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98
596화 파티 끝 (5)
-이 이상은, 아빠 몸이 감당하지 못할 거야. 지금은 안개의 힘도 사라져서…….
결이가 채터박스를 힐끔거리며 작게 속삭였다. 내가 S급의 능력을 끌어다 쓰는 건 부담이 크다. 이미 무해의 왕의 능력을 실컷 휘둘렀기에 더더욱 한계에 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F급은 되지?”
-응?
금색 눈이 깜박거렸다.
“회귀 전의 아빠 말이야.”
-어, 으응. 중급까지는 가능해!
“어쩌다 보니 중급 헌터 능력은 익숙해질 일이 없어서.”
C, B급은 물론이고 A급도 거의 없다. 성한 씨와 소영 씨에게나 선생님 스킬 한 번 썼었지. 그 정도 경험으로는 몸이 버텨 준다 해도 다루긴 힘들지만.
“하지만 나도, 내 능력도 괜찮아.”
5년 동안 열심히 살았다. F급이라도 헌터였고, 끝까지 살아남았다. 각성한 지 고작 1년도 안 되는 몸뚱이보다야 나았지. 비록 다리는 다쳤지만 레벨도, 스탯도 더 높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게 있어 가장 익숙한 능력치였다. 한유진이니까.
“…잠시간 내 힘을 억눌렀다 해도, 그뿐입니다.”
채터박스가 입매를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본질은 그대로이니 당신의 힘으로 나를 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건 해 봐야 알지.”
쓸데없이 말이 많으시네. 회귀 전의 내 힘을 떠올렸다. 이 반년간 그때의 나를 외면하며 살아왔지만, 감각은 선명하게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손아귀의 힘이 강해졌다. 팔다리도 확실하게 더 튼튼해졌다.
내가 늘 빌려 오던 S급들의 힘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잘나신 분께서도 바닥 좀 굴러 봐라!”
땅을 박찼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나를 채터박스가 짜증 섞인 눈으로 바라봤다. 가면을 벗어도 내내 가면 쓴 듯이 굴더니 이제 좀 봐줄 만하네! 놈이 스태프를 꺼내들었다. 덤벼드는 나를 가볍게 막아 내려는 듯이 스태프를 세워 든다. 하지만 검과 스태프가 부딪치기 직전.
지이익—
발바닥에 힘을 주며 멈춰 섰다. 바닥에 끌리던 발끝이 멈춰서고, 동시에 검을 휘두르는 대신 폭탄을 터뜨렸다.
쾅!
“내가 미쳤다고 대놓고 맞서겠냐!”
힘의 차이가 얼만데. 군림자의 검이 나를 허락했다고 해도, 그걸 휘두르는 건 S급 한유현이 아닌 F급 한유진이다. 동생이 남겨 준 힘도 소모되어 사라졌으니 유현이가 사용할 때와는 비교도 못하게 약할 수밖에 없었다.
재차 콰앙, 폭음이 일었다. 상급 헌터의 육신일 채터박스는 폭발에 휘말렸지만 조금 밀려나는 것으로 끝이었다. 어차피 피해를 입으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대신 연기가 자욱하게 시야를 가린 사이, 은신 스킬을 썼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물병과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에블린 씨가 좋은 걸 선물해 주셨지.’
물에 닿으면 부화하는 곤충의 알. 물병을 열고 그 안에 알을 쏟아 넣은 다음 내던졌다. 이내 파지직, 물병이 부서지며 조그만 날벌레들이 쏟아져 나왔다. 몬스터로 분류하기 힘들 정도로 약한 던전 생물. 그것들 중 몇에게 선생님 스킬을 썼다.
날벌레의 감각이 내게 전해져 왔다. 열과 동물의 체취를 감지하는 능력이. 연기 사이로 채터박스의 위치가 느껴졌다. 그 형태와 움직임까지 뚜렷하게 보인다. 그대로 조용히 접근하며—
휘익-!
“윽!”
돌연 스태프가 날아들었다. 뭐야, 분명 날 보지 못할 텐… 아!
“해파리!”
내 주위를 떠다니던 무해의 왕이 왜? 하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쟤를 깜박했어!
“야! 떨어, 앗!”
연기를 휘감은 채 내 앞으로 훅, 다가온 채터박스가 스태프 끝으로 내 가슴을 찔렀다. 은혜 덕분에 아프진 않았지만 몸이 뒤로 강하게 밀쳐졌다. 비틀거리는 나를 향해 와이어가 날아들었다. 내 모습 자체는 여전히 보이지 않을 테니 일단 잡아 은혜를 빼앗을 생각인 듯했다.
“저쪽에 떨어져서 구경해!”
루가 폐야에게 소리치며 급히 바닥에 엎어졌다. 가슴이 땅에 닿을 듯 확, 몸을 낮추면서 손으로 바닥을 짚어 완전히 쓰러지지 않도록 버텼다. 와이어가 내 위쪽의 공기를 어지럽게 가른다. 공격을 피하자마자 다시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뒤로 물러서며 총을 겨누어 쏘았다.
탕!
채터박스의 어깨를 마탄이 스친다. 탄이 날아온 방향으로 내 위치를 짐작한 채터박스가 다시금 무섭게 달려들었다.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에 강한 힘. 그렇지만.
“너 말이야.”
은신을 풀었다. 카가각, 군림자의 검이 내 앞쪽으로 둥글게 휘어진다. 텅! 스태프와 검날이 부딪치고, 힘을 버티지 못해 지이익- 내 발이 바닥을 긁었다. 팔이 저리다 못해 검을 놓쳤다. 콰득, 검이 땅에 박히고 채터박스의 발길질이 배를 가격했다. 뒤로 날아가면서도 방아쇠를 당겼다. 아슬아슬하게 넘어지지 않고 착지하며 마탄을 피하는 채터박스를 바라보았다.
절로 입술 끝이 올라갔다.
“아무것도 없구나.”
“…….”
“그저 그 육체만 움직이고 있을 뿐, 아무것도 없어.”
기 오스 사누스도, 이름 모를 헌터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 꼴 좀 보라지.
“미로의 마법사라며. 그런데 고작해야 스태프나 휘두르고. 그 헌터의 스킬은 또 어떻고! 채터박스, 네겐 과거가 없어.”
마법사는 스스로 버렸다. 육신의 원래 주인 또한 사라졌다. 새롭게 태어난 파티 주최자마저 잃은 지금.
“그러네. 저건 아무것도 아니야.”
무해의 왕이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내 눈앞에 서 있는 자는 누구도 아니었다.
“…잠시일 뿐입니다.”
탓! 채터박스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스킬도 쓰지 못한 채 맨몸뚱이로. 연막탄을 터뜨리며 다시 은신 스킬을 사용했다. 벌레들의 감각이 연기를 꿰뚫고, 멈칫하는 채터박스에게 바싹 붙으며 우리 둘 사이에 또다시 쾅! 폭탄이 터졌다. 드드득, 채터박스의 구두가 바닥을 마구 긁는다. 강한 압력에 밀려 가는 놈을 향해 마탄을 날려 주며 바닥에 박힌 군림자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는 한유진은, 과거를 버리지 않았습니까?”
자신과 내가 뭐가 다르냐는 듯, 채터박스의 날 세운 눈이 보이지 않는 나를 노려보았다.
“그랬었지.”
회귀라는 게 그런 것이었다. 쌓아 온 나를 버리는 일. 결국 버려지지 않고 내게 그대로 쌓여 있었다 해도 회귀를 결정하는 순간의 나는 분명 5년간의 나를 버렸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지금도 나를 완전히 받아들인 건 아니야.”
목소리를 듣고 달려드는 채터박스를 바라보며 나무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나는 지키지 못했고, 잃어버리고 말았으니까.”
탕! 나무 밑동이 파헤쳐지고 줄기가 우지직 쓰러진다. 연속으로 총을 쏘며 나무줄기 위로 뛰어 올랐다. 채터박스의 스태프가 덮쳐드는 가지를 단숨에 잘라 낸다. 쿵, 쿠웅! 커다란 나무들이 연속으로 쓰러지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스태프가 정면으로 들이닥치는 나무를 신경질적으로 박살 낸다. 하지만 멀쩡하게 넘어진 나무들이 훨씬 많았다. 채터박스의 사방으로, 장작처럼 쌓인 그곳을 향해 명우가 준 함정 아이템을 던졌다.
파앙!
끈적한 거미줄 같은 것이 그물처럼 퍼진다. 채터박스가 피하려 했으나 쌓인 나무들이 방해되었다. 나무를 부수는 것쯤이야 쉬웠지만 그러느라 멈칫하는 순간, 함정이 그를 덮쳤다. 공간이동은커녕 순간이동도, 비행도 할 수 없는 초라한 전직 초월자가 거미줄에 휘감겨 인상을 찌푸린다.
“그러니 여전히.”
싫을 수밖에 없었다. 내게 매달려 있는 결이가 신경 쓰여 말을 삼키곤 채터박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득, 아슬아슬하게 몸을 비튼 채터박스의 팔에 검날이 박혔다. 하지만 팔을 아예 잘라 내기에는 내 힘이 모자랐다.
“진짜 S급인가? 더럽게 튼튼하네!”
“이……!”
채터박스가 제 팔을 한껏 당겼다. 거미줄에 엮인 나무들이 들썩거린다. 어휴, 힘도 좋네. 재빨리 물러나며 팔의 상처를 향해 정확하게 총을 쏘았다.
“큭!”
피가 튀었다. 더욱 깊이 상처가 파헤쳐진다. 드드드득, 십여 그루의 굵은 나무들이 바닥에 끌리고 거미줄이 팽팽히 당겨졌다. 얼마 못 버티겠구만. 채터박스가 함정을 끊어 내는 데 온 힘을 쏟는 틈을 타 다시 접근하며 상처 가까이에서 독환을 터뜨렸다.
“그 몸뚱이, 독저항 스킬은 있나? 아, 있어도 못 쓰지? 마력 패턴이 달라서.”
“한유진!”
“그래, 한유진이다! 누구 씨와는 다르게 나는 여전히 나지!”
자기 자신이 싫어도, 좋아도, 몸서리치게 미워도. 그래도 지금의 나는 내가 만들어 냈다.
“크으윽!”
뚜두둑, 나무가 크게 들썩이고 채터박스의 몸을 휘감은 거미줄이 하나씩 끊어져 나갔다. 사납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놈이 스태프를 휘둘렀다. 파직! 우지끈! 쌓인 나무가 산산조각 나며 파편이 튀어 올랐다.
“너는 절대 S급과, 동생과 나란히 서지 못할 거다!”
“열받으셨나 봐, 말도 놓았네.”
텅! 채터박스가 나무를 걷어차 내 쪽으로 날렸다. 가볍게 뛰어 피하곤 연이어 이죽거렸다.
“네 말투 솔직히 재수 없었어!”
“지금 그대로! 끝까지 바닥을 기겠지!”
“나무 위에 있는데?”
채터박스가 내 목소리가 들려 온 나무를 향해 고개를 홱 젖혔다. 그 직후.
탕!
“컥!”
마력을 듬뿍 충전한 마탄이 채터박스의 등을 두들겼다. 휘청거리는 놈의 다리를 힘껏 걷어차 주었다.
“아야!”
내 발도 아팠지만 채터박스는 아예 앞으로 엎어졌다. 놈이 바닥에 처박히는 꼴을 보니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이야, 바닥 잘~ 긴다. F급보다 더 잘 기네!”
이번에도 나무 위에서 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성현제에게 썼던 무전기였다. 구경하던 무해의 왕이 짝짝짝 박수를 쳤다. 결이가 웃지 않으려고 앞발을 들어 자기 입을 꼭 막았다.
“내가 많이 모자란 건 사실이긴 하지. 근데, 그게 왜.”
앞으로도 내가 S급이 될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F급도 성장이 가능해진다고 해도 그 전에 내 수명이 끝나고 말겠지. 잘해야 한 중급까지나 될 수 있을까.
“내 팔은 이미 가득해. 난 이미 잔뜩 끌어안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S급에 비해 한유진이 부족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은, 시선은,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약한 건 사실이고, 앞으로도 내 약함은 장애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동생과, 내 주위 사람들과 완벽하게 나란히 서서 등을 맞대는 건… 힘들겠지. 나도 알아.”
채터박스가 몸을 일으켰다. 독이 효과를 나타내는지 안색이 창백했다. 흙투성이에 이를 악 문 얼굴이 제법 사람다웠다. 인간적이고 보기 좋네.
“무시당할 수도 있고 뒤로 밀쳐질 수도 있고.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난 놓을 생각 없어. 등급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거든. 그냥.”
S급이든 F급이든 그 밖의 등급이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내가 지켜 주고 싶은 사람들이고, 계속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지. 그뿐이야.”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 계속 좋아하고 싶어서, 그래서 강해지고 싶었다. S급과 대등해질 정도가 되어야만 가능할 거 같았다. F급보다야 S급이 더 유리한 게 맞기는 하고. 하지만 어쨌든. 내 능력이야 어찌 되었든지.
“그러니 끝까지 포기 안 해.”
설사 또다시 홀로 남게 된다더라도.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끌어안으려 할 테고 끌어안고 있을 것이다.
군림자의 검을 양손으로 고쳐 쥐었다. 마나 각인의 감각은 약해졌지만 흑룡의 마석에 최대한 집중했다. 이미 활성화되어서였을까, 열을 품은 마력이 느껴졌다.
‘딱 한 번만. 너도 저놈이 짜증 나지 않니.’
이어 결이를 힐끔 돌아보았다. 내 어깨에 바싹 붙어 있던 결이가 시선을 눈치채곤 귀를 착 내렸다.
“딱 5초, 아니 3초.”
-우우웅.
불만스러워하면서도 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작게 속삭였다.
-진짜 3초야. 회귀 전 삼촌은 안 돼.
지금 채터박스 상태면 3초로도 충분하다. 내 손으로 두들겨 패 주고 싶었지만 멍조차 들지 않을 테니까. 독기운에 숨을 몰아쉬는 채터박스 앞으로 다가갔다.
“야.”
은신을 품과 동시에 유현이의 능력을 끌어냈다. 채터박스가 피하려 했지만 그보다 내 움직임이 더 빨랐다.
콰득!
새카만 칼날이 채터박스의 가슴을 파고들고 불길이 검을 따라 치솟는다. 핏물마저 전부 증발하여 울컥 토해 내는 한 줌 외엔 피비린내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소용… 없…….”
폐를 건드렸는지 새액대며 채터박스가 힘겹게 입꼬리를 올렸다.
“안, 죽…….”
…진짜 안 죽나.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헐떡거리면서도 채터박스 놈은 버티고 있었다. 젠장, 힘을 약화시켰다고 해도 본체는 훨씬 강해서 S급 힘으로는 죽이지 못하는 건가? 그럼 어떻게—
“크억!”
그때 돌연, 채터박스의 목에서 검 한 자루가 나타났다. 군림자의 검이 우웅- 가볍게 떨렸다. 그에 반응하듯 채터박스의 목을 꿰뚫은 검이 빛을 발했다. 뭐야, 저건.
-아빠!
결이가 내게 피하라는 듯이 소리쳤다. 3초는 지나간 지 오래였다.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이, 건—!”
목에 검을 꽂은 채 채터박스가 비틀거렸다. 빛을 발하던 검이 흐릿하게 사라지고, 채터박스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어? 쟤 좀 이상한데?”
루가 폐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이도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아빠, 저거 약해진 거 같아.
“…그러게.”
콜록거리는 채터박스가, 마치.
“나랑 비슷해진 거 같은데?”
F급처럼 느껴졌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만.
“야, 이젠 죽을 수 있냐?”
군림자의 검을 인벤토리에 넣고 팔을 걷어붙였다. 확인해 보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