조건 나중에 또 뭐라 하겠네.’
예정된 미래에 페르카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하아, 일단 그럼 내려가 보죠. 조심해서요. 혹시 무너지려는 기색이 보이면 바로 올라오는 거예요.”
일행이 고개를 끄덕이자 케니가 앞장서서 계단을 내려갔다.
다행히 무너질 기미가 전혀 없는 계단의 끝엔 돌로 된 방이 하나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실은 별다른 물건 없이 텅 비어있었지만, 공간 한가운데에 돌로 된 제단 같은 비슷한 것이 튀어나와 있었다. 제단에 가까이 다가간 페르카는 석조제단 한가운데에 자그마한 무언가가 꽂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손을 뻗어 물건을 뽑아낸 페르카는 제단에 꽂혀있던 것이 열쇠란 사실을 깨달았다.
“대체 어디에 쓰는 열쇠지?”
옆에서 지켜보던 레페 또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게? 여기 딱히 열쇠를 꽂을 장소는 안 보이는데…”
페르카의 어깨너머로 그가 손에 든 걸 확인한 케니의 눈이 커졌다.
“어? 그거 ‘열쇠’잖아!”
깜짝 놀란 케니를 보며 페르카가 눈을 끔벅였다.
“딱 봐도 열쇠죠. 뭐가 그렇게 놀라운 거예요?”
케니는 이내 페르카가 ‘열쇠’가 뭔지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이마를 탁치고는 입을 열었다.
“너희 ‘열쇠’ 이야기 들어 본 적 없어? 그냥 평범한 열쇠 말고, 고대 제국의 유적으로 갈 수 있는 열쇠말이야! 거기 자세히 봐봐. 열쇠 표면에 뭔가 잔뜩 적혀있지? 그게 바로 고대 제국의 유적으로 갈 수 있는 열쇠들의 특징이거든!”
페르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에 든 열쇠를 내려다보았다. 고대 제국 유적으로 ‘열쇠’에 대해 지나가듯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대박이란 거예요?”
“그건 일단 들어가 봐야 아는데, 높은 확률로 꽤 비싸고 귀한 물건들을 구할 수 있을 거야. 아, 아쉽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네가 마법사도 한 명 고용해서 왔어야 했어. 거기 적힌 고대어는 마법사들만 읽을 수 있거든. 일단은 빠르게 미세레로 돌아가서 마법사를 찾…”
“줘봐.”
케니의 말을 가볍게 끊은 연이 손을 내밀자 페르카는 얼떨결에 그대로 열쇠를 연의 손에 넘겨주었다. 열쇠를 든 연은 가만히 열쇠를 살피더니 페르카를 보며 말했다.
“적힌 좌표가 바로 이 지하실인데. 갈 거야?”
“네?”
“문 당장 열 수 있다고. 가볼 거야?”
“네에?!”
페르카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연은 짧게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그대로 허공에 열쇠를 꽂아 넣었다. 그러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새카만 구멍이 입을 벌렸다.
그 모습을 본 케니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벌렸다. 잠시 후 진정한 케니가 연을 향해 물었다.
“…청소부씨 마법사였어?”
“아니.”
“그럼 대체 어떻…”
연은 케니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페르카를 바라보며 물었다.
“갈 거야 말 거야?”
페르카는 허공의 구멍을 바라보곤 케니에게 물었다.
“저기 들어가면 어떻게 다시 나와요?”
“열쇠를 다시 쓰면 어디 있든 바로 다시 나올 수 있어. 아니면 유적 끝까지 가도 출구가 있고.”
“그럼 언제든지 여차하면 나올 수 있다는 거네요?”
케니는 연을 다시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열쇠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럼 일단 조심해서 들어가 봐요. 언제든 나올 수 있으면 안 들어가 볼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자. 그럼 우선 나부터 들어가 볼게.”
“네.”
케니가 먼저 검은 구멍으로 들어가고, 그 뒤를 포사, 페르카가 뒤따랐다. 페르카를 따라 구멍으로 들어서려던 레페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는 연을 바라보았다.
갈수록 수상한 사람이었다. 케니의 말로는 마법사들만 사용할 수 있다는 열쇠를 손쉽게 사용한 것도 그렇고 지도 뒤편에 적혀있던 낙서를 읽은 것도 그렇고.
한껏 경계심을 끌어올린 레페가 연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안 들어가요?”
연은 손에 든 열쇠를 내보이며 짧게 답했다.
“열쇠가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가 닫혀.”
“근데 열쇠는 어떻게 사용한 거예요?”
“잘.”
성의 없는 대답. 연은 빨리빨리 안 들어가는 레페를 보며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안 들어갈 거면 나부터 가고. 밖에서 기다리던지.”
“갈 거예요.”
짧게 대답한 레페가 검은 구멍으로 먼저 발을 옮기고 연이 그 뒤를 따랐다.
***
“…어?”
구멍 너머로 들어오자 레페를 반긴 건 길게 이어진 복도였다. 그래, 복도만이 그녀를 반겼다.
먼저 들어간 페르카, 케니, 포사 셋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이.
뒤이어 발소리와 함께 연이 유적 안으로 나타났다. 레페는 고개를 돌려 연에게 물었다.
“다 어디 갔어요?”
연은 레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내가 제일 마지막에 들어왔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아.”
지극히 맞는 말이었다. 일단은 어찌 됐건 복도를 따라 이동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구멍으로 들어왔던 방향은 벽으로 막혀있어 가야 할 방향도 헷갈릴 일 없이 딱 하나뿐이었다.
“일단 움직여요. 페르카를 찾아야겠어요.”
레페가 복도를 향해 발을 내딛자 무언가 꾹 눌리는 느낌과 함께 옷깃이 목이 졸라왔다.
“켁?!”
까앙!
벽에 맞고 튕긴 화살이 바닥에 떨어졌다. 연이 붙잡아 당겼던 목깃을 놓자 레페는 헛기침하며 숨을 골랐다.
하마터면 갑자기 튀어나온 화살을 맞을 뻔했다. 겨우 숨을 고른 레페가 연을 향해 말했다.
“…꼭 목을 졸라가면서 당겨야 했어요?”
“왜 구해줘도 난리지?”
“굳이 안 구해줘도 피할 수 있었어요.”
“그래.”
대충 대답한 연은 레페를 제치고 그녀가 밟았던 자리를 넘어 몇 걸음 더 걸어 나가다 여유롭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철컥!
벽에서 튀어나온 날카로운 금속 창들이 종이 한 장 차이로 연의 앞에 튀어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연은 허리춤에 찬 검 손잡이에 대충 손을 걸치고는 뒤를 돌아 레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함정이 좀 많은데. 그냥 나갈까?”
어이없는 한마디에 레페는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아니, 페르카랑 다른 사람들을 구해야죠!”
“…내가 왜?”
”열쇠는 당신만 쓸 수 있잖아요! 게다가 페르카랑 저는 그러라고 당신을 돈 주고 호위로 고용했고요!”
연은 뒤를 돌아 복도를 힐끔 보고는 말했다.
“이런 곳에서도 구하러 갈 정도로 받진 않았는데.”
정말 그가 나가고 싶다면 당장에라도 열쇠를 써서 나가면 될 뿐인데 저렇게 서서 말하는 걸 보면 따로 원하는 것이라도 있는 게 분명했다.
“…뭘 원하는 건데요?”
“추가 보수.”
‘결국, 그런 거였나?’
이곳은 상정 외로 위험한 곳이니만큼 추가금을 원한다고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조금 얄밉기는 했지만.
“…하아. 얼마나 원하세요?”
“지불할 의사가 있다는 거지?”
“네, 그러니까 액수를 말하세요.”
“있으면 됐어.”
“네? 그게 대체 무슨 뜻이에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한마디. 연은 레페가 당황하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레페를 향해 손짓했을 뿐.
“따라오기나 해. 지금부터 하나씩 파훼하면서 갈 테니까.”
레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로 따라붙으며 말했다.
“아니, 액수를 정해야 제가 주든 말든 하죠.”
“알아서 적당히 받아갈 테니 신경 쓰지 마.”
알아서 적당히 받아간다?
레페는 그 말이 어딘지 모르게 불길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당장에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레페는 함정을 하나하나 파훼하며 나아가는 연의 뒤를 쫓아가며 생각했다.
‘…이거 내가 실수한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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