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61
259화 어쩌다 보니 몰이사냥 (2)
[그냥 이쪽으로 와요! 여기 왔다가 싹 처리하고 메드상으로 가면 되죠.]예림이가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우리는 메드상과 드로시아의 갈림길 사이에 멈춰 있었다.
원래라면 메드상까지 하루 남짓 걸렸겠지만, 문제는 뒤따라 붙은 몬스터들이었다. 고속이동이 아닌 공간이동을 했더니 제대로 따라오지 못한 몬스터들이 근처 도시로 방향을 틀어 버린 것이었다.
SSS급 몬스터 포함 3백이 넘는 몬스터 떼가 플레슈 시로 향하고 우리는 기겁해 다시 되돌아갔다. 결국 공간이동은 단거리로만 가끔 쓸 뿐 고속이동 위주로 움직여야만 했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느리게 이동하다 보니 몬스터의 수는 더더욱 늘어갔고 자잘한 놈들까지 헤아린다면 천에 가깝게 불어나고 말았다. 이제는 도시 근처에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위험해질 지경이 된 것이었다. 혹시라도 저 수많은 몬스터 무리가 흩어지기라도 하면, 수적 열세로 피해가 커질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예림이는 자신만만해했다.
[와 보면 아실 거예요. 장소 정해서 보내드릴게요~]그러고는 뚝, 통신이 끊겼다. 인공위성 같은 건 없는 동네다 보니 이동 중인 함선 내 원거리 통신은 불안정했다. 도로를 따라 매립된 장비 반경을 벗어나면 통신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였다.
“드로시아로 향하는 것이 좋을까요?”
노아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예림이가 저렇게까지 장담하니 괜찮지 않을까. 유현이와 문현아도 그편이 나을 거라며 동의해 왔다. 두 사람 다 바다를 앞에 둔 박예림이라면 수적인 문제도 충분히 커버 가능할 거라고 말했다.
“드로시아에는 정령도 많다고 하니까.”
“저도 들었어요.”
문현아의 말에 노아가 끄덕였다.
“다만 그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길 바라긴 힘들 겁니다. 정령과 협조를 하고는 있지만 계약자는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계약 안 해!
내 손 위에 올라와 있던 이린이 말했다.
“린이 넌 태어나자마자 유현이와 계약했었잖아.”
– 첫눈에 반했으니까요, 형. 유현이가 린이 알 들고 있어서 먼저 계약 제의한 거나 다름없기도 했고요! 그래서 바로 받아들였죠~
원래는 유현이에게도 동의를 받아야만 계약할 수 있다고 했다. 유현이는 그때 별생각 없었을 텐데, 린이 이 녀석. 물론 계약하는 게 훨씬 낫긴 하지만.
메드상의 두 번째 SS급 가드를 포함해 일부 인원은 자신들의 도시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전함은 북쪽 바다의 도시, 드로시아 시로 출발했다. 수많은 몬스터를 이끌고서.
[기온이 점차 낮아지고 있습니다. 선외 활동 시 방한 장비를 지참하십시오.]방송이 흘러나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황량했다. 얼어붙은 땅 위로 추위에 유독 강한 식물만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북쪽 땅이라고 해도 원래는 이 정도로 기온이 낮진 않았다고 하였다. 근해에 마나 홀이 자리 잡고 그곳으로 물과 얼음의 정령들이 모여들며 주위 온도 또한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나자, 숲이 사라지고 땅이 얼어붙으며 녹지 않는 눈밭이 펼쳐지게 되었다.
“창문 언 것 좀 봐라.”
문현아가 손등으로 유리창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냉기 저항 스킬 없는데 하나 사야 하나.”
“저항 스킬이야 중간 등급이라도 있으면 편하긴 하죠. 얼만데요?”
“C급 삼백만 포인트.”
“전 천만 포인트네요. 완전 차별 아닙니까.”
스킬은 장비나 아이템과 달리 등급이 낮아도 비싼 편이었다. 그래도 삼백만 포인트면 살 만한데, 난 왜 이러냐. 공격 스킬은 물론이고 신체 능력과 관련 있는 거면 죄다 몇 배로 비쌌다. 정확히는 유현이와 문현아, 노아가 할인을 받는 거겠지만.
“유현이 넌 얼마냐?”
“칠백만 포인트야. 속성 때문인가 비싸네.”
“포인트 꽤 모이긴 했는데 언제 쓰지. 이거 갑자기 던전 공략되고 포인트 날아가는 건 아니겠지?”
처음에는 SS급 거창을 노리다가 그건 명우의 성장에 기대기로 하고 스킬로 방향을 튼 문현아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마지막 원반 설치하기 전에 쓰면 되지 않을까요. 그전에는 공략 안 될 거예요.”
본의 아니게 몬스터를 잔뜩 끌어모았으니 이번 사냥이 끝나면 다들 포인트 넉넉하게 가지게 되겠지. 특히 SSS급 몬스터에 대한 기대가 크다. S급과 SS급 몬스터의 포인트 차이가 열 배쯤 되니 SSS급 한 마리가 천만 포인트 이상 내놓지 않을까.
“달 씨, 잘 부탁해요.”
자신과는 관계없는 이야기를 약간 뚱하게 듣고 있던 시그마가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대답은 없지만 사냥에 빠지진 않을 터였다.
창밖으로 간간이 눈발이 흩날리고 기온은 더더욱 내려갔다. 냉기 저항 스킬을 지닌 사람들을 찾는 방송이 몇 차례 흘러나왔다. 어두워졌던 바깥이 다시 희미하게 밝아질 때 즈음, 곧 착륙한다는 방송이 들려왔다.
[전투 제외 승무원들은 모두 A구역으로 이동해 주십시오.]밖에는 드로시아에서 온 차량들이 여럿 몰려와 있었다. 배에서 내리기 전 분홍 털뭉치들을 꺼내 들었다. 진짜 내 취향은 아니지만.
‘세트 효과로 냉기 저항 스킬이 붙다니.’
마지막으로 받은 털모자까지 합쳐서 냉기 저항 스킬이 무려 SS급이었다. 스베일양의 털실 효과인지 성현제가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세트에 다른 효과는 없어서 일상에서나 쓸 수 있겠지만 지금은 딱 좋았다.
롱가디건 걸치고 목도리 하고 모자 쓰고 장갑까지 꼈다. 먼저 나와 있던 문현아가 내 모습을 보곤 커다랗게 미소 지었다.
“잘 어울리는데, 형님.”
“색이 좀 이상해서 그렇지 솜씨는 좋더라고요.”
특히 가디건이 마음에 든다. 품 넉넉하고 주머니도 크고.
“나도 만들어 줄 수 있어.”
“그래, 목도리 하자.”
넘쳐나게 긴 목도리 끝을 유현이에게 둘러 주었다. 이것만으로도 냉기 저항 스킬이 공유되었다. 유현이야 가볍게 불을 피우면 춥지 않겠지만 마나는 아끼는 편이 좋으니까.
“달님도 이리 와.”
아직 넉넉하다.
“…사양하지.”
시그마가 나와 유현이를 빤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성현제였으면 헛소리와 함께 쓸데없이 우아하게 받아들었을 텐데. 역시 아직 어리구만.
“우리 달이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자자, 형아한테 가라고.”
문현아가 시그마의 등을 떠밀었다. 유현이와 시그마가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
“싫어하는 데 왜 챙겨 줘. 가자, 형.”
“형님! 막내도 데려가요!”
“놔라, 람다.”
“놓아주세요, 누나~ 해 봐, 응?”
시그마가 질색했지만 단순한 힘으로는 문현아를 당해낼 수 없었다. 키도 현아 씨가 더 크고. 특히 팔에 근육이 정말 장난이 아니라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같은 등급, 비슷한 능력치에 스킬을 쓰지 않은 채의 육체적 힘이라면 역시 체격과 근육량이 중요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마력이 깃드는 양에 차이가 있다나.
우리 유현이도 쑥쑥 더 자라야 할 텐데.
함선 밖으로 나가자 눈발 섞인 바람이 몰아닥쳤다. 냉기 저항 때문에 춥지 않았지만 보이는 광경만으로도 속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유진 씨, 춥지 않으세요?”
먼저 나와 있던 노아가 내게 물었다. 노아에게도 냉기 저항은 없기에 털이 달린 겨울 코트를 걸치고 있다. 냉기 저항 붙은 아이템이겠지. 고등급은 아닌지 하얀 뺨이 살짝 붉다.
“노아 씨도 목도리 하실래요? 이거 SS급 냉기 저항 공유되거든요.”
“아… 괜찮아요, 지금은요.”
노아가 주위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싫은 기색은 아닌데, 아무래도 메드상과 드로시아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핫핑크 색 목도리를 나란히 하는 것은 뮤로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문득 성현제가 전에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무슨 짓을 하든 자신의 격은 그대로라던 여유로운 태도가.
“노아 씨.”
오지 않는 노아에게 내가 먼저 다가갔다. 핫핑크 색 목도리 끝을 그의 목에 감아 주었다. 잘 어울리잖아.
“멋진데요.”
“…네?”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참는 게 더 이상하잖아요, 별거 아닌 일인데. 아, 물론 나쁜 짓은 안 되고요.”
몇몇이 우릴 쳐다보긴 했지만 그냥 미소나 짓는 정도였다. 물론 세상 살면서 남의 눈치 살펴야 할 일 많긴 하지만 말이야, 메드상에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한 존재가 바로 뮤다. 핫핑크 목도리 좀 나눠 했다고 해서 문제 될 일 전혀 없다.
“남한테 피해 안 가는 일이면 괜찮아요.”
우리 유현이를 봐라. 얼마나 당당하냐. 성현제가 여기 있었어도 비슷했을 거고. 문현아도 자기가 원하는 일에 대한 거리낌이 전혀 없지.
“어쩌면 메드상에 핑크 목도리 유행바람이 불지도 모르죠.”
내 말에 노아가 작게 웃었다.
“한유진 님이십니까?”
그때 드로시아 가드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내 양쪽을 쳐다보더니 맞구나, 하는 표정을 짓는다. 예림아, 대체 뭐라고 설명한 거니.
“델타 님께서 계신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드로시아 가드가 스노모빌에 올라탔다. 메드상의 소형 비행 차량이 있었지만 그것을 움직이기 위한 보조계 가드들을 우르르 끌고 갈 순 없었기에 드로시아의 차에 올라탔다. 눈과 빙판을 달리기 적합하게 만들어진 차가 설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스노모빌과 달리 차의 속도는 느린 편이었다.
얼마쯤 달려갔을까, 눈앞에 얼어붙은 계곡이 나타났다. 마치 거대한 파도 두 개가 서로 맞부딪치기 직전, 그대로 굳어 버린 듯한 풍경이었다. 목을 잔뜩 꺾으며 둥그스름하게 깎아지른 절벽을 바라보자 드로시아 가드가 뿌듯해하며 말했다.
“대단하지요? 델타 님께서 바로 어제 만드셨습니다.”
…파도 두 개가 굳어 버린 듯한이 아니라 진짜 그거 맞았구나. 지상으로 올라와 얼어붙은 파도의 벽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 사이를 통과하자 바다가 나타났다. 하얗게 눈 덮인 차디찬 북쪽 바다 위로.
“미친, 저게 다 뭐야.”
문현아가 중얼거렸다. 노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그마 또한 놀란 표정이었다. 반면에 유현이는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
– …린이 숨어 있을래요.
이린이 약간 기죽은 듯 말하며 목도리 안으로 파고들었다. 불의 정령인 린이가 위축될 만했다. 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하얀빛을 띤 고래였다. 수문장처럼 하늘 가운데 떠오른 고래가 기다란 지느러미를 느릿이 움직이고, 그 주위로 온갖 다양한 형태의 물고기들이 무리 지어 헤엄친다.
물고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크고 작은 돌고래와 상어, 거북이, 해파리 등의 해양생물은 물론이요 새와 나비, 드래곤 등의 형태를 한 정령들도 보였다. 하늘 아래, 눈과 얼음 위에도 수많은 정령이 모여 있었다. 사슴, 늑대, 토끼, 이름 모를 동물은 물론 눈사람이나 책, 칼 등의 물건과 불명확한 형체들도 눈에 띄었다.
이 세계의 모든 정령이 이곳에 모인 것만 같았다. 등골이 서늘해지면서도 순수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 한가운데, 모든 정령의 중심에,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 짧은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팔락인다. 무수한 정령들에게 둘러싸여 예림이가 한쪽 팔을 힘차게 치켜들었다.
“아저씨!”
어서 오세요, 하며 활짝 웃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차가 가까워지고 예림이가 이쪽으로 훌쩍 날아왔다. 정령들이 우르르 따라오려는 것을 손을 흔들어 막는다. 그런데…….
“아저씨는 똑같네요?”
“어, 응. 예림이 너는… 많이 컸구나.”
아니, 실제 몸이 큰 건 아니지만. 빙의한 거긴 하지만. 그, 나보다 키가 크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열다섯 살은 절대 아니었다. 예림이가 씨익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20대… 인가? 회귀 전에 본 예림이가 떠올랐다. 표정은 완전히 다르지만 얼굴은 비슷했다. 다만 눈은 푸른색에 머리카락에도 푸른빛이 섞여 있었다.
“한유현! 너도 비슷하게 생겼네. 여기선 나도 너랑 동급이라 이거야, 전 길드장님! 현아 언니! 우와, 키 엄청 커졌네요! 좋겠다! 노아 오빠, 눈 색 너무 예뻐요! 사진 못 찍어가나, 소영 언니 보여 주면 좋아할 텐데. 세성 길드장님은 어째 분위기가 딱딱해졌네요. 무슨 일 있었어요?”
“세성 길드장 아니야.”
“네?”
성현제는 다른 곳에 있고 시그마는 여기 사람이라고 설명해 주자 예림이가 입을 딱 벌렸다.
“와, 저 얼굴이 둘이나 있어. 사기다.”
그 밖의 상황에 대해서도 말해 주려는데 통신 중이던 드로시아 가드가 크게 소리쳤다.
“몬스터 무리, 제1 카메라에 잡혔다고 합니다!”
“그래? 준비해야겠다. 아저씨, 피해 있을래요?”
“응? 아니, 나도 도와주려고.”
“위험할 텐데요.”
“예림아, 나 포인트 두 배 적용 스킬 있다. 물론 공유도 가능하고.”
순간 예림이의 움직임이 딱 멈추더니, 비명과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아저씨 최고! 포인트 두 배라니!”
예림이는 기뻐했지만, 유현이와 문현아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둘 다 예림이에게 공유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여기서는 예림이가 몬스터를 제일 많이 잡을 테니 당연한 결론이지만.
나도 정말 아쉬웠다. 왜 내 몸뚱이는 하나뿐인 거지. 그래도 사냥할 몬스터는 잔뜩 몰려올 테니까. 2번 카메라에서도 소식이 오고 우리는 몬스터 떼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