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쉬라고 해도 (2)
유현이 평판이 좋지 않다니.
‘저번 던전 건물 날려먹은 것 때문인가?’
주위도 깨끗이 청소해 버리기는 했지. 아니면 피스와 둘이서 던전 공략 직후 협회 씹어 버린 것 때문에? 하지만 그땐 내가 막은 거였잖아. 어제 격리소 일도 말이 나오기는 했을 거고. 또 노아 상대한다고 송태원이 사람들 대피시키게 만들기도 했고. 좀 지난 일이지만 내 납치 건 때도 송태원과 면담했었지.
‘근데 이거… 거의 다 나 때문이잖아’
아, 젠장.
“…어떻게 안 좋습니까.”
“형님, 진짜로 웹서핑 같은 거 안 하는구나?”
문현아가 조금 놀랍다는 듯 말했다. 그리곤 홱 뒤돌아선다.
“예림이가 아저씨 휴가니까 푹 쉬어야 한댔는데, 괜히 말 꺼냈네.”
긴 다리가 성큼성큼 산책로를 따라간다. 그 뒤를 얼른 쫓아가다가 옆에 있는 블루에게 손짓했다. 블루가 훌쩍 뛰어 문현아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 꺄꺄.
“훈련 잘 시켰네.”
“훈련이라기보다는 블루가 제 움직임에 집중해 주는 겁니다. 고맙게도. 그보다 이미 꺼내 든 거 제대로 말해 주시죠.”
“까맣게 모를 거라곤 생각 못 했어. 휴가 기간에 뭘 할 생각이야?”
다시 빙글, 뒤꿈치만 대고 몸을 돌리며 문현아가 물었다.
“생각해 둔 거 없어요. 유현이가 왜—”
“하고 싶은 거 없어? 취미 생활 같은 건?”
취미라고 해 봐야… 지금은 딱히 없다.
“그냥 집에서 늘어져 있을 겁니다. 가끔 산책도 하고요. 됐죠?”
“건조하네, 형님. 그렇게 안 생겨선.”
“유현이에 대해서나 말해 주시죠.”
“그렇게 뚱한 얼굴 하고 있으니까 귀여워.”
귀엽긴 무슨. 내 나이가 서른… 이 아니라, 지금은 문현아보다 연하긴 하지만. 그래도 키워드는 선배로 적용된 거 같았는데 지금 날 보는 시선은 후배 대하는 것에 가까웠다. 대체 어떤 선배님이셨는지 궁금해지는구만.
“말 좀 그만 돌려요.”
“성현제가 싫어하는 거 가르쳐 줄까?”
“시시하고 재미없는 일이요?”
“그거 말고도 있는데.”
궁금하다. 하지만 계속 끌려다니고 싶진 않았다. 블루를 다시 내 옆으로 불러들였다. 대형견만 한 그리폰이 꼬리를 휙휙 흔들었다. 덩치가 커져도 장난스러운 표정은 여전하다.
“오늘 현아 씨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블루에 대해 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블루? 나한테?”
문현아가 무심코 몸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브레이커 길드는 여전히 몬스터 새끼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로도 상급까지라면 모를까, 최상급 몬스터 새끼는 언제 손에 넣게 될지 알 수 없다.
“네. 계속 집만 지키게 두기엔 너무 아깝고, 또 현아 씨와 잘 맞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친절한 미소와 함께 미끼를 흔들었다. 원래는 순순히 내어줄 생각이었는데 자초한 일입니다, 현아 씨.
“당연히 아깝지! 그래서 형님, 뭐 필요해? 말만 하라고!”
여름 햇살이 무색하게 활짝 웃는 얼굴을 보자 아니 딱히 필요한 건 없고요, 애만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말해 버리고 싶어졌다. 너무 좋아하시네.
“일단 하다 만 이야기부터 마저 해 주시죠.”
“내가 말해 줬다는 건 비밀… 이라고 해 봤자 금방 눈치들 채겠지만. 아, 이러다 형님 동생이랑 한판 붙게 되는 거 아닐까 몰라.”
“엘릭서 있잖아요.”
“붙어 있는 늙은이들이 많다 보니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게— 잠깐만, 지금 내가 질 거라 이 말이야?”
“그런 건 아니고요.”
유현이가 이기긴 하겠지만. 문현아는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미지 관리를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 상급 헌터들은 웬만큼 사고 쳐도 비각성자 사상자가 없다면 적당히 묻어 줘. 비각성자가 다쳤다 해도 합의만 잘 보면 또 넘어가고.”
대충은 안다. 뉴스만 봐도 헌터 관련 사고는 잘 나오지 않으니까. 대신 성공적인 던전 공략이나 공략 시간 단축, 안정적인 던전 관리 등의 긍정적인 부분을 주로 떠들어 댔다.
던전 쇼크가 일어난 지 이제 겨우 3년째이니 정부로서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싶을 것이다. 던전의 존재만으로도 불안한데 상급 헌터들의 위험성까지 얹을 수는 없으니 최대한 감춰 주려 들 만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해연 길드에 한해서는 영 감춰 주질 않고 있단 말이야. 대놓고 뉴스 같은 데서 떠들어 대는 건 아닌데 지라시가 슬금슬금 나돌다 못해 인터넷 기사에서도 해연 길드장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고.”
대중의 평판이 나빠지고 있다는 건가. 회귀 전의, 각성센터 개장 때의 일이 떠올랐다. 어설픈 각성자들의 사상자 수가 늘어나고 이런저런 부작용이 판치는 가운데 악화되는 여론의 화살이 몇몇 길드와 상급 헌터를 향해 돌려졌었지. 그중에는 해연 길드도 있었다. 물론 나도 많이 맞았고.
하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을 텐데.
“목적이 뭐랍니까.”
“아마도 형님이 아닐까?”
“저요?”
“형님이 발 빠르게 거대 길드들과 협조하고 중립 선언에 이어 대외적인 활동은 거의 없이 얌전히 자리보전 중이라 손대지 못하고 있지만, 생각해 봐. 협회 입장에서 얼마나 먹음직스럽겠어.”
손가락 끝을 까닥이며 문현아가 말을 이었다.
“상급 헌터들 컨트롤하는 데 형님보다 더 좋은 미끼는 없으니까. 심지어 스탯 F급이라 관리하기도 쉽지. 어떻게든 목줄 걸어 놓고 싶어서 안달일걸? 그러니 송태원을 조심해. 눈떠 보니 철창 안이고 나쁜 짓 당할지도 몰라.”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요. 법이 있는데. 송 실장님 암만 봐도 법대로 할 사람이고.”
“밑밥 까는 거 보면 할 거 같지 않아? 형님 말은 참 잘 듣는 동생이 요새 영 불안하네, 근데 S급 헌터라 막을 수는 없고. 그럼 형님이 책임지고 나서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식으로. 이거 봐 봐.”
문현아가 휴대폰에 기사 하나를 띄워 보여 주었다. 커다랗게 화면을 차지한 사진은 다름 아닌 나와 유현이였다. 내 품에 피스도 안겨 있다. 해연 길드에서 사육시설까지 걸어갔던 그날 찍힌 사진이었다.
“…초상권 침해 아닙니까, 이거.”
“형님도 공인이나 다름없지.”
그러면서 보여 주는 댓글에 무심코 눈을 찌푸렸다. 보기 싫다고.
– 해연길드장 형이랑 사이안좋다고 하지않았음?
– 미친 20살짜리로 보인다ㅋㅋㅋㅋㅋ
– 한유현 잘생겼다. 웃으니까 더잘생겼어 넘 좋아~♡
– s급도 평범하게 걸어다니네
대체로 유현이의 새로운 모습에 대해 놀랍다는 글들이었다. 특히 스탯 F급인 나와의 관계에 대해 말이 많았다. 그래도 가족 앞에서는 다르구나, 하고. 공식 석상에서는 냉랭한 편이긴 하니까. 어린 나이를 의식해서인지 티브이 화면 속에서는 표정이 풀린 적이 거의 없었다.
이어 그날 낮의, 던전에서 막 나왔을 때의 유현이와 내 사진이 들어간 기사가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하필 내가 유현이 앞을 막아선 사진이다.
– 한유현형 스탯f급 아니었냐 s급이라도 동생이라고감싸는거임 지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f급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피스귀여워! 피스야!!!
– s급헌터가 던전막나왔는데 개얌전하게구네
이전 기사와 비슷한 댓글 반응이었다.
“이것도 제가 있으면 변하네, 류의 밑밥입니까?”
“아마도? 그럴듯하지 않아?”
“정당성 주기는 좋겠네요.”
이대로 밑밥 깔다가 유현이가 사고 한 번 크게 치면, 혹은 친 것처럼 꾸미면 여론 몰아가기 딱 좋긴 하겠다. 손잡고 힘 합쳐도 모자랄 판에 마음에 안 드네.
“동생도 가만히 당할 성격은 아니지만 아직 어리긴 하잖아. 그래서 형님은 어쩔 거야?”
“아, 전 휴가 중이라서.”
문현아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냥 두고 보게?”
“유현이가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으니까요.”
회귀 전에도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지만 무사히 잘 성장했다. 효도중독자도 아니고 인간들 사이의 일이라면 최소한 몸은 다치지 않을 테고. 게다가 나름 길드장이니 어리다 해도 내내 밑바닥에 머물러 있던 나보단 낫지 않을까.
“저야 뭐,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막판 가서 엎어 버리는 짓 정도나 하려고요.”
“역시 마음에 든다니까.”
문현아가 웃으면서 내 어깨를 쳤다. 아프다. 피스가 으르렁거리자 과장스럽게 물러나면서 양손을 탈탈 흔든다.
“헌터 협회 내외부에서도 의견이 갈라져 있기는 해. 상급 헌터들을 더 조여야 한다와 풀어 줘야 한다가 맞서고 있지. 덧붙여 MKC 쪽에 협회의 힘이 실릴 거 같다고 하더라.”
“MKC요?”
“응. 안 그래도 길드장 권한이 적은 편인데 연속으로 삽질해 대서 간섭하기 좋아졌잖아. 이참에 아예 목줄 걸고 다른 거대 길드들 상대하게 만들 셈이겠지. 사실 수담도 그렇게 될 판이었는데 어제 죄다 쓸려 나가 버렸고. MKC 먹는 것도 성현제 때문에 쉽지는 않을 거야.”
자칫하면 협회까지 한입 크게 뜯어먹힐지도 모른다며 웃는다. 이미 MKC로부터 이것저것 많이 뜯어갔다고도 했다. 수담의 남은 덩어리도 세성과 해연이 가르고 있는 중이라 하고.
“현아 씨는 구경만 하는 겁니까?”
“나야 끼어들어 봤자 내 뒤에 있는 놈들 배 채워 주는 꼴이라. 확 탈주라도 할까.”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여기 블루도 있어요.”
– 꺄우!
대답하며 날개를 펴는 블루의 모습에 문현아의 표정이 다시금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블루에게 정말 잘해 주긴 하겠지.
“성현제가 싫어하는 게 뭡니까?”
블루에 대해 이야기하며 조금 걷다가 파고라 아래 테이블에 앉으며 물었다.
“별건 아니고 그 인간 자기가 너무 젊어 보이는 거 은근 신경 써.”
문현아가 턱을 괴며 히죽 웃었다.
“각성 전부터 동안이라 귀찮은 적이 많았다나. 그래서 일부러 무게감 있게 하고 다니잖아. 옷에 헤어스타일도 그렇고. 하지만 말투 바꾼 건 오버 아니냐.”
“말투를 바꿨어요?”
“응. 한 달쯤 됐을걸? 전에도 가벼운 어투는 아니었지만 지금 건 적어도 사십 대는 되어야 어울리지. 계속 써 온 것처럼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동안인 거 신경 쓴다고 해도 말투까지 바꿀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 한 달이면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어색함도 없었다. 진짜 계속 써 온 것 같…….
‘잠깐만. 내가 회귀한 게 한 달 좀 넘지 않았나?’
거기에 사십 대라면 회귀 전 성현제의 나이다. 물론 고작 이런 거 가지고 회귀 전의 영향이 있다고 보기엔 너무 과한 추측이지만.
‘분명 예민한 사람은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했었지.’
전투예지라는 상대의 움직임을 한발 앞서 느낄 수 있는 스킬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감각 스킬을 지닌 사람이 예민하지 않을 리가 없겠지.
만약에, 아주 만약에. 성현제가 합쳐진 미래의 자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거라면. 영향을 넘어서서 미래의 기억 같은 것까지 떠올릴 수가 있다면.
‘…나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겠지, 그 인간.’
비교가 무색할 것이다. 심지어 초승달이라는 패륜아와 연관도 있지 않은가. 물론 이건 다 얄팍한 추측일 뿐이지만.
…그 인간이라면 왠지 기억해 낼 거 같아서 짜증 난다.
“형님, 왜 그래? 안색이 영 안 좋은데?”
“성현제가 재수 없어서요.”
“그건 나도 동감.”
확인해 보긴 해야 하나. 뭐라고 하지. 혹시 미래가 떠오르십니까. 사이비 같다. 그냥 말투 바꾼 이유를 물어보는 게 낫겠지.
“할일 없으면 나가자. 맛있는 거 사 줄게.”
“나가는 김에 협회에도 잠깐 들르죠.”
“휴가라더니.”
“휴가 맞아요. 아무 짓 안 할 겁니다.”
그쪽에서 아무 짓 안 하면 말이다. 접근해 올까, 그냥 내버려 둘까.
“노아 씨도 함께 가도 될까요.”
“그 기승수 청년? 물론 좋지!”
“사람입니다. 노리지 마세요.”
노아 씨 인기가 많긴 많은데 엉뚱하게 많구나. 사람입니다, 여러분.
* * *
오전 중엔 맑던 하늘이 점심때가 다가오자 급격히 어두워졌다. 조만간 비라도 뿌릴 기세다.
한유현은 창 너머의 잿빛 하늘을 바라보다가 목을 죄는 넥타이를 느슨히 풀었다. 셔츠의 가장 윗 단추까지 끌러내고 짧게 숨을 내뱉었다.
참는 것은 익숙했다. 하지만 불현듯 덮쳐드는 갑갑함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가뭄으로 바싹 마른 산을 코앞에 두고 등잔 속 얌전히 흔들리는 불길과 같았다. 딱 한 발만 내디디면 끝없이 번져 나갈 것이다.
하나 커진 불은 등잔으로 돌아올 수 없다. 어쩌면 이미 등잔마저 녹여 버린 후일지도 모른다.
‘5년 정도는 더 참을 수 있겠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흐트러진 복장에 눈살 찌푸리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원하던 바다. 허튼 속셈을 품은 자들을 정리해 버리려면 적당히 거슬리고 눈 밖에 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는 기다리는 자들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