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internation Students makes good money RAW novel - Chapter 64
64화 능소화
“오늘은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자.”
“어디 갈 건데?”
시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따라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표정으로 자꾸만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만 했다.
그런데 그곳이 어디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있어.”
“흠. 어머니가 계신 곳?”
“….”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정하지 않는 걸 보니 내가 예상한 답안이 맞는 모양이다.
정확하게 어떻게 된 건지는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이 한국 땅으로 돌아와 안식을 취하시는 듯했다.
“그래. 준비 좀 해야겠네.”
“아니. 그냥 꽃 한 송이면 돼. 엄마가 항상 좋아하던 꽃.”
“뭔데?”
“능소화.”
꽃에 관해서는 관심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솔직히 능소화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꽃을 살 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의외로 시아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붉은 계열의 꽃잎이 단단하게 꽃봉오리에 붙어 있는 모습이 시아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이제 어디로 가면 돼?”
“공주. 엄마 고향이야.”
“그래. 그럼 가자.”
서울에서 공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내내 이상한 느낌이었다.
평소의 시아라면 농담도 하고 짓궂은 장난도 칠 법도 했는데.
오늘은 얌전한 소녀 하나가 내 옆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산을 올랐다.
가파른 경사에 조금 곤욕이었지만 경치가 좋은 산.
그리고 덩그러니 놓인 무덤에 우리는 멈추어 섰다.
시아는 손에 든 능소화를 조심스럽게 무덤 앞에 올려놓았다.
무덤은 누군가의 관리로 미관상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잘 관리했다.
시아는 무덤 앞에서 어떤 말을 할까?
그리고 그녀는 나를 그녀의 어머니에게 어떻게 소개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종종 보던 클리셰적인 말은 그녀의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 마음속으로는 이런저런 얘기를 했을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본 시아의 모습은 입을 굳게 다문 채 그저 무덤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슬픔에 고개를 떨굴 만도 한데 그럼에도 그녀는 꿋꿋이 고개를 떨구지 않았다.
마치 여름 내내 장마의 우직한 비를 오롯이 견뎌내는 능소화의 그것처럼.
후- 불면 나풀거리며 날아가 버릴 것처럼 가벼운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시아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얼마나 단단한 사람인지 알 것이다.
특히 그녀의 지금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흔들리고 아플 텐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오롯이 감내하며 버텨내고 있었다.
그녀의 상황을 알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어느 날 시아 집으로 놀러 간 날.
내가 왔는지도 모른 채 통화에 집중하는 시아를 배려해 조심히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
그런데 언성이 높아지고 쩌렁쩌렁한 시아의 목소리 덕분에 통화 내용을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들은 뒤에는 듣지 말 걸 후회했지만.
“재혼? 배신자!”
그녀의 말이었다.
분명 아버지와 통화하는 게 분명했는데도 경멸과 적의가 가득한 말투였다.
사이가 좋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그녀가 아버지를 싫어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특히나 이번에 재혼하겠다는 시아 아버지의 통보에 그녀는 완전히 끈을 놓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난 이제 당신 딸 아니야!”
시아가 느꼈을 배신감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알지는 못한다.
아버지께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재혼하겠다고 하면 내가 어떤 기분일까 상상만으로는 그 감정을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니까.
그래서 시아가 어떤 마음인지, 그리고 왜 그렇게까지 아버지에게 심하게 대하는지 이해할 순 없었다.
하지만 평소 시아의 어머니에 관해 사랑과 그리움을 가득 담아 말하던 그녀의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정말 많이 그리워하고 사랑했구나.
어머니를.
“그렇게 하고 싶었으면 재혼 같은 건 하지 말았어야지! 사업? 내조를 해줄 아내가 필요해서? 다 개소리야! 아빤 그냥 엄마를 벌써 잊은 거야. 배신자. 다시는 전화하지 마.”
그 통화 이후로 시아는 독립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그녀의 집과 차, 그리고 카드 등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마 독립을 생각하고 준비하기 시작한 듯했다.
물론 아직은 독립하기에는 우물 안의 개구리일 뿐이지만, 개인적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생각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머지않아 시아가 독립해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겠구나 싶었다.
“무슨 생각해?”
“어?”
순간 시아 생각으로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녀가 내 근처에 와서 나를 이리저리 뜯어볼 때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고.”
“네 생각.”
“변태.”
“아니 무슨 뭐만 하면….”
그래도 변태라고 하는 걸 보니 다시 내가 알던 시아로 돌아온 듯했다.
오늘 그녀의 사연을 모두 듣지 않아도 괜찮다.
나중에 언젠가는.
그녀가 준비됐을 때.
나한테 모든 걸 공유해주겠지.
*
“아~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싶다.”
“내가 해줄까?”
“넌 너무 잘해서 탈이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너무 맛있어서 엄마 느낌이 안 난다고. 엄마 밥은 진짜 맛없거든.”
시아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자기 어머니를 생각하자니 저렇게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짜고, 시고, 달고, 맵고… 진짜 간을 하나도 못 맞춰.”
“추억이네.”
“응, 추억이야. 추억이 먹고 싶네. 어?”
시아와 나는 동시에 눈이 마주쳤고.
아무래도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정말 이런 상황에서 이런 생각이 든 게 이상하다고 느껴질 정도였지만.
분명 시아와 나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추억을 파는 레스토랑?”
“추억을 파는 레스토랑?”
심지어 동시에 말했다.
“가 볼까?”
“이상하던데.”
“그래도 진짜 옛날 스타일 음식을 팔지도 모르지.”
“그런가?”
긴가민가했다.
설마 추억이 담긴 음식을 팔겠냐면서.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말 추억을 팔아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특히 오늘 같은 날에는 시아가 엄마를 그리워하며 실컷 울고 웃었으면 좋겠기에.
“가지 뭐.”
“그래!”
그렇게 우리는 다시 서울로 향했다.
당연히 서울로 올라갈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추억을 파는 레스토랑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올라갔다.
한참을 달려 서울에 있는 추억을 파는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그때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가자 괜히 오자고 했나 싶었다.
그런데 시아의 저 기대에 찬 눈빛을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들어갈까?”
“응.”
“후~ 시아야. 심호흡해. 장기밀매라도 당하면 내가 희생할 테니까 넌 도망쳐. 알겠지?”
“뭐래. 서울 한복판에서 장기밀매는 무슨.”
“어? 추억을 파는 레스토랑에 어서 오세요.”
문 앞에서 어영부영하고 있을 때.
지난번에 봤던 여직원이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반갑다는 듯이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다.
“식사하시게요?”
“아. 그게….”
“들어오세요. 오늘 안 그래도 딱! 차건우 셰프님이 계시는 날이네요.”
여직원은 살갑게 우리를 자연스럽게 안으로 안내했다.
안에는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실내 장식이 인상적인 훈훈한 홀이 우리를 맞이했다.
“차 셰프! 손님 왔습니다!”
“연우야. 손님 왔어. 잠시만.”
조금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손님이 이렇게까지 없어도 되나 싶은 정도로 한적한 식당 안.
손님이라고는 나와 시아 둘 뿐이었다.
“어서 오세요.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 저희를요?”
분명 예약을 한 건 아니었다.
시아와 텔레파시가 통해 이 레스토랑에 오고 싶다고 생각했었을 뿐이었는데.
그 텔레파시가 설마 여기 셰프에게까지 전달됐을 리가 없지.
“네. 추억을 팔아드릴게요. 앉으세요.”
“예? 아아. 네.”
시아와 나는 얼떨결에 착석까지 했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시아가 먹고 싶은 음식이라도 상세히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시아야. 네가 원하는 메뉴라도 셰프님한테 부탁하면….”
“걱정하지 마세요. 다 봤습니다.”
“네? 보다니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예?”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주문조차 받지 않고 요리를 하러 주방으로 들어가다니.
나도 식당 경험만 1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까지 배짱 장사는 하지 않았었는데.
그런데 더 놀라웠던 건 서빙을 하려고 온 사람의 정체였다.
“안녕하세요.”
“어… 어어? 혹시… 황연우…?”
“네. 제가 황연우예요. 여기 셰프님이 제 남친이거든요.”
“아….”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곧 음식이 나올 겁니다.”
폭풍이라도 휘몰아친 걸까?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혹시 마법에라도 걸린 게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시간을 회귀한 내 처지에서 이런 말을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이 추억을 파는 레스토랑은 정말 마법이라도 부리는 건지 무언가 모를 끌림이 있었다.
“주문하신 엄마표 집밥 나왔습니다.”
그리고 차건우 셰프라는 사람이 가져온 음식들은…
“실수로 소금을 쏟아부은 콩나물무침이랑 오늘따라 단맛이 잘 안 느껴져서 과하게 설탕을 넣은 제육볶음, 그리고 지옥에서 온 비주얼이지만 맛도 지옥스러운 김치찌개입니다.”
“….”
“….”
시아와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시아는 모르겠지만, 나는 입을 열기 어려울 정도로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식당을 하는 사람이라는 게, 특히 셰프라고 불리는 사람이 이걸 돈 주고 판다는 말인가.
“아차! 잠시만요.”
끔찍한 혼종 집밥을 남겨두고 잠깐 어디론가 사라진 셰프.
그 틈에 나는 얼른 시아와 이 식당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시아야.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
하지만 시아는 우리 앞에 차려진 밥상만을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차건우 셰프가 다시 왔다.
“이건… 오늘 너무 꽃이 예쁘게 피었길래 꽃병으로 좀 만들어봤어요. 능소화라고 지금이 딱 예쁘게 필 시기죠.”
순간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차건우 셰프를 올려다보았다.
혹시 어마어마한 사기꾼은 아닐까?
그도 아니라면 우리를 쫓는 스토커?
혹은 정말 마법사라도 되는 걸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 뒤로 나는 단 한 문장만을 뱉어낼 수 있었다.
“어떻게… 하신 거예요?”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전 추억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요. 뭐… 다들 비웃거나 웃어넘기지만요. 근데 손님이라면… 저를 이해해줄 거 같은데요?”
그렇게 씨익- 웃더니 자리를 비우는 차건우 셰프.
그와 동시에 시아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숟가락을 들어 결코 먹어서는 안 될 거 같은 김치찌개를 한술 떴다.
“윽.”
“시아야! 괜찮아?”
“진짜 맛없어.”
역시 비주얼처럼 맛도 없는 모양이었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이건 절대로 참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특히 실력이라도 없다면 사람을 놀리지라도 말아야지.
누굴 놀리는 건지 소금을 쏟았다느니, 설탕을 과하게 넣었다든지, 지옥의 맛이라든지… 이게 다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저기요!”
그래서 한바탕할 각오로 차건우 셰프를 부르려고 했다.
그런데.
“흐흑.”
시아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후두두- 떨어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해주던 그 맛이야.”
“아….”
숟가락을 내리고.
시아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촉촉한 눈가가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그런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펑펑- 눈물을 흘리며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그렇게 모든 걸 쏟아낸 다음.
이때까지 있었던 일과 그녀가 얼마나 어머니를 그리워했으며 아버지가 재혼하는 게 그녀에게 얼마나 큰 배신인지까지 전부 내 마음에 쏟아내었다.
*
“얼마죠?”
사실 얼마라고 묻기 전에 마음 같아서는 100만 원.
아니, 1,000만 원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원입니다.”
“만원?”
아무리 미국보다 한국이 물가가 싸다고 하지만 2인 식사를 했는데 고작 만원?
특히나 고객 맞춤 서비스로 필요한 재료를 직접 매일매일 공수해 요리하는데 만원이라고?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사장이라고 해도 만원은 선 넘었지.
“하하. 아니, 이렇게 장사하시면 금방 망해요. 오늘 덕분에 제 여자친구가 정말 행복했거든요. 그래서 더 내고 싶은데….”
“아니요. 사장님이 만원만 받으라고 하셔서요.”
“진짜 이래도 되나요?”
“만원의 행복. 그걸로 충분하시다네요. 사장님이.”
“다음에 올 때도 간판이 그대로 걸려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좀 더 드릴게요.”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사실은….”
여직원이 속삭이듯 말했다.
“사장님. 여기 건물주거든요.”
“아.”
“돈 많아요. 그러니까 그런 걱정일랑은 마셔요.”
“그래요. 그럼….”
“아, 벌써 가시게요?”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차건우 셰프가 우리를 마중 나왔다.
“덕분에. 좋은 한 끼하고 갑니다. 처음에 무례했던 점은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잘 설명을 못해서 그렇죠, 뭐.”
“그나저나… 추억을 파는 레스토랑이라… 정말… 좋은 일을 하시네요.”
사실 그랬다.
음식을 파는 사람이 추억을 덤으로 팔 수 있다니.
그런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요리를 해 본 사람으로서는 차건우 셰프의 능력은 정말 절대자가 된 거 같은 느낌일 것이다.
아무리 요리를 잘하고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는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각자 취향과 그 상황에 따라 맛과 평가가 달라지기 마련인데.
이 셰프는 모든 사람에게 맞춘 맞춤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니 얼마나 대단한가.
“저보단 그쪽이 더 대단한 일을 할 거 같은데요?”
“네?”
“저야 개인의 추억을 재연하는 사람일 뿐이지만. 손님은 한국의 얼과 역사가 담긴 추억을 세계에 파는 사람이 될 거 같은데요?”
“그걸… 어떻게 아시는 거죠?”
“아~ 할머니가 알려 줬어요. 용하시거든요. 제 할머니께서는.”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 경험으로 확실히 시아의 깊은 마음을 알 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확신과 동기부여가 확실히 되었다.
그래.
나도 사람들에게 추억이 될 만한 인상 깊은 음식을 팔고 싶은 것이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불고기로.
전 세계를 누비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