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86
384화 신규 던전 (3)
“진짜 S급입니까?”
길에 세워져 있는 오토바이 키 박스를 뜯으며 물었다. 착한 어른은 따라 하면 안 됩니다. 어차피 좀 좋은 바이크면 못 쓰는 방법이지만.
“그래.”
“확인해 봐도 돼요?”
살짝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물었다. 어린 혼돈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을 받자마자 떡잎 스킬을 썼다.
[※시스템 보안 대상현재 스탯 등급 S
각성 가능 스탯 등급 F~E
최적화 초기스킬
※시스템 보안 대상]
…다른 의미로 입이 딱 벌어졌다. 키 박스 잭을 뽑다 말고 어린 혼돈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어, 제 스킬 오류 났나 봐요.”
“왜.”
“어르신 각성 가능 스탯 등급이, F에서 E로 뜨는데요. 말이 안 되는데.”
“그거 맞다.”
“네?”
그, 어, 그… 잘해야 E급이었다고? 원래? S급이, 하다못해 A급조차 아니라?
“에이, 농담도.”
“그래서 소싯적에 고생깨나 했었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네요. 하긴 그렇게 오래 사셨으니 기억이 애매할 수도 있, 아야!”
폭력을 반대합니다. 방금 던진 거 이거 솔잎이냐. 그렇게 아프게 찔렀는데 구부러지지도 않았잖아. 이러는데 어떻게 믿어. 내 상식으로는 납득 불가능한 소리였다. 못 본 걸로 치자. 죄다 보안 대상이라 제대로 본 것도 없다. 역시 오류인가 보다.
“근데 왜 S급으로 오신 거예요? 포인트를 무려 천만이나 받아가셨으면서!”
“만 포인트였다. 어린 것이 벌써 오락가락하면 어쩌냐.”
“정가요, 정가. 정가 천만이 S급이라니, 사긴데. 이거 완전 할인하는 척하면서 정가로 판매하는 수법 아닙니까.”
혼돈의 눈썹 끝이 슬쩍 올라갔다. 재빠르게 팔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폭력 반대.
“원래의 내가 포인트 따위로 산정이 될 것 같으냐.”
“그야 그렇겠지만, SS급 정도는 가능할 거잖습니까. 지금이라도 추가금 지불하고 등급 올리면 안 될까요? 열 배까지 더 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 백 배. 백만 포인트 콜?”
천만까지도 가능은 하지만 흥정하려면 이쯤에서 끊어야지. 어린 혼돈이 나를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았다.
“1억.”
뭐…….
“없어요! 탈탈 다 털어도 8천만이 채 못 되는데! 아니 등급 하나 올리는 데 1억은 완전 폭리 아닙니까? 상도덕이 없으신데요! 아, 맞다. 천만 포인트 할인해서 만으로 해주셨으니 이번에도 십만 해주시는 거죠? 네?”
“할인해서 1억.”
사기다. 사실 등급 하나의 차이가 큰 만큼 사기까진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기다.
“…오천만. 진짜 이 이상은 안 돼요. 비상 포인트 필요하다고요. 심지어 이 던전 한정이잖습니까.”
계속 같이 다닐 수 있다면 빚내서라도 1억 지불하겠다만, 여기서 나가면 끝이다.
“안 돼.”
“아 왜요!”
“던전 등급이 SS급이기에 S급 몸을 집어넣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 하지만 SS급은 던전과 동급이기에 훨씬 더 많은 조정이 필요하다. 라고 하더군.”
잘은 모르겠다만 결론은 안 된다는 뜻이었다. 아쉬워하며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었다. 해연에서 세성까지는 거리가 꽤 된다. 지하철 한두 정거장도 아니고 괜히 뛰어가서 힘 뺄 필요 없었다. 스탯이 S급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나이도 있으신데 체력 관리 잘 해드려야지.
“타세요.”
어린 혼돈이 오토바이 뒤쪽에 걸터앉았다. 카디건 꺼내 입어서 별로 춥지는 않지만 장갑 끼는 게 좋겠지. 이왕 무장하는 거 모자도 썼다. 오토바이 탈 때 손 시린 것도 힘들지만 귀도 만만찮게 시리니까. 헬멧은 뭐, 원래는 반드시 착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까 SS급 공격 가볍게 받아내지 않았어요? 제대로 못 보긴 했지만 스탯 차이 나는 거 같지 않던데, 스킬입니까?”
텅 빈 길을 따라 속도를 올리며 물었다. 막히지 않으니 금방 도착하겠네.
“실력 차이다.”
“실력만으로 돼요? 그게?”
“스탯 등급이 높다고 해도 자기 육신과 마력을 완벽하게 다루는 놈은 없어. 심지어 등급이 높을수록 효율도 보통 낮아지지.”
처음 듣는 소리였다. 녹음기 없나. 애들도 들어야 할 거 같은데.
“100의 마력과 신체를 지닌다 해도 그것을 외부에 작용하는 힘으로 변환시키면 결과물은 50미만으로 떨어지기 일쑤다. 그러니 SS급과 S급이 맞부딪친다고 해도 100 중에 30의 결과물을 내는 자와 50 중에 40의 결과물을 내는 자라면 S급이 더 유리해지겠지.”
“어르신이 후자고요?”
“나는 50 중 48~9 정도 될 거다.”
아무리 효율이 높아도 에너지를 손실 하나 없이 백 퍼센트 다 목표에 전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니 저게 최대이려나. 아무튼 S급인 어린 혼돈이 웬만한 SS급과 맞먹거나 더 강하다는 뜻이었다. 장난 아니네.
“그럼 실력 있는 SS급과 마주친다면 위험할 수도 있겠군요.”
“제 몸 다루는 건 재능보다는 경험이야. 소위 천재적인 자질을 가졌다는 녀석들도 일이백 년 정도로는 100 중 50도 넘기기 힘들어.”
이 던전의 헌터들은 전부 각성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 나이로 쳐도 40살 넘긴 사람조차 거의 없지. 그러니 대부분은 걱정 안 해도 되겠지만.
‘성현제가 문제네.’
기억 자체는 성현제도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혹 모를 일이었다. 지난 삶들의 경험이 무의식중에 축적되어 있을지도. 삶에 지루함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어르신 생각보다 강한 SS급이 튀어나올지도 몰라요. 안 그러길 바라지만 그 인간은 늘 혼자 튀어서요.”
“얼굴 한번 보고 싶기는 했다만.”
“네? 누군지 알고요?”
“보나마나 원맥자일 테고, 네 녀석이 동생 말고 싫은 척 높게 평가하는 원맥자라면 저번에 말 나온 그놈이 뻔하겠지. 세성 길드장이라고 했던가.”
“싫은 척이 아니라 더럽게 잘나서 짜증 나는 거 맞는데요.”
왜 다 잘났지, 그 인간은.
“그 효율 좋게 자기 능력 다루는 거 말입니다, 어르신에게 배우면 좀 더 빨리 가능해질까요?”
“혼자 끙끙대는 것보다야 낫겠지. 애초에 대부분은 깨닫지도 못하고 있으니.”
“그럼 제 동생에게 가르쳐 주실 거죠? 그것도?”
“하는 거 보고.”
“저희 막내도요!”
“키우는 강아지한테도 가르쳐 달라고 하지 그러냐.”
“키우는 몬스터는 있는데요. 됩니까?”
어린 혼돈이 혀를 쯧쯧 찼다. 아니, 그냥, 시간 나시면 도와달라는 거죠.
직선으로 쭉 내달려 올림픽대로 위로 올라탔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속이 다 쓰렸다. 진짜 있을까. 있으면 준보스급 아니냐. 어린 혼돈에게 양해를 구하고 선생님 스킬을 썼다. 상대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당하는 일은 피해야지.
“은혜야, 팔뚝으로 옮겨갈래? 옷 아래로, 티 안 나게 장식 줄여서.”
– 삐익.
“대신 밖에 나가서 너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까. 조용히 있어야 해.”
– 삑!
오토바이를 잠시 멈추고 은혜를 풀어 팔뚝으로 옮겼다. 회귀 전의 성현제는 은혜에 대해 모른다. 하지만 워낙 감 좋은 사람인 데다 언뜻 본 공략자들이 파편 정보에 영향을 줬다는 메시지가 신경 쓰였다.
만약 이곳의 성현제가 회귀 후 성현제의 기억을 일부나마 가지고 있다면.
‘그럼 대화로 설득해 볼 수 있으려나.’
평화롭게 잘 끝난다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솔직히 낮았다. 불길한 예상이 머릿속에 휙휙 떠올랐다가 서로 뒤엉킨다. 오토바이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강이 제법 크구나.”
어린 혼돈이 한가한 소리를 했다. 한강 나도 좋아하긴 해. 하지만 지금은 뭘 보든 걱정이 앞섰다. 예림이는 괜찮을까. 회귀 전의 예림이도 있을 거 같은데, 회귀 사실을 털어놓은 게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마주쳤다간 충격이 컸을 테니까.
아니 그 전에 몬스터를 잡아야 던전 공략이 가능하다는 것도 문제였다. 예림이는 이땐 A급이었으니 보스급은 아니겠지. 그럼 굳이 죽… 아무튼 그럴 필요는 없지만, 아는 얼굴들이 대부분이잖아. 아 진짜 던전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신입 진짜!”
[경고!]돌연 빨간 메시지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깜짝이야, 공포 저항 없었으면 오토바이 쓰러졌다.
[해당 지역은 최소 4인 이상의 공략 팀을 구성하시길 권합니다!]“뭐?”
[몬스터 정보가 불명확합니다! 시스템 오류 수정 전까지 접근 자제해 주세요!] [몬스터 정보가 매우 불명확합니다!]성현제구나. 우선 오토바이를 멈췄다. 한강을 바라보던 어린 혼돈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위험하다고 돌아가라는데요.”
“돌아갈 거냐?”
“위험한 일은 피하는 게 상책이긴 한데… 확인은 해보고 싶습니다.”
시스템 오류에 불명확한 정보. 위험 신호임과 동시에 기회였다. 회귀 전 성현제에 대해 무언가 더 알아낼 수 있는 기회.
“그럼 가.”
“괜찮겠어요?”
“너 하나 못 빼낼까.”
“그럼 믿고 갑니다.”
다시 오토바이를 몰아갔다. 경고 메시지가 몇 번 더 떴다가 사라졌다. 신입에겐 덜 미안한데 명우가 지켜보고 있다면… 죄송합니다. 정말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노을 어린 하늘은 변함이 없었다. 이제 슬슬 세성길드의 건물 끄트머리가 눈에 들어올 위치였다. 하지만 내 눈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하나가 무너져 내린, 높게 솟은 두 개의 빌딩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공기가 붉게 핏빛을 띤 것만 같았다. 던전을 공략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접하는 공기였다. 주로 몬스터들을 한데 모아서, 한 번에 다량을 해치우면. 그럼 제법 멀리까지도 이런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코너를 돌았다. 그리고 멈추었다.
두 개의 빌딩은 모두 무너져 내렸다. 가운데의, 공중정원이 있던 상대적으로 낮은 건물은 무너지진 않았지만 멀쩡하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헌터 협회처럼 오가는 몬스터, 헌터들은 보이지 않았다. 피 냄새만 짙었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공략했을 수도 있다. 유현이나 송태원, 노아, 피스, 예림이는 아니길 빌지만. 윤윤은 당연히 아닐 테고, 그리고 성현제.
어린 혼돈이 오토바이에서 내려섰다. 흰 얼굴 위로 검은 눈썹이 미미하게 찌푸려진다.
“첫째 너… 대체 뭐와 엮이게 된 거냐.”
“태생 S급, 원맥자입니다.”
“저건 네 동생과 달라. 네 동생도 원맥자 중에서도 드문 종이었지만 저건… 뭐라고 칭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무심코 마른침을 삼켰다. 나도 오토바이에서 내려 지팡이를 짚었다. 초승달이 성현제에게 한 짓을, 눈치챈 것일까. 그가 얼마나 많은 세상을 거쳐 왔는지를. 무엇을 품고 있는지를.
“신입은 별말 없었어요.”
“어린애가 뭘 알아보겠어.”
어린 혼돈이 성큼 발을 내디뎠다. 얼른 그 뒤를 쫓아갔다.
“잠깐만요!”
“넌 밖에 있어라.”
“아니, 제가 확인할 게 있어서 온 건데요?”
“나도 확인해야겠다. 저걸 내버려 둬도 될지, 안 될지.”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내버려 둬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 뭘 어떻게 하려고. 지금의 저 성현제는 몬스터겠지만 이곳에는 멀쩡한 인간 성현제도 있다.
“나쁜 사람 아니에요! 성현제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 그 꼴인 거 아니거든요!”
“밖에 있으라니까.”
어린 혼돈이 속도를 올렸다. 그래도 보폭이 좁아 따라갈 만은 했다. 기어이 쫓아가는 나를 혼돈이 힐끔 탓하듯 쳐다보았다.
“성현제 생각보다 착… 그, 괜찮은 사람입니다! 의외로 선도 잘 지켜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저한테 잘해 주기도 했고요. 저 납치되었을 때도 구하러 와줬거든요. 담배 피운 거 애들한테 들키지 않게 사탕도 줬어요.”
박하율의 영향인지 막 대했을 때의 기억도 같이 떠오르긴 했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살리고 봐야지.
“최근에는 진짜 착, 착, 착해요, 성현제!”
내 양심이 병가 냈다. 세성길드 중앙 건물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꼴이었다. 유리문은 박살 난 지 오래고 내부도 성한 곳이 별로 없었다.
“애쓴다.”
“진짜 착하다니까요? 제가 단거 먹고 싶다고 했더니 사오기도 했어요. 저번 추석 때도 시키는 대로 전 부치기도 했는데. 저 운전면허 떨어졌다고 자전거 선물해 주기도 했고요. 와, 완전 천사가 따로 없네, 성현제.”
이왕 버린 양심.
“게다가 없애 버리기엔 잘생겼잖아요. 솔직히 아깝죠. 길드 내에서도 평가 괜찮아요. 월급 잘 준대요. 보너스도 빵빵하고 복지도 좋고. 심지어 정시 퇴근! 맞다, 이것도 성현제가 직접 짜준 거거든요. 가디건도, 장갑도, 모자도! 목도리도 있는데. 기부도 많이 해요. 대외적 이미지가 어찌나 좋은지 저도 처음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겪어 보니… 더 괜찮더라고요! 친절하고 상냥하고 다정하고 유능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짜즈, 너무너무 완벽합니다!”
인생이란 뭘까.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벌어지는 법이지. 무사히 나가면 송 실장님한테 술 사야겠다.
그때.
“고맙군.”
텅 빈 로비에,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무너져 내린 천장 잔해를 계단처럼 디디며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동명이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은 들지만.”
그가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붉은 자국이 생겨났다. 늘어진 코트의 끝자락도 핏물로 축축이 젖어 있다. 이곳의 몬스터는, 살아 있는 생명체는 전부. 가슴 안쪽이 서늘해졌다.
“퍽도 착해 보이는구나.”
어린 혼돈의 군소리에 한쪽만 남은 금빛 눈이 휘어지며 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