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mains of the Poison King RAW novel - chapter 74
을 어찌 버리겠는가. 단약으로 제조하지는 못했지만 액으로는
만들었네. 물론 애초에 생각했던 통달보리심단보다는 한참 뒤
지겠지만.”
“고, 고맙네.”
당잠청은 무릎 걸음으로 다가와 당중화의 두손을 감싸쥐었다.
“그렇게 고마워할 것도 없네. 문주가 계획을 일러주었을 때 왠
지 마음에 걸렸네. 이제와 말이지만 살아 생전 다시 볼 수 있
을 것 같지 않았어. 주책 맞은 늙은이의 노파심이 결국 자인이
를 비명에 가게 했구먼.”
“그런 소리 말게. 다 제 운(運)이지.”
“그래서 생각끝에 수보리심단을 자인이에게 주었네.”
“뭐? 네 알밖에 만들지 못한…”
“이제는 세 알 남았네.”
“으음! 그런 일이 있었군. 자네에게 많은 빚을 졌네. 내 돌아
와서 꼭 갚아주지.”
당중화는 울컥 치미는 감정을 이야기하려다 그만두었다. 당자
인을 보낼 때 느꼈던 불안감이 또 느껴졌다. 유일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두사람, 그들은 서로의 손을 잡은 채 한동안
놓지 못했다.
그날밤 후위대주 당잠청은 당문을 나섰다. 전갈 문양이 새겨진
무복을 벗어 버리고 흔하디 흔한 백의장삼을 입은채.
* * *
고율촌(高栗村), 사람들은 느닷없이 밀어닥친 무림인들을 보면
서 집안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못했다. 특히 딸이라도 가진
집안에서는 무슨 봉변이라도 당할 것 같아 안절부절 못했지만
사태를 관망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청성산 깊은 골짜기에 촌락을 이룬지 벌써 오십여 년 양봉(養
蜂)으로 생업을 꾸려 가면서 가난하지만 평온하게 지내 온 사
람들이었다. 그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
는 촌민들. 그들은 단연코 무림인들과 접촉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부락민들보다 더 많은 수의 무인들이 들이닥친
것. 비록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무더기로
들이닥친 낯선 타인들이 반가울 리 없었다.
결국 할수 있는 일이라고는 촌장 집에 모여 앉아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것뿐.
“사람을 청성파로 보냅시다. 청성파라면 무림대파이니 무슨 방
법을 강구해 줄 게 아니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딱히 잘못한 일도 없는데…”
“어쨌든 수상한 사람들이니 알려서 나쁠 것은 없잖소? 만약 이
대로 기다리다가 마음이라도 변해서 칼 들고 설치면 앉아서 당
하기밖에 더 하겠소.”
“으음! 청성에 사람을 보내는 것은 좀더 고려해야 할것 같아.
저들의 동태를 보니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경비가 여간
삼엄한 게 아냐. 청성파가 오더라도 우리 마을에서 싸움이 벌
어진다면 다치는 것은 우리들이잖아.”
“하기는 저들의 눈을 피해 빠져 나갈수도 없으니…”
무인들은 전혀 민폐를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을 밖으로 나
가는 것은 철저하게 통제했다. 불가피하게 밖으로 나가야하는
사람들은 무림인들의 철저한 감시를 받아야 했다.
“뒷길로 해서 간다면 빠져 나갈 수는 있소. 아무리 그래도 여
기서 살아온 사람들이 객지 사람만 못하려고…”
“그럼 자네가 갔다 오겠는가?”
“그건…나는 알다시피 다리가 쑤셔서…”
결론이 나지 않았다. 청성파 도인들이 무림인들을 마을밖으로
쫓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그러다 혹 해나 당하지 않
을까 염려되기도 했다. 청성파까지 갈 사람도 없었지만…
“이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네. 조만간 떠난다고 했으니 그
동안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문단속들이나 잘하게.”
“으음…!”
“그럴 수밖에 없군.”
사람들은 오늘도 뾰족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벌써 십 일째 반복되는 일과였다.
“문주의 말씀대로요. 청성오수는 상청궁에 틀어박혀 거의 움직
이지 않고 있소. 문주가 기회를 마련해 준다고 했으니 장기간
체류하면서 한명씩 격살하는 방법 외에는 없을 것 같소.”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이목도 있고…”
“결국 문주의 말씀대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야 한단 말인가?”
“으음…!”
한가, 만가, 사가, 풍가의 현임 가주들은 이마에 깊은 골을 드
러냈다. 문주의 명을 받기는 했지만 백여 명에 이르는 마을 사
람들을 모조리 죽인다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그런 일은 정도
를 표방하는 당문이 저지를 수도 없는 일이고 생각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문주는 태연하게 그런 비도덕적인 명
령을 사가의 가주들에게 내렸다.
“문주는 고율촌에 도착하는 대로 한 명도 남김없이 죽이라고
했소. 어차피 십 일 동안 죽이지 않은 것도 문주의 명을 어긴
것. 조금 위험 부담이 있더라도 청성오수를 밖으로 끌어 내 봅
시다.”
제일 먼저 당문에 귀속했지만 인재가 없어 빛을 보지 못한 한
가주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끌어 냈다.
“청성오수가 누군데 쉽사리 유인계(誘引計)에 걸려들겠소. 문
주가 말한 대로 턱밑에 둥지를 틀고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은데, 부락민들을 죽이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소. 사
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청성파가 후에라도 우리가 여기 있
었다는 것을 아는 날에는 가만있겠소?”
만가주가 딱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차며 말했다.
그말도 옳은 말이었다. 어차피 문주로부터 비밀리에 척살하라
는 명을 받은 이상 고립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귀속사가가
청성오수를 암살했다는 것이 알려지면…당문은 사가의 가주들
을 버려야할 게고, 그때부터 처절한 추격전이 벌어지리라.
“그렇게 합시다. 문주가 실언이야 하겠소. 이백이십여 명이나
청성으로 집결시킨 것도 다 뜻이 있을 게고…”
풍가주가 만가주의 의견에 동참했다. 원래 풍가주와 만가주는
형제나 다름없는 절친한 사이였으니 그가 만가주의 편을 들었
다해서 이상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오. 두 가지 난관이 있소. 먼저 우
리가 하는 일은 무림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 가장 중요
한 문제요.”
사가주는 턱밑으로 한 가닥 염소 수염을 길러 꾀가 많아 보였
다.
“흥! 그거야 당연한 말 아니오? 하나마나 한 소리는 하지 맙시
다.”
“잘 들으시오. 먼저 고율촌 부락민들을 죽인 사실이 무림에 알
려지면 우린 무림공적이 되고 맙니다. 일단 그렇게 되면 설혹
당문주라 할지라도 손댈 수가 없죠.”
“아, 그러니까 흔적없이 죽이라고 하지 않았소.”
사가주는 계속 무시하는 투로 말을 내뱉는 만가주를 흘겨보았
다.
‘대가리에 든 거라고는 똥밖에 없는 놈이…’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는 순식간에 청성오수를 해치워야 한
다는 것. 생각해 보시오. 우리 중 누가 청성오수의 상대가 될
수 있을지. 흥! 아마 그건 당문 십절도 장담하지 못할걸.”
“그래서 사가주의 말씀은 뭐요? 문주의 명을 어기고 여기서 철
수하자는 말이오?”
“그럴 수는 없죠 .그러잖아도 미운털이 가득 박힌 귀속칠가인
데 명까지 어기면…내 말은 혹시 이것이 당문주의 계략이 아
닐까 하는거요.”
“계략? 사가주는 방금 문주를 모욕했소. 이런 말이 문주의 귀
에 들어가면 아마 사가는…흐흐흐!”
“휴우! 제발 문주의 귀에 들어갔으면 좋겠소.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귀속삼가가 몰살당했다는 점을 상기했으
면 좋겠소. 우리까지 몰살시키고 나면 귀속칠가를 싹 쓸어 버
리게 되지.”
사가주의 말이 끝나자 한가주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사가주 도대체 문주가 우리를 죽이려는 이유가 뭐요? 우리는
그동안 당문에 충성했고, 부대주에 오른 인물도 적지 않은
데…”
“후후후! 아마 우리가 귀찮아졌는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으면
필요 없어졌거나. 한가주가 말한 부대주들이 모두 여기 와 있
소. 또 하나 당문 서열대로라면 부대주들이 통솔자가 되어야
하는데 이번 일은 각 가문의 가주들에게 통솔권을 맡겼소. 이
래도 당문주의 계략이 아니라고 말씀하겠소?”
“으음! 듣고 보니 그렇군.”
한가주는 깊은 신음성을 토해 냈다.
“아마 청성오수를 죽이라는 것은 핑계일 거요.”
“사가주! 말을 삼가시오. 한가주가 데리고 온 사십칠 명은 후
위대에서도 알아주는 정예들이오. 본인이 데리고 온 사십칠 명
도 신법에 뛰어나 제 앞가림은 충분히 하는 무인들, 또한 강하
기로 소문난 전위대 아홉 거력이 있소. 그런데도 청성오수를
격살하지 못한단 말이오? 청성오수가 신이라도 된단 말이오?
쓸데없는 소리 너절하게 늘어 놓을 필요없이 결론을 내립시다.
죽일 거요, 돌아갈거요?”
“으음…!”
“그럼 반대 의견이 없으니 문주의 명대로 시행하겠소.”
만가주는 비웃음을 던지며 일어섰다.
‘멍청한 놈…물을 엎지르면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데…만약
이것이 당기룡의 계략이라면 네놈부터 쳐죽이겠다 꼭…’
사가주는 옷자락을 거칠게 펄럭이며 문을 나서는 만가주의 뒷
머리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컹! 깨앵…!
“아아!”
“사람…아아악…!”
일 년 가야 타지인이라고는 볼 수 없던 촌락에서 때아닌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도 잠깐, 채 일 각이 지나지 않아 깊
은 산속은 다시 무거운 정적에 잠졌다.
피가 흘러 내를 이뤘다.
집집마다 피 냄새가 짙게 풍겨 나왔다.
백여 명에 이르던 부락민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부 죽어
야 했다. 이유도 몰랐다. 죽이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들의 불길한 예감이 적중한 것이다.
第 十八 章. 유성(流星), 떨어지는 별
( 一 )
눈에 익은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 년 전 바보라는 허울을 쓴채 마차를 타고 가던 길/
논도 밭도 사람들도 다 그대로 인데 자신만 변한것 같았다.
“사천에 살았지만 성도에는 처음이야. 뭐, 구경할 만한것 있
어?”
“없어.”
‘그렇게 대답할줄 알았어. 멋대가리 하고는…’
갈홍아는 이목을 가리기 위하여 남장을 한 상태였다. 어깨까지
뒤덮는 방갓을 썼고, 한눈에 드러나는 보검은 무명 천으로 둘
둘 말아 등에 맸다.
“유허지(遺噓地), 만리교(萬理橋), 사마교(駟馬橋), 금관(金
官城), 청양궁(靑羊宮). 한군데는 구경시켜 줘야 할 것 아냐?”
“어디 있는지 몰라.”
정말 몰랐다. 고죽촌을 벗어날수 없는 운명이었다. 철이 들 무
렵에는 당문의 울타리조차 넘어 보지 못했다. 혈뇌옥에 갇히면
서는 꼭 죽는 줄만 알았다. 수인(囚人)의 외출…일 년 동안의
외출이 모든 것을 변모시켰다. 영원히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운
명을 가로막던 당문을 치러 오다니…
“한적한 곳으로 가자.”
단비하는 괜스레 주눅이 들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성도에 당도하고 보니 당문은 역시 하늘처럼 높았다.
이란격석(以卵擊石)…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당기룡 물어 보겠다. 아버지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죽어야 했
는지…우리 가문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후손으로 이어지
면서까지 당문의 노예 노릇을 해야 되었는지.’
– 너는 힘이 약하니 내 말을 둘어야 한다. 반항하면 죽인다.
살고 싶으면 얌전히 있어라.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일하면서
죽을때 까지 충성을 바쳐라.
철저한 힘의 논리였다.
정도 문파를 표방하면 구파일방에게 과연 정도(正道)가 무엇인
가란 물음을 던진다면 즉석에서 대답할 것이다. 정도는 생명을
존중한다. 정도란 무공을 익히되 사욕을 취하지 않는다. 정도
는 약자를 돕는다. 정도는 겨룸보다는 심신 단련을 목적으로
한다. 정도는…
하지만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귀속칠가에 대해서는 냉담했다.
노예같은 삶을 산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명이 존중받지 못한다
는 것을 알면서도 백 년 동안이나 당문 마음대로 칼자루를 휘
두르게 내버려뒀다.
이 또한 힘의 논리였다. 자기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도움
받을 가치가 없다는…그러기에 구파일방은 독창적인 무공을
발전시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단비하가 본 구파일방은 모두
똑 같았다.
“네가 앞장서. 설마 한적한 곳도 모른다고는 안 할테지?”
“몰라.”
“뭐?”
“사실 성도를 보는 것이 두 번째야. 먼저는 마차를 타고 가면
서 주마간산격으로 훑어봤고…첫 번째라는 게 옳겠군.”
“맙소사! 그럼 그 동안 뭐 했어?”
“실험용 벌레였지.”
“실험용 벌레?”
“그 정도만 알아 둬. 네가 가고 싶은 데로 가자. 이럴 때는 남
자보다 여자의 육감이 탁월하니까.”
“그 그러지 뭐.”
갈홍아는 단비하를 색다른 눈으로 쳐다보았다. 보면 볼수록,
깊이 알게 될수록 점점 멀어지는 사내. 단비하에 대해서 모르
는 것이 너무 많았다.
“일단 시진에 들러서 따뜻한 만두나 사가지고 가자. 건포(乾
脯)만 먹었더니 속이 느글거려서.”
“마음대로 해.”
갈홍아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 내가 죽는다면 얌전히 모모에게 돌아가.”
산속에 있는 허름한 사당을 찾아 털쩍 주저앉기가 무섭게 단비
하가 한 말이었다.
“무슨 소리야?”
“오늘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리.”
단비하는 무성의하게 대답하며 품속에 있는 독을 모두 꺼내 펼
쳐 놓았다. 대조독 여섯 봉지, 사심독 두봉지, 섬백단 네 알,
칠미단은 모두 땅에 묻어 버렸으니 한 알도 없고, 복면인들에
게서 빼앗은 이름 모르는 독이 두봉지 나왔다.
“여기서 누구와 싸우기라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