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93
792화 안개와 바다와 기억 (6)
“그게 무슨…….”
“존재의 근원 자체를 완전하게. 아직 시도해 본 적은 없으나 약탈의 도움을 받으면 보다 수월하겠지.”
잠시 사라졌던 검은 그림자가 다시금 일렁인다.
“저것이, 회귀 전 나의 흔적이 내게도 가르쳐 주었다네.”
굳어 있는 현재의 한유진에게 현재의 성현제가 속삭였다. 한유진이 등 뒤쪽으로 눈동자를 움직였다. 종속자들의 마석을 완전히 흡수하는 방법. 그것을 잠시 머물렀다 떠나간 과거이자 미래의 성현제가 알려 준 모양이었다.
“그럼, 나는.”
기억 속의 한유진이 성현제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동자가 크게 떨리고 있었다.
“사라지지. 완벽히.”
짧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틀었으나 한유진의 어깨를 붙잡은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금안이 가느다랗게 곡선을 그렸다.
“살려 달라고 빌어 볼 텐가.”
어깨 위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두려움을 품고 크게 뛰는 맥박이 옷 너머로도 느껴졌다. 한유진의 몸뚱이 자체가 커다란 심장이 된 듯 떨리고 또 떨렸다. 호흡조차 콱 막히는 압박감에 헉, 헉 밭은 소리가 연신 새어 나왔다.
“이대로 무릎을 꿇고서.”
낮은 목소리는 퍽 나긋하게 흘러나왔다. 그러나 한유진의 귀에는 처형인의 칼 가는 소리와 다름없었다.
“구두 끝에 이마를 문지르는 것도 괜찮겠지. 공손하게.”
“왜, 후우, 살려… 주겠, 다는 듯.”
“유언이야.”
어깨 위의 손이 목덜미와 귓가를 지나 한유진의 머리를 느릿이 쓰다듬었다. 동등한 인간이 아닌 발치에 굴러다니는 어린 짐승을 대하듯이.
“송태원 씨는 마지막까지 연약한 F급을 걱정했어. 그런 사람이니까.”
“송…태원…….”
“유산을 받았으니 조금쯤은 그에 부응해 줘야지. 하니 굽히고 기어. 한유진 씨.”
머리가 약간 눌러진다. 한유진이 반사적으로 목에 힘을 주었다.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로 지저분하게 굴어 봐. 입에 대기는커녕 짓밟을 가치조차 없도록. 나는 하찮은 것을 삼키고 싶진 않으니.”
살려 달라 흙칠을 하고 뒹굴어서야 손댈 마음조차 사라질 것이다. 목숨을 연명코자 하는 행위가 구차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성현제는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관대했다. 그러나 상대의 자비에만 기대어 맹목적으로 납죽 엎드리기만 하는 행태에는 아무런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숨만 쉰다고 하여 사는 것은 아니니. 그는 그러한 이들 또한 지키고 보호 할 터이나 눈길은 스치지조차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한유진 또한 벗어날 수 있었다. 얌전히 머리를 숙이고 숨을 죽인 채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여 웅크린다면.
한유진의 상체가 조금 숙여졌다. 그러나 그대로 굽히는 대신.
탁!
두 손으로 성현제를 힘껏 밀어냈다. 성현제는 단단한 벽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반대로 밀려나간 한유진이 크게 휘청이며 멀쩡한 다리로 바닥을 강하게 찼다. 붕 뜬 몸이 그대로 뒤로 날아가 구른다. 성현제와 거리를 띄운 한유진이 크게 쿨럭였다.
“우욱, 웩!”
기침에 이어 위압감 속에 참고 있던 헛구역질까지 올라온다. 그럼에도 바닥을 짚고 더욱 물러나며 인벤토리 속의 창을 꺼내 지팡이 대신 버텨 일어섰다. 동시에 다른 쪽 손이 단검을 쥐어 그 자리 그대로 서 있는 성현제를 향해 던진다.
툭.
힘껏 던진 칼날은 성현제의 팔을 감싼 천에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서 떨어졌다. 창에 기대 선 한유진이 어금니를 사리물었다. S급 앞의 F급은 인벤토리 봉인 팔찌를 채울 필요조차 없는 상대다. 알고는 있지만 새삼 비참했다.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벌벌 떨면서도 한유진이 입꼬리를 올렸다.
“성현제 씨, 엿이나 먹으세요.”
한유진의 시선이 흘끔 출구 쪽을 향했다. 여기서 빠져나간다 해도 세성 길드다. 미니 포털 앞에는 A급 헌터가 지키고 서 있을 것이다. 그 전에 성현제로부터 벗어나는 것부터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있는 힘껏 달려 봤자 몇 발짝이나 갈 수 있을까.
답이 없다. 막막하다. 하지만 한유진은 움직였다. 창끝으로 강하게 바닥을 치며 출구로 몸을 돌렸다.
차르르-
금속성 소리가 들려왔다. 한국은 물론 해외 헌터라 해도 모르기 힘든 사슬의 소리가 순식간에 한유진의 등 뒤로 다가붙는다. 겨우 한 발을 떼기도 전에.
“윽!”
사슬이 멀쩡한 다리를 휘감았다. 한유진의 몸이 그대로 균형이 무너지며 앞으로 쓰러졌다. 찰강, 창이 바닥에 부딪쳐 뒹굴고 그것을 잡아챌 틈도 없이 주르륵 끌려간다.
“이거 놔! 성현제!”
한유진의 손에 짧은 갈고리 같은 것이 쥐어졌다. 콱! 고리 끝이 바닥을 파고들어 박히고 그것을 잡고 버티려 든다. 무슨 생각인지 사슬이 일순 느슨해졌다. 절룩이며 일어난 한유진이 소파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소파를 방패 삼아 숨기 전에 사슬이 먼저 그의 몸을 휘감았다.
“은색?”
미처 보지 못했던 사슬의 빛깔에 한유진이 움찔거렸다. 순간 성현제의 그 무기가 아닌 가 싶었지만 형태는 분명 눈에 익숙했다. 사슬이 한유진을 당겨 테이블 위로 쓰러뜨리고 그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묶었다. 한유진의 발이 테이블을 강하게 찼지만 던전 부산물로 만들어지기라도 했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멀쩡히 살아나갈 길을 제시해 주었건만.”
목소리와 함께 구두 굽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한유진은 목을 잔뜩 들어 올렸다. 하지만 성현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더욱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안타깝군.”
한유진의 뒤통수가 테이블에 부딪쳤다. 은빛 사슬에 얽매인 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렸다. 조리 되기 직전의 식재료가 된 기분이었다. 한유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난 여기서 못 죽어.”
“누구나 다 그러하지.”
“집에, 가야 해. 유현이를…….”
동생과 함께. 돌아가야만 한다. 구둣발 소리가 멈추었다. 한유진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무섭다. 숨이 턱턱 막혔다.
“여전히 동생인가. 정작 그 앞에서는 잔뜩 날을 세우면서.”
한유진의 눈동자에 까마득히 높은 천장이 비춰졌다.
“…싫어한 적, 없었어.”
왜 떠나간 건지, 왜 밀어내는 건지, 왜 말 한마디 들어 주지조차 않는 건지. 원망 같은 것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미움은 형제를 둘러싼 상황을 향한 것에 가까웠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모든 서러움은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다. 언제 험한 말을 하고 가시를 세웠었냐는 듯 평화롭게.
“그러니까… 유현이에게는 제가 실종된 것으로, 해주십시오.”
어쩌면 조금쯤 슬퍼할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형이라고 아파할지도 모르니까.
“어린아이에게 있어 부모는 세상이지만 부모 또한 아이에게 매몰되기도 하지.”
성현제가 희미한 안타까움을 담아 말했다.
“특히나 자신의 삶을 버려두고 아이에게 매달린다면. 자아가 확립된 성인도 그러하건만 한유진 군은 같은 아이였어.”
제 삶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기도 전의 어린애다. 주위의 제대로 된 도움조차 없었다. 성현제의 상체가 약간 숙여졌다. 천장을 향하던 한유진의 시선이 그에 의해 가려진다.
“지워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올바른 길일지도 모르지.”
“…그 올바른 걸 누가 정하는데요.”
한유진이 작게 콜록이며 웃었다.
“남들 보기에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겠죠. 근데, 망할. 그래야 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남의 인생을 멋대로 잘못되었다 지껄이지 마십쇼. 내가 뭐 그쪽에게 작정하고 피해라도 줬습니까?”
“아니.”
멀고 먼 조명 대신 금안이 빛을 머금었다.
“열심히 살았지, 한유진 씨는.”
“…예.”
한유진이 눈을 감았다.
“마지막에라도 그런 소리 들으니 더럽게 고맙네요. 그것도 세성 길드장님한테.”
“그러니 지워내야지.”
“거절하겠다고-!”
한유진이 눈을 번쩍 떴다. 어느새 너른 테이블 한쪽에 성현제가 걸터앉아 있었다. 다리를 겹치고 발끝을 느릿이 까닥이며 한유진을 바라본다.
“우리를.”
“…무슨 소립니까.”
“송태원 씨가 원하는 대로 한유진 씨를 무사히 놓아준다더라도, 나는 결국 나를 우선시할 거야. 한유진 씨가 계속 살아나가 성장한다면 끝내는 손대고 말겠지.”
“…그래서 어쩌겠다고요.”
“사슬의 색이 낯설지 않나.”
은빛 사슬의 끝이 성현제의 손 위로 내려놓였다.
“초승달은 송태원의 움직임을 알아차렸어. 그러나 월식의 힘 자체를 소멸시키는 건 불가능했기에 나와 그의 관계성을 지우려 하였지.”
“관계성…요?”
“나와 송태원이 아무 관계 없는 사이가 된다면 약탈 스킬을 내가 얻지도, 사용하지도 못하게 될 테니까. 다행히 수색자의 사슬이 달빛을 막아 주었지. 정확히는 흡수했어.”
그 본질은 금속이 아닌 빛이기에 달빛에 물들 수 있었다.
“완벽하진 않아 여파는 좀 있었겠지만. 한유진 씨에게도.”
“제게도요?”
“우린 꽤 즐겁게 지냈으니. 송태원을 내게 보낸 것도 한유진 씨라 할 수 있고.”
한유진이 인상을 찡그렸다.
“저는 일방적으로 속았습니다만. …결국 저와 동갑이라고 한 것도 칭호를 시험해 보려던 거였습니까? 뭐, 생일이 더 빠르니 내가 형뻘이라고? 양심이 있어요?”
“섭섭한데. 날 세상물정 모르는 도련님쯤으로 여기고선 감싸 주더니 차가워졌어.”
“그야 하는 짓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여유롭게 굴면서도 이상한 데서 서툴… 됐습니다.”
성현제가 나직이 웃었다. 한유진을 묶은 사슬에서 희미한 은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한유진 씨는 잊게 될 거야. 나에 대한 감정이 사라진다면 양육자로서의 힘 또한 소용이 없어지겠지.”
“거절합니다.”
“나 또한 일부는 잊고 일부는 뒤섞이게 될 거야. 엉켜 있는 것을 깔끔하게 잘라낼 수는 없으니. 관련 있는 이들 역시 우리의 관계에 대해 잊어버릴 것이고.”
“싫다고 했습니다!”
“한유진 씨의 기억을 지우고 내버려두는 이유는, 죄책감 때문이라고 할까. 송태원의 사망에 대해, 한유진 씨를 보호하기 위해. 어설프긴 해도 유언이 있었으니 나쁘진 않아.”
“죄책감은 무슨!”
쾅! 한유진이 강하게 발을 굴렀다.
“그딴 이유로 송태원 실장님을 잊을 생각 없습니다! 제가 엮였다고 해도 그건 송태원 실장님의 선택이었고, 그리고, 절대로 자기 의지가 아닌 일을, 억지로 했을 분이 아니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이런 일은, 절대로.”
공직에 묶여 자유롭지 않았다고 해도. 자신을 억누르며 살아왔다고 해도. 결국은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하고 움직일 사람이다.
“그러니 죄책감 같은 거 안 가져요. 하고 싶은 일 하셨을 텐데, 제가 뭐라고.”
“미안하군.”
성현제가 솔직하게 사과했다. 그러나 그의 손끝에서는 그림자가 흘러나와 은색 달빛과 섞이고 있었다.
“그러나 한유진 씨, 잠시 쉬어.”
“성현, 제-!”
한유진이 눈을 깜박였다. 억지로 의식을 붙잡고 있으려 했지만 버거웠다.
“나로부터 한유진 씨를 보호하는 것 외에도, 초승달은 나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거든. 이 모든 것은 감추어 둘 필요가 있어.”
자장가라도 불러 줄까. 성현제가 속삭였다. 고집스럽게 뜨여 있던 눈이 조금씩 힘을 잃어간다. 성현제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금 쓸쓸하겠군.”
송태원과 한유진, 이 두 사람은 성현제의 선에 가장 가까웠던 이들이었다. 적정 거리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던 송태원은 결국 선을 넘어서고 성현제의 일부로 남았다. 그보다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정체를 숨긴 성현제를 먼저 제 선 안에 넣었던, 그가 세성 길드장임을 알고 나서도 버리지 못했던 한유진은 이제 완전히 멀어지게 되었다.
“양이라도 키울까. 검은색 새끼 양을.”
“…나는, 세…성…….”
“한유진 씨에게는 가끔 엽서라도 보내고.”
“당신…….”
“마지막으로, 동생과 무사히 화해하기를 바라지. 진심으로.”
한유진의 눈이 완전히 감겼다. 검은 그림자가 어린 은빛이 한유진을 짙게 물들이며 퍼져 나간다. 성현제 또한 그 빛에 휘말렸다. 침묵이 내려앉는다. 현재의 한유진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 잊었군요.”
“월식의 힘은 아직 이곳에 남아 있지만 초승달의 힘은 완전히 지워진 모양이더군.”
성현제가 말했다. 한유진이 흩어지는 은빛을 바라보았다. 그가 모르는 사이에 몸속에 잠겨 있던 달빛을.
“어쩌면 이것 때문에 제가 초승달에게 더 쉽게 몸을 빼앗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기억을 누르던 달빛은 초승달의 힘을 완전히 제거할 때 함께 밀려났을 것이다. 덕분에 이중으로 단단히 묻혀 있던 기억이 석류 열매의 힘과 부딪쳐 새어 나오게 된 모양이었다.
한유진이 눈을 감았다. 그의 모습이 사라져 간다. 동시에 테이블 위의 한유진이 눈을 떴다. 원래의 금빛을 되찾은 사슬이 흘러내리고 한유진이 몸을 일으켜 성현제를 바라보았다.
“저는 당신도 좋아했어요.”
“그리고 다시 좋아하게 되었지. 그렇지 않나.”
양육자 칭호. 월식. 성현제. 한유진은 머릿속 기억을 정리했다.
“결이는 당신을 경계했습니다. 결이는 회귀 전 성현제의 일부에서 태어났죠.”
회귀 전의 성현제 또한 기억은 불확실했다. 그러나 그 위협의 요소는 느껴졌을 것이다. 또한 한결은 한유진의 양육자로서의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시간을 돌리기 전보다 양육자 칭호 등급이 올라갔습니다.”
“상급 헌터들에게 그 힘을 사용하기도 하였지. 선생님 스킬 또한 양육자와 관련이 있으니 성장 또한 더더욱 빨랐을 것이고.”
“어쩌면.”
한유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의 저를, 양육자의 힘을 흡수한다면 성현제 씨의 쌓인 것들을 더욱 안전하게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성장시키는 힘이다. 그 힘의 근원을 단숨에 삼킨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유사 근원은 S급은 물론이고 초월자와도 비교가 되지 않을 테니 완벽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분명 유용하겠죠.”
L급 칭호로는 근원을 상대하기엔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현재의 성현제에게 있어서는 가장 확실하고 현실성 있는 방법이었다. 당장에 손을 뻗어도 이상하지 않은.
“하지만… 결이는 당신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한유진 군은 어떻지.”
“믿었습니다.”
쌓아 온 시간들을.
“그러나 지금의 성현제 씨는.”
“감정을 지웠지.”
한유진은 손을 천천히 주먹 쥐었다 폈다.
“기억은 그대로이며 한유진은 한유진이니, 지금도 흥미는 꽤나 있지만.”
금색 눈은 웃고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예전 같지는 않았다. 성현제가 한 걸음 내디뎠다. 실내 정원도 높은 천장도 아치형 문도 사라지고 물결이 다시금 찰랑인다.
“한유진 군이 내게.”
찰박.
“한턱내겠다 하지 않았던가.”
찰박.
“감사히 먹겠네.”
한유진의 안에 스며들어 있던 약탈의 힘이 고개를 들었다. 성현제가 작게 입을 벌렸다.
* * *
한유현은 물 위에 서 있었다. 그의 주위를 감돌던 불길은 사라지고 나비 또한 모습을 감추었다. 곧장 주위를 살피던 그의 눈에 검은 코트 자락이 들어왔다. 한유현이었다.
스릉-
두 한유현이 동시에 검을 뽑아들었다. 순식간에 공기가 팽팽히 당겨졌으나.
“네. 괜찮아요.”
작은 목소리가 균형을 깨뜨렸다. 두 한유현이 고개를 돌렸다. 다섯 살 즈음의 조그만 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의자에 앉아 있다.
“…형?”
한유현이 중얼거렸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