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시선 (3)
파─앙!
경쾌한 날갯짓에 공기덩어리가 뒤로 훅 밀려났다. 말 그대로 황금화살처럼 금빛 그리폰의 몸체가 순식간에 하늘을 가르고 구름을 꿰뚫었다.
“블루 최고!”
– 꺄아우!
그 어떤 놀이기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한 속도감과 급격한 움직임. 평범한 사람이라면 버티지 못했겠지만 박예림은 잔뜩 신이 나 두 팔까지 번쩍 들어 올렸다. 팔을 휘감는 거친 바람이 기분 좋았다. 상쾌하다.
“블루 너 냉기 저항만 있으면 딱인데!”
얼리지 않은 물만으로도 몬스터를 충분히 사냥할 수 있었지만, 탄식을 쓰지 못한다는 게 아쉬웠다. 창백한 비도 당연히 사용할 수 없었다. 자칫했다간 블루의 깃털이 얼어붙어 추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냉기 저항 템 두른다고 해도 기승수는 너무 가까워서 자속성 아니고서야 S급쯤 되어야 한다 그러고.”
– 꺄우.
“사람용도 드문데 기승수용은 당연히 없겠지. 명우 오빠 꼬셔 볼까?”
하지만 속성 저항 S급이 붙은 장비라면 SS급 정도 된다. 만드는 것도 힘들거니와 대가를 지불할 능력도 그녀에게는 아직 없었다. S급 무기 빚 갚은 지도 얼마 안 되었다.
박예림은 아쉬워하며 블루의 목을 감싸 안듯 푹 엎어졌다.
“상급 헌터는 돈 걱정할 일 없댔는데.”
장비가 비싸도 너무 비싸다. 눈을 낮추지 못하는 탓도 크긴 했지만. S급 헌터라고 해도 각성 직후부터 S급 장비를 휘감고 다니는 건 아니었다. 자리 잡을 때까지는 A급 이하도 많이 쓰고 특히나 무기는 운이 따라주거나 웬만큼 세력을 키우지 않고서야 S급을 손에 쥐기 힘들었다.
하지만 각성 삼 개월 만에 S급 무기와 숄, 팔찌, SS급 귀걸이까지 손에 넣은 박예림이다 보니 S급 아래로는 영 눈에 차지가 않았다.
“한유현 이기려면 장비도 빨리 다 갖춰야 하는데. 블루야, 길드장 놈 SS급 외투 얻었다더라!”
한유진이 일본 길드로부터 뜯어낸 S급 팔찌 받으면서 자랑했더니 한유현이 조용히 꺼내 보여 준 푸른 천둥새의 예장. 그때의 분함을 되새기며 박예림이 벌떡 다시 몸을 일으켰다.
“내 팔찌도 좋은 거지만, 한유혀어언!”
손목에 짤랑거리는 은빛 테에 붉은 보석이 박힌 로디티의 팔찌. 마력 스탯 중심 옵션에 마력 제어력을 올려 주는 보조 스킬이 붙어 있었다. 광범위 스킬이 주력인 박예림에게는 크게 도움 되는 장비였다.
반면에 천둥새의 예장은 순간이동 스킬을 가진 데다가 원거리 위주인 그녀에게는 맞지 않는 장비였다.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열 받았다.
“블루야, 길드장 놈보다 빨리 공략 끝내고 나가자!”
– 꺅!
“그리고 아저씨랑 딱 붙어서 마중 나가야지. 아저씨랑 둘이서 외식 한 번 더하면 내가 이기는 거라고!”
마침 아래쪽으로 몬스터 한 무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박예림의 손에 푸르스름한 한기가 도는 길고 하얀 창이 쥐어졌다. 창날 아래 부근의 장식에 끼워진 보석이 옅은 빛을 발한다. 억지로 밀어 넣었던 인어여왕의 스킬이 담겼던 보석을 보고 유명우가 약간 손을 봐 주었다.
보석에 담긴 스킬은 사라졌지만 강한 물의 힘은 남아 있어 수 속성력의 제어에 도움을 주었다.
치켜 올려진 창끝에 물이 모여들었다. 이어 박예림이 블루의 등 위에서 뛰어올랐다.
“넌 여기 있어!”
– 꺄아.
박예림의 몸이 공중에서 반 바퀴 가볍게 돌며 블루의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사이 더욱 거대해진 물 덩어리가 넓게 퍼지고 폭우처럼 아래를 향해 쏟아졌다. 갑작스런 물세례에 몬스터 떼의 움직임이 일순 멈추었다. 직후,
사아아─
차디찬 안개가 휘몰아쳤다. 원래라면 적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정도의 한기였지만 물에 젖은 상대에게는 더욱 큰 효과를 발휘했다. 심지어 박예림이 끌어낸, 동일인의 마력이 깃든 물이었다.
쩌저적 소리와 함께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약한 개체는 그대로 갈라져 부서지기까지 하였다. 남은 몬스터가 없는지 확인한 뒤 박예림이 다시 블루의 등 위로 돌아갔다.
“너무 멀리까지 와 버렸나, 언니들이 안 보이네.”
블루 비행테스트 해 보다가 지나치게 신이 나 버렸다. 박예림은 신호용 아이템을 꺼내었다. 작게 반짝거리는 그것을 얼어붙은 몬스터들 위로 던졌다.
S급 팀에서 마석과 기타 부산물은 S급 헌터 외의 팀원들이 수거한다. 팀이 자리 잡고 규모가 커지면 전담자가 따로 생기기도 했다. 마석 수거 전담이라고 해도 던전 등급과 두 단계 넘게 차이가 나선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지만 지키지 않는 경우도 흔했다.
“…어?”
팀원들 기다리자며 블루 등 위에 느긋이 앉아 있던 박예림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공기가 약간 떨리는 듯도 했다.
블루 또한 선회 비행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날개를 퍼덕였다.
“이거, 전에도 비슷한 게…….”
처음 들어간 던전에서 보스가 바뀌었을 때. 그리고 거대 두꺼비가 나타났을 때. 그때의 뒤틀림과 비슷했다. 박예림이 버럭 소리쳤다.
“피해!”
황금색 날개가 크게 젖혀졌다. 황금 화살, 비행 보조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S급 바람의 지배자 스킬 또한 발동되었다. 바람이 블루의 주위를 휘감고 공기저항을 낮춘다. 힘이 잔뜩 들어간 날개가 힘차게 움직임과 동시에 블루와 그 위에 타고 있던 박예림의 모습이 사라졌다.
순간이동에 가까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둘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멀어지고 잠시 후, 텅 빈 공간이 갈라지듯 뒤틀렸다.
[이번에도 없네.]희미한 목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박예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런 던전 괴담 같은 거 들은 적 있는데.
당혹감 속에 또다시 뒤틀림이 느껴졌다. 그것도 하늘과 땅, 여기저기서.
– 크르륵.
– 키이이익!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언뜻 보아도 A급 중위 던전에 나올 만한 놈들이 아니었다. 특히 하늘에 나타난 익룡과 비슷한 괴수는 크기도 위압감도 S급 던전 보스급이었다.
“…와아.”
당황하며 주위를 살피던 박예림의 눈에 다가오고 있는 팀원들이 보였다. 그녀가 손으로 블루의 등을 두드렸다.
“블루야, 너 저놈 상대할 수 있겠어? 덤비진 말고 그냥 눈길 끄는 정도로만.”
익룡을 가리키며 말하자 블루가 자신 있게 부리를 까닥였다.
– 꺄아!
“싸우진 말고, 시간만 좀 끌어 줘.”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블루도 S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급이다. 비행에 치중 된 스킬을 지녔으니 쉽게 당하지는 않을 터였다.
박예림은 블루의 등을 한 번 더 두드린 뒤 팀원들을 향해 이동했다. 그녀가 떠나자마자 블루가 우렁차게 소리치곤 익룡을 향해 쏘아지듯 날아갔다.
“멈춰요!”
순간이동 스킬을 연속으로 써 팀원들 앞에 도착한 박예림이 소리쳤다.
“이 앞에 S급 던전 수준의 몬스터들이 나타났어요!”
“묘사 부탁드립니다.”
팀에서 던전 공략 경험이 가장 많은 하은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박예림이 얼른 자신이 본 몬스터들의 외형을 설명했다.
“익룡을 제외하곤 다행히 S급 하위 던전의 일반 몬스터들입니다.”
특징을 알고 있고, 몇몇은 상대해 본 적도 있다며 하은하가 주의할 점을 말해 주었다. 다만 익룡은 그녀도 들어 본 적 없는 몬스터였다.
“블루에게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걱정 마세요. 큰 도움은 못 되어도 버티는 것 정도는 쉽습니다. 애초에 S급 던전을 목표로 하는 공략팀이잖습니까.”
“네, 일반 몬스터라면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팀원들의 믿음직스런 말에 박예림이 방긋 미소 지었다.
“그럼 금방 정리하고 올게요. 아니, 정리할게! 그래도 조심해, 언니들!”
박예림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남은 팀원들이 전열을 정비했다.
“블루야, 언니 왔어!”
– 꺅꺅!
익룡의 주위를 빙그르 돌며 블루가 꼬리를 홱 흔들었다. 덩치는 몇 배나 크고 비늘도 두터워 보였지만 익룡의 비행 실력은 블루보다 훨씬 뒤떨어졌다. 벌써 몇 번이나 거대한 부리가 허공만 찌르고 말았다.
덕분에 열이 꽤 받았는지 머리 뒤로 튀어나온 혹이 처음과 달리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박예림까지 나타나자 크게 숨을 들이켜더니 입을 쩍 벌린다.
– 키이이이.
요란한 괴성과 함께 뜨거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타 버릴 듯 날카로운 열풍이 수백 개의 화살처럼 둘을 향해 쏘아졌다. 박예림이 재빠르게 전방을 향해 탄식을 펼치고 블루가 날갯짓해 뒤로 훅 물러났다.
“언니들 휘말릴 수도 있으니까 빠르게 처리하자! 아까 작은 호수 지나친 거 기억해? 저쪽. 저쪽으로!”
방향 지시에 블루가 짧게 대답하듯 울곤 날아가기 시작했다. 가속 스킬까지 쓰진 않고 익룡이 쫓아올 수 있을 정도의 속도였다. 공격이 무산된 익룡이 둘의 뒤를 쫓아갔다. 거대한 그림자가 닿을 듯 말 듯 하며 간간히 딱딱 부리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호수가 가까워졌다. 박예림의 지시에 따라 블루가 속도를 높였다. 그리폰의 네 발끝이 수면을 스칠 정도로 낮게 내려오며, 박예림이 몸을 빙글 돌려 물속으로 들어갔다. 소리조차 거의 나지 않는 조용한 입수였다. 동시에 역시나 고요히, 그림자 없는 낮이 마력과 빙 속성 버프로 펼쳐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따라오던 익룡이 반대편 호숫가로 내려선 블루를 노리고 낮게 날아드는 순간,
촤아악!!
수십 줄기의 물이 솟구쳤다. 호수가 텅 비어 버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수량(水梁)이었다. 익룡의 몸과 날개를 텅텅 두드리고 목과 다리를 휘감는다. 전신을 두들겨 맞은 익룡이 정신을 못 차리고 퍼덕거렸다. 그래도 살상력은 부족하다 싶은 그때,
한기가 휘몰아쳤다. 익룡을 휘감은 물줄기들이 죄다 얼어붙으며 강철처럼 단단한 얼음가시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비늘을 부수며 가시가 파고들고 냉기 또한 속속이 스며든다.
결국 그대로, 수십 가닥의 얼음덩굴에 휘감긴 채로 익룡이 완전히 얼어 버렸다. 텅 빈 구덩이 위로 기묘하고 거대한 얼음 조각상이 세워진 듯한 광경이었다.
“블루야, 잘 피했어?”
– 꺄아우!
저만치 멀리서 블루가 대답했다. 박예림은 마나 포션을 꺼내들며 블루에게로 다가갔다.
“이 근처 말고 다른 곳에도 S급 몬스터들 튀어나온 건 아니겠지. 빨리 나가려고 했는데 오래 걸리게 생겼네.”
한유현보다 늦게 나가면 안 되는데. 투덜거리면서 블루에게도 마나 포션을 챙겨 준 박예림이 다시 팀원들이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이번에도 없네.”
채터박스가 중얼거렸다. 그의 손아귀에서 구슬 같은 것이 산산 조각나 부서졌다.
“실수까지 해 버리고. 역시 던전 내라고 해도 몰래 살피는 건 힘들어.”
이 정도면 들켜 버렸으려나. 채터박스가 루가 폐야를 돌아보았다.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중요해?”
“중요할 거 같아~”
폐야가 활짝 웃으며 늘어진 촉수 가닥을 흔들었다.
“결국 못 찾았잖아. 하얀 새가 그렇게까지 꽁꽁 감추어 두었다면, 이유가 없을 리 없지. 심지어 그 하얀 새는.”
다섯 번째 근원만을 바라보며 맴돌던 존재다. 루가 폐야의 세 눈이 강한 호기심을 담아 반짝거렸다.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을 거야. 틀림없어.”
너무너무 기대된다며 호들갑 떠는 그녀의 모습에 채터박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새로운 구슬을 꺼내들었다.
“신입이 틀림없이 방해해 올 테니까 각오는 해 둬. 그 애 시스템 마스터의 후계자가 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천둥새가 포기한 이후 처음이네.”
파이팅. 폐야의 성의 없는 응원 속에서 채터박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 * *
“카페가 생기면 24시간 운영으로 부탁한다고 하더라.”
명우가 말했다. 석하얀 팀의 청원이었다. 하긴 그 동네는 밤늦게 커피가 필요하겠지.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은 빌딩 중간층 즘에 있는 작은 테라스 정원이었다. 좁지만 화단도 깔끔하게 잘 꾸몄고 테이블과 의자도 어울리게 놓아두었다. 집에 있기에는 뭔가 쓸쓸해 해연에 볼일 보러 가거나 몬스터 새끼들 돌볼 때 말곤 빌딩 쪽에 주로 와 있었다.
“민의 형이 심심하다고 카페 알바하고 싶다고도 했어요.”
노아가 말했다. 민의도 형이냐. 근데 왜 나는.
“놀아서 좋다더니. 참, 노아 씨 브레이커 길드장과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혹시 곤란한 내기라면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아뇨, 한국에서의 제 등급 때문이에요.”
노아가 고개를 작게 저으며 대답했다.
“외국인 헌터는 원하는 등급의 던전을 자기 주도로 공략해야 등급 인정을 받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S급 던전에 들어가는 건 좀 꺼려져서요. 임시 팀원도 구해야 하고, 또 오래 걸리기도 할 테니까요.”
그래서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았다고 했다.
“길드장 포함 한국 S급 헌터 세 명 이상의 실력 보증을 받으면 된다고 해서 브레이커 길드장님께 부탁드렸습니다.”
“그런 거면 해연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아요? 유현이 길드장이고 예림이에 성한 씨 해서 딱 세 명인데.”
“같은 길드원 중복은 안 된다더라고요. 그리고…….”
노아가 조금 토라진 것도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한유현 헌터 도움은 별로, 받고 싶지 않아서요.”
“네? 왜요?”
“…그냥요. 별 의미 없습니다.”
으음, 뭐지. 혹시 비슷한 또래에 등급까지 같아서 일종의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걸까? 남자애들이니까 그럴 법도 했다. 귀엽네. 보통 그렇게 투닥거리다가 친해지기는 거고. 아무튼 유현이가 여러모로 신경 쓰이나 보다.
“그럼 등급 인정은 받았겠네요?”
“네. 심사 통과했고 헌터증 곧 보내 준다고 연락 왔습니다.”
축하한다는 말에 노아가 약간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확실하게 한국에 못 박으려나. 그럼 나야 고맙지만.
“오늘도 우리 집에서 자고 갈 거야?”
삐약이를 쫓아 테이블 위를 빙그르 도는 벨라레를 살펴보던 명우가 말했다. 무기화 가능한 몬스터라는 말에 호기심이 드는 모양이었다. 혹시 허물 벗으면 달라고도 부탁해 왔다.
“어쩔까. 애들 없으니까 쓸쓸하긴 해서. 아니면 오늘은 우리 집에 올래? 노아 씨도요.”
“저도요?”
“소형화 스킬 없어도 그냥 들어와도 괜찮은데.”
내 말에 노아가 단호하게 고개 저었다.
“꼭 찾아내서 당당히 허락받고 들어갈 겁니다.”
선 닿는 곳마다 연락해 놓고 열심히 찾는 중이라고 했다. 지켜보다가 정 안 되면 나도 거들어 줘야지. 신입이 원하는 스킬이나 아이템 가질 수 있게 해 준댔는데, 혹시 노아도 데려가면 소형화 스킬 얻을 수 있으려나.
음료를 다 마실 때쯤 해연에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