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sword demon changed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13
013. 결심
“헉-!헉-!”
한참을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 흑의인과의 거리를 벌린 정풍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는 여전히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흑의인이 너무나도 평온한 모습으로 헉헉대는 정풍을 쳐다보고 있었다.
“도, 도대체 귀공께서는 정체가 무엇이오!!”
“내 정체가 누구인지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대청성의 제자를 이리 핍박하십니까!! 이것은 너무나도 불합리한 처사입니다!!”
그 말에 보이지는 않지만 흑의인의 미간이 심하게 찌푸려지는 것을 정풍은 느낄 수 있었다.
“핍박? 불합리? 하! 우습기 짝이 없구나? 낮이 얼마나 두꺼워야 네 놈의 입에서 그딴 말이 나오는 거냐?”
“무슨…….”
“애들끼리의 싸움이었다! 설령 저 내막에 각 문파의 정치적인 문제가 얽혀 있다 해도 그래 봤자 지학조차 지나지 않은 피붙이들의 다툼일 뿐이다. 거기서 누가 이기고 지고가 무에 그리 중요하겠나? 그런데 네놈은 어찌했느냐? 이긴 아이가 청성과 조금 앙금이 있는 문파의 아이라 해서 일방적으로 핍박하고 따귀를 때리지 않았느냐!!”
“그, 그건…….”
“하물며 그 아이와 네놈의 나이 차이를 생각하면 그 아이는 지금 네가 나에게 느끼는 것보다 더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도 네놈은 뚫린 입이라고 그딴 소리를 지껄이느냐!!”
“……결국 그겁니까?”
“뭐?”
“이제 알겠습니다, 당신은 유현문의 우군으로 복수를 하러 온 것이라는 걸! 으득! 청성의 제자를 건드려 놓고 그냥 넘어갈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 이 일을 장문인께 고하여 기필코 유현문을 벌…… 허억!!”
말을 하던 중 정풍은 순식간에 자신을 옥죄는 무시무시한 살기에 저항 하나 할 수 없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컥!? 커,커억…… 억!”
“어리석구나, 어리석어…… 그래도 아직 어린 놈이라 조금 두들겨 주면 그 바위같이 굳은 머리가 조금은 트여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정신을 차릴 것이라 생각했건만…….”
흑의인은 천천히, 정말 천천히 숨을 쉴 수 없어 괴로워하는 정풍에게 다가갔다.
“내 청성의 사람과 그래도 인연이 있어서 방자한 제자의 정신을 차리게 해 주려 일부러 그리 험하게 손을 쓰지 않았건만…….”
그리 말하며 흑의인은 처음으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숨막히는 와중에도 정풍은 그런 흑의인이 취하는 기수식이 어째서인지 낮이 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는 괴로움을 잊기 위해서라도 정풍은 필사적으로 가물가물한 과거의 기억을 파헤쳐서 노인이 보인 기수식이 어떤 검법의 것인지 떠올리려 했다.
그러다 순간 떠오르는 것은 어린 날의 기억, 자신이 청성에 처음 제자로 들어가게 된 날의 기억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청성에서의 기억이…….’
찰나의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아련하고 그리운 과거의 기억, 처음 청성의 제자로 들어간 날, 자신을 제자로 들인 광오진인은 아직 일곱 살 남짓의 어린 아이를 잡아 놓고 도가의 여러 어렵고 지루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처음 들인 제자에게 어떻게든 열과 성을 다해 도가적인 가르침을 전해 주려는 광오였지만 그가 생각치 못한 것이 있었으니 아무리 도가에 입적한 몸이라 해도 일곱 살 소년은 일곱 살 소년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각도 버티지 못하고 지루해하는 게 눈에 보이니 광오진인도 자신의 실수를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이미 흥미를 완전히 잃은 게 훤히 보이는 제자의 마음을 되돌릴 방법을 고민하던 광오진인은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방법을 떠올린 광오의 행동은 빨랐다.
이제는 하품까지 하는 제자를 이끌고 광오진인은 자신이 기거하는 전각에 딸린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에 오자마자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제자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어 보인 광오는 제자에게 말했다.
‘이것이야 말로 청성 무공의 극의, 앞으로 네가 평생을 걸쳐 추구하고 연마해야 하는 검이란다.’
그렇게 말하며 광오진인이 취했던 기수식…….
‘그래, 그때 스승님이 보여 주었던 것과 똑같아…….’
그리고 그 검법의 이름은…….
“청운…… 적하검……!”
순간 정풍은 흑의인의 기수식 속에서 푸른 하늘과 붉은 바다의 모습을 보았다, 푸르른 색의 구름과 붉게 물드는 바다, 그것은 말 그대로 ‘새벽’ 의 모습이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정풍의 의식은 끊어졌다.
***
흑의인은 청운적하검의 일초를 맞고 의식을 잃은 정풍을 잠시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우득! 뿌득!
흑의인의 몸에서 뼈와 살이 어긋나고 짜맞춰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흑의인의 키가 반 척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이내 쪼그라드는 게 멈춘 흑의인은 얼굴에 뒤집어쓴 검은 천을 거칠게 풀어헤쳤고 그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아직 앳된 소년의 얼굴, 장백서였다.
“아오 젠장, 온 몸이 삐걱대네…….”
정풍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축골공[縮骨功]으로 체격을 바꾸고 싸운 탓에 현재 장백서는 전신이 욱신거리는 상태였다.
그냥 얼굴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형태, 그것도 근본적으로 그 체구를 늘리는 정도로 격하게 육체의 형태를 변화시킨 것이다.
당연히 바꾸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육체적인 부하가 걸리는데 그 상태로 싸우기까지 했으니 움직임이 제한되는 것은 물론 빠르게 움직이는 것과 강하게 움직이는 것 모두에 통증이 뒤따랐다.
“쯧, 이것만 아니면 좀 더 찰지게 팰 수 있었는데…….”
더불어 축골공만 아니었다면 사실 무용유용의 묘리 같은 고등한 수법을 쓸 필요조차 없었다.
“그 와중에 이놈은 왜 이리 눈치가 빨라?”
뭐 대화를 몇 마디나 했다고 자신이 복수하러 온 것을 눈치챌 때에는 얼마나 깜짝 놀랐는가?
적당히 불의를 보고 분노해서 무림의 까마득한 후배를 참교육 하러 와준 은거기인 정도를 목표로 가장 했건만 이놈이 멍청한 주제에 눈치만 빨라서 아예 이놈이 의심조차 못하도록 무리해서 청운적하검까지 쓰게 되었다.
“아오…… 속 뒤집혀…….”
무리하게 상승검법인 청운적하검을 쓴 탓에 속에서 내기가 들끓는 장백서는 마음 같아서는 저 얄미운 녀석의 머리통을 확 밟아 버릴까 생각했으나 이내 숨을 내쉬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청운적하검은 회귀 전 검마가 되면서 배우게 된 무공 중 하나였다.
장백서가 검마가 될 시점에는 이미 청성산은 불타고 청성파라는 문파는 무너져 버린 지 오래였다, 당연히 청성파의 무공들도 신교의 손에 들어온 상태였다.
검의 극한에 도달한 자, 검마 장백서가 그렇게 신교의 손에 들어온 청성의 최고검공, 청운적하검을 살펴보는 것은 당연한 인과였다.
당시 한 단계 높은 경지를 목표로 한참 수행 중이던 장백서에게 신교에 들어온 정파의 검법들을 살펴보고 익혀 보는 것도 수련의 일환이었다.
“그때 배운 걸 이렇게 쓸 줄은 몰랐네…….”
물론 청운적하검 정도 되는, 명문의 정점에 존재하는 초상승무공은 그곳에 도달하기 까지의 여러 무공을 착실히 익히고 단련해서 몸과 기운을 그에 적절히 맞추어야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뭐 어떤가? 정풍 같은 애송이 상대로는 반쪽짜리의 검공만으로도 충분했다.
“자, 그럼 마무리를 지을까?”
그리 말하며 장백서는 허리춤에 매달아 두었던 술병을 꺼내 들고 그 뚜껑을 따고 내용물을 정풍의 면상에 그대로 부어 버렸다.
나름의 사전 공작이었다, 나중에 정풍이 이 일로 난리를 쳐도 이렇게 술냄새가 진동하면 주변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받아들인다 해도 술에 만취한 정풍이 먼저 실수해서 일어난 일이라 생각할 확률이 높았다.
“어디 감히 남의 금쪽 같은 사제를 건드려!”
마지막으로 자리를 뜨기 전에 처 맞고 기절한 주제에 어째서인지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정풍의 허벅지를 한 번 걷어차 주고는 장백서는 자리를 떴다.
모든 일을 마치고 기분 좋게 숙소로 들어가려던 장백서였으나 문득 아침의 일이 떠올랐다.
“아…… 이거 진짜 어찌해야 되나…….”
금조상단의 가주 금가동의 요청으로 비밀스러운 회동을 가진 여러 초절정 고수들과 장백서였으나 초절정 고수들조차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니 이에 궁금증을 가져 장백서는 금가동의 허락을 맡고 내기를 넣어 주는 척하면 서 금현아를 진맥해 보았다.
그도 처음에는 다른 초절정 고수들처럼 금현아의 병의 원인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초절정 고수들과 장백서에게는 명확한 차이가 있었다.
그 중 첫 번째는 그들은 ‘고작’ 초절정의 경지였지만 장백서는 회귀 전이기는 하나 초절정을 넘어 탈인의 경지에까지 도달한 절대고수라는 점!
그리고 두 번째는…….
장백서는 검마가 되어 권력이 생기게 되자 검마로서의 권력을 이용해 중원만이 아니라 서역과 서장, 그 외에도 세계 곳곳의 의서들을 모았다.
과거의 미련 때문이었다.
자신이 부덕하고 무력한 탓에 어린 사매를 잃었던 비참하고 끔찍했던 기억, 장백서라는 인간을 완전히 바꿔 버린 그 사건에 대한 미련 때문에 장백서는 세계 곳곳의 의서를 모으고 읽었다. 검마가 된 장백서에게 있어서는 무공 이외의 거의 유일한 관심사가 의술이었다.
그 덕분에 장백서는 의학에 대한 지식만큼은 중원 내에서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에 이르러 있었다.
이러한 두 가지의 이유로 다른 초절정의 고수들은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던 것과 달리 장백서는 금현아의 병의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장백서는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금현아를 치료해 줄 것인가? 아니면 그냥 모른 척할 것인가?
장백서의 스승 청무는 내일 사문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금가동이 내건 조건이 먹음직스럽기는 했지만 당장 어떻게 할 방법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일박을 전제로 온 걸음이었다, 그것을 욕심에 눈이 멀어 체류 일수를 늘릴 생각이 청무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 되면 자연히 청무를 따라 장백서도 유현문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아이는 죽겠지…….’
물론 십할 확실하게 죽는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어쩌면 금가동이 그 엄청난 재력을 사용해 중원 최고의 의원인 신의나 그에 맞먹는 의원을 불러와 요술처럼 짠 하고 금현아가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장백서는 알고 있었다, 그럴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을, 그도 그럴 것이 장백서가 금현아라는 여아의 병의 원인에 대해서 알게 해 준 의서가 중원의 것이 아니라 서장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면 중원에 그 의서는 아마 들어와 있지도 않을 것이고 어쩌면 아예 아직 쓰여지지 않았을 가능성마저 있었다.
그러니 필히 그 금현아라는 아이는 죽을 것이다.
그럼 그냥 고쳐 주면 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미래가 어떻게 바뀌게 될지 모른다…….’
미래에서 회귀해 온 장백서에게는 명백히 목적이 있었다, 사문을 키우고 정마대전을 막고…….
‘소현이를 구한다!’
물론 이를 이루게 되면 미래는 바뀐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를 막기 위해서는 회귀 전의 경험과 정보들이 있어야만 했다.
아무리 일신의 무공이 고강하다 해도 세상의 격랑은 일신의 강함으로 만들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정보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 이 머리속에 있는 이 천금과도 같은 가치를 가진 미래의 정보와 기억들이…….
그런데 그런 중요한 미래의 정보와 기억들은 회귀한 자신이 회귀 전의 자신과 다른 행동을 하면 할수록 그 정확도가 떨어지게 된다.
미래를 바꾸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그를 이루기 위해서는 최대한 미래를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역설!
앞으로 바꾸어 나갈 미래가 자신과 유현문에게 더 좋은 방향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라도 후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르는 이런 불확실한 변수를 자신의 손으로 굳이 만들어 낼 필요가 없었다.
‘지금까지만 해도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미 장백서가 회귀함으로 인해 미래에는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을 터였다.
우선 유현문의 촉망받는 제자가 이제자 장유한에서 장백서로 바뀌었고, 원래라면 설렁설렁 아침 수련을 함으로 무공의 수양이 늦어질 삼결배의 제자들의 성장이 장백서가 개입함으로 더 빨라졌다
거기에 더해 회귀한 장백서가 청연아와 대화함으로 인해 원래라면 금조상단에 갈 일이 없었던 장백서와 그 사제들이 금조상단으로 가게 되었고 그 길에 암행 중이던 청성의 사람들과 만났고 금조상단에 와서는 청성의 어린 제자와 다툼이 생겼다.
그로 인해서 원래라면 생기지 않았을 청성의 명문 삼 파 간의 다툼을 만들어 냈고 거기다 방금 전에는 그 다툼의 원인이 된 청성의 얼간이 제자를 흠신 두들겨 패 주기까지 했다.
이 모든 것이 회귀전에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고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이로 인해 도대체 자신이 알고 있던 미래와 얼마나 변화가 일어날지 장백서로서는 쉬이 짐작하기 힘들었다.
거기다 이제 원래라면 십할 죽었어야 할 금현아를 살리기까지 한다면…….
‘얼마나 미래가 달라질지…….’
금조상단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나서야 장백서는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앞으로 자신의 행보에 조심 또 조심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장백서는 두려운 것이었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미래가 조금씩 변하고 그 결과로 인해 자신이 반드시 바꾸기로 맹세한 참극들을 막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일들이 그의 기억과 통제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런데도 지금 장백서는 고민하고 있었다.
이성은 말하고 있다
‘생판 남이다, 나에게는 그 아이를 구해야 할 이유도 책임도 없다.’
옳은 말이다, 세상 천지에서는 지금도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장백서는 그것에 대해서 책임감도 구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그 무엇도 느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세상의 순리이니까.
생로병사!
천하만물에게 가장 공평하고 당연한 법칙이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구하려 하지도 않으면서 어찌 눈앞에 있는 저 소녀만을 구하려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그저 눈앞에 있으니까?
바보 같은 소리다, 하물며 원래의 운명대로라면 이 아이는 십할 죽을 아이다, 원래부터 죽을 운명이 확실한 아이다.
앞으로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천금보다 중요한 가치를 가진 미래의 정보를 십할 죽을 아이를 위해 불확실하게 만들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장백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발 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것은 금현아가 아닌 그의 부친인 금가동의 모습이었다.
초췌하고 핼쓱한, 얼굴에 생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모습, 그럼에도 눈빛만은 빛을 잃지 않고 분명 무언가, 자신의 소중한 딸을 구할 방법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 그 모습…… 그 모습은…….
‘회귀 전의 내 모습과 같다’
앞으로 오 년 뒤, 회귀 전의 자신이 저와 같은 모습을 하게 된다, 자신의 어린 사매를 구하기 위해 천하를 미친놈처럼 돌아다니면서 엉망인 모습으로, 그럼에도 소현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 희망 하나만을 등불 삼아서 버티던 자신의 모습…….
앞으로 일 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 지나면 금가동은 자신의 사랑하는 딸 금현아를 땅에 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쓸쓸하고 불쌍히 죽어 간 자신의 딸이 외롭지 않게 딸을 구하지도 못한 못나고 쓰레기 같은 아버지 금가동을 죽이고 같이 묻어 버릴 것이다.
회귀 전의 장백서와 같이…….
“……쯧! 고 놈이 그러고 나서 나처럼 변해 천하제일 거부라도 되어 ‘딸을 구하지 못한 천하무림을 다 엎어 버리겠다!!’ 라고 날뛰면 귀찮아 질 테니까…… 이번만은 어쩔 수 없지.”
장백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들려주기 위해 말했다.
물론 회귀 전의 미래에서 금가동이 딸을 구하기 위해 돈을 쏟아 부은 끝에 금조상단이 망했다는 사실은 그냥 모르는 걸로 치기로 했다.
하기로 정한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장백서는 품속에 집어넣어 두었던 검은 천을 꺼내 다시 자신의 얼굴에 둘렀다.
그리고 청무와 청아연, 그리고 자신의 사제들이 머물고 있는 숙소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장백서는 소현이를 잃은 뒤로 스스로 정파라 칭하나 정과 협이 없는 정도의 인간들을 증오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까지 그들을 증오라고 실망했던 건, 그가 그토록 정과 협이란 말을 믿었던 것은 아마 장백서가 그 누구보다 정과 협이라는 말을 믿고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