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internation Students makes good money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의외의 결과
“오늘 아주 중요한 날인 건 아시죠?”
“홍 이사님?”
“네?”
홍미나는 내 옆에 착 붙어서 불타는 눈으로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최기명 변호사까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정도는 저도 압니다.”
“아닌 거 같은데요? 대표님. 그렇게 중요한 자리인 걸 알면서… 그러고 온 겁니까?”
“이게 뭐가 어때서요? 스티브 잡스도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에서 목폴라랑 청바지를 고수했잖아요.”
“당신은 스티브 잡스가 아니니까요.”
사실 전날까지 집에도 못 가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느라 옷을 준비할 새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평소에 입던 후디에 청바지를 입고 온 건데.
역시 홍미나랑 최기명 변호사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던 듯했다.
“어쨌든 준비는 확실히 하셨겠죠?”
“네. 이보다 잘할 순 없을 거 같네요.”
“이번 투자자들 중에서 이미 우리에게 붙겠다고 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 예상으로는 지더라도 선방하면 6 대 4. 망하더라도 7 대 3은 될 거라고 봅니다.”
“사실 그 정도만 있어도 다음을 기약할 정도는 되겠네요.”
투자 설명회라는 게 스코어로 승자 독식 같은 방식은 아니었으니까.
누가 더 많은 투자자를 유치했는가에 따라서 언론은 패자를 물고 뜯겠지만.
그래도 6 대 4나 7 대 3 정도만 되더라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는 셈이었다.
다행히도 최기명 변호사와 홍미나 이사가 최선을 다한 덕에 애당초 우리에게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투자자들이 꽤 되었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먹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투자 설명회는 명목상일 뿐이죠. 사실 진짜 싸움은 이미 끝났습니다.”
투자 설명회에서 선보이는 프레젠테이션은 사실상 투자자의 마음을 돌리는 것보다는 과시에 가까웠다.
나를 믿고 투자하겠다고 한 투자자에게 보여 주는 증명과도 같은 것.
“알아요. 잘 알죠. 후우… 그래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오빠,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 미나야.”
“그나저나 옷은 좀 갈아입죠?”
“그게….”
“정장이라면 제가 준비했습니다.”
“철저하시네요?”
“그걸로 먹고사니까요. 대표님.”
최기명 변호사는 내가 옷을 준비하지 못할 것이란 것도 이미 상정한 듯 옷을 준비한 상태였다.
역시 최기명 변호사는 철저해도 너무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럼 탈의실에서 갈아입고 설명회장으로 오세요. 홍미나 이사님과 저는 투자자들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네. 부탁 좀 할게요.”
옷을 받아서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꽉 끼는 셔츠와 목을 옥죄는 넥타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는 정장이 중요하긴 하지.
단정하게 단장을 하고 마지막으로 거울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 자서 퀭한 얼굴만 제외하면.
탈의실에서 나와서 복도를 걸었다.
이제 저기 설명회장에 들어가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펼쳐진다.
물론 이미 투자자들은 마음을 결정한 뒤였고, 내가 스티브 잡스급의 명발표를 한다고 해도 그들의 마음이 돌아설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마지막 최후의 기적까지 바라는 그 희망.
“후우….”
잘하자는 다짐을 하고.
걸어가는데.
갑자기 화장실에서 낯익은 뒷모습이 튀어나왔다.
이건 누가 봐도 정시안데?
하지만 말이 되지 않기에 섣불리 믿진 않았다.
투자 설명회에 난데없이 정시아가, 그것도 화장실에서 튀어나오진 않을 거 아닌가.
그런데 물이 든 유리잔을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이 너무 옛날에 시아가 술 마신 다음 날 냉장고로 가서 생수병을 원샷 하던 그 장면과 너무 겹쳐 보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내뱉었던 거 같다.
“정시아?”
“꺄악!”
화들짝 놀라며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데.
역시 정시아가 맞았다.
이렇게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오랜만이네.”
“차, 차현식?!”
예전엔 뒷모습만 봐서 너무 아쉬웠는데.
지금은 내가 그리워 마지않던 시아의 모든 모습이 눈에 담겼다.
그나저나 그녀가 머금고 있던 물이 전부 내 얼굴에 튀었다.
안 그래도 세수나 한 번 할까 했는데.
잘됐지 뭐.
“미, 미안해!”
황급히 테이블에 있는 냅킨을 가져와 내 얼굴을 닦기 시작하는 시아.
그녀의 손길이 느껴졌다.
잠깐잠깐 스치는 그 손길이 너무 그리워 이대로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했다.
“여긴 어쩐 일이야?”
“나, 나? 아… 그게… 그러니까….”
시아는 당황한 듯했다.
아마 내가 있는 줄 몰랐거나, 아니면 몰래 오려고 한 모양이었다.
지난 시간 동안에도 이랬을까?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그녀는 항상 내 주변에 있었던 걸까?
“어? 시아 씨!”
그때, 불청객이 등장했다.
이 순간만큼은 그 녀석이 등장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제임스 황.
거기다 제임스 황은 시아와 아는 눈치였다.
“어? 차현식 대표님까지? 으음? 무슨… 어? 어어?”
제임스 황은 나와 시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번뜩 생각이 났는지…
“맞죠? 둘이… 불프 트럭에서. 어어? 이게… 무슨 일이지?”
LA에서 푸드 트럭 축제를 할 당시에 시아와 내가 장사하는 동안에 제임스 황이 두 번 정도 찾아왔었다.
설마 기억하고 있을까 싶었는데.
기억하고 있구나.
“와아. 내가 왜 그걸 기억 못 했지? 이렇게 둘이 서 있으니까 딱 기억나네요.”
제임스 황은 반갑다는 듯이 웃었지만, 시아와 나는 그러지 못했다.
무언가 밀회라도 하는 사람이 들킨 기분이었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니, 시아 씨. 그러니까 차현식 대표님 때문에 온 거예요? 아아~ 전 저 보러 온 줄 알았죠.”
“아. 꼭 그런 건….”
시아는 나를 힐끔 보더니 말을 흐렸다.
“역시! 이런 미인분께서 애인이 없을 수가 없다니까요. 아버지께서는 무슨 생각으로 임자 있는 사람한테… 하하하. 그렇죠?”
“…….”
대화 내용을 보니 혼담이 오갔던 모양이었다.
제임스 황과 정시아의 혼담.
마음이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차! 차 대표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저 먼저 들어갑니까? 대표님도 바로 들어오셔야 할걸요?”
“아, 네. 곧 가겠습니다.”
제임스 황이 설명회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오늘… 시간 있어?”
“어? 아아. 응. 뭐. 그렇지?”
시아는 얼버무렸다.
더 이상 나와 엮이는 게 싫은 걸까?
그때 날 떠난 이후로 이렇다 할 연락조차 하지 않았었으니까.
충분히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설명회 끝나고 잠깐 보자. 기다릴래?”
“응? 으응….”
그렇게 말하고는 나도 설명회장으로 들어갔다.
투자자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반겼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난 몇 주 동안 달달 외우다시피 한 내용이 하나도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는다.
갈 곳을 잃은 시선.
이렇게까지 흔들릴 줄은 몰랐는데.
“오빠!”
그때, 구세주처럼 홍미나가 내 팔짱을 끼고 대기석으로 나를 이끌었다.
“고마워….”
“무슨 생각을 하길래 사람이 정신이 나가 있어? 괜찮아? 몸이 많이 안 좋아?”
“아니. 괜찮아.”
시아는 시아고, 지금은 투자 설명회가 가장 중요하지.
사연은 나중에 차근차근 들으면 되는 거니까.
지금은 불프 기업의 생사가 달린 중요한 설명회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이 급선무였다.
“진짜? 청심환이라도 줄까?”
“아니. 진짜 괜찮아. 미안. 걱정했지?”
“당연하지. 아니, 그렇게 넋을 놓고 있는데….”
“이제 진짜 괜찮아.”
“왜? 무슨 일인데?”
“…시아를 만났어.”
“어?”
홍미나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갔다.
그래, 홍미나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손님이겠지.
“그랬구나….”
“근데 괜찮아. 그것보단 지금 이게 더 중요하니까.”
“으응.”
* * *
제임스 황의 프레젠테이션은 그야말로 정석 그 자체였다.
깔끔하고 명확하게.
비전을 제시하는 그만의 스타일로 발표를 녹여 냈다.
내가 투자자였어도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훌륭하다 못해 완벽할 정도였다.
“그럼, 다음으로 불프의 차현식 대표님께서 발표해 주시겠습니다.”
사회자의 멘트에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제임스 황은 ‘더 붓’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겠다고 선전 포고 했다.
한식을 더욱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잘 포장해서 한식 하면 무조건 고급스러움이 떠오를 수 있게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어찌 보면 그의 ‘더 붓’ 전략과 나의 ‘불프’ 전략은 대척점에 서 있다.
‘더 붓’은 고급스러움.
‘불프’는 서민적인 걸 강조한다.
‘더 붓’은 가격을 합리적이지만 싸지는 않게.
‘불프’는 이게 맞나 싶은 정도로 가성비에 초점을 맞춘다.
‘더 붓’은 어떻게 하면 더 고급스러운 재료로 더 고급스러운 음식을 만들까를 고민하고.
‘불프’는 어떻게 하면 더 대중적인 재료로 더 값싸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까를 고민한다.
‘더 붓’은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와서 고급스러움을 즐길 수 있게 하고.
‘불프’는 푸드 트럭으로 남녀노소를 떠나 그 어떤 누구라도 불프의 음식을 즐길 수 있게 한다.
이렇게 우리는 너무나도 다른 전략으로 미국을 공략하고 나선 것이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우리 둘 다 ‘한식’을 기본으로 하는 프랜차이즈라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불프의 대표… 차현식입니다.”
프레젠테이션은 순조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내가 혼란스럽고, 당황했다고 한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지난 몇 주간 잠도 줄여 가며 발표 준비에 매진했다.
능력 자체는 제임스 황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능력이 더 뛰어날 수는 있겠지만, 난 그만큼 더 노력했다.
이보다 더 많이 준비할 순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래서 자신 있었다.
그래서 떨리지만, 떨지 않았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잘 전달했다.
“세계적인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지만, 또한 불프의 불고기를 이 세상 그 누구나 맛볼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우리 불프의 목표입니다. 음식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수적인 3대 요소 중 하나입니다. 저는 불프의 불고기가 사람에게 가장 필수적이면서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하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마지막 멘트까지 무사히 마쳤다.
박수 소리가 들려오고.
자리에 앉자 드디어 발표가 모두 끝이 났다는 게 실감 났다.
“그럼… 투자자분들께서 계약서를 작성하실 동안에 대표님들께서는 각자 대기실로 이동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대기실로 향했다.
가는 내내 최기명 변호사와 홍미나 이사가 나를 칭찬했다.
“아니, 진짜 잘하셨는데요? 이렇게까지 멋지게 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너무 올려 치는 거 아닌가요, 최 변호사님?”
“아니요. 진짭니다. 홍미나 이사님은 어떠셨어요? 제 말에 동의하시죠?”
“격하게요! 오빠, 진짜 대박이었다니까? 나 마지막 멘트 할 때는 소름이~ 소름이~ 어후. 진짜 잘했어.”
대기실에 들어가서 결과를 기다렸다.
잠시 후.
“여기. 결과입니다.”
“감사합니다.”
진행 요원의 결과지를 받아 든 최기명 변호사는 긴장되는 표정으로 나와 발표지를 바라보았다.
“직접 보시겠어요?”
“아니요, 최 변호사님이 알려 주세요. 어차피 딱히 크게 바뀌지도 않았을 거잖아요.”
“그렇긴 한데… 후우~ 그럼… 발표합니다?”
최기명 변호사가 발표지를 뜯어 결과를 먼저 확인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어?”
“왜 그래요? 뭐가 잘못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