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D&L바이오
“샘플입니다.”
김하연 법무팀장이 말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건 다름 아닌 피스의 인형이었다. 도안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순식간에 샘플이 나왔네. 가장 먼저 출시되기로 한 유체화 실물사이즈로 품에 안아들기 적당한 크기였다.
“귀엽네요.”
“눈 사이를 조금 줄이고 귀는 더 키우는 편이 나을 겁니다. 뿔 크기도 줄이고 꼬리는 더 풍성하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김하연이 진지하게 말하고 나는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뭐 아냐. 지금도 귀여운 거 같은데. 그녀와 떨어져 앉은 석시명도 알아서들 하세요, 라는 표정이었다.
“덧붙여 한 소장님, 기승수 사육 의뢰를 맡으실 때 조건을 변경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조건이요?”
“예. 현재는 정확한 대가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사육 비용을 들을 수 있을까요.”
“정확한 금액을 측정하기에는 몬스터의 종류가 너무 다양하기에 그때그때 다르게 받게 되지 싶습니다만.”
사실 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크게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상황에 따라 다른 조건을 내걸 생각이었다. 상급 기승수의 의뢰인은 대부분 대형 길드 소속일 테니까 일시불로 받고 마는 것보단 훗날 써먹을 수 있는 계약서를 받아 두는 것도 괜찮을 것이고.
내 의견을 간략히 설명하자 김하연이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승수를 통해 전 세계 대형 길드와 연결고리를 맺어 두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좀 더 체계적인 기본 조건을 두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본 대가는 따로 두고 말 그대로 기본적인 사항 말입니다.”
김하연이 차분하게 설명을 이었다.
“기승수를 포함한 던전 공략의 수익 1퍼센트와 기승수를 대상으로 한 캐릭터 저작권을 기본 조건으로 거시기를 권합니다.”
후자에는 사심이 섞인 기분이 드는데.
“상급 기승수는 S, A급 헌터와도 같으며 현재 한 소장님만이 키워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육 비용을 단순히 일시불로 받는다는 것은 그 가치를 너무도 낮게 평가하는 것이지요. 던전 공략 시 상급 헌터의 지분율을 생각한다면 1퍼센트는 쉽게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물론 A급 기승수에 한해서이고, S급 기승수는 3퍼센트에서 최대 5퍼센트까지도 충분히 기본 조건으로 내세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3퍼센트만 해도 어디야. S급 기승수면 S급 던전에 주로 들어갈 텐데 아이템만 괜찮게 나와 주면 수익이 한 번에 수백억도 가볍게 넘어간다. 백억의 3퍼센트만 해도 3억이다.
그걸 달에 한번은 갈 테고 기승수가 열 마리라고 치면 월 30억이다. 최소치이니 실제로는 백억 이상이겠지. 코메트와 유니콘들도 곧 성장 끝날 거고 스태미너 포션 얻어서 꼬박꼬박 의뢰받으면 매달 두세 마리는 성장시킬 수 있을 테니……. 일 년 만에 아무것도 안 해도 월수입 n백억 꼬박꼬박 들어온다는 건가.
와, 실감이 안 나네. 애들 부려먹고 돈 버는 느낌이라 찝찝하기도 하고. 물론 귀한 상급 기승수를 막 대하는 길드가 있을 린 없겠지만. 그래도 혹 모르니.
“기승수 대우에 대해서도 기본 조건으로 넣을 수 있을까요? 동물보호나 복지 같은 느낌으로요.”
“물론 가능할 겁니다. 절대적인 독점이기에 무리한 조건이 아닌 이상은 한 소장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맞출 수 있습니다.”
사육 계약 조건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오간 뒤 김하연이 계약서 초안을 정리해 보내드리겠다고 말하곤 자리를 떠나갔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캐릭터 저작권이 훨씬 더 큰 노다지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굳이 스토리를 만들 필요 없이 알아서 전 세계에서 활약할 동물 캐릭터니 손쉽게 다양한 이윤을 창출해 낼 수 있다나.
머릿속에 각종 계약 조건과 현재까지의 헌터 관련 법률 및 해외 헌터 관례 기타 사례 등이 빙글빙글 맴도는 가운데 이번에는 석시명이 두툼한 종이뭉치를 꺼내들었다. 튀고 싶어졌다.
“이쪽은 현재 한유진 소장님의 재정 상태 보고서입니다.”
무척이나 관심이 없으셨던 모양이군요, 하고 석시명이 웃었다. 좀 없긴 했지. 일단 내 돈으로 뭔가 살 일 자체가… 별로 없었어서. 어쩌다 보니 그간 결제는 주로 성현제 카드나 유현이 카드가 맡았고 예림이도 최근엔 빚 다 갚았으니까, 라면서 내가 돈 쓰는 꼴을 못 봐줬다.
문현아도 신세 질 거니까, 신세 지고 있으니까, 라며 지갑 못 꺼내들게 했고 강소영도 우리 코메트 맡아 주시잖아요! 라며 필요한 건 뭐든 말씀해 달라고 했지. 명우도 그동안 신세 많이 졌잖아, 를 끊임없이 우려먹었고 심지어 노아까지 제가 사 드리면 안 될까요, 하고 물끄러미 바라봐 오니 버텨낼 수가 없었다.
‘그나마 도하민이랑 김민의한테는 내 돈 썼지.’
물론 제일 많이 나가는 건 석하얀 팀이었다. 요새는 현장 테스트 기록 뽑는다고 매일 수백만 원 치 마석을 쓰고 있는 중이었지. 이것도 적게 드는 편이고 그전에는 더 많이 돈을 잡아먹었었다.
…설마 내 통장 구멍 난 거 아니야? 해연에서 세금 관리 맡아 주겠다고 한 뒤로 그냥 다 떠넘기고 있었는데. 그래도 적자 났으면 알려는 줬겠지.
“현재 한 소장님께서 보유하고 계신 현금은 천삼백삼억 원입니다. 아래 단위는 제외했습니다.”
와, 많다. 현실감은 별로 없었다. 뭐가 그렇게 많나 했더니 해연과 세성, 브레이커에서 기승수를 맡기며 들어온 돈이라고 했다. 준다는 말은 들었지만, 건물도 받아서 난 한 백억씩쯤 될 줄 알았지. 손들 크시네.
덧붙여 석하얀 팀이 좀 많이 썼으며 그 외에는 지출이 보유 현금 대비 거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주식 투자를 하신 것이 있더군요. 그리 크지 않은 회사던데, 여러 가지 문제가 겹쳐 문 닫기 직전입니다.”
“…예?”
주식… 아, 그 탈모약 회사! 그러고 보니 벌써 삼 개월이 훌쩍 지났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원래라면 한 달 전에 난리 났어야 했는데 대박은커녕 문 닫기 직전이라니.
“…신제품 개발 같은 거 못 했대요?”
“던전 부산물로 무슨 약을 개발하는 곳이라 하였습니다만, 부산물 지원을 MKC 쪽에서 받고 있었더군요. 한 소장님의 납치 건으로 MKC가 몸을 사리고 이어 아예 무너지게 되면서 개발이 중지된 모양입니다.”
“아… 네, 아…….”
아아… 그, 아, 뭐라고… 할 말이 없네. 그, 그랬구나. 하필 MKC랑……. 생각해 보니 내가 기억하고 있는 다른 대박 주식들도 다 망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각성센터가 늦춰졌으니 그 이후 나오는 S급 헌터와 관련된 국내외 주식도 불투명해진 거잖아. 이건 한참 뒤의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밖의 던전과 길드 관련 주식도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이젠 딱히 주식으로 돈 벌 필요 없긴 하지만.
“얼마 안 되는 금액입니다만 주식은 가급적 손대지 않기를 권하겠습니다.”
“…예. 그래야죠.”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죄책감에 바닥 친 주식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다른 건 그렇다쳐도 탈모 치료제가……. MKC가 망한 건 내 탓이 아니지만 그래도 영향이 없지는 않잖아. 던전 부산물 지원을 받지 못해 중단된 거면.
‘…그냥 내가 지원해 주면 되지 않나?’
돈도 넉넉하고 무슨 던전인지 몰라도 권리 받아오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래, 역시 이대로 둘 순 없다.
“잠깐 같이 외출 좀 하실래요?”
주식 망했단 소식 듣자마자 이 소리 하기 부끄럽긴 하지만, 괜찮은 투자 상품이 있답니다.
D&L바이오.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에 위치한 회사 건물은 의외로 컸다. 던전 부산물 관련 실험을 위해서는 주위에 민가가 없고 안전시설을 갖추며 헌터 또한 고용해야만 하였다. 다시 말해 돈이 많이 든다.
“고용한 헌터야 D급 이하지만요.”
A급 헌터를 경호원으로 거느린 B급 헌터 석시명 씨가 말했다. 나야 뭐 노아가 따라와 줬고.
디앤엘바이오의 사장은 꽤 젊은 사람이었다. 들어오며 본 직원들도 젊은 층이었다.
우리와 마주 앉은 조성수 사장이 여기까진 어쩐 일이시냐며 물어왔다.
“개발하고 계신 상품에 대해 여쭙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듣자하니 MKC 길드와 협력 관계셨다더군요.”
“아, 예.”
조성수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MKC가 망하면서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되었다는 설명은 석시명으로부터 들은 것과 비슷했다. 길게 이야기를 늘일 필요는 없었다. 나는 용건만 간단하게 말했다.
“MKC 대신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개발에 필요한 던전 부산물의 제공과 개발비 또한 투자해 드리지요.”
재료와 개발비만 갖추어지면 성공이 코앞인 회사다. 망설일 이유가 없지. 내 말에 조성수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정말로 다 만들어진 상태였거든요.”
믿어 달라는 조성수와 빠르게 계약을 체결했다. 필요한 부산물이 나오는 던전은 B급으로 MKC 관리하에 있었기에 현재는 임시 헌터협회 소속이었다. 아직은 평범한 던전이라 사들이기 어렵지 않을 터였다.
이어 조성수가 연구실을 안내해 주었다. 제법 잘 갖추어진 연구실의 책임자는 다름 아닌 조성수의 부인이었다.
“정확히는 생물체의 모발을 흉내 내는 식물입니다.”
송은진이 설명했다.
“다양한 색상을 조절할 수 있으며 이식 또한 아주 간편합니다. 피부에 단순 흡착 성장으로 인체에 아무런 해가 없으며 이틀에 한 번 가볍게 씻고 일정량의 광합성만 시켜 주면 자연스러운 풍성함을 유지 가능합니다. 다만 길이에는 한계가 있어 단발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치료제라더니 식물 이식이었나. 송은진의 말로는 치유 스킬로도 사라진 머리카락을 되살릴 수는 없다고 하였다. 그래도 이식을 받으면 외양은 물론 모발의 기능까지 완벽하게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투자만 충분히 해 주신다면 이후로도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던전 부산물과 아이템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요.”
눈을 빛내는 송은진의 말에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이런 건 어떨까요. 던전 내에서 촬영할 수 있는 아이템이요.”
“던전 내부의 촬영이요? 하지만 저희는 바이오 쪽이라…….”
“식물의 일종을 이용하는 겁니다. 꽤 흔한 종류지요.”
주위의 광경과 소리를 전기신호? 전파? 같은 것으로 저장하는 식물이라고 하였다. 정보를 저장한 식물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 기계로 무사히 옮기면 던전 내부를 촬영한 영상을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원래는 해외에서 개발한 방법이었다. 자세한 기술이야 알 수 없었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TV에서 봤다. 내 설명에 송은진이 활짝 웃었다.
“신기한 식물이군요. 하지만 저희 연구실만으로는 부족할 듯싶습니다. 영상기계 쪽은 잘 모르거든요.”
“사람이야 구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원하시는 대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던전 내부의 촬영이 가능해지면서 관련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생기고 많은 것이 변했지. 헌터에 대한 주목도도 긍정적인 쪽으로 확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범죄 예방에도 도움이 되었다. 던전 안에서의 범죄에 증거를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까.
…물론 촬영 아이템의 가격이 부담되는 하급 헌터에게는 남 일이었지만. 국내에서 개발하게 된다면 보급형 저렴한 촬영 아이템도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급 헌터 대상으로 내가 지원 좀 해 줘도 되고.
“언젠가는 저도 한유진 씨에 대해 자세히 알 기회가 생기겠지요.”
디앤엘바이오를 나서며 석시명이 말했다.
“길드장님이나 다른 몇몇 분들처럼 말입니다.”
내가 수상한 정보를 알아내는 방법을 유현이와 내 주위 몇몇은 알고 있다고 눈치챈 모양이었다. 회귀에 대해서는 아직 기억 없는 성현제에게만 말했지만, 패륜아들에 대해서라면 제대로 짚었다.
“…언젠가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석시명과 꽤 잘 맞는다고 생각은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거리낌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지금의 석시명은 내게 별짓 안 했으니까. 그러니 묻어는 두었다만 정말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깨끗한 마음으로 대하는 건 좀 어려웠다. 완전히 터놓고 말하는 건 아직 힘들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 더 괜찮아 지겠지.
“석 팀장님을 믿고는 있어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미소 짓는 얼굴이 부드러워서, 약간 미안해도 졌다.
* * *
명우의 대장간 1층에 커다랗게 난 창문에 줄줄이 던전에서 나온 과일이 걸렸다. 남의 작업실에서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소록이가 여기서 말린 과일을 제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이스무아르에게도 면목이 없다, 정말.”
이스무아르가 깃든 가마에서 적당한 거리를 둔 딱 이곳 창문. 불의 정령의 열기가 은은히 닿는 이 장소에서 말린 과일은 완벽한 맛을 자랑했다. 게으른 새끼 사슴을 움직이게 만들 정도로.
“신경 쓰지 마. 따로 뭘 시키는 것도 아니잖아.”
명우가 잘 말린 과일이 담긴 바구니를 건네주며 말했다. 심지어 한술 더 떴다.
“몬스터 고기도 여기서 건조시켜 볼까? 다른 새끼 몬스터들이 더 좋아할지도 모르잖아.”
“과일은 그렇다 쳐도 생고기 걸어 놓으면 보기도 나쁘고 냄새도 별로일거 같은데.”
“냄새 정도야 이스무아르가 삼키면 돼.”
…방금 가마 속의 불길이 조금 거칠게 흔들린 거 같았는데. 진짜 괜찮은 거냐.
“이스무아르한테 잘해 줘.”
“잘해 주고 있어. 쟤는 내가 아이템 만들어 내는 걸 제일 좋아하더라.”
그래서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대장간으로 들어와 간단한 작업이라도 한다고 말했다.
말린 과일 바구니를 들고 대장간을 나와 사육소로 향했다. 과일의 힘을 빌려 소록이에게도 키워드를 적용시키는 데 성공했다. 훈련도 잘 따라주면 좋을 텐데, 배부르면 또 늘어져 버리니. 다른 애들만큼 빠르게 키우는 건 역시 불가능하지 싶었다.
사육소 건물로 들어서는데 폰이 울렸다. 석시명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예? 벌써요?”
유현이와 피스가 던전 공략을 마쳤다는 소식이었다. 아니 이제 겨우 나흘 지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