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92
490화 차린 것은 없지만 (1)
그리 크지 않은 공항에 비행기가 연신 내려앉았다. 대부분이 일반적인 여객기가 아닌 다양한 형태의 전용기들로 비행기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승객은 몇 없었다. 많아야 열 명 이하, 적게는 고작 한 명만이 탑승용 계단을 쓰지도 않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송태원은 그 모습들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송태원 헌터도 이번에는 손님으로 온 것이 아니던가.”
송태원의 옆에 선 시시오가 아마테라스 길드에서 관리 중이니 괜히 수고할 필요 없다며 말했다. 하지만 송태원은 도착하는 손님들의 체크를 멈추지 않았다.
“이번 모임이 조용히 마무리될 가능성은 희박하니 자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준비?”
“국제 문제가 될 시 자국의 헌터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모든 영상 자료는 가능한 자주 백업 부탁드리겠습니다.”
“만약 한국 헌터에게 불리한 증거가 나오게 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 전에 막는 것이 제 일입니다.”
송태원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런 그를 시시오가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듣던 대로 정말 특이하군. S급 헌터가 평범한 공무원처럼 굴다니.”
“헌터이기 이전에 공무원입니다.”
“지루한 감시관 노릇 대신 같이 날뛰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건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럴 리가! 고양이를 뒤집어써 봐야 속은 호랑이지.”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는 S급 헌터는 몇 없습니다.”
“음?”
송태원이 고개를 꺾어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공항이 포화상태가 되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까마득한 허공에서 무언가가 뚝 떨어졌다. 그리고.
콰앙!
두터운 바닥이 갈라지고 파편이 높게 튀어 오른다. 송태원은 차분하게 메모했다.
“프랑스의, 에리크 디케르. 공항 수리비용을 청구하십시오.”
“아는 사람인가?”
“직접 만난 적은 없습니다. 노아 루히르 헌터의 소속 문제로 한국 헌터 협회에 항의해 온 적 있는 투르셴 길드 길드장입니다. 한유진 소장과 해연 길드에 시비를 걸어올 가능성이 높기에 주의대상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기억해 둬야겠군.”
시시오의 말에 송태원이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한유진에게 잘해 주려 드는 아마테라스 길드장의 태도는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당한 것도 많건만 화염 뿔사자를 키워 주길 기대해서, 라기에는 너무 적극적이었다. 밝혀지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이 몸이 있는 한 한유진 소장에게는 손끝 하나 대지 못할 터이니!”
시시오가 호탕하게 웃으며 대기 중인 차로 향하는 프랑스 헌터를 과장되게 노려보았다.
‘…단순한 성격의 영향도 큰 듯하지만.’
뒤끝은 확실히 없어 보였다. S급 헌터들 중에는 저런 대책 없이 털털한 성격도 있긴 있었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을 만큼의 힘과 능력을 지녔기에, 기분이 내키면 큰 손해도 금방 잊곤 했다.
어쨌든 한유진에게 호의적이어서 나쁠 건 없었다. 송태원은 방금 착륙한 비행기에서 내려서는 헌터들을 체크하며 입을 열었다.
“한유진 씨께서 아마테라스 길드장님에게 첫날에는 오지 말라고 전해 달라 하였습니다.”
“어째서!”
송태원은 대답 대신 인이어와 거기에 연결된 마이크를 빼내 시시오에게 건네주었다.
“한유진 소장!”
[하루만요, 하루만. 착하죠. 뒤늦게 올지도 모르는 불청객을 섬 밖에서 맞이해 줄 든든한 S급 헌터가 필요해서 그래요. 시시오 씨는 정말 믿음직스러우니까요!]“그, 그렇다면야.”
[고마워라! 역시 시시오 씨가 최고예요!]“하하하하! 그야 당연하지!”
시시오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통신기를 송태원에게 돌려주었다. 송태원은 쓰릴 리 없는 속이 따끔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인이어를 다시 귀에 꽂았다. 한유진의 테두리 안에 또 한 명이 늘어났다.
그때 익숙한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섰다. 너른 도로를 내달리며 속도를 줄인 전용기가 서서히 멈춰 선다. 계단이 닿기도 전에 비행기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가볍게 아래로 뛰어내렸다. 금빛 머리카락이 꼬리처럼 힘차게 흔들리며 강소영이 두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켰다.
“일주일쯤 갇혀 있었던 것 같아! 송 실장님! 안녕하세요!”
강소영이 폴짝폴짝 송태원에게로 뛰어갔다. 그리곤 목소리를 낮춰 속닥거린다.
“사람 있을 곳이 아니었다니까요. 고작해야 두 시간쯤이었는데 공기가 아주 갑갑~ 해서. 아마테라스 길드장님도 안녕하세요~ 머리 스타일 멋지시네요!”
그사이 계단이 문 앞에 멈추고 나머지 승객들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눈에 익은 흑적색 코트에 송태원이 눈썹이 미미하게 움찔거렸다. 세성 길드장이 도담 소장에게 실레키아의 날개를 선물해 주었다, 라는 소문은 그간 알음알음 퍼져 있었다. 그런데 저렇게 실레키아를 대놓고 걸치고 나오는 행동은 떠도는 말이 헛소리라고 직접 못을 박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양측이 긴밀한 사이라는 소문에 곁붙은 평가까지 한풀 꺾이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정보를 뿌려 놓고 그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 정보와 관련된 이야기들 또한 자연히 신뢰성을 잃게 되기 마련이니.
계단을 내려오는 세성 길드장의 뒤를 이어 에블린과 클로이 또한 비행기 밖으로 나왔다. 성현제의 시선이 송태원과 그 옆의 시시오에게 차례로 가 닿았다. 그것을 본 에블린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먼저 가 있도록 하겠습니다.”
엮이기 싫다는 듯 곧장 몸을 돌린다. 클로이 또한 그녀의 뒤를 따랐다. 강소영이 눈치를 보며 슬쩍 옆으로 빠졌다.
“음, 저도 리에트 언니랑 만나기로 해서, 가볼게요.”
강소영이 얼른 자리를 떠나고 성현제가 송태원의 앞으로 다가가며 어깨를 으쓱했다.
“다들 매정하다니까.”
“세성 길드장님께서도 섬으로…….”
송태원이 혀를 깨문 듯한 표정으로 말을 하다 말고 멈추었다. 섬으로 향한 손님들 중에는 그가 아는 얼굴도 몇 있었다. 그리고 성현제가 아는 얼굴은 더욱더 많을 것이었다.
“괜찮으시다면 잠시 기다렸다 동행해 주시겠습니까.”
송태원의 말에 금안이 살짝 휘어졌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부드럽게 미소 띤 얼굴이다. 하지만 송태원은 성현제의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강소영이 오는 내내 갑갑했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잖아도 한창 손님들 사이의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을 섬이다. 성현제를 혼자 보낸다는 것은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내던지는 것과 다름없었다.
“내가 송태원 실장님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송태원은 많았습니다만, 라는 말을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그때 시시오가 불쑥 끼어들었다.
“한유진 소장에게 시들해졌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세성 길드장님.”
“새삼스러운 질문이군요.”
“아니, 우리 한 소장님 입장에서야 반가운 일이 아닌가 하고. 아무튼 깔끔하게 잘 끝난 모양이니 다행입니다!”
걱정이 좀 되었었다며 시시오가 해맑게 웃었다. 송태원이 한숨을 삼키며 시시오에게 말했다.
“여기는 계속해서 제가 맡겠으니 아마테라스 길드장님께서는 헬기장 쪽을 살펴 주십시오. 지금쯤이면 순서 때문에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른 헌터와의 동승을 거부하는 헌터도 있을 수 있고요.”
“그럴 수도 있겠군.”
시시오가 알겠다며 큰 걸음으로 자리를 떠나갔다. 방금 도착한 헌터가 이쪽을, 정확히는 성현제를 살피는 것을 주시하며 송태원이 입을 열었다.
“기다려 주시겠다면 실내에 들어가 계셨으면 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 아닌가. 이렇게 맞이해 주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한데.”
“세성 길드장님이 반갑지 않을 사람들도 있습니다.”
“섭섭한 소리로군. 이래 봬도 건실하게 살아왔건만.”
송태원은 미간을 조금 좁히며 인벤토리에서 참석자 명단을 꺼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을 확인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성현제가 먼저 다른 헌터를 건드리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가만히 세워 놓기만 해도 시비가 걸려올 환경이지만, 그건 자신이 먼저 막으면 되었다.
“참석하지 않는다는 선택도 있지 않았습니까. 기승수에 대한 정보는 먼저 전해 받을 수 있도록 계약하셨다 들었습니다.”
“한 소장님께서 손수 초대장을 건네주셨건만 어떻게 거절을 할까.”
“지금은 무시하기로 하신 것 아닙니까.”
“목덜미는 확인했나.”
성현제의 말에 송태원의 얼굴이 더욱 딱딱하게 굳어졌다. 내내 신경이 쓰였었다. 한유진은 단순한 초대 표식이라고 말하였지만 감이 좋질 않았다.
“한유진 군의 마력으로 덮어씌워 놓았음에도 거슬리더군.”
“또 위험한 겁니까.”
“언제나 그랬듯이. 자기 자신은 챙기지 않았겠지.”
곤란하다니까. 성현제의 눈이 가느다란 미소를 머금었다.
몇 차례 비행기가 착륙했다가 다시 이륙하여 자리를 비우고, 또다시 다른 비행기가 빈자리에 내려앉길 반복했다. 공항의 소음이 연신 두 사람의 귀를 웅웅 울려대었다. 성현제에게 시선을 두는 헌터들이 몇 있었지만 다행히 다가오진 않고 떠나갔다.
그리고 또 한 대, 비행기가 내려앉았다. 이번에도 계단이 필요 없이 헌터가 훌쩍 뛰어내렸다. 휴가지에서 막 돌아오기라도 한 듯 화려한 하와이안 셔츠와 반바지에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었다. 계절감 없는 비치 샌들이 따닥, 바닥을 두들긴다.
“세성 길드장님!”
그 헌터, 황림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환하게 웃었다. 동시에 송태원의 눈빛이 서늘하게 식었다.
“오랜만입니다. 송태원 실장님도. 아, 우린 그때 마주치지 않았던가요. 나는 멀리서 봤는데.”
황림이 서글서글한 태도로 두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황림 헌터는 명단에 없습니다.”
송태원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셔츠에 선글라스를 끼워 걸며 황림이 입꼬리를 올렸다.
“미국 이름으로 초대장을 받았지요. 리처드 황이라고, 알아볼 줄 알았는데.”
“A급 헌터 말입니까.”
“해외에선 S급이라고 하면 귀찮거든. 명의 주인은 A급 맞습니다.”
황림이 눈꼬리를 접어 미소하며 인벤토리에서 담배 케이스를 꺼내었다.
“술과 담배는 한 몸 아니겠습니까. 장사하러 온 거니 너무 날 세우지 마십시오.”
이런 좋은 홍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않겠느냐며 황림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번만큼은 S급 헌터가 아닌 평범한 장사치입니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해서 왔다며 두 팔을 펼쳐 보인다. 그리곤 빙그르, 몸을 반 바퀴 돌려 성현제를 마주했다.
“또 못된 버릇 나오셨다 시던데.”
“타인의 일을 떠들기 좋아하는 종자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성현제가 지루하다는 듯 눈꼬리를 늘어뜨렸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황림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보나마나 헛소문이겠지만요.”
“자네가 내 앞에 이렇게나 멀쩡히 서 있지 않나.”
헛소문이 아니라면 무사하지 못했을 거라는 말에 황림이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쉽게 질릴 만한 상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운이도 너무 그리워서 시름시름 앓고 있더라고요. 성치도 못한 몸으로 같이 오겠다 하는 걸 말리느라 혼났습니다.”
“황림 헌터의 방문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지 싶은데.”
“저는 귀여워만 해주었는데 말입니다. 그보다도 세성 길드장님.”
담배 케이스가 툭, 성현제의 넥타이를 건드렸다.
“한 대 피우시겠습니까.”
“금연 중이라네.”
“저런. 움직이는 광고판님께서 거절하시다니. 아쉽기도 해라.”
황림의 손끝에 가볍게 잡혀 있던 금속 케이스가 마술처럼 사라졌다. 손가락이 딱, 맞부딪치며 소리를 낸다.
“너무 참으면 병납니다.”
“그 반대가 아니던가.”
“원래 내 눈에 귀하면 남들 눈에도 귀한 법이지요. 특히나 세성 길드장님의 안목에 들어갈 정도면, 순식간에 채어 갈 겁니다.”
황림이 뒤로 크게 한 걸음 물러났다.
“저야 구경꾼의 입장이지만 평화를 사랑하기도 해서 말이지요. 주인이 확실히 있는 편이 여러 사람 편하지 않겠습니까.”
물건이나 팔러 가보겠다며 황림이 자리를 떠나갔다. 짧은 침묵이 내려앉고 송태원이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미국 국적 또한 소유하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한유진 사육소장의 납치범은 중국 헌터가 아닙니다.”
“알고 있네만.”
“섣부르게 죽이지 마십시오.”
송태원의 충고에 성현제가 의아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 둬야 하지 않을까. 리처드 황이라 이름 붙은 잿더미가 섬에 쌓이는 것을 막으려면.”
“…….”
“나는 그다지 기분 상하진 않았어.”
송태원은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꺼두었던 마이크를 켰다.
“섬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프랑스 헌터 하나가 시비 걸어온 모양인데요.]한유진이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선 안 보이는데, 한 명쯤이야 별문제 없이 처리하지 않을까요. 아, 연기 피어오른다. 폭음도 들리고요.]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하지만 송태원은 새어 나오는 한숨을 막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