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11
609화 고양이를 찾아서 (3)
차 밖으로 나가 망원경을 들고 살펴보았다. 어두워진 하늘 아래 붉은빛이 넘실거린다. 건물과 연기에 가려 공항 안쪽의 상황은 확인하기 힘들었다. 범인은 알 수 없지만 정확히 아스완 국제공항을 노렸으니.
‘한국 헌터들을 방해하려는 것이겠지.’
S급이나 되어서 공항 박살 났다고 비행기에서 못 내리는 건 아니겠지만 집에 갈 때도 비행기 타야 한다고. 탑승은 공항 없이는 힘들지.
‘사미르는 방문을 막을 생각은 없어 보였으니 아닐 테고, 피 안 섞인 사촌들 짓인가?’
결이, 성현제가 없어진 사실을 눈치챘다고 해도 바로 공항부터 부수고 보진 않을 테니까. 거리도 멀고. 혹은.
‘세성 길드장님의 예비 신부님 측이라거나.’
그런데 정말 누굴까. 궁금하네. 아무튼 여기서 고민하는 것보다야.
“결아.”
“안 돼, 싫어.”
결이가 딱 잘라 말했다. 팔짱도 단단히 꼈다.
“아빠가 가면 결이도 따라갈 거야.”
“위험해. 게다가 원래 이집트 하면 고양이잖니. 안전할 거야.”
은혜도 있고. 차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에 결이가 내 팔을 붙잡고 매달렸다.
“결이도 데리고 가!”
“결아, 고양이가 혼자 돌아다니는 게 제일 의심도 안 받고 안전해. 그냥 잠깐 확인만 하고 바로 돌아올 거야.”
“그럼 결이도 고양이로 변하면 되잖아!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 거야!”
고갯짓을 하며 결이가 말했다.
“요정용이니까. 다른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을 거야! 게다가 아빠는 결이랑 이어져 있잖아. 아빠 따라 변할 수 있어.”
“결아.”
결이를 내려다보았다. 금색 눈이 간절하게 나를 마주봐온다.
“그럼, 물론이지.”
다리를 굽혀 시선을 낮추었다.
“할 수 있을 거야, 뭐든지. 설사 지금 당장은 아니라더라도 언젠가는 결이 네가 원하는 대로 변할 수 있을 거야.”
아무렴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지. 종족 특성을 벗어나는 것도 아닌데 변신 스킬 정도야 얻을 수 있지. 그 밖의, 무엇이든.
결이가 울상이던 얼굴을 펴며 웃었다.
“응, 나는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아빠, 도와줘.”
결이도 고양이화한다고 해도 데리고 가는 건 좀 그런데. 요정용이라 피해무효화 능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결이의 하고자 하는 마음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빠가 어떻게 하면 될까?”
“선생님 스킬 쓴 채로, 변해 줘. 결이한테 그 감각을 최대한 전해 주면서. 그리고 결이가 할 수 있다고 믿어 줘.”
“아빠는 언제나 결이를 믿어.”
델로우즈 스킬을 썼다. 눈높이가 순식간에 낮아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 아빠!
분홍색 털의 조그마한 고양이가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들었다. 결아! 그런데 왜 결이는 고양이로 변해도 말할 수 있는 거지. 하긴 요정용일 때도 말했으니까.
[잘했어, 결아!]– 이것 봐, 아빠! 근데 아빠랑 좀 달라.
나와는, 델로우즈와는 다르게 장모종에 가까워 보였다. 신이 난 결이가 폴짝폴짝 뛰다가 날개를 꺼내 펼쳐 포르르 날아올랐다. 고양이로 변해도 요정 같구나, 결아.
– 이제 아빠랑 같이 가도 되지?
[…그.]– 응?
[그래. 하지만 털 색은 바꿔야 해. 그리고 결아, 고양이는 꼬리를 그런 식으로 흔들지 않아요. 강아지보다 느린 편이지. 반가울 때는 이렇게 꼬리를 세우고 몸을 문지르는 거야.]나는 완벽하게 델로우즈, 고양이화되었지만 결이는 겉모습만 바꾼 것이라서인지 평소의 모습에 더해 피스의 행동이 살짝 나타나고 있었다. 결이가 빙글빙글 돌다가 털의 색을 옅게 했다. 희미하게 핑크빛이 돌긴 했지만 하얀색 고양이가 되었다.
이 정도면 안전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걱정되네. 그냥 가지 말까.
– 가자, 아빠! 야! 옹!
꼬리를 바싹 세운 결이가 당당하게 공항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결아!
[그냥 여기 있을까? 그래도 될 거 같은데.]– 아니야, 아빠. 확인해 봐야지. 결이가 혼자 갔다 와도 괜찮아!
[혼자는 절대 안 돼!]잔뜩 으스대며 걸어가는 새끼고양이 뒤를 얼른 따라갔다. 둘 다 피해무효화 있고 여차하면 서랍 써도 되니까. 괜찮긴 하겠지만.
[아빠 옆에 딱 붙어 있어. 알겠지?]– 야아옹!
[그리고 고양이는, 잘 안 우니까.]결아, 사람이 하는 야옹소리 같단다……. 공항까지 거리가 꽤 되었지만 열심히 달려갔다. 그래도 사람이 달리는 속도보다는 빨랐다. 결이도 제법 잘 뛰었다.
[조심해야 해.]공항 안쪽으로 들어서며 재차 말했다. 결이가 걱정 말라는 듯 꼬리를 휙휙 내저었다. 그런 결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석에서 태어난 몬스터니, 요정용이니 해도 애는 애지.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뭐든 같이 하고 싶어 하는 아이.
지금의 내 상황으로는, 환경으로는 평범하게 결이를 돌봐줄 수가 없었다. 언젠가 모든 일이 끝난 후에는…….
쿠르릉!
건물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금이 간 부분은 조심해서 피하며 활주로가 있는 쪽으로 나아갔다.
– 야, 먕!
[이번엔 그럴듯했어!]곳곳에서 불길이 일렁였다. 숨이 막힐세라 검은 연기를 빙 둘러 사람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나갔다. 무너진 콘크리트 벽 틈새에 몸을 숨기며 주위를 살피자.
퍽!
헌터 하나가 걷어차여 나뒹구는 모습이 보였다.
[아빠 뒤에 숨어 있어.]봐서 좋을 것도 없으니. 공항 경비원인 듯한 헌터를 공격한 자는.
‘…저건.’
낯익은 얼굴이었다. 내 귀가 반사적으로 바싹 눕혀졌다.
‘초화운.’
그놈이었다. 가운 같은 이 동네 겉옷을 걸치고 있어 몸이 가려진 채였지만 두 다리 멀쩡하게 버티고 서 있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황림 놈이 다리를 붙여 준 건가. 아니, 그 전에 저놈이 왜 여기서 공항을 박살 내고 있는 거지?
‘황림 그 자식 도와주는 척하더니 사실은 스파이라거나 뭐 그런 거냐.’
아무튼 믿음이 안 가는 놈이야. 초화운이 쓰러진 헌터에게 다가가 무심하게 검을 푹 내리꽂았다. 그의 곁으로 또 다른 헌터 둘이 다가갔다. 같은 편인 듯 대화를 나눴지만 거리가 멀어서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하나는 C급.’
저 정도라면. C급 헌터에게 선생님 스킬을 사용했다. 반발감이 밀려들었지만 등급이 낮아서 잠깐 어지러운 정도로 끝났다. C급 헌터가 눈살을 찌푸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왜 그래?”
“아니, 뭔가 기분이…….”
나만 일방적으로 감각을 전해 받고 공유하진 않으니 거북한 느낌 외에는 들지 않을 것이다. C급 헌터의 눈을 통해 초화운이 더욱 가깝게 보였다. 싸늘한 얼굴은 여전했지만 살은 조금 빠진 듯했다. 그리고.
‘…채터박스?!’
놈으로부터 채터박스의 힘이 느껴졌다. 뭐야, 그놈은 죽었는데? 초화운의 신체 중에서도 오른쪽 다리와 왼쪽 팔, 유현이에 의해 잘려 나갔던 부위에서 채터박스의 마력이 희미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채터박스는 분명 예언자 쪽과 손을 잡았었다. 그럼 초화운이 그쪽에 가담한 것일까. 팔다리를 고쳐 주는 대신?
‘예언자 쪽이야 당연히 나한테 이를 갈고 있을 테고…….’
채터박스 잡고 대충 다 정리되었나 싶었건만 그 잔재가 남아 버린 모양이었다. 불길한 예상에 머리가 다 아파왔다. 설마 채터박스 놈.
‘자기가 부려먹을 S급들은 이미 다 모으고 힘도 나눠준 거였나.’
원래는 파티로 아이템 주고 성장시킬 예정이었을 텐데 계획을 바꾸면서 자신 휘하 S급들은 따로 모아둔 게 아닐까. 그런 식으로 관여해서는 안 된다지만, 채터박스는 어차피 초월자로서의 자신을 버릴 생각이었다. S급 몇을 몰래 강화시키는 페널티쯤은 감당할 만했을 터였다.
‘나를 무해의 왕으로 만들고 휘하 S급들 거느리고, 아주 살판났었겠네.’
그러다 결국 뒈졌지만.
“송태원이 탄 비행기는 다섯 시간 뒤 도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B급 헌터가 초화운에게 말했다.
“카이로는 이곳보다 절차가 더욱 복잡하고 차량이나 헬기로 다시 이동해야 하니 하루 이상 소요되겠지요.”
“나라면 뛰어내린다.”
초화운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예?”
“특히 한유현 그놈이 있다면 곧장 아스완으로 오겠지.”
뭐어, 유현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냥 뛰어내려도 괜찮은 판에 피스와 버들잎도 있으니까. 예림이도 그렇고. 다만 송 실장님은 카이로로 가 수속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높았다.
‘유현이와 예림이, 피스를 떨어뜨리고 카이로로 비행기를 돌리지 않을까.’
유현이가 강하긴 한데, 그래도 조금 불안해졌다. 저 새끼 초월자의 힘을 얻었잖아. 저번에는 유현이에게 가볍게 짓밟혔지만 이번에는 까다로울지도 모른다. 역시 그때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아니, 지금이라도.
“어?”
그때 머리 위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고.
“고양이다.”
무너진 건물 파편이 단숨에 치워지며 커다란 손 두 개가 나와 결이를 붙잡았다. 뭐야!
– 하악!
– 캬옹!
결이와 내가 동시에 바둥거렸지만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우리를 안아 들었다. 그리곤 초화운을 향해 폴짝 뛰었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 그가 초화운에게 반갑게 말했다.
“재활용품, 안녕!”
…아, 아니. 그… 말이 좀 심한 거 같은데. 초화운이 개새끼긴 한데 그래도 사람한테 재활용품이 뭐냐. 초화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 혼자로도 충분하다고 말했을 텐데.”
“또 잘리면 이젠 재활용도 못 하잖아. 해연 길드장 미국 뜬 건 확실하대. 미친개처럼 쫓아다니더니 정보를 일부러 흘렸는데도 몇 시간째 잠잠하다더군.”
이 새끼가 남의 동생더러 뭐라는 거야? 놈의 옷자락에 힘껏 구멍을 내주었다. 피부는 뭐… 이놈도 S급인 모양이니. 심지어 채터박스의 마력이 이 자식에게서도 느껴졌다. 정말로 자신과 계약한 S급들을 따로 모아 뒀구나. 개새끼2의 말에 개새끼1이 입술을 비틀었다.
“역시 한유진이 이곳에 있는 것이로군.”
니 눈앞에 있다. 고양이 발이라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주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한유현보다 먼저 찾아내 주지.”
응, 파이팅.
“한유진의 팔다리를 잘라 놈에게 던져 주겠다.”
결이가 움찔 굳어 버렸다. 아니 저 새끼가 애도 있는데 못 하는 말이 없네!
“내 사촌동생들도 조심해야 할걸. 세성 길드장과 함께 있다니 분명 한유진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지. 그 녀석들도 그를 노리고 있어.”
사미르와 이사벨라를 말하는 듯했다. 그럼 이놈도 왕자님? 진짜 왕자님이 널렸네. 하루 만에 몇 명째야.
“평범한 S급들쯤.”
“사미르의 양부는 가장 유력한 왕위 계승자중 하나. 그 동생은 형의 충실한 지지자. 그들이 평범한 S급을 양자로 들였을 것 같아? 비공식 랭킹전이 있었지.”
흔해빠진 왕자 중 1의 말에 귀가 절로 쫑긋해졌다.
“힐러와 왕족 참관자 몇과 함께 던전에 들어가 일대일 승부를 냈어. 토너먼트식으로 이사벨라가 1위, 사미르가 4위. 사미르는 도중 기권했기에 실질적으론 2위라는 말이 있지. 1위였을 수도 있고.”
그런 일이 있었다니. 그 두 사람 생각보다 대단했구나…….
“왕족들 놀음판이라 해도 다들 호승심이 강하다 보니 서열은 진짜야. 보상이 좋다 보니 사우디는 물론 이슬람계 S급이라면 죄다 뛰어든 판이었고. 사실상 1, 2위가 사이좋게 붙어 다니기까지 하니 혼자는 위험할걸.”
말하자면 중동 지역 S급 중 탑이라며 왕자 모 씨가 경고했다. 새삼스럽게 사미르를 떠올려보았다. 그렇게는 안 보였는데 의외구만. 결이가 걱정이 되는지 앞발로 나를 톡톡 건드렸다.
[괜찮아. 오히려 잘됐어. 우리가 얌전히 있었더라면 사미르와 이사벨라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하지만 이젠 그 둘도 이들과 부딪치게 될 확률이 높아졌다. 적의 적은 우리 편이라잖아. 같이 싸워 주면 고맙지.
“그러니 우선은 물러나자. 여기서 머뭇거리다가 내 사촌들과 한국 헌터들과 동시에 부딪치면 힘들어.”
“…어차피 한유진부터 찾을 생각이었다.”
초화운이 못마땅해하면서도 순순히 돌아섰다. 나와 결이를 그대로 안아 든 채 왕자 놈도 그 뒤를 따랐다. 어쩌지, 일단 들려갈까. 우리를 평범한 고양이로 알고 있으니 언제든지 쉽게 탈출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나 혼자면 고민할 것도 없었지만 결이가 걱정이었다.
콰르릉, 불에 탄 건물이 쓰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파손된 비행기도 곳곳에 널려 있었다. 길이 죄다 망가진 탓에 도보로 비행장을 빠져나가는데.
“테러범이 형님이셨을 줄이야.”
여러 대의 차량 옆에 사미르가 서 있었다. 그 뒤쪽으로 내려선 헬리콥터가 보인다. 사로잡힌 헌터들이 무장해제 된 채 무릎을 꿇고 차 범퍼에 이사벨라가 기대듯 걸터앉아 있다.
“테러범을 잡으러 온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느냐.”
“오─ 그러셨군요. 연행 중이셨던 모양입니다.”
조금도 믿지 않는 얼굴로 사미르가 말했다. 우리가 사라진 것을 눈치챈 직후 헬기로 쫓아온 모양이었다. 이 속도면 차를 추적한 듯한데, 계약서는 멀쩡하니 갑자기 사라진 요리사를 의심한 것일까.
이사벨라가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키며 도끼를 내밀었다.
“고양이부터 내려놔.”
그리곤 작게 중얼거린다.
“수컷인 줄 알았는데.”
아니, 수컷 맞습니다! 수고양이가 새끼 데리고 다닐 수도 있는 거지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