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65
563화 시상식 (1)
첨벙! 물이 높게 튀었다.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물에 발도 바닥에 닿질 않아 허우적거리는 나를 동생이 얼른 붙잡아 주었다.
“괜찮아?”
“어, 어. 피스야, 괜찮아?”
– 끄우웅.
내가 무사한 걸 확인한 피스가 불만스럽게 끄웅거리며 수면 위로 날아올랐다. 부르르 몸을 터는 피스 너머로 다른 헌터들의 모습이 보였다. 여긴… 수영장? 어쩐지 물이 따뜻하더라. 너른 풀에 썬 배드, 뷔페식 음식들과 칵테일 바 등이 자리한 호화 리조트 같았다. 정장 유니폼 차림의 직원들이 오가며 헌터들을 안내해 주고 있었다.
“맡겨 두신 개인 소지품은 이쪽에서 찾아 가시면 됩니다.”
“개인 방송은 임시 종료되었습니다. 종합 채널은 방송 중이며 촬영 옵션은 개인 방송과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개별 휴게실 및 욕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탈의 시 자동 모자이크 처리됩니다만 가급적 영상과 음성을 차단해 주세요. 참가자의 부주의로 인한 문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야외 뷔페 외에 건물 1층에 레스토랑과 카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문현아 헌터께서 주류 협찬을 해주셨습니다.”
“휴식시간 중 전투 시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시간 후 게임 결과 발표 및 시상이 있겠습니다.”
정말로 무슨 버라이어티 경쟁류 예능 한 게임 끝낸 후 같았다. 유현이와 함께 수영장 밖으로 올라갔다. 야외인데도 여기저기 난방처리가 되어 있는지 춥진 않았다. 바닥도 따뜻했다.
우리처럼 수영장에 빠진 사람은 몇 없었지만 대부분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있었다. 헌터들을 흠뻑 적혀 놓은 범인이 송태원 앞에서 까르르 웃었다. 무법자는 승리 조건을 달성하지 못했음에도 한껏 흥에 겨운 표정이었다.
“아저씨!”
내 앞으로 훌쩍 날아온 예림이가 내 손을 감싸 쥐고는 눈을 반짝였다.
“역시 거대 고양이 변신 스킬 맞았죠? 제 말 맞죠?”
“…고양이 아니라니까.”
“또 변해 봐요!”
예림이가 제발요, 평생의 소원인데, 딱 한 번만! 하며 매달려왔다. 여긴 너무 좁아서 안 된다며 간신히 거절했지만 나를 바라봐오는 눈빛이 심상찮았다. …작게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절대 들키지 말아야지. 죽을 때까지 비밀이다.
“한유진 씨, 그 스킬은─”
“스탯은 그대로 F예요, F!”
송 실장님의 피곤 어린 저음을 듣자마자 얼른 말했다.
“덕분에 오토바이 밟고 아파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제 앞발, 아니 손바닥 까졌어요. 보세요.”
“구급상자를 가져다주십시오.”
송태원이 근처의 직원에게 말했다. 그리곤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소지 무기 리스트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에에이, 원래 헌터 인벤토리는 나라도 간섭 못 하는 건데요!”
“던전산 외의 무기 리스트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꺼낸 적 없어요! 안 꺼내면 국경 넘은 걸로 취급 안 하는데.”
구급상자가 도착했다. 포션까지 들어 있는 고급품이었지만 내가 쓸 수 있는 건 평범한 연고와 반창고뿐이었다. 유현이가 내 손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발은?”
“발은 괜찮아. 송 실장님, 한국 가면요.”
“앉아 봐, 형.”
“제가 들까요? 유진 씨, 가만히 있으세요.”
어느새 다가온 노아도 유현이를 거들었다.
“아니 발은 진짜 괜찮은데! 한국 가서 제가 싹 정리해서 드립니다! 약속할게요.”
다 털어 내놓고 일본 한번 더 가면 그만이니까. 선물 받은 것도 있지만 돈 주고 사기도 했다고. 훔친 것도 아니고 정식으로 받은 건데! 시시오도 언제든지 부탁하랬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시시오 씨.
“발에도 상처가 났잖아.”
“그냥 살짝 찔린 거야. 씻고 나서 약 바를게. 딱 한 번만 믿어 주세요, 송 실장님. 던전 밖에선 절대 안 꺼낸다니까요? 아이고, 송 실장님도 쫄딱 젖으셨네. 얼른 들어가서 씻읍시다. 방송 옵션 끄는 거 잊지 마시고요~”
다른 헌터들도 소지품을 챙기곤 하나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후다닥 씻고 옷도 갈아입고 나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실내 식당 쪽으로 간 헌터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야외를 선택했다.
‘분위기가 좀 다르긴 하네.’
이번 게임이 시작되기 전과는 확실히 다른 점이 보였다. 예전에는 다들 따로 놀았었다. 원래부터 아는 사이가 아니고선 거리감을 둔 채 경계하는 기색이 느껴졌었다. 몇 없는 S급 헌터, 즉 언제 경쟁자가 될지 모르는 관계였으니까. 동족과는 무리생활을 하지 않는 맹수들과 비슷했다.
하지만 지금은 경계하던 분위기가 훨씬 완화되었다. 물론 마지막까지 남아 협력한 헌터들에 한해서였고 조기 탈락한 사람들은 그대로였지만. 또 끝까지 남았다 해도 다 변하는 건 아니지만, 상당수가 바뀐 건 확실했다.
‘한번 같이 싸워 본다는 게 꽤 크긴 하지.’
델로우즈만으로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을 텐데 예림이와 송 실장님의 역할이 컸다. 함께 물벼락 맞아가며 뒹굴다 보면 전우애라는 게 손톱 끝만큼이라도 생기기 마련이지.
“거기 파인애플 구운 거 맛있어.”
줄줄이 늘어져 있는 테이블 중 바비큐를 바로바로 해주는 곳으로 다가가는데 누군가 말해왔다. 별거 아닌 일상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특별했다. 상급 헌터들 사이에 끼어 있는 F급, 유별나게 튀는 호기심의 대상이 아닌 그냥 같은 참가자를 대하는 말투.
“그래요?”
먹어 봐야겠다며 가볍게 대답했다. 그리고 정말로 맛있었다. 유현이와 노아 씨에게도 먹어 보라며 건네주었다.
‘이게 바뀌긴 하네.’
변하더라도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이제 시작이긴 하겠지만. 고개를 돌리자 송태원이 특대형 빈백에 반쯤 파묻혀 있는 것이 보였다. 휴식시간 정도는 편히 쉬셔도 될 텐데 굳이 헌터들 많은 곳으로 나오시고. 문현아, 강소영, 리에트와 함께 간 예림이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들과 처음 만났을 때가 새삼 떠올랐다.
‘유현이도 처음엔 날 못 미더워했었지.’
1년도 채 안 지났는데 십 년도 더 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제일 까다로웠고 지금도 완전히 안심할 수 있을진 모르는 분께선.
‘마침 나오시네.’
가벼운 셔츠 차림에 말리긴 했지만 조금 흐트러진 머리칼에, 웬 비치 슬리퍼? 나도 슬리퍼 끌고 나오긴 했다만. 성현제의 어깨 위에 올라앉아 있던 결이가 나를 향해 앞발을 흔들었다. 둘 다 수고 많았지.
“잠시만.”
유현이와 노아에게 여기 있으라고 하곤 성현제 쪽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결이가 냉큼 내 어깨 위로 올라와 목을 끌어안아왔다. 음성을 끄곤 성현제에게 작게 말했다.
“세성 길드장님과 결이에겐 아무 이득이 없었다는 게 살짝 걸려서요. 특히 결이한테요.”
“구경꾼 노릇도 나쁘지는 않았다네. 특히 어느 도둑분께서 무척이나 친절하셔서.”
성현제가 미소 짓고 나는 쪽팔려졌다. 아니, 그땐 진짜 몰랐거든?
“…천하의 세성 길드장님께서 성적 바닥 치실 줄 꿈에나 알았나요, 뭐. 아니 어쩌다 노예가 된 겁니까? 아직도 이해가 안 가네.”
“걸어갔지. 그저.”
무슨 소리야. 몬스터가 아예 안 나오기라도 했나? 성현제는 그냥 자기 갈 길 갔는데 난데없이 노예로 잡혀가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들렸다. 노예 역이 랜덤으로 주어졌나? 분명 성적순이랬는데. 아무튼.
금화 두 개를 슬쩍 성현제에게 찔러 주었다.
“하나는 결이 몫입니다.”
“한유진 군이 나를 챙겨 줄 이유는 없을 텐데.”
“아 뭐, 도와주긴 했잖아요. 전 개인 우승도 했으니 잔말 말고 넣어 둬요.”
“여전히 친절하기도 하시지.”
“…사실 그 도둑이 내가 아니라, 도둑 중에서도 쌍둥이가 있었는데, 아무튼!”
그나마 내 원래 모습이 아니라서 다행… 방송은 둘 다 원래 모습으로 나갔을 거잖아! 젠장, 영상 삭제 요청하면 들어주려나? 전 세계인의 기억을 지우지 않는 한 망했다며 속으로 투덜거리는데 헌터 몇이 우리 쪽으로 접근해 왔다.
“혹시 그 요정용이 세성 길드장의 기승수입니까?”
“네?”
“도담에서는 F급이라고 발표했지만 평범한 하급 몬스터로는 보이지 않고 직접 데리고 다니기도 하니까요.”
“무엇보다 비행 가능한 용종이잖습니까.”
결이가 불쾌하다는 듯 꼬리를 탁탁 쳤다. 하지만 보통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성현제가 F급 요정용을 데리고 파티에 참가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기승수거니 하겠지. 음성을 다시 켜고 헌터들을 향해 비즈니스용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직은 밝힐 수 없습니다만, 세성 길드장님과 관계가 있는 몬스터는 맞습니다.”
– 끄우으.
결이가 작게 끙끙거렸다. 결아, 성현제가 눈곱만큼 보태 준 건 사실이잖니. 물론 널 보낼 생각은 조금도 없단다. 성현제도 온화한 미소를 머금었다.
“한 소장님과 내 아이가 맞다네.”
“도담 기승수 사육소는 새끼 몬스터를 친자식처럼 정성과 사랑을 담아 키운답니다~”
당황하지 않고 뻔뻔하게 말했다. 저런 소리 하루 이틀 듣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한 소장님과 나 사이에도 아이가 있다고.”
언제 나왔는지 문현아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 잠깐만요! 큰 걸음으로 다가온 문현아가 휴대폰의 소록이 사진을 보이며 나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우리 애 키우느라 고생이 많아, 한 소장님.”
“예… 에.”
“저희 코메트도요! 그리고 앞으로도요!”
강소영이 재빠르게 끼어들며 내 손을 맞잡았다.
“한 소장님, 전 아이는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우리 힘내서 축구팀 만들어요!”
“그…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형, 우리 애도.”
유현이가 피스를 들고 나타났다. 피스가 나직이 으르렁거렸지만 발버둥 치지는 않았다. 착하기도 하지.
“피스를 키워줘서 정말 고마워.”
“어… 응. 앞으로도 사이좋게 잘 지내렴…….”
“저는, 기승수가 필요 없지만…….”
노아가 아쉬워하고.
“허니와 나 사이엔 벨라레와 노아가 있지!”
리에트가 헛소리를 했다. 벨라레는 그렇다 쳐도 노아 씨는 왜 들어가는 건데.
“아저씨!”
그리고 예림이까지 소리쳤다. 잠깐만, 예림아! 예림이를 향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쳐도 너는 안 되지! 기승수 이야기라고 해도, 그래도 괜한 소리 하지 말자꾸나! 다행히 예림이는 아쉬워하면서 대신 엄한 송 실장님을 가리켜 보였다.
“아저씨와 송 실장님 사이에 송이도 있죠! 송 실장님, 사진 보여 주세요, 사진! 휴대폰에 있잖아요!”
송태원이 침묵했다. 예림이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송 실장님 휴대폰 털었니?
헌터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 방송도 나가고 있겠지, 하하. 침착하자, 침착하게.
“도담의 기승수들은 모두 사랑받고 있답니다. 이렇게 아껴 주지 않을 헌터에게는 의뢰를 받지도 않아요. 의뢰를 받는 조건도 무척 까다롭습니다. 단순히 성장시키는 것만이 아닙니다. 기승수가,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몬스터가 헌터계에, 더 나아가 우리 세상에 자연스럽게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 자식처럼! 기승수를 데리고 가는 헌터들도 자식처럼 아껴 주는 조건! 이 정도면 PPL 같은 걸로 보이지 않았을까.
“언젠가 저도 한 소장님께 아이를 맡기고 싶군요.”
“아하하, 네.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뭐냐, 나쁠 건 없잖아. 애들 잘 대해 주면 좋은 거지 뭐. 아무튼 세성 길드장님과는 기승수 계약이 오가는 사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전에도 코메트와 바레 님이 있었고. 세성과는 벌써 셋째구만. 제일 많은 거야 해연이지만.
“우리도 더 맡기고 싶은데.”
문현아가 조금 아쉬워하며 말했다. 하지만 말만 그럴 뿐 길드 독립 전에는 상급 새끼 몬스터를 얻는다 해도 숨기려 들 듯했다. 독립할 때 소록이도 문제가 될 수도 있댔으니.
식사를 하고 빈백에 파묻혀 있는데 또 다른 헌터들이 내게 다가왔다. 따로 이야기할 수 있겠냐는 말에 순순히 일어났다. 방송 음성도 꺼주었다.
“한유진 헌터의 변신이 스킬이라고 하셨지요.”
“예. 그리 쓸모 있는 건 아닙니다. 말씀드렸듯이 스탯은 그대로 F급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스킬이 있다는 것은.”
“그런 몬스터가 나올 수도 있다는 거겠죠.”
예리한 지적이었다. 그래, 이런 의문을 가진 헌터들도 물론 있겠지. 좀 더 진지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확실하게는 모릅니다. 하지만 아니라고 대답하진 않겠습니다.”
헌터들이 침묵했다. 단순하게 던전을 공략하고 각성자의 힘에 취해 즐기는 헌터들도 있겠지만, 던전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헌터들도 있다. 그전까지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으니까.
“그러니까.”
헌터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우리도 전혀 눈치가 없는 건 아니야. 한국의 헌터들이, 한 소장님이 무언가 더 알고 있다고 생각해. 기승수 사육소에 화이트 연구소도 그렇고, 지금 저 채터박스의 파티 역시.”
“…한유진 소장님과 채터박스가 따로 친분이 있는 것도 확실하지 않습니까.”
작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저도 전부 아는 것도 아니며, 아는 바를 전부 말씀드릴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던전이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맞습니다.”
언젠가는 이들도 알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끝까지 모른 채 평화롭게 세상이 지켜질 수도 있다. 무어라 말할 수 없이 복잡한 눈빛들이 오갔다. 내가 뭐라고 말해 줄 수 있을까.
“그럼 한 가지만.”
헌터가 다시 말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걸까.”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물음이었다. 망설임이 밀려들었지만, 억누르고 곧장 대답했다.
“네, 당연히.”
게임에서처럼 다들 힘을 모아 지키고자 한다면. 그렇다면 던전은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세계의 헌터들은 약하지 않으니까. 회귀 전에도 어설프게나마 협력하며 지켜내고 있었다.
다만 그 너머의 일은.
잠시 뒤, 직원들이 시상이 시작된다며 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