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7
67화 대화
“아니 얘가—”
와락, 내 뒤에서 두 팔이 뻗어 나와 나를 강한 힘으로 끌어안았다. 단단하고 너른 가슴이 등에 바싹 눌러 닿고, 몸이 아플 정도로 옥죄어졌다. 아니, 진짜 아픈데?
“아파, 힘 좀 빼!”
보나마나 동생이겠지. 놀란 건 알겠지만 이건 너무—
“윽, 야!”
내 몸이 가볍게 들리며 유현이 놈 어깨에 들쳐 메졌다. 나름 반항해 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유현아! 피스야!”
동생 놈은 그렇다 쳐도 피스 쟤도 날 쳐다만 보네. 인상 팍 쓰고서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근데 참 잘생겼다. 아직 덜 컸는데도 네 다리 길게 쭉쭉 뻗고 갈기와 꼬리도 풍성해져서 무척이나 멋있었다. 외뿔도 더 반짝이고 길게 자라난 송곳니도 날카롭고.
정말 흐뭇한 모습이긴 한데.
“좀 내려놔 봐! 걱정 끼친 건 알겠는데 말로 해, 말로!”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해.”
화를 꾹꾹 눌러 참는 목소리가 대답했다.
– 크르릉!
거기에 피스가 맞장구를 친다? …내가 없는 사이에 둘이 친해진 건 참 기쁜 일이다만, 피스야, 아빠 지금 강제로 끌려가는 거야. 상대가 친동생이긴 하지만 엄연히 납치다. 그런데 어딜 가는 거지. 해변 쪽인 거 같긴 한데.
“유현아, 내가 다 설명해 줄게. 진정하고 대화 좀 하자.”
“입 틀어막기 전에 좀 닥쳐!”
히스테릭한 외침 직후 으드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황스럽다.
내가 갑자기 사라져서 많이 놀랐을 거라는 건 안다. 나였어도 기겁했을 테니까. 그래도 아예 이야기조차 안 들으려고 하다니.
…설마 진짜 입 틀어막지는 않겠지.
“이번 딱 한 번만 들어 봐. 사실 나는—”
“형, 진짜 내가 미치는 꼴 보고 싶어?”
이미 정상은 아닌 것 같다만.
“이걸로 충분해!”
“아니, 뭐가…….”
“던전 밖에서의 일은 그렇다고 쳐! 하지만 이건, 대체… 한 번은 우연일지 몰라도 두 번째는 아니야! 왜 형이 던전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건데?!”
유현이가 보기엔 그렇겠구나. 내가 몰래 던전에 들어간 거 모르니까. 딱 두 번 던전에 발 들였는데 처음엔 등급 외 몬스터가 튀어나오고 그 다음엔 갑자기 사라지고.
환장할 만하네.
“설명해 줄—”
“필요 없어.”
말 좀 하자.
“내가—”
“마지막이야. 입 다물어.”
더 이상 말하면 진짜 입 막을 분위기였다. 일단 얌전히 따라 주다가 진정되면 다시 말 꺼내 볼까.
파도 소리가 코앞까지 가까워지고 유현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 그으우.
억눌린 신음 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몬스터인가.
“그냥 내가 좀 참으면 될 거라는 생각도 해봤어. 형은 알아서 잘 자리 잡아 가고 있었으니까. 이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도 넘어갔지. 그러니 내가 자제하는 게 맞아.”
말은 참 기특하다만 행동이 따로 노는구나.
“맞는데, 역시 안 되겠어.”
유현이가 겨우 나를 내려놓아 주었다. 피스가 내 곁으로 다가와 두툼한 목을 허리께에 문지른다.
– 그르릉.
얘가 왜 갑자기 이렇게 커진 거지. 피스를 쓰다듬어 주며 주위를 살피자 네 다리가 잘려 나간 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였다. 독수리와 비슷한 머리가 간간히 부리를 벌리며 신음성을 토해 놓는다.
저걸 왜 살려 뒀지.
“그러니까 형은 여기서 죽은 걸로 해둘게.”
“…뭐?”
“살아 있는 형을 내 마음대로 할 순 없으니까. 내 선에서 처리하기에는 엮인 게 너무 많아. D급 던전에서 동행인 하나 못 지켰다고 하면 평판 바닥 치긴 하겠지만.”
“…바닥 치는 정도가 아니라 의심도 받을 거다만.”
초짜도 아니고 경력 3년짜리 S급 전투 헌터가 D급 던전에서 동료를 잃다니, 말이 되냐. 농담이라고 해도 재미없다.
“게다가 뒷감당은 어쩌려고. 네 말대로 벌여 놓은 게 많은데.”
“상관없어.”
길드장 놈이 무책임하게 내뱉었다. 과연 다 되다 못해 상까지 차려진 밥 두고 목숨 내다버린 놈다웠다. 내가 애를 잘못 키웠나.
그나마 진정은 좀 된 거 같으니 살살 달래라도 봐야지.
“상관없다니. 잘못하다간 MKC 대신 해연이 무너질 수도 있어. 납치보다 문제가 더 크잖아.”
“형이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래도 의심은 줄여야 하니까 저렇게 준비해 놓았잖아.”
저렇게? 뭐… 몬스터?
“확실하게 하려면 팔다리 하나쯤 잘라 두는 게 좋겠지만, 그렇게까진 못 하겠어. 그래도 혈흔이나 살점 조각 정도는 있어야 해. 바다 루툼은 사람을 한 번에 삼킬 덩치가 못 되어서 부리로 찢어 먹거든.”
유현이가 담담하게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내 동생이 미친놈이라는 평가에 동의하고 싶진 않았는데. 그래도 팔다리까진 못 자르겠다니까 덜 미친 거 같기도 하고.
피스의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뒷걸음질 쳤다. 피스도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살짝 긴장한 채였다.
“내 몸에 손댈 생각 하지 마라.”
“미안. 진통제가 있으니까 아프진 않을 거야. 상급 포션으로 바로 회복하면 되고.”
“미안하면 하질 마! 아니, 설명을 해주겠다니까? 그보다 넌 내 몸뚱이만 무사하면 아무래도 좋다는 거냐? 억지 보호받으면 내가 뭐 고맙다고 하겠어? 겨우 사이 좀 좋아지나 싶더니 다시 평생 말도 제대로 안 섞고 데면데면하게 살자고?”
“어차피 형은 날 받아 줄 생각 없잖아.”
“…뭐?”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동생 녀석의 시선이 아래로 살짝 떨어졌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기대한 내가 바보였지. 아니면 염치가 없다고 해야 하나. 형은 그냥 빠르고 안전하게 기반을 마련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아니 나는 네가 무슨 소리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만.”
“모르는 척하지 마. 형은 처음부터 다 감추고 있었잖아. 마수 사육사 스킬, 10레벨 때 얻은 거 맞긴 해? 화염 뿔사자 새끼를 보자마자 선뜻 키우겠다고 한 것부터가 이상해. 먹이값이 한두 푼도 아니고 나한테는 별 부담 안 된다고 해도 고민도 없이 받아들일 형이 아니잖아.”
그… 건 그렇다.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러워도 몸값도 아니고 한 끼 밥값 천만 원짜리 애완동물을 내가 덥석 키우려 할 리가 없었다. 심지어 그때의 나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다가 막 각성한 F급 헌터였으니까. 밥값 알게 되자마자 헉, 아냐 못 키우겠어 손사래 쳤어야 맞았다.
아무 말 못 하자 유현이의 눈길이 더욱 싸늘해졌다. 동시에 조금 슬퍼 보이기도 했다.
“나한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해 준 게 대체 뭐야? 심지어 오늘 사라진 것도 형은 전혀 당황하질 않았잖아. 스킬까지는 그래도 참으려고 했어. 자기 스킬을 어느 정도 감추는 거야 헌터라면 흔히 하는 방식이고 가족이라고 해도 굳이 예외로 둘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손끝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이해조차 안 되는 오늘 같은 일은.”
유현이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나도 반사적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원래의 모습을 짐작조차 할 수 없이 처참하게 파괴된 숲이 우리들 눈에 비쳤다.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동생에 목소리에, 뚜렷한 슬픔이 맺혀 있었다. 분노보다 더욱 강하게.
다 설명해 주겠다는 변명이 혓바닥 위에서 구르기만 했다. 말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곤 억지로 입을 열었다.
“그거 말고 의심스러운 거, 더 있어?”
“…모르겠어. 형이 나한테 사랑한다고 했던 것부터, 그때부터 계속. 처음에는 그냥 들뜨고 좋았는데. 형이 갑자기 미안하다느니 한 것부터가 이상하잖아. 그래도 그냥, 잘된 거니까 모르는 척하려고 했거든.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고, 그래서.”
“유현아.”
“사이 틀어지기 전의 형 같기도 하고, 근데 또 아예 다른 사람 같기도 하고. 나도 모르겠어.”
몇 년간 소원했다고 해도 가족은 가족인 모양이었다. 유현이가 저렇게까지 뚜렷한 이질감을 느끼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하고,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면, 그걸로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잘못 생각한 모양이다.
“내가 감춘 게 많은 건 사실이야. 네 짐작대로 피스를 처음 봤을 때부터 성장시킬 생각이었고. 각성시켜 주는 스킬도 한 달에 한 번은 맞지만 단순한 각성이 아니라 최적화고. 예림이 원래 각성 예상 스탯 등급은 A~S야. A급이 될 확률이 더 높았는데 내가 S급으로 만든 거라고 할 수 있어.”
한숨 한번 삼키고 말을 이었다.
“몰래 던전에 들어간 적도 있어. 삐약이는 그 던전에서 데리고 온 거고. A급 은신 스킬도 가지고 있고, 일부 스킬 공유도 가능해. 독과 저주, 공포 저항도 있고.”
“…독 저항은 알아.”
“안다고?”
“박예림 헌터가 브릭스 D급 헌터의 기억을 읽었으니까. 아무리 뒤져 봐도 해독 아이템이 없는데도 파수꾼의 열매 아이템이 안 통했다고 이상하게 여기는 기억.”
“뭐? 예림이한테! 아니다, 이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덧붙이자면 L급이야.”
“진통제 안 통하겠네.”
“스킬 끌 수 있더라.”
“…저항 스킬이?”
“응. 패시브류 두 번 연속으로 끄려고 하면 꺼져. 보통은 끌 일 없겠지만.”
“술 취했을 때 꺼봤구나.”
귀신같은 놈. 저런 녀석을 앞에 두고 속이려고 한 내가 잘못했지.
“던전 보상 아이템 두 배와 공격 스킬 효과 두 배 스킬도 있어. 나한테는 별 쓸모없지만. 스탯은 여전히 F고 공격 스킬은 없어.”
“…형 상태창 정말 특이하다.”
“그러게나 말이다. 솔직하게 말했어도 믿기 힘들었을걸.”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유현이도 미미하게나마 입꼬리를 올린다.
“스킬 공유는 접촉 중일 때만 가능해. 사용 대기 시간 15일이고.”
효과를 알면 안 되는 내새끼와 우리애는 빼놓았다. 설명하기 곤란한 마지막 보은과 라우치타스의 천적도. 회귀까지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 >>∞<< ˙=˙ ☞ ˙≠˙]입 다물라는 메시지가 떴다. 무한대 기호를 말하지 말라. 회귀를 뜻하는 거겠지. 하긴 그것까지 말하면 시스템 관련 정보가 너무 많이 드러난다.
“그리고 내가 아까 사라진 건 시스템 제작자와 관련 있어.”
“시스템 제작자라고?”
유현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좀 얼굴이 펴네.
“어쩌다 보니 내가 시스템 제작자를 도와주게 되었거든. 자세히는 말해 주고 싶어도 못 해. 하면 안 된대. 그래도 너한테는 말해 주고 싶어서 메시지 하나 보내 달라고 부탁해 놨어. 시스템 자음이야. 지금 보내 주세요.”
유현이의 시선이 제 앞의 허공을 향한다. 메시지창이 뜬 모양이었다. 크게 당황한 표정이다.
“그… 러니까, 만든 사람 같은 게 진짜로 있었어?”
“있더라고. 갑자기 자연스럽게 생겨난 게 더 이상하긴 하잖냐.”
“그건 그렇지만…….”
“이건 허락받고 너한테만 알려 주는 거야. 다른 사람에겐 비밀이다. 절대 말하면 안 돼.”
잠시간 말이 없었다. 그래도 동생의 안색은 한층 밝아졌다.
“형 스킬도 시스템과 관련이 있는 거야?”
“다는 아니고. 자세히는 말 못 해준다니까. 그래도 정상적인 스킬 상태가 아니긴 하지.”
“…응. 아니, 근데 왜 하필 형이야. 위험한 일 시키는 건 아니고?”
“안 위험해. 이미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냥 S급들 모으는 거니까. 현재로선 네가 제일 위험했단다, 동생아.
문득 상급 각성자들을 조심하라던 물방울의 충고가 떠올랐다. 호의가 폭력이 될 수도 있다라, 딱이네.
“더 궁금한 거 있으면 뭐든 물어봐. 또 속에 담아 두고 있지 말고.”
짧은 정적 후 풀이 죽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미안해. 형이 날 믿지 못한다고 투덜거렸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어.”
“아냐. 오늘 일이야 나라도 제정신이 아니었을걸. 내가 이것저것 감춘 건 사실이기도 하고. 피스야, 너한테도 미안해. 많이 놀랐지? 그렇게 갑자기 데리고 갈 줄은 몰랐어.”
– 가르릉.
목을 울리며 나와 유현이를 번갈아 바라본 피스가 갑자기 작아졌다. 아니, 어려졌다. 크기만 작아진 게 아니라 그냥 어릴 때 모습이었다.
[2급 유니콘아종 – 화염 뿔사자(유체) 피스현재 스탯 등급 C]
상태창도 유체로 표시되고 등급도 다시 C가 되어 버렸다.
“피스 너…….”
– 끼앙!
안아 달라고 앞발로 내 다리를 긁는다. 야 인마, 너 설마.
“아성체로 자란 거였는데 일부러 유체로 남아 있었던 거냐?”
– 갸르르르.
뭘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하는 순진한 표정을 짓냐. 원하는 대로 안아 들어 주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얘 언제 커졌어?”
“형 사라지고 잠시 뒤에.”
그럼 몬스터 잡고 성장한 것도 아니었다. 진짜 일부러 안 크고 있었던 건가. 대체 언제부터?
혹시나 싶어 피스의 내새끼 스킬 상태창을 열었다.
[성체 탈태 소요 시간(71:22)]71시간?! 분명 백 시간 넘게 남아 있었는데? 1분 넘게 쳐다보고 있었음에도 시간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럼 평소에는 그대로였을 거고, 설마 훈련 덕분인가. 스킬 적용이 끝난 뒤에도 피스와 자주 놀아 주기는 했는데.
집에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니. 그런데 피스 얘는 왜 여태 안 컸던 걸까. 관련 스킬이라도 얻었나?”
“스킬은 모르겠고 커지면 형한테 못 안기잖아. 안기는 거 좋아한다며.”
고작 그거 때문에?
“그래도 피스야, 성체 되면 티는 내줘라.”
– 끼앙.
진짜 훈련 효과가 있는 거라면 내새끼 스킬 대기 시간 끝나기 전에 다 자라 버릴지도 모르겠다. 벌써부터 좀 섭섭하네.
피스를 쓰다듬어 주며 동생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겸연쩍어한다. 에휴, 그래.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이지. 내내 불안해했을 거 생각하니 미안해졌다.
“미리 말해 두겠는데 내가 세상에서 제일 믿고 있는 사람은 유현이 너야.”
동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나를?”
“그래. 설사 네가 내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더라도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그건 앞으로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다.”
누가 나 대신 죽었다가 되살아나거나 회귀하지 않는 한은 변할 일 없다.
“그러니까 고민하고 걱정하지 마. 참견해도 돼. 내 동생이잖아. 물론 너무 과한 건 안 되고. 과하면 화낼 거다. 감금도 마찬가지야. 안 돼.”
“…형.”
유현이가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우리 사이에 끼인 피스가 답답한지 작게 끼잉거렸다.
“도움이 필요하면 뭐든지 말해. 절대 무리하진 말고. 나한테는, 형이 제일 중요하니까. 다른 무엇보다도.”
“걱정 마. 무리할 일 없어.”
시스템분들이 시킨 일만 한다면 말이다. 일 더 늘리진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