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86)
286 화 일을 키움.
일을 키움.
쾅!!!
바닥에 처박힌 경비대원의 고개가 축 늘어졌다.
죽인 건 아니었고, 그냥 기절만. 당연히 이 정도는 버틸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약골이었다.
하. 스트레스받네 진짜.
기절한 놈을 한 번 더 걷어찰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등 뒤에서 가만히 구경하던 칼라게인이 말을 걸어왔다.
“일단 진정하고 검부터 찾아야 하지 않나? 그게 소중한 거라면?”
“이미 어딨는지는 알아.”
‘절망’의 위치는 그간 써오며 충분히 특유의 기운에 익숙해진 덕에 얼마나 떨어져 있든 그게 과하게 멀지만 않다면 알 수 있었다. 검의 움직임을 보니, 딱히 이 도시 밖으로 빠져나갈 기색도 없어 급할 이유가 없었다.
“급한 건 따로 있지.”
응징.
빡!
기절한 놈의 다리를 한 번 걷어찼다. 한동안 제대로 걸어 다니지도 못하게. 이 녀석이 처박히며 우당탕탕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인지 대여섯 개의 발자국이 빠르게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코너 앞에 서서 녀석들을 기다렸다. 튀어나오는 첫 얼굴. 그대로 가슴팍을 걷어찼다. 덧댄 금속이 우그러지며 피를 토해낸 경비대원이 그대로 기절했다.
“적이다! 모두 검을 꺼내라!”
“그래, 다 꺼내 봐. 할 수 있는 건.”
나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모습을 드러냈다. 좁은 복도로 다섯 경비대원이 검을 뽑아 들었다. 복도의 폭으로 보았을 때 한 번에 달려들 수 있는 건 많이 잡아봤자 셋. 그 이상은 어차피 서로의 간격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하아압!!!”
첫 번째 경비대원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쾅!!!
배를 걷어차인 경비대원이 날아 그대로 다른 경비대원 하나랑 뒤얽혀 처박혔다. 그 틈을 노리고 다른 경비대원이 나를 향해 검을 찔러 들어왔다. 날카로운 검끝은 정확하게 내 몸을 노리고 있었다.
오른손을 내뻗는다. 손날이 종이 한 장도 채 안되는 간격으로 검의 옆면을 타고 오른다. 검의 중간. 그 지점에서 검을 부드럽게 밀어 궤적을 비틀었다.
빗나간 검의 간격. 그곳으로 몸을 비집어 넣는다. 그대로 경비대원의 얼굴을 붙잡고 옆에서 달려드는 놈의 머리에 처박았다.
빡!
머리 두 개가 서로 맞부딪히고 두 명의 눈이 뒤집혔다. 기절한 두 놈의 옆구리를 한 번씩 걷어차 주고 이제 홀로 서 있는 마지막 경비대원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허공에 검을 휘두르며 위협했다.
“오, 오지마! 이 새끼야!”
“야. 검 내놔봐. 그거 주면 너는 봐줄게.”
“…”
떨리는 동공. 눈앞의 사내는 경비대원으로서 최소한의 도덕과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저울질하고 있는 듯했다. 마침내 두 눈을 질끈 감은 사내는 자신의 검을 내밀었다.
“여, 여기 있다.”
“에라이. 되다만 자식아. 그걸 달란다고 진짜 주냐? 네가 그러고도 경비대 맞아?”
빡!
턱주가리를 얻어맞은 사내의 몸이 무너져내렸다. 나는 검만 낚아채고 슬쩍 몸을 피했다.
야간이라 그런 건지. 당장에 더 달려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야간 근무 인원들은 순찰을 돌거나 다른 업무를 하고 있는 중인 거겠지.
나는 새로 얻은 검으로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여기를 빠져나가면 어디부터 갈지 고민했다. 뒤에서 천천히 걸어온 칼라게인이 쓰러진 경비대 여섯을 보며 말했다.
“이들은 네 검을 빼돌리는 일과 전혀 상관없을 수도 있지 않나?”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럼 내가 한 명 한 명 붙잡고 ‘혹시 제 검 빼돌린 놈이랑 한통속이세요?’하고 정중하게 물어보기라도 했어야 해? 날 웃기려고 한 소리면 거의 성공했어. 방금 막 살짝 헛웃음이 나올 뻔했거든.”
쓰러진 놈들의 오른팔을 한 번씩 밟아 대충 부러뜨리고 경비대 건물을 나섰다. 절망이랑 같이 들고 다니는 나머지 한 자루는 어차피 눈에 안 띄려고 대충 아무거나 들고 다니던 검이라 굳이 찾을 이유가 없었다.
“우선은 페르카랑 레페한테 찾아가야겠군.”
“그게 누구지?”
“있어. 소꿉친구 둘.”
“소꿉친구라… 아주 훌륭하군. 나도 내 아내랑 소꿉친구부터 시작했었지. 아내는 잠이 많은 편이라 매일 아침 내가 아내를 깨우러…”
칼라게인이 무어라 떠들든 내 알 바 아니었다. 나는 붙잡혀올 때 봐둔 기억에 의존해 더듬더듬 길을 찾아 나섰다. 칼라게인 놈은 그런 내 뒤를 졸졸 쫓아오며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게 또 어렸을 때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서 말이야. 나는 자주 마음에도 없이 퉁명스럽게 굴기도 했었어. 그런 점에서 아내는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지. 애처럼 구는 날 보면서도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으니. 그래, 내 아내는 애를 낳기 전에도 모성이 잔뜩 넘치는 여성이었어.”
“아, 네 아내 이야기는 전혀 안 궁금하다니까?”
“내 아내는 내 가장 큰 자랑인데 이건 너도 반드시 알아야만 해.”
“아니, 그렇게 자랑스러우면 그냥 혼자 자랑스러워 하라고.”
투닥대며 걸어온 끝에 레페와 페르카가 묵고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내 얼굴을 본 중년 여관 주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무죄방면되신 겁니까!”
“아니. 자의로 유죄방면했어.”
“…네?”
“그냥 탈옥했다고. 그나저나 나랑 같이 온 애들은 어딨어?”
“위, 위층에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넌 지금 날 포함해서 아무것도 못 본 거야. 그래야 피해가 없을 테니. 내일이 되거든 잠만 잤다고 주장해. 알겠어?”
“아, 옙.”
고개를 끄덕이는 주인을 뒤로하고 빌렸던 방이 있던 층으로 향하자 방 하나에서 두런두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모르겠는데. 해본 적이 없어서.”
“근데 어디부터 하지?”
“나도 처음인데 어떻게 알아.”
뭐가 됐든 시작되기 전에 나는 벌컥 문을 열었다. 그러자 반짝이는 황금빛들이 나를 반겼다. 레페와 페르카는 서로 마주 앉아 가방에서 황금을 꺼내 정리하고 있었다.
내 얼굴을 발견한 둘의 눈이 커졌다. 레페는 꺼내던 황금을 다시 가방에 밀어 넣고 물었다.
“어떻게 풀려난 거예요?”
나는 바닥에 늘어둔 황금을 보며 말했다.
“너희는 뭐 하고 있었는데.”
레페는 내 시선을 따라 황금을 힐끔 한 번 보곤 대답했다.
“저희야 경비대에 뇌물을 얼마나 먹이면 그쪽을 풀어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죠. 페르카가 자기 때문에 연 씨가 잡혀갔다고 워낙에 책임감을 느껴서 말이에요.”
“됐고. 짐 싸. 너희는 지금부터 코렌틴을 빠져나갈 거니까.”
“왜요? 설마…? 지금 풀려나서 온 게 아니라 탈옥해서 여기 온 거예요?!”
“나는 내 나름 최대한 코렌틴의 사법체계를 존중해보려고 노력했어. 저놈들이 먼저 선을 넘은 거지.”
진심으로.
페르카보다 상황 판단이 빠른 레페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꺼내놓은 황금을 주섬주섬 주워서 가방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페르카는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것인지 조금 멍청한 소리를 했다.
“그럼 연 씨는 저희랑 같이 안 가요?”
“나까지 셋이서 빠져나가면 잘도 코렌틴이 우리를 그냥 보내주겠다. 나는 대충 뒤처리하고 쫓아갈 테니까 너희 먼저 가.”
“제 검 봐주시는 건 여전히 유효한 약속 맞죠?”
“…”
이 자식, 이제 보니 자기 밥그릇은 제법 똑바로 챙길 줄 아는 놈이었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페르카랑 내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벌써 짐을 다 싼 레페가 나를 보며 물었다.
“근데, 남아서 뭘 어쩌시려고요?”
나는 레페의 연녹빛 눈을 똑바로 보며 선언했다.
“지금부터 감히 누구의 검을 건드린 건지, 코렌틴에게 알려줘야지.”
***
대충 외곽의 성벽을 부숴 구멍을 만든 다음 리어카에 짐을 실어서 페르카와 레페를 내보냈다. 그 광경 여태 조용히 지켜본 칼라게인이 눈물을 훔쳤다.
“…훌륭한 소꿉친구로군. 나중에 둘이 결혼하면 좋겠어.”
“개인적으로 소꿉친구물은 별로야. 소꿉친구는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알아가는 재미가 없잖아.”
“뭣이?!”
나는 경비대에서 뺏어온 검을 까딱이며 대답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소꿉친구보단 학교에서 처음으로 마주치는 전개를 선호해. 거기다 미소녀 전학생이면 더욱 금상첨화지.”
***
쿵! 쿵! 쿵! 쿵!
코렌틴의 젊은 영주, 솜니아 카디에른은 저택의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눈을 떴다. 멍한 정신에 모든 것이 비몽사몽 했지만 무언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하나만은 분명했다.
‘꿈인가…’
쩌억하고 하품을 한 번 하자, 문이 부서지며 젊은 집사가 허공을 날아 벽에 처박혔다. 그녀는 두 눈을 끔벅거리며 거품을 물고 기절한 집사를 바라보았다.
“실례합니다.”
장난스러운 목소리. 부서진 문을 넘어 두 명의 사내가 걸어들어왔다. 허리까지 자란 긴 검은 머리를 깔끔하게 하나로 묶고서 간단한 여행복에 검 한 자루를 꺼내든 사내와, 붉은 갑옷을 입은 붉은 머리 사내.
그 광경을 보며 솜니아는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꿈인가?”
“그래, 꿈 맞아. 그런데 그쪽이 이 도시의 영주인 솜니아 맞아? 듣던 대로 엄청 어리네?”
솜니아는 조금 멍청한 표정으로 연을 바라보았다.
“맞긴 한데…”
연은 그런 솜니아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는 턱짓으로 벽에 처박혀 기절한 젊은 집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아무래도 집사 한 명 해고해야겠더라. 쟤 좀 위협하니까 너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다 부는 거 있지? 네 방도 쟤가 말해줘서 찾은 거야.”
솜니아는 다시 한번 두 눈을 끔벅거리더니 되물었다.
“보통 그런 건 위협한 쪽이 나쁜 거 아닌가?”
“…제법 사리분별이 확실한 편이네.”
밀려오는 졸음에 솜니아는 몇 번 눈을 끔벅이더니 연을 향해 말했다.
“…꿈인데도 졸려.”
연은 자연스럽게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그는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만약 꿈이 아니라면? 진짜 방문이 부서진 거라면? 실시간으로 영주님이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처한 거라면? 그렇다면 어쩔 거야?”
솜니아는 두 눈을 반쯤 감은 채 대답했다.
“…좀 더 자고 생각해볼래.”
“그래. 좀 더 자고 생각해봐.”
“고마워…”
솜니아가 일으켰던 몸을 눕히자 연은 친절하게 몸 위에 이불을 덮어주었다. 솜니아는 이내 고롱거리며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을 본 칼라게인이 물었다.
“안 깨워도 되나?”
연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어차피 조금 있다가 깨울 건데 조금 더 자라고 해.”
“그냥 진짜 꿈인 줄 알아서 조금 당황한 건 아니고?”
“…사실 그것도 맞아.”
잠시 후, 수많은 발소리가 저택을 울렸다.
“영주님!”
“녀석들은 솜니아님이 계신 방으로 갔다!”
“영주님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라!”
커다란 침대 끝에 앉아 발을 까딱이던 연이 몸을 일으켰다.
“드디어 왔네.”
연은 거침없이 자고 있던 솜니아를 잡아끌어 일으키고는 그대로 허리춤의 검을 뽑아 그녀의 목에 가져다 댔다.
우르르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중무장 병사와 기사들. 연은 영주의 목에 가져다 댄 검을 내보이며 소리쳤다.
“거기서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너희 영주는 영하고 주로 나뉘는 거야! 아주 머리랑 몸이 반 토막 날 거라고!”
“비겁한 자식!”
“감히 영주님을!!!”
“네놈!!! 이 짓을 벌인 목적이 뭐냐!!!”
기다리던 질문. 연은 ‘절망’을 빼돌린 놈을 가장 크게 엿되게 하기 위한 답을 꺼냈다.
“경비대에서 빼돌린 내 검! 그거 당장 찾아와! 너희 영주를 살리고 싶거든!”
일을 키운다. 훔쳐 간 놈이 스스로 엿됐다 느낄 만큼 키우고 또 키운다. 그게 연이 감히 그의 절망을 빼돌린 놈에게 선물할 절망이었다.
“…어?”
게슴츠레하고 눈을 뜬 영주, 솜니아가 연과 몰려든 사람들을 보곤 작게 중얼거렸다.
“…이건 꿈속의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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