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44
242화 전용 관리자 씨(2)
“일단, 어떻게 된 겁니까? 처음에는 시그마가 성현제 씨라고 생각―”
또다시 이 세계에 들어온 이후의 일들이 머릿속을 좌라락 스치고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내 근처를 빙글빙글 돌고 있던 털실 뭉치를 움켜잡고 탈탈 흔들었다.
“어디서부터 봤어요!”
[그렇게 흔들면 조금쯤은 어지러운데.]“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확 다 풀어 버릴 겁니다.”
털실 끄트머리를 붙잡고 협박했다. 도로록, 한 바퀴 감긴 실을 풀어내자 털실 뭉치 위에 그림처럼 떠 있던 이모티콘이 ㅠㅠ로 바뀌었다.
[이제껏 온갖 다양한 협박을 받아 봤지만 옷을 벗기겠다는 건 처음―]“뭐라는 거야! 이게 왜 옷입니까?!”
[그럼 뭐겠나.]···뭐냐고 묻는다고 해도. 일단은 털실 뭉치인데, 속에 심 같은 게 들어 있나? 그럼 그게 몸뚱이고 털실이···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상상하지 말자. 방금 있었던 일은 없었던 걸로 치기로 했다.
[한유진 군을 볼 수 있었던 건 첫 번째 흔들림 직후부터였지. 그전까지는 시스템을 가볍게 손대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네.]첫 번째 흔들림이라면, 원반 설치 후부터 말인가. 그럼 최소한 내 상태창은 보지 못했다는 거로군. ···그 뒤론 다 봤겠지만. 손에 쥔 털실 뭉치를 힘껏 내던지고 싶어졌다. 뒤통수를 때리면 조금이나마 기억을 잃지 않을까.
혹시나 싶어 확실하게 상태창에 대해 물어보자 볼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내가 성현제를 부르기 전까지는 지금 이 무의식 공간에도 나타나지 못했으며 유현이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나를 통해서만 가능했다고 하였다.
[볼 수 있는 범위도 한유진 군 주위 백 미터쯤? 그 정도가 한계라네.]“그런 것치곤 이것저것 퀘스트를 통해 많이 알려 주지 않았습니까.”
[그건 내가 □□□□□□□□□□― 이런, 역시 안 되는군.]성현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 다. 털실 뭉치가 좌우로 흔들렸다, 에 가깝긴 했지만 뭐.
[지금 이곳은 □□□□□□□□□□□□□□□□□□□□ 라서 □□□□□□□□□.]^^; 털실 뭉치가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대로 말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구만.
[그래도 두 번째 흔들림 덕분에 한유진 군에게 이런 식으로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지. 그 원반은 계속해서 설치하는 건가?]“세 개 남았습니다. 전부 설치하면 신입이 공략 방법을 알려 주겠다더군요. 혹시 신입, 배구공과 연락되십니까?”
[전혀. 지금 몸과 세계는 진짜가 아니며 퀘스트와 사냥을 통해 포인트를 모아 상점에서 원하는 아이템과 스킬을 구입하세요, 정도의 알림으로 끝이었어.]신입, 일 제대로 안 하냐.
[원반을 모두 설치하면 나도 좀 더 많은 것을 알려 줄 수 있게 될 거라네. 지금은 꼼짝 못하는 신세지만.]원반 얼른 마저 설치해야겠네. 그래도 이젠 혼자가 아니니 금방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원반을 설치하는 것보다 도시 간의 이동이 더 문제 되겠지. 차로 이틀이 아니라 일주일 이상씩 걸리는 거리면 어쩐다. 시그마한테 헬기 한 대 못 뜯어내려나.
현재로서는 성현제에게 얻어낼 수 있는 정보가 몇 없었다. 조금만 깊이 있게 들어가려면 □가 둥둥 떠다녔다. 그래도 그가 지금 이 세계의 시스템에 속해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원반만 다 설치하면 시스템에 대한 정보도 얻게 되는 건가.’
이건 신입도 예상치 못했겠지. 원래라면 자기가 정한 세상의 역시나 자기가 정한 상대에 빙의시켰을 테니까. 이 부분만큼은 던전에 간섭해 온 효도 중독자가 고마웠다. 새삼 의욕이 생기네.
“또 기억 잃거나 하지 말고 잘 간수하세요.”
[□□□□□□ 하는 □□□□□□□□□□□.]뭐라고 하시는 건지. 털실 뭉치를 두 손으로 받쳐 든 채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건물 윗부분이 사라지고 없었다. 검푸른 화염이 밤의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방위청 건물마저 전기가 나가고 달빛만 하얗게 비쳐드는 아래, 더욱 파르스름하게 옅어진 불길이 치솟았다.
아름답다.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씁쓸해졌다.
내 기억 속에 있는 한유현의 불꽃은 지독하게 검고 검어서 독기마저 어린, 그런 것이었다. 떨어지는 핏방울 속에서 피어나던 흑혈염. 찬사는 받았었지. 상대의 회복을 더디게 만드는 효율적이면서도 더없이 파괴적인 공격 스킬이라고.
“···저 푸른색 섞인 거요, 알파의 스킬 때문이겠지요?”
[아니, 돌아가서 확인해 보면 바로 알 수 있겠지만 알파는 평범한 붉은 불길을 다룬다고 □□□□□□□□□□.]“···예?”
[육체가 다르다 해도 마나를 다루는 근본은 한유현이니까. 저건 도련님의 힘이라네.]혹시나 싶었던 생각에 성현제가 확실하게 마침표를 찍어 버렸다. 목 너머가 뜨끈해졌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이 기분을. 유현이와··· 유현이가, 달라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주위의 많은 것이 바뀌고 있는데 혼자 그대로 남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러니 알고는 있지만.
“예전에, 유현이가 본래 성질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지요.”
사람을 모아 길드를 세우고 이끌어 가는 모습이 신기했다고. 원래는 리에트보다도 더 거칠 것 없이 떠도는 성질이었을 거라고.
“그건, 제 동생에게··· 나쁜 일이었을까요. 사람들과 어울리라고 한 게, 혹시 잘못된 건 아니었을까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핫핑크 털실 뭉치가 내 손바닥 위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에 비추어 볼 때 한유현은 한유진이 없었더라면 계속 혼자였을 거라네. 누구도 접근치 못하고 접근을 원하지도 않고 홀로 타오르다가 마지막에는 스스로까지 불태웠겠지.]“자기 자신까지요?”
[그래, 제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혼자서는 오래 버티기 힘든 세상이지 않나. 리에트조차 길드나 정식 팀은 없어도 혼자 S급 던전을 공략하는 짓은 하지 않아. 임시로 팀을 구하거나 제 동생이라도 데리고 가지. 그러나 한유현은 끝까지 혼자일 테고, 한계에 다다르면 홀로 던전 속에서 마지막을 맞이하였을 거라네. 물러서지도 피하지도 않고서.]그런 성질이라며 성현제가 말했다.
[짧게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인생이라고 흔히들 말하지. 한유현은 더욱 극단적이었을 거라네. 홀로 위업을 달성하는 것에 경탄은 받겠지만 오래가지는 못하고 스러지고야 마는.]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털실을 내려다보았다. 속이 따끔거렸다. 무심코 새어 나오는 한숨에 털실 뭉치가 ^▽^하고 웃었다. 한 대 패고 싶다.
[자유롭기는 자유로웠겠지. 스스로 원하는 대로 살았으니 후회는 없을 것이고. 그러니 그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네. 반대로 스스로를 억누르더라도 사람과 어울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리고 나는.]···나는?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웃고 있던 표정도 사라졌다.
“성현제 씨?”
뭐야, 연결 끊겼나. 재차 불러 보려는데 내 어깨 너머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 손이 털실 공을 움켜쥐었다. 다시 정장이랑 장갑으로 몸을 만든 건가, 생각하는 그때.
“잘 키웠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뒤돌아섰다. 털실을 들고 있는 손과 정장 차림의 몸, 그리고 목과 이어지는 머리. 짜증 나게도 반가운 얼굴이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한유진이 한유현을 잘 키웠다고 생각한다네.”
“…그편이 댁에게 더 재미있으니까요?”
“한유진이 키운 한유현이기에 바뀔 수 있었으니까.”
성현제가 털실을 가볍게 던졌다가 받았다.
“참으라고 말한다고 해서 참아질 성질이 아니야. 그렇게 쉬운 상대라면 내가 흥미를 보이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한유현은 한유진을 받아들였다네. 심지어 자기보다 약하고 보잘것없는 상대를. 강자가 약자를 설득하고 제 말을 듣게 만드는 건 쉽지만 그 반대는 어렵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약간 설레는 것도 같았다. 칭찬을 기대하는 어린아이처럼.
“그러니 잘 키웠어. 열심히 키웠고. 한유진 군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변화였겠지. 완벽하다고까진 말하지 않겠지만, 감탄을 표하겠네. 사실 사람을 키우는 데 있어서 완벽함이 어디 있겠나.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고, 그건 확실히 해냈다고 생각한다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우면서도 동시에 만족스러웠다. 속에서 뭔가 울컥, 따뜻한 것이 퍼져 나갔다.
“···감사합니다.”
“한유진 군은 감사를 표하는 쪽이 아니라 받아야 하는 쪽이라고 생각하네만.”
“그래도요. 이번만큼은 솔직하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기뻤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성현제가 이렇게 말해 주었다는 사실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나 또한 완벽하다고 생각진 않았다. 유현이의 마지막은, 절대로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비록 성현제는 회귀 전의 일을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잘 키웠다는 말이 위로로 다가왔다.
알아주어서 고마웠다.
“이제 슬슬 깨어날 때가 되었군.”
“네, 금방 원반들 마저 설치할 테니까 밖에서 제대로 이야기를―”
그때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털실을 쥐지 않은, 성현제의 한쪽 팔이 사라지고 없었다. 옷만 늘어뜨려진 채였다.
“파, 팔 어디다 잘라 먹었어요?!”
“이 정도로 직접 간섭하는데 반동이 없기란 힘들지. 그래도 남의 몸뚱이라 시청료치곤 저렴해.”
“아니, 진짜 몸이 아니라고 해도!”
“이왕이면 눈까지는 봐주었으면 좋겠군. 그럼.”
뭐라고 더 말하기 전에 눈앞이 까맣게 물들었다. 다시 눈을 뜨자, 푸른빛을 발하고 있는 거대한 홀이 시야를 가득 채워 왔다. 급히 주위를 살펴보았다. 내 몸뚱이를 안고 있는 유현이가 근처에 있었다.
[부활하시겠습니까?]메시지와 함께 남은 대기 시간이 나타났다. 곧장 부활을 선택하자 몸 안으로 스윽 끌려들어 갔다. 진짜 게임 캐릭터를 되살린 것처럼 아픈 곳도 없이 멀쩡한 몸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되살리는 거지.
“…유현아.”
“···형?”
-형!
유현이와 이린이 동시에 소리쳤다.
“혀, 형. 괜찮아···?”
“괜찮아. 진짜야. 아주 멀쩡해.”
내려 줘도 된다는 말에 유현이가 주위를 감싸고 있던 불길을 물렸다. 나를 품에서 내려놓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유현이가 그 자리에 풀썩 무너져 내렸다.
“유현아!”
-유현아!
“혹시 어디 다친··· 당연히 다쳤지, 젠장! 잠깐만, 포션이―”
“그런 거, 흑, 그런 거 아니야, 형―”
멈췄던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유현이가 더듬더듬 말했다.
“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어떻, 어떻게 서야, 하는지도, 기억이··· 안 나서…….”
“유현아―”
우선 포션부터 꺼내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던 어깨와 등의 상처를 치료했다. 그사이 계속 흐느끼던 동생이 팔을 뻗어 나를 끌어안았다.
“···형.”
“응.”
“나도, 나도 기다릴 수 있어.”
눈물을 삼키며 유현이가 말을 이었다.
“나도 형을 믿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 언제까지든 기다릴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혼자 오지 마. 피스나 박예림과 같이 와 줘. 서두르지 말고 안전하게 데리러 와 줘. 그때까지 기다릴게.”
“···응, 미안. 미안하다, 유현아.”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동생보고는 서두르지 말라고 해 놓고선 정작 내가 실수하고 말았다.
“다른 덴 다친 곳 없고? 몸은 괜찮아? 그 망할 놈들이 밥도 제대로 안 줬을 거 같은데.”
생각만 해도 열 받는다. 일단 인벤토리에 있던 물병과 말린 과일을 꺼내어 먹였다. 먹을 걸 좀 더 챙겨 오는 거였는데. 식당이 있는 건물은 부수지 않았으니 그쪽으로 갈까. 아니, 숙소에도 냉장고와 간단한 음식은 있었으니까 제일 좋은 방으로··· 시그마 내쫓을 방법 없나.
아직 가늘게 떨고 있는 동생을 안아 들었다. 유현이가 당황하며 내게 매달려왔다.
“형! 무거울 텐데!”
“나 지금 C급이다. 전혀 안 무거워. 예전에도 드는 것 정도야 가능했고.”
아마도. 이린이 내 팔을 타고 넘어와 어깨 위를 빙그르르 돌았다.
-형, 형! 린이 변하는 거 보여 줄까요?
“봤어. 멋지더라.”
-그쵸?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말도 하고.”
-저 파란 거요. 블루 홀 근처에서는 린이 말도 할 수 있어요! 마나가 잔뜩이니까요! 린이랑도 잘 맞아요!
마나 홀의 힘 덕분인 건가. 정령은 각인이 없어도 마나 홀의 마나를 빠르게 흡수 가능한 걸까. 재잘재잘 떠드는 이린을 유현이가 어째서인지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내 형인데 왜 형이라고 부르는 거지.”
-유현이 형이니까!
린이의 대답에 유현이가 뭔가 납득하는 표정을 지었다. 으음, 나는 잘 모르겠지만 애들끼리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이제 박수 칠 차례인 건가?”
그때 시그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잦아들어 간 불길 사이에 서 있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박수 치고 그대로 퇴장하시면 됩니다.”
“앙코르를 외칠 생각이었는데.”
“그쪽 객실을 양보해 준다면 생각해 보죠. 아니면 비슷한 수준의 방이라거나. 제 동생이 쉬어야 하거든요.”
“동생이라.”
시그마가 흥미 어린 눈길로 나와 유현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분명 알파에게 남자 형제는 없었을 텐데. 정신계 스킬 효과로 보이지는 않고, 어떻게 된 걸까.”
“정식으로 소개해 드리죠. 제 하나뿐인 동생인 한유현입니다. 내가 건드리지 말라고 분명 말했을 텐데. 얌전히 구경이나 하다가 떡고물이나 주워 먹으라고 했더니 왜 상을 뒤엎고 지랄이야.”
이 동네엔 떡이 없어서 못 알아들었나.
“계약은 분명 알파가 풀려날 때까지였다만.”
“계약이고 뭐고 남의 동생 손대지 말라고, 개새끼야.”
[◑▽◑당신의 파트너도 소개시켜 줘 봅시다!]···댁도 좀 얌전히 있고요. 누가 성현제한테 퀘스트 권한 좀 빼앗아줘. 하지만 시그마도, 성현제도 얌전히 있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