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865
에필로그 (8)
“오늘도 고생 많았다, 명우야.”
명우가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적으로 해를 끼칠 수는 없으나 그래도 초월자 상대다. 단순히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지는 것이었다. 초월자가 자신의 기세를 감추는 배려를 하지 않는다면 더더욱 그랬다. 시스템 제작사로서 보호를 받지 않았다면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기 힘들 정도의 격차가 나는 자들이었으니까.
“어서 앉으세요, 아빠!”
하늘이가 얼른 명우를 소파로 끌고 갔다. 그러곤 마실 것을 가져다준다며 바쁘게 주방으로 뛰어왔다. 과거의 기억을 잃었다곤 해도 깊숙한 곳에는 남아 있는 것일까. 하늘이는 조금 과하게 명우와 나를 챙겨 주고 도움이 되려 하는 면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지 싶었지만, 명우가 한번 테두리 안에 들인 사람을 쉽게 버릴 녀석은 아니니까. 그걸 확실하게 깨닫고 나면 어리광도 부리고 하겠지.
‘결이 생각나네.’
그간 더 어린 설이와 별이보다도 오히려 결이가 더 걱정되었다. 설이는 별이가 있으면 괜찮지 싶었고 별이는 어디서든 무슨 일이 있든 밝게 잘 지낼 것 같았다. 반면에 결이는 내가 같이 있어 줘야 하는데,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하다못해 성현제라도 있었으면 좀 나았을 텐데.’
결이가 성현제 앞에서는 유독 감정표현을 솔직히 하곤 했으니까. 지금은 보나 마나 삼촌과 고모가 걱정하니까, 첫째니까 하면서 꾹꾹 참고 있을 것이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되고 투정 부리고 싶으면 투정 부려도 되고 화내거나 짜증 내거나 슬퍼하거나 뭐든 다 해도 괜찮은데.
‘유현이한테 기대하기는… 솔직히 힘들 거고.’
유현이가 애들 신체적인 건강은 정말 잘 챙길 것 같은데 말이야, 정서적인 부분은 아무래도 부족할 수밖에 없겠지. 예림이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현아 씨와 소영 씨도 분명 도와주려 할 테고. 아니었으면 석 달 내내 불안해서 잠도 제대로 못 이뤘을 거다.
“사실 유진이 네가 돌아가기엔 이르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밥을 다 먹은 빈이를 안고 거실로 가자 하늘이가 가져다준 주스를 마시고 있던 명우가 말했다.
“네 죽음을 잊고 지내는 사람이 많아지긴 했지만 아직은 부족하거든. 전에 말했듯이 우리 세계에서 한유진이 죽었다는 생각을 강하게 품은 지성체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네가 돌아가기 힘들어져.”
“점점 잊혀 갈수록 살아 있는 한유진에 대한 반발이 약해지고 말이야.”
우리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한유진은 죽었다, 라고 인식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항상 한유진이 죽었구나 하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건 아니었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 타인의 죽음은 이내 시간에 묻혀 흐려져 간다.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보통은 점차 슬픔에서 벗어나 소중한 이의 죽음을 생각하는 순간이 짧아지게 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한유진의 죽음이라는 전 세계적인 인식의 힘이 자연스럽게 옅어지게 된다.
“유진이 너도 봤잖아. 바로 어제도 각성자 교육 시설 뉴스에서 네 장례식 모습 나오는 것.”
“어… 그랬지.”
우리 세계의 시스템 연결은 끊어졌지만 명우는 자기 자신을 통로로 하여 시스템을 이었다. 말하자면 초월자는 사용하지 못하는 명우 전용 개인 회선이었다. 덕분에 한 달 전부터는 TV 시청이나 인터넷 연결도 가능해졌다.
“…돌아가면 그놈의 동상부터 폭파해 버릴 테다.”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아무리 시시오 씨가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고 해도 말이야, 아무도 안 말린 거냐고. 내가 진짜 죽었어도 환장하다 못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났을 거다. 존재 자체도 쪽팔리지만 온갖 방송에서 툭하면 자료 화면으로 등장한다고! 차라리 내 영정 사진을 써라, 왜 동상 영상을 내보 내냐! TV를 두 눈 뜨고 못 볼 지경이었다.
“다른 나라도 아직 간간이 나오지만 한국은 특히나 더 잦으니까. 도담과 해연도 걸핏하면 너랑 함께 거론되잖아.”
“으응…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겠지.”
문득 장례식 영상이 떠올랐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게 나 자신인데도 보다가 울 뻔했다. 그래도 유현이는 칭호 덕분인지 내가 없어 쓸쓸하다는 것에 가까운 표정이었지만 예림이와 결이는 정말로 슬퍼하고 있었다. 몸집이 좀 더 커진 채 조용히 앉아 있던 피스는… 정말로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겠지. 시시오는 왜 저러나 싶으면서도 너무 우니까 미안해지고 말았다.
“학교까지 만들어지고 일상이 되어 잠잠해졌을 즈음이 가장 좋아. 최소 1년쯤 후에 말이지.”
“석 달도 긴데!”
“안전하게는 삼 년.”
“애들 두고 삼 년이라니! 내 동생 기다리다 못해 찾아오겠다!”
삼 년 후면 결이와 설이는 물론이고 별이까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것이다. 애들 생일도 세 번이나 지나가는 건데 그걸 한 번도 못 챙겨 주고… 그럴 수는 없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억지로라도 붙잡아 두고 싶어. 하지만.”
명우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제는 네가 여기 있는 것도 위험하니까.”
“다섯 번째 근원이 포식을 완전히 멈추었다는 걸 다른 초월자들도 알게 되었어요.”
하늘이가 명우의 말에 덧붙여 설명했다.
“그 원인으로 우리를 의심하고 있고요.”
“초월자가 여럿 죽어 나간 데다가 나라는 특이 케이스도 생겼고, 유사근원도 있었으니까 말이야. 최근 찾아오는 초월자들은 하나같이 그 일에 대해 떠보려고 들었어.”
명우가 걱정스럽게 나와 유빈이를 바라보았다.
“유사근원을 만들어 내려던 초승달은 초기 시스템 제작자들의 도움을 받은 어린 혼돈이 처치하고 유사근원은 그의 보호하에 들어갔다, 라고 알려져 있지만. 만에 하나 진실이 조금이라도 새어 나간다면 너는 물론이고 유빈이까지 노려지게 되겠지.”
“모두가요. 패륜아도 효도중독자도 중립인 초월자들도 전부요.”
절로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성현제를 노리고 덤벼들던 초월자들이 떠올랐다. 심지어 유빈이는 근원 그 자체였다. 언젠가 온전한 근원의 힘을 지니게 될, 하지만 아직은 연약한 어린 아기.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나마 유빈이는 초월자 중 상당수가 보호하려 들 수도 있어. 근원은 사라져서는 안 되며 포식하지 않는 창조주는 반가운 존재니까. 하지만 유진이 넌 아니야. 포식하는 근원은 아직 넷이나 더 남아 있어.”
“…그렇지.”
다섯의 근원 중 하나만이 양육자의 힘으로 태어나 포식을 멈추었다. 다시 말해 다른 넷은 그대로라는 뜻이었다.
“보나 마나 뻔하지. 유진이 너 하나만 나서 주면 모든 세계를 구할 수 있다, 라며 강요하려 들 꼴이. 세상을 구할 능력을 지녔는데도 보고만 있을 것이냐며 죄책감도 덮어씌우려고 할 거고.”
한숨이 흘러나왔다. 당연히 그러겠지. 그래서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나무에게도 유빈이에 대한 것은 감추었다. 근원들을 살피고 있는 어르신과 그를 보조하는 성현제에게는 근원의 정체를 알려 주었지만.
“다른 근원들에게 가서 무턱대고 내가 근원의 양육자란다, 새롭게 태어나렴! 해 봤자 될 것 같지도 않은데. 유빈이가 특이 케이스인 거지. 그래 봤자 들은 척도 안 하겠지만.”
칭호만 가졌다고 쉽게 되겠냐. 하지만 초월자들이 아, 그렇군요 하고 순순히 포기할 리 없었다.
“게다가 말이야, 무작정 태어나게 해서 어쩌라고. 한둘도 아니잖아. 무려 넷, 빈이까지 하면 다섯이야. 평범한 애들도 그 정도 수면 혼자 힘으로는 키우기 힘든데 근원의 아이들이잖아. 칭호 가진 건 나뿐이고 내가 키워야 하는데 그러다 제대로 돌보질 못해 엇나가기라도 하면? S급이 엇나가도 난리 날 판에 신이라고.”
“무시무시한 악신이 되겠네요!”
하늘이가 귀를 바싹 눕히며 무서워했다. 그럼 뭐, 세상 다 망하는 거지.
“내 칭호의 힘이 다섯을 동시에 성장시킬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어. 칭호도 신들이 아니라 신이니 한 명분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나도 세상 구할 수 있으면 구하고 싶은데 당장은 못 하지. 기다리고 있는 애들만 해도 셋이라 이미 넷인데. 여기에 넷을 더하면 여덟…….”
심지어 근원의 아이들은 갓난애였다. 내 팔은 두 개고 앞뒤로 메고 지고 해 봐야 넷이 다인데. 상상만으로도 까마득해졌다. 내가 애들을 좋아한다고 해도… 유치원생 셋에 갓난아기 다섯은……. 아니지, 이건 진짜 아니야.
“…미래를 위해서라도 유빈이가 최소한 초등학교 졸업은 하고 나서야 하나씩…….”
…그럼 난 대체 몇십 년을. 한 아이당 십 년 쳐도 50년이었다. 모든 세상을 구하기 위해 50년을 육아에 바쳐야 하는 건가. 환갑 넘어서 갓난애 안고 다녀야 해…….
“역시 내가 일일이 직접 키우는 건 아니야. 내 칭호로 도움 정도는 줄 수 있겠지만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나 혼자 어떻게 다 감당을 하냐.”
“애초에 유진이 네가 신경 쓸 일도 아니야.”
“…아예 신경 안 쓰기는 힘들고. 그 동네 사람들도 사람들이지만 어떻게 보면 유빈이 동생들인 셈이잖아.”
그러니 다들 무사히 태어나기를 바라지만 내가 직접적으로 도와주기는 역시 힘들었다. 어르신과 성현제가 다른 수를 찾아낸다면 좋을 텐데. 부디 절 육아로부터 해방시켜 주십쇼. 적어도 환갑 전엔 은퇴하고 싶다.
“아무튼 그래서 널 일찍 돌려보내려는 거야. 지금으로선 우리 세상이 가장 안전한 장소니까.”
명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반 년 정도는 더 숨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난 괜찮아. 조심할게.”
“서두른다고 해서 바로 집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유진이 넌 여전히 죽은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사람들은 너를 너로서 받아들이지 못해.”
우리 세상에 무사히 들어간다고 해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세상에서 살아 있는 한유진은 여전히 존재하지 못했다.
“넌 우리 세상에 속한 존재지만 한유진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서 들어가는 거야. 네 모습도 이름도 능력도, 모든 것이 원래 그대로겠지만 누구도 널 한유진으로 인식하진 못해, 살아 있는 한은.”
“응, 네가 몇 번이나 설명해 줬잖아.”
“…삼 년 정도면 곧장 집에 돌아가게 해 줄 수 있을 텐데. 사람들의 인식이 완전히 옅어지고 시스템으로 계속해서 정보를 수정해 주면 고생할 필요 없이 바로 집에 갈 수 있어.”
“맞아요, 허니. 잘 숨어 있으면 괜찮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최대한 버티다가 들키겠다 싶을 때 가도 되잖아요.”
둘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마워. 하지만 정말로 괜찮다니까. 그냥 내 존재를 우리 세상 사람들에게 새롭게 인식시켜 주면 되는 거잖아. 올해 내엔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삼 년이나 어떻게 기다리냐. 유현이 생일 전에는 집에 가야지. 명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혀를 쯧 찼다.
“그 인식을 위해서 사고 칠 게 분명하니 걱정이지.”
“빈이도 있는데 몸 사려야지, 진짜로.”
조금도 안 믿는 눈빛이로구만. 하지만 갓난애 두고 내가 무슨 사고를 크게 치겠어. 이번에는 진짜로 정말로 얌전히 살 거다.
“알았어. 이번 달 안으로 작업 끝낼 테니까 짐 싸 놓고 있어.”
“고맙다, 명우야.”
“허니이~ 아쉬워요~.”
“자주 만나러 올게.”
하늘이를 토닥이면서도 드디어 돌아간다고 생각하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비록 곧장 집에 들어가진 못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6월을 코앞에 둔 귀환 당일에.
“우리 세상의 한유진은 죽은 존재야.”
명우가 엄하게 경고했다. 이게 몇 번째 듣는 거더라.
“다시 말해 네가 새롭게 자리 잡기 전에 한유진으로 인식이 되면 네 목숨이 위험해져. 네 세계가 너를 죽은 존재로 만들려고 들 테니까.”
“어차피 우리 동네 사람들은 나를 나로서 인식하지 못하잖아.”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조심해. 특히 네 동생, 네 동생도 너를 알아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가능한 마주치지 마.”
“우연히 마주치면 팬이라고 인사 한 마디는─.”
“안 돼.”
“…멀리서 구경만 할게.”
해연 근처를 어슬렁거리면 말 한마디쯤은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담 사육소에 취직하는 것도 안 돼.”
“아니, 거기가 나한테 딱 좋은 자리인데!”
“안 돼. 각성자 교육 시설 취직도 안 돼.”
“하지만!”
“어차피 넌 자격증도 없잖아.”
“주방 보조라거나 하다못해 운전기사라도!”
“운전면허증도 없고.”
…가자마자 딸 거다, 뭐. 이젠 F급 취급 받을 테니 바로 따 둬야지. 사육소에 취직하면 애들도 슬쩍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도담 카페도 안 된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명우가 칼같이 잘라 냈다.
“…너무하네. 아니, 카페 알바 정도는 봐줘라.”
“차라리 방송계 쪽으로 가 봐.”
“웬 방송?”
“지금의 너를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노출해야 하잖아. 방송이 최고지. 요샌 개인 방송도 많이들 하니까.”
내가 살아 있는 한유진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살아 있는 나로서 우리 세상 지성체들과 가능한 많이 접촉해야 한다고 명우가 말했다. 다른 사람으로 여겨진다 해도 어쨌든 나는 한유진이니까. 사람들이 ‘나’를 살아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그 인식의 양이 한유진의 죽음을 넘어서게 되면 ‘나’는 다시 한유진으로 비춰지게 된다.
다시 말해 전 세계적인 유명인이 된다면 바로 그날 한유진으로서 집에 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안전하게 차근차근 너를 아는 사람을 늘리는 것도 괜찮겠지만, 일이 년쯤 지나면 네 죽음을 되새기는 사람도 극소수가 될 거고, 그럼 한 동네의 유명 인사 정도로도 충분할 거야.”
“…삼 년보단 짧긴 하네.”
진짜 개인 방송 같은 거라도 해 봐야 하나. 육아 방송은… 유빈이 노출시키긴 싫고. 삐약이를 내세울까. 아니면 역시 헌터 관련 콘텐츠?
“그래도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게 어디냐. 꿈 세계에서 막혀서 못 들어갈 땐 진짜 울 뻔했다.”
“뻔한 게 아니라 울고 있었잖아.”
“아니, 그때야! 솔직히 그럴 만했지!”
이대로 영영 못 돌아가나 싶었었다. 지금 생각해도 오싹할 정도였다. 갈 곳은 없지, 보은 시간은 얼마 안 남았지… 눈앞이 캄캄해졌었다.
“허니! 곧 꿈 세계로 갈 거예요! 빠뜨린 건 없죠?”
“응. 다 챙겼어.”
집에 바로 갈 순 없다 해도 이제 멀리서나마 애들을 볼 순 있다. TV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운이 좋다면 말 한마디 건네 볼 수도 있겠지.
아기 띠를 재차 확인하고 하늘이가 열어 준 문을 빠져나갔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고 오랜만에 들으니 그럭저럭 반갑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나를 맞이했다.
– 유진이 혀어어엉! 보고 싶었어요!
그래, 그래. 그동안 잘 있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