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sword demon changed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54
254. 한 때의 평화
키이이이잉!
기이한 검명이 방 안에 울려퍼졌다.
죽어가는 사람의 단말마와 짐승의 포효 그 어딘가에 위치한 기분 나쁜 소리에 검의 주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남은 두 개가 파괴되었군… 골함은 천면객의 양성소가 털렸으니 그렇다치고… 비늘 쪽은 어떻게 된 거지?’
“쯧!”
파괴된 세토의 유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떠올린 남자가 혀를 찼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는 아쉬움을 털어버렸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딱히 상관없지, 어차피 안에 든 놈 때문에 다루기도 힘들었고 난 이거면 충분하니까.’
사내는 세토의 마지막 유물, 어금니로 만들어진 골검을 들어올렸다.
키이이이이이잉!
골검은 함께 만들어진 유물들의 파괴를 슬퍼하듯 아직도 울고 있었다.
“시끄럽다 닥쳐라.”
우우웅…
사내의 한 마디에 골검은 울음을 멈추었다.
팍!
그리고 다음 순간 검 전체로 미약한 실금이 퍼져나갔다.
“뭐?”
예상치 못한 상황에 사내의 입에서 당황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다른 두 귀물이 파괴된 여파인가? 어째서….’
갑작스런 사태에 머리가 혼란스러운 남자였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뭘 어떻게 해보려 해도 지금의 가짜 몸뚱어리로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쯧, 성가시게 됐군….’
스윽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다시 가면을 썼다.
수라, 야차, 혹은 나찰, 뭐가 되었던 끔찍한 무언가의 형상을 한 백색 가면을 쓴 남자는 방을 나가 복도를 걸었다.
저벅저벅저벅
비밀 안가에 흐르는 적막 사이로 남자의 발소리 그리고…
“으으으으으으으….”
낮게 깔린 신음소리만이 흐르고 있었다.
끼익
신음소리의 진원지로 향한 남자가 문을 열었다.
방 안에서 남궁제천이 꿇어앉아 신음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궁제천의 주위로는 삐쩍 말라붙은 사람들의 시체가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으으으으으으윽!!”
정기를 잔뜩 빨아들이고도 강선호의 혼백을 안정시키지 못한 남궁제천의 모습에 백가면이 혀를 찼다.
‘이놈도 실패작이군….’
백가면은 남궁제천에게 정말 많은 공을 들였다.
패왕성의 실패 이후 궁지에 몰린 남궁세가를 건져내고 증오에 절여진 남궁제천을 회유해 힘과 권력, 그리고 광기에 가까운 강박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완성된 남궁제천은 그의 생각대로 잘 움직여 주었고 백천회를 키워 무림의 뒤편에서 암약했다.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었다.
비원의 성취가 코 앞에 다가와 있었다.
‘뭐, 이제는 다 의미 없는 이야기지만….’
백천회와 남궁제천은 실패작이다.
이게 백가면이 내린 결론이었다.
패왕성에 이어 이번에도 실패한 것이다.
‘적당히 발 빼고 다음을 준비해야겠군.’
아쉽긴 하지만 그 뿐이다, 남자에게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다만…
‘놈은 처리해야겠지.’
백천회의 야욕을 막아선 남자 장백서, 이대로 내버려 두면 놈은 자신의 존재에까지 닿을지 모른다.
‘그건 안되지… 암, 안 되고말고.’
그럼 어떻게 장백서를 죽일 것인가?
백가면은 아직도 신음하고 있는 남궁제천을 내려다보았다.
혈천강혼경의 영향으로 인격이 망가진 남궁제천은 백가면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곡두각시나 다름없었다.
‘마지막으로 장백서를 죽이고 폐기하면 되겠군.’
“이제 어떡할 생각이지 남궁제천? 이렇게 당하고 끝낼 생각인가?”
“후욱! 후욱! 웃기지 마라…! 내가… 이 검제가 이렇게 끝날 거라 생각하느냐!? 남궁세가의 영광을…영광을 되찾을 것이다!!”
“그래?”
남궁제천은 세가의 영광을 되찾기는커녕 오히려 진창에 박아넣었다.
온갖 의혹을 받는 와중 혈천강혼경을 안정시키기 위해 몸을 숨긴 게 결정타였다.
안휘는 물론 각지의 세력이 남궁세가의 세력권에 달라붙어 야금야금 이권을 빼앗고 있었고 남궁세가 내에서도 분쟁이 생겨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하지만 백가면은 일부러 이런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남궁세가의 안정보다 장백서를 처리하는 쪽이 훨씬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너도 이젠 알 텐데,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장백서 그 애송이가 또 망쳐놓을 거란 사실을.”
“장백서!! 장백서!! 놈을 죽여야 한다… 그래, 놈을…!!”
“좋아, 나랑 생각이 같군, 그런데 놈을 어떻게 죽일 생각이지?”
“흐, 흐흐… 방법이라면 있다… 사파 놈들을 이용하는 거다…!”
“흐음? 어이, 머리가 완전히 돌아버린 거냐? 정천맹의 힘으로 사도 세력을 약화시킨 건 다름 아닌 네가 한 일 아니냐?”
“그래… 하지만 그렇기에 궁지에 몰린 놈들은 찬밥 더운밥 가릴 수 없겠지… 그리고 굶주린 놈들의 배를 채워줄 자원이 우리에게는 얼마든지 있다….”
사파 놈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줄 자원, 그건 바로 정마대전을 대비해 준비해둔 안배를 뜻하는 것이었다.
“흐흐흐, 그래 네놈 마음대로 해보거라 나도 마지막까지 어울려 주도록 하지.”
백가면의 마른 비웃음 소리가 안가에 스산하게 울려퍼졌다.
***
사천 강정현의 유현문, 그 대문 앞에 두 남녀가 서 있었다.
“용린포와 용골함의 힘이 사라진 게 확실한 거냐?”
“확실해다, 아마 너의 심상세계에 침입해 날뛰느라 모든 힘을 다 쓴 탓일 거다.”
“흐으음… 넌 그걸로 괜찮은 거야?”
장백서의 물음에 하진아가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괜찮다, 힘이 있든 없든 세 개 중 두 개나 회수했다, 이제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생각하니 속이 시원하다.”
하진아의 웃음에 장백서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장백서는 두 유물이 무력화돼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세토의 유물은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으니까.
‘또 다른 성과도 있었지.’
장백서는 세토가 침입한 심상세계에서 검마의 힘을 사용하는 것을 통해 심마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지금의 나와 회귀전의 검마, 그 사이의 간극이 심마의 원인이 되고 있다.’
심마를 극복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심마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 가장 어려운 고비를 넘긴 만큼 차분히 인내심을 가지고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이렇게 따져보니 이번 외유로 꽤나 많은 이득을 보았군.’
썩 만족스러운 결과에 고개를 끄덕인 장백서가 사문의 대문을 열었다.
그런데…
“어?”
“어라?”
들어선 사문에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바쁘게 인사를 주고받던 청무가 장백서를 발견했다.
사람들에게 양해의 말을 건넨 청무가 장백서에게 다가왔다.
“사부님,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겁니까?”
“일단 따라오너라 장문께서 설명해 주실 거다.”
하진아를 먼저 보낸 장백서는 청무의 뒤를 따라가서 주율곡과 만났다.
“밖의 저 사람들은 다 뭡니까? 오늘 무슨 날인가요?”
“뭐, 날이라면 날이기는 하다, 오늘이 내 생일이니까.”
“아…. 생일 축하드립니다… 그래서 다들 왜 온 거랍니까?”
“내 생일이라고!! 당연히 축하해주러 온 거지!!”
소리 지르는 장문인의 얼굴을 보니 과연, 매년 이 맘 때 즘 장문의 손님들이 오긴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많이 오지는 않았지 않습니까?”
이제까지는 많아야 열 댓명 정도였는데 갑자기 왜 이리 사람들이 몰린 건지 의문인 장백서였다.
으쓱.
“말해 뭐하겠냐 너 때문이다 이놈아.”
“저요?”
장백서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이제까지 장백서가 쌓아온 활약상은 하나 하나 다 세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중 일부는 은폐되었지만 은폐된 것들을 제외해도 장백서의 명성은 이미 후기지수의 영역을 넘어 천하를 논하는 수준에 올라 있었다.
게다가 사천연합회의에서 청성과 아미, 그리고 당가의 대표가 장백서를 동격으로 대함으로 인해 장백서에 대한 평가는 상한가를 넘어서게 되었다.
“미래의 무림 명숙, 아니 미래도 아니지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무림에 명성을 떨치는 명숙의 사문에 아부하러들 오신 거다.”
“이야, 사손 잘 두셔서 우리 문주님 호강하시네요.”
“에휴, 호강은 개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인사하기도 힘들던 참이다, 어차피 다들 너 만나러 온 거니 네가 직접 인사 돌리고 오거라.”
“알겠습니다.”
장백서가 웃음과 함께 장문전을 나섰고 주율곡은 시원섭섭한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언젠가 날아오를 것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벌써 저리 훨훨 날아가니 그 뒤를 제대로 못 받쳐 준 것 같아 미안했고 또 그 와중에도 잘 자라 준 모습이 기특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본인이 너무 잘난 탓인지 좀 시건방지다는 것 정도?
피식
“요 녀석 어디 고생 좀 해보거라~”
주율곡은 별 생각 없이 떠나가는 장백서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
“죽겠네…….”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손님들과 인사를 주고 받은 장백서였지만 뒤에 줄이 길게 늘어서면 서부터 불길한 예감을 느꼈고 그 줄이 줄기는커녕 계속 늘어만 가는 모습에 무언가 잘못된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청성지회에서도 이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렇게 인사만 하다 해가 저물어 갈 즈음…
“동생!! 오랜만이야!!”
“화 공자? 기별도 없이 어쩐 일로…!”
장백서는 오랜만에 만난 화목연을 보며 활짝 웃었다.
“하하! 우리 동생이 이번에 주가를 왕창 올렸잖아~이참에 점수 좀 따두라고 장문이 직접 지시하신 일이다! 안부전해 달라시던데?”
“아… 장문인께서….”
장백서는 상남에서 보았던 화산파의 장문인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화 공자께서는…. ”
“어허, 공자가 아니라 형님!”
“화 공자.”
“형님”
“공자”
“형님”
“형님”
“공자…… 어, 어라!?”
“네, 화 공자께서는 여기서 어느 정도 머무실 생각이십니까?”
“쩝, 못해도 한 사나흘은 머물지 않겠느냐? 섬서에서 사천까지 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잘됐군요, 오랜만에 같이 장유란 소저나 만나러 갑시다.”
“흐흐, 좋지.”
그렇게 화목연과 대화를 마친 장백서에게 다가온 것은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다.
“당 소저….”
“오랜만이야.”
당유하, 당가의 손님으로 그녀가 찾아온 것이었다.
“…….”
“…….”
오랜만이라 인사한 당유하였지만 두 사람이 헤어지고 그리 긴 시간이 흐른 건 아니었다.
말인 즉슨 장백서가 당유하를 찬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어색해…….’
얼마전에 찬 상대와 하하호호 웃으며 인사를 나눌 정도로 장백서의 심줄이 굵지는 않았다.
반대로…
“오랜만에 봤는데 뭐야 그 태도는? 좀 더 반겨줘도 되잖아.”
상처받았다는 듯 볼을 부풀리는 당유하의 모습에 장백서는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볼만 긁적였다.
스윽
한 발 다가선 당유하가 장백서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인연이란 건 한 쪽이 끊고 싶다고 마음대로 끊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쪽
“다, 당 소저?”
당황하는 장백서를 보며 당유하는 조금 슬픈, 하지만 씩씩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절대 포기 안 할 거니까!”
장백서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쌩하니 사라지는 당유하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한 쪽이 마음대로 끊을 수 없다라….’
당유하가 남기고 말이 장백서의 마음 한켠에서 조용히 맴돌았다.
그때.
“사형”
“어, 어!? 사매!?”
냉기가 풀풀 풍기는 미소를 지은 금현아가 장백서를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