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44
642화 연습 게임 (1)
얼른 유현이 뒤에 숨었다. 일부러 숨었다기보단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동생 등에 달라붙어 고개만 살짝 내밀어 명우를 흘끔거렸다. 아니 왜 갑자기 여기에서 쟤가 나오냐.
“어… 몸은 괜찮아? 아팠다고 들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았다. 안경을 제외하고는. 뜬금없이 안경이라니, 설마.
“명우 너, 혹시 눈에 문제 생긴 거야?”
패션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이템일 수도 있겠지만 암만 봐도 그냥 평범한 안경인 듯했다. 아니 나한테는 그렇게나 몸 챙기라고 잔소리를 하더니만.
“시력 떨어진 거 맞지? 너도 무리했구나! 야, 그러게 내가 너무 일만 하지 말라고─”
“유진아.”
유현이 등 뒤에서 반쯤 나왔던 내 몸이 다시 쏙 들어갔다.
“이번에는 정말 위험했었어. 알고 있지?”
“아니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솔직히 채터박스 놈은 내가 얌전히 자리보전하고 있었어도 강제로 뒷덜미 잡고 끌어냈을 걸.”
진짜로 억울했다. 나도 조용히 살고 싶다고.
“세상만 평화로우면 하루 24시간 집구석에 처박혀 애들이나 챙기면서 뒹굴 자신 있다고. 진짜야. 꼼짝 않고 집에만 있을 수 있어.”
“운동은 해야지.”
“그래, 가끔 운동하고.”
“정말로 집에만 있을 거야, 형?”
유현이가 반가워하며 물었다. 형이 이래 봬도 처음엔 놀고먹으려고 했단다. 어쩌다 보니 밖에 나돌아다니는 것을 넘어 세계여행까지 해버리게 되었지만.
“물론 아무 일 없으면 얌전히 집에만 있지!”
멸망 막고 나면 애들 교육시설 자리 잡고 각성자 관련 법적 문제도 좀 해결하고 기승수들도 신경 좀 써야 하고 하급 헌터들은 조오금만 신경 쓰고. 음, 할 일이 왜 이렇게 많냐. 그래도 아직 이십대니까 마흔 전에는 은퇴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면 괜찮네. 내 수명이 평균만 되어도 말이다.
“그리고 나 꽤 건강해. 어르신이 그러셨다니까? 오래 살 수 있을 거라셨어. 명우 너야말로 눈 어떻게 된 거냐. 너도 건강 잘 챙겨야지!”
수명 늘었다니까 꿀릴 거 없다. 유현이 뒤에서 당당히 나왔다. …음, 겉보기엔 상태가 좀 안 좋긴 하지만. 옷에 묻은 굴러다닌 흔적들을 괜히 탁탁 털어냈다. 명우가 내 꼴을 빤히 쳐다봐왔다. 다시 숨을까.
“은혜 있잖아. 멀쩡해. 진짜야.”
– 삐익!
은혜가 톡 튀어나와 명우를 향해 날개를 파닥거렸다.
– 삑! 뱀!
으, 은혜야! 잠깐만!
– 나쁜 뱀! 독!
“내 독 저항 알지? 아무 문제 없었다니까!”
“뱀이라니, 형.”
“새로 온 효도중독자가 뱀이었는데, 독 좀 뿌리고, 별문젠 없었어. 독이잖아.”
독 저항 L급으로도 다 못 막을 정도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 무사하면 됐지! 은혜야 착하지, 고자질은 나쁜 거예요. 은혜가 아직 말이 서툴러서 천만다행이었다.
“그, 그래서 명우 너 안경은!”
“일시적인 거야.”
“역시 무리한 거 맞지! 괜찮아? 어쩌다가 그런 거야.”
“유진이 네가 속을 썩여서.”
“…어?”
“자세히 듣고 싶어?”
명우가 미소를 지었다. 눈빛은 다정했지만 괜히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 어, 아무튼 내 잘못인 것 같았다. 그래, 생각해 보면 내 일 아니면 왜 무리를 하겠냐.
“드, 듣긴 들어야지. 나랑 관련 있는 거면.”
“유진이 너도 참 여전하구나.”
“응?”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아직 좀 어색하긴 하지만.”
안경테를 매만지며 명우가 성현제 쪽을 바라보았다. 성현제는 호기심 어린 눈빛을 띠고 있었다. 명우에 대한 기억은 없는 것일까. 회귀 후 상황에 대해 아예 모르진 않은 모양이었지만 자세히 기억을 받은 것 또한 아닌 듯했다.
“시스템 마력 적응을 위한 간단한 연습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명우의 말과 함께 우리와 성현제 쪽의 거리가 벌어지며 바닥에 선이 그어졌다. 농구장 코트와 비슷한 형태였다. 크기는 몇 배나 더 컸지만.
“잠깐만, 명우야! 어떻게 된 건지 말은 해줘야지!”
“설명 못 들었어? 초월자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성자를 대리인으로 내세우기로 한 거.”
“대충 듣긴 들었는데… 나는 그렇다 쳐도 너랑 세성 길드장까지 엮여 버렸잖아.”
“패륜아 쪽 후보는 처음부터 너였어. 하지만 효도중독자 쪽에서는 마땅한 대리인이 없었지. 초월자들이 보조해 준다 하더라도 평범한 마력 감지도로는 시스템을 다루기 불가능하니까.”
나는 마나각인과 그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마력 등급 덕에 마력 감지 능력만큼은 뛰어난 편이었다. 강제로 만들어 진, 자칫하다간 되레 내 목을 조이고 마는 예민함이었지만.
“태생 S급이면 조건에 맞겠지만 현재로선 공정한 대결이 가능한 사람이 없잖아. 아, 나도 후보에 들긴 했었어. 거절했지만.”
“의외로 공정하게 할걸? 유현이만 해도 진심으로 날 상대하려 들 테니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네 편을 들려고 할 테고 무엇보다 계약을 받아들이진 않으려 하겠지. 세상을 망하려고 하는 측이잖아. 계약 없이는 믿질 못할 수밖에.”
그야 당연했다. 효도중독자와 계약이라니,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소리였다. 그놈의 계약 때문에… 젠장, 절로 이가 다 갈리는구만.
“유진이 네가 시스템 관리 권한을 받지 않았더라도 보조역은 해야 하니 정 안 되면 채터박스의 계약자들 중 한 명의 능력치를 올려 주자, 라고 말이 오가고 있었어.”
헐… 자칫했다간 초화운이나 다른 예언가 쪽 S급이 태생 S급 수준이 될 뻔했구나. 그러잖아도 이상한 힘을 쓰고 있는 놈들인데.
“그때 세성 길드장이 과거 디아르마와의 계약을 복구하여 대리자가 된 것이고.”
효도중독자 쪽에서는 성현제가 최선의 선택이었구나. 송 실장님이 묵묵히 성현제를 돌아보았다. 메시지로 설명을 해줬을 리는… 없겠지. 성현제가 눈을 곱게 휘며 소리 없이 웃었다.
“한유현 헌터에게 한유진 씨의 메시지가 도착한 것은 확인했습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제게 성현제 헌터로부터 팀 합류 메시지가 왔으며, 두 팀으로 갈라진다면 제가 성현제 헌터 쪽으로 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런 것치고는 답장이 꽤 느렸지.”
성현제가 웃음기를 띤 채 말했다. 상대가 그쪽인데 고민할 만하잖아. 일주일쯤 답이 없다해도 이해할 수 있다. 송 실장님이 눈가를 희미하게 찌푸렸다.
“두 사람이 비슷하게…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래도 성현제보다는 제가 낫죠!”
송 실장님이 나를 바라봐왔다. 말은 없었지만 눈빛은 여러 가지 감정을 담고 있었다. 양심이 조금 아팠다. 그래도 시간적으로 말이야, 난 아직 1년도 채 안 지났는데 성현제는 몇 년째냐.
“나는 예비 시스템 관리자로서 교육을 위해 오게 된 거야. 초월자들이 각성자를 가르치기엔 수준 차이가 심하니까.”
“예비 시스템 관리자? 명우 너 정말로 그쪽으로 가게?”
“아마도. 아직은 먼일이긴 하지만, 세상을 지키느니 하는 것 이전에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있어.”
허공에, 아마도 시스템 창에 시선을 둔 채 명우가 말을 이었다.
“제작자의 정점이라 할 수 있으니까. 세계의 창조는 근원 외에는 불가능하다지만 자신의 공간을, 던전을 만들어 내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어. 시스템을 관리하고 싶다기보다는 그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에 손대 보고 싶은 거지.”
“…그래도 초월자처럼 되지는 마라. 그 동네에 인성 괜찮은 사람이 몇 없더라.”
내 말에 명우가 피식 웃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다.
“난 순수하게 만드는 것이 좋을 뿐이야. 사람들을 돌보고 이끄는 건 소질도 없고 솔직히 좋아하지도 않아.”
차라라락- 반으로 나누어진 게임장 양쪽에 하얗고 네모난 판 다섯 개가 나타났다.
“저 열 개의 판은 시스템의 마력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시스템 연결]메시지와 함께 내 쪽의 다섯 개의 판의 마력이 느껴졌다. 판 하나를 빙글 돌려보았다. 빠르게 휙, 돌아가더니 회전이 지나쳐 옆의 판과 쾅- 부딪쳐 버렸다. 이거 쉽지 않네. 성현제한테 너무 유리한 거 아니냐. 저 인간은 평소에도 날아다니는 사슬을 다뤘잖아.
‘송 실장님에게 지금 말해 드려야 하나.’
지금의 성현제가 현재의 성현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송 실장님도 이미 이상한 낌새는 느끼고 있는 듯했다. 다만 툭하면 이상해지는 인간이라 확신은 못 하는 모양이었다. 소영 씨나 에블린 씨라면 말투 다시 바꾸셨네 하고 대충 넘겨 버리지 않을까.
‘연습 게임은 일단 끝내자.’
상대가 강해야 시스템에 더 빨리 익숙해질 테니. 이어 유현이와 송 실장님 앞에 나무막대가 나타났다.
“비행 스킬과 그 유사 스킬은 금지됩니다. 바닥 또는 상대의 판을 밟거나 상대의 막대가 등을 쳤을 경우 패배합니다.”
다시 말해 판을 움직여서.
“…S급들 속도를 따라잡으라고?”
“그런 셈이야.”
세상에. 단순히 떨어지지 않는 것 정도야 내가 발로 판을 움직여도 유현이가 알아서 척척 움직여 주겠지만 문제는 같은 S급을 상대해야 한다. 절로 마른침이 꼴깍 삼켜졌다.
“공격 스킬은 사용 가능하나 상대에게 피해를 입힐 수는 없습니다. 임시 시스템 관리자는 보조 스킬만 사용 가능하며 팀원과 감각을 일부 공유합니다.”
“자, 잠깐만! 성현제 전투예지 있다고!”
“그래서 유진이 너와 관계가 있음에도 대리자로 쉽게 받아들여진 거야.”
…능력이 좋긴 좋지. 나라도 집어가고 싶었을 거다.
“덧붙여 디아르마와의 계약은 포식의 왕에게 넘겨져서 유진이 네 힘으로도 해주가 불가능하고.”
“뭐? 대책 없죠, 진짜!”
그 성현제는 아니지만 무심코 버럭 소리쳤다. 디아르마는 저주독룡종이라 칭호 버프 받아서 해주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포식의 왕은 뱀이다. 저 망할 인간이 어쩌려고 저런대! 자기 자신이긴 하지만 동시에 남의 몸뚱이니까 막 쓰는 건가. 어차피 자긴 팔 하나 눈 하나 이미 잃었다 이거냐? 어? 내가 노려보자 성현제 놈이 미소 지었다.
“여전히 귀엽군.”
“개소리 말고!”
멱살 한번 제대로 잡았어야 하는데. 성현제니까 뭔가 생각이 있긴 있… 없으면 어쩌지. 아니야, 있을 거야. 설마 초승달 대신 뱀이랑 살기로 맘먹은 건가. 그래 봤자 초승달의 겹겹이 감긴 계약을 풀긴 불가능할 텐데. …어차피 초승달에게 잡혀 있으니 막 계약했다거나? 어느 쪽이든 내 속만 뒤집어졌다.
내가 진짜 성현제 원래대로 돌려놓고 초승달한테서 벗어나면 당장에 가져다 버린다. 미련도 없이 꽁꽁 싸서 국제특급택배로 태평양 너머로 보내 버리고 한국 입국 금지 신청할 테다. 이를 바득바득 가는데 유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이상한데.”
드디어 유현이도 저 인간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형을 대하는 세성 길드장의 태도가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
“어, 그래?”
여전히 나와 관련된 부분에 한해서였지만. 유현이가 내게 고개를 숙여 작게 속삭였다.
“조심해, 형. 또 형을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할지도 몰라.”
유현이의 목소리에 경계심이 어렸다. 그러고 보니 회귀 직후엔 유현이가 성현제를 많이 경계했었지. 성현제가 나를 사람으로 대해 주고 나서는 덜해진 모양이지만. 아이템인 형은 언제든지 빼앗길 수 있지만 사람인 형은 절대 동생을 떠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일까.
“이기면 뭐 없나요, 선생님.”
손을 들며 명우에게 질문했다.
“연습 게임이라 보상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주고받는 건 가능해.”
“그럼 성현제 멱살을 잡고 싶습니다!”
아무런 대미지가 없다 해도 말이야, 콱 틀어잡고 짤짤 흔들어 주고 싶다. 내 말에 성현제 놈이 목을 살짝 기울였다.
“한유진 씨는 내게 뭘 줄 수 있지.”
내가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당연히 없다는 듯이 기대 없는 어조로 성현제 놈이 말했다. 세상에, 예전의 성현제는 저다지도 재수가 없었구나. 어쩜 저렇게 싸가지도 없고 세상 제일 잘난 얼굴을 하고 있냐. 그래 너 참 잘났다.
“F급에게 멱살 잡히는 꼴을 면하게 해드리죠.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난 그쪽 멱살을 잡고 흔들 테니까. 그리고 여긴 다 내 편이거든.”
송 실장님, 시선 피하지 마세요. 도와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성현제 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우가 뒤로 물러나고 선생님 스킬을 쓰지 않았음에도 유현이의 시야가 내게 공유되었다. 유현이가 흠칫 몸을 떨었다.
“형 진짜 예민하네.”
“뭐? 마나각인 말이야?”
“응. 마력과 마나 감지력이 최소 3분의 1은 강해진 거 같아. 나도 감지력은 상당히 좋은 편인데.”
“난 스탯이 낮잖아. 실제론 너나 나나 별 차이 없을걸.”
공유되는 감각은 시각과 청각, 후각, 마력감지력, 행동, 그리고 의사전달인 듯했다. 마력감지에 더해 의사전달이 분명해진 것을 제외하면 선생님 스킬과 비슷했다.
다섯 개의 판을 계단처럼 공중에 띄웠다. 바닥에 발이 닿아도 패배니 가능한 높이 올라가는 편이 유리했다.
탁-
유현이가 첫 번째 판을 디디며 가볍게 위로 솟구친다. 단숨에 가장 위의 판에 올라서는 것을 허둥지둥 새로운 판을 더 위로 띄웠다. 송태원 또한 판을 디디며 위로 올라간다. 까마득한 천장 아래 거의 백 미터 이상의 높이에서 두 사람이 멈추어 섰다.
“시작.”
명우가 가볍게 신호하고 유현이와 송태원이 동시에 판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