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866
에필로그 (9)
– 헉! 그새 넷째 생겼어요? 저 결설별 팬클럽도 가입했는데! 넷째는 이름이 뭐예요?
거대 꽃이 팔짝대다가 인간으로 변했다. 이제는 인간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구나. 솔직히 꽃이 더 어울려. 박하율이 나를 잘 따르긴 했지만 여전히 믿을 만한 놈은 아니라서 근원에 대해서는 알려 주지 않았다. 예전에도 비밀은 잘 지켰고 입 자체는 꾹 다물지 싶었지만 그러면서도 사고는 칠 거 같단 말이야.
“유빈이야. 한유빈.”
“빈아아아! 그럼 결설별빈이네요!”
“팬클럽은 또 뭐냐.”
“정보 수집과 형의 신격화를 위한 활동이죠!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인터넷 연결했거든요. 덕분에 살 만해졌어요! 아, 저도 형 동상 세웠는데!”
“아니 됐다.”
재빠르게 거절했지만 하율이 놈은 들은 척도 안 했다.
“바로 여기예요!”
“됐거든.”
“꽃밭도 만들었어요!”
“됐다고.”
“멋지죠?”
주위의 풍경이 뒤바뀌며 새파란 꽃들이 가득한 가운데 내 동상이 우뚝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신살창을 치켜들고 망토를 휘날리는 거대 동상의 몰골에 내 눈을 찌르고 싶어졌다. 시시오보다 더한 놈이 있었다니. 박하율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망할 동상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을 구한 영웅!”
…쪽팔려 죽겠다. 놈이 만세를 부른다. 절이라도 할 기세였다. 비둘기 두 마리가 화관을 물고 날아와 동상 머리 위에 씌웠다. 이어 구름을 가르고 빛이 내려와 찬란하게… 으음 아무튼 참 잘 지내고 있었구나, 하율아. 진짜 이놈 걱정만큼은 평생 할 필요가 없다니까. 동상을 못 본 척하기로 하고 고개를 돌렸다.
– 안녕, 귀여운 아이네~.
어느새 나타난 해파리가 내 주위를 빙그르 돌며 빈이를 들여다보았다.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아이를 가렸다. 저 녀석은 박하율과 달리 눈치가 빠르니까 조심해야지.
“여전히 해파리 모양이냐.”
– 귀엽잖아-♡
해파리가 하늘하늘 반짝거렸다. 그 모습이 모빌처럼 느껴졌는지 빈이가 손을 뻗었다. 에비, 안 돼. 위험한 거야. 화려한 생물에는 독이 있기 마련이란다.
– 이름도 그대로 쓰기로 했어. 마음에 들거든. 무해의 왕은 아니지만.
“그래도 돼? 다른 존재라고 하더니. 외모도 별 차이 없다고 들었는데.”
– 고작해야 이름이야. 이름까지 같은 쌍둥이라 해도 자신만의 삶을 산다면 결국 다른 사람이지. 스스로 흔들리지만 않으면 괜찮아.
촉수가 길게 뻗어 내 뺨을 톡 건드렸다. 그간 나름 촉수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소름이 좌악 돋았다.
– 너도 그럴 거잖니. 모두가 널 죽었다고 생각해도, 네가 계속해서 살아간다면. 결국 넌 살아 있는 사람이 될 거야. 무엇보다도 넌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당연히 포기 못 하지.”
어떻게든 살아 있는 나를 증명해서 집에 돌아 갈 것이다. 해파리가 인간형으로 변하더니 후후후 웃었다.
– 제일 쉽고 빠른 방법은 네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을 전부 없애 버리는 거야~.
“…무슨 미친 소리냐.”
– 기억을.
기억 말하는 거였구나. 하긴 루가 폐야는 그런 존재였으니.
“너한테나 쉽고 빠른 방법이지. 아니, 지금의 너한테는 어렵지 않나. 예전만큼의 힘은 없잖아.”
– 쟤가 도와주면 돼. 네 세상 모든 이들의 꿈이 연결된 세계의 주인.
“말씀만 하세요!”
박하율이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동시에 명우와 하늘이가 미간을 좁혔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이지만 표정은 비슷하다니까. 서로 닮아가는 것이겠지.
“유진아, 역시 저 녀석은 좀 위험한 거 같아.”
“맞아요, 허니. 꿈 세계를 맡겨 두기엔 둘 다 불안해요.”
– 삐약!
내 머리 위의 삐약이도 동의하듯 날개 하나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냐. 꿈 세계는 우리 세상의 보호막 같은 거니 없앨 수도 없고. 뒤통수쳐서 다시 재워 놓기라도 하고 싶구만.
“기억 몇 번 잃어 본 입장에서 그거 기분 더럽다. 조금이라도 말이야. 게다가 자칫했다가 아예 내 존재 자체가 지워질 수도 있을걸. 안 그러냐, 명우야.”
“가능성은 충분해. 그랬다간 유진이 넌 아예 돌아갈 수 없게 되겠지.”
“들었지? 둘 다 허튼짓하지 마. 남의 기억 건드리는 건 절대 금지다.”
“알았어요, 형. 걱정 마세요!”
– 흐응. 시시해~.
박하율은 곧장 대답했지만 해파리는 딴청을 피웠다. 재미있겠다 싶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성격도 그대로라니……. 결국 하율이에게 루가 폐야 잘 감시하라며 거듭 당부를 해두었다.
팔랑-
그때 금빛 나비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들었다. 박하율이 만든 건가 싶었는데.
“유진아!”
명우가 나를 잡아당기고 박하율이 앞을 막아섰다. 하늘이도 당황한 눈치였다. 뭐야, 뭔데.
“형! 밖에서 침입한 나비예요! 우리 세상과 연관 없으면 여기도 들어오기 힘든데!”
“뭐?”
타이밍 좋게 나와 빈이를 노리고 침입한 초월자인가 싶었다가, 또 다른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나와 명우처럼 외부에 나와 있는 우리 세상의 사람. 설마.
“첫째야.”
금빛 나비가 흐트러지며 인간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내가 예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척 반가운 얼굴이었다.
“어르신!”
어린 혼돈이 명우와 박하율 사이의 나를 바라보았다. 명우가 안도하며 옆으로 물러서고 박하율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고 보니 박하율은 어르신에 대해 잘 모르지. 만난 적 없었던가? 있더라도 지금처럼 어른 모습은 아니었을 테니까.
“형네 친척 어르신이세요?”
“비슷해.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어르신. 세 번째 근원으로 가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너무 멀어서 삐약이도 찾아가질 못한댔는데요.”
– 삐야.
다섯의 근원들은 일종의 원을 이루고 있다 하였다. 그 거리가 워낙 크다 보니 시스템 연결을 이용하는 초월자라 하여도 바로 옆의 근원이 아니고선 단번에 이동이 불가능했다. 다섯 번째 근원 옆의 네 번째 근원까지는 삐약이도 성현제 머리를 좌표 삼아 오갔지만 세 번째로 향한 후로는 가지 못했는데.
“실체가 아니다.”
혼돈이 한쪽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 사실이 더더욱 놀라웠다. 하늘이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르신께서 드디어 무력 외의 방식으로도 마력을-!”
“그딴 잡기 안 쓴다.”
어르신이 딱 잘라 말하고.
“잡일은 언제나 내 몫이지.”
어린 혼돈의 뒤쪽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현제였다. 거의 넉 달 만에 보는 얼굴이었지만 변한 곳은 하나 없었다. 익숙한 낯짝에 익숙한 코트 자락이 흔들린다. 삐약이가 포르르 날아 색바랜 머리 위에 내려앉는다.
“성현제 씨!”
“세 번째 근원의 세계에서 나를 노리던 초월자가 보상을 겸해 가르쳐 준 것이라네. 어르신께선 배우지 못하셨지만.”
“필요 없다 말했다.”
성현제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어르신이 혀를 쯧 찼다. 그간 편지와 엽서를 받아 보면서도 걱정이 되었었는데 이렇게 보니 잘 지내고 있구나 싶어졌다.
“어르신과 사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에요.”
“비록 심심하다시며 나를 미끼 삼아 초월자 낚시를 하셨지만 말이야.”
“잠시 볼일 보고 올 테니 얌전히 숨어 있으란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은 놈이 할 소리냐.”
“사흘씩이나 저를 혼자 두고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셨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당연히 예상하시고 오히려 기대하셨던 사고라 짐작하였습니다만.”
아니었던 걸까요, 하고 성현제가 순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음, 솔직히 어르신께서 잘못하신 거 같은데. 저 인간을 사흘씩이나 풀어 두다니. 나라 하나쯤은 말아먹고도 남을 시간이잖아.
“이놈 이것 봐라, 한마디도 안 지지. 오냐, 다음번에는 꼼짝 못 하게 거꾸로 매달아 놓고 가마.”
화기애애하네. 송 실장님께 이 사실을 전해 주면 조금쯤은 안심하실 텐데. 어르신이 명우와 박하율에게 물러나라 손짓했다. 이어 성현제의 마력이 나와 두 사람의 주위를 감쌌다. 소리를 막기 위함인 듯했다.
“성현제 씨 잡기가 많이 느셨네요. 하율이도 못 듣는 겁니까?”
“어르신의 허가를 받고 이곳을 어르신의 영역으로 만든 셈이니까 어지간한 초월자도 뚫을 수 없지. 오래 유지하진 못해.”
박하율이 거부하지도 않았기에 더더욱 정보가 새어나갈 일은 없다고 하였다. 어르신이 내가 안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구나.”
“예. 제 동생이 환생해 태어난 근원의 아이입니다.”
“아직은 특별한 감각은 느껴지지 않아. 평범한 것도 아니다만 원맥자의 싹 정도일까.”
“다행이네요. 한번 안아 보시겠어요?”
“…아니다.”
어르신이 짧게 고개 저었다. 복잡한 표정이 그의 얼굴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평생 막아 온 근원이 갓난아기가 되어 나타난 셈이니까 기분이 남다르시겠지.
“한유진 군을 닮은 듯하군.”
“그래요? 제 아이긴 하지만 이젠 피가 섞인 것은 아닌데.”
“혈연이 없다 하여도 가족은 닮아가는 법이니까. 더더욱 비슷해질 거라네.”
그럴까. 물론 어떤 모습이든 똑같이 사랑스럽겠지만. 인간 외의 종족으로 자라난다더라도 말이다. 모든 존재의 근원이니 유빈이에겐 성장의 한계도 제약도 없겠지.
“네 번째와 세 번째 근원은 어때요? 네 번째 근원이 모든 색의 보석이고 세 번째가 가장 깊은 샘이었죠.”
“네 번째 근원의 세계들에는 드래곤이 유독 많더군. 소영이가 좋아할 세계였어. 희귀 광물이 풍부한 곳이라 초월자들 또한 네 번째 근원에 가장 많이 머문다고도 하였고.”
“샬로스 씨 고향이 네 번째 근원일지도 모르겠네요.”
“근원에는 가까이 다가가 보지도 못했다.”
어린 혼돈이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빛이 너무 강해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근원이다. 일정 거리 안에 들어서면 시력은 물론 모든 감각이 마비되지. 두어 달 머무르며 방법을 찾아봤지만 마땅한 수가 없더구나.”
“초월자들도 많아 곧잘 방해해오곤 하였고.”
결국 네 번째 근원에서는 별다른 소득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네 번째 근원은 포식과 창조 활동도 비교적 왕성하다고 했다. 다른 근원에 비해 건재한 만큼 어쩌면 가장 마지막에 나타난 근원이 아닐까 하는 말도 있었다. 숫자야 초월자들이 임의로 붙인 거였으니까.
“저기, 어르신. 다른 근원들도 제 칭호를 적용할 수 있을 듯싶은데요. 그러니까 당장은 힘들고 빈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악!”
오랜만에 귀를 잡아채였다. 실체가 아닌데도 아프네요!
“첫째 넌 여전히 그 버릇을 못 고쳐선!”
“아니, 아악! 그게, 빈이 동생들, 악, 악! 사람들이-.”
“으아아앙!”
내가 비명을 지르자 깜짝 놀란 빈이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어르신이 당황하며 내 귀를 잡은 손을 놓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 혼돈의 모습에 눈물이 찔끔 새는 와중에도 웃음이 나왔다.
“빈아, 괜찮아, 괜찮아. 아빠 멀쩡해.”
“…그리 우니까 평범한 애 같구나.”
“평범한 애 맞죠. 옳지, 옳지. 뚝.”
성현제가 어느새 딸랑거리는 장난감을 꺼내어 흔들었다. 저런 건 어디서 구했대. 삐약이랑 놀아 주려고 준비해 둔 건가.
“흠. 아무튼 첫째 네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근원의 일을 먼저 해결한 입장에서 거들어 줄 수는 있겠다만 그뿐이야. 물론 네가 순수하게 하고 싶어서라면 마음대로 할 일이다만 책임감을 느껴서라면 관둬라.”
“솔직히 책임감을 아예 못 느끼긴 힘들어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니까요.”
나야 세상보다는 내 옆의 사람들이 우선이지만 그래도 누가 죽어가고 있는 걸 모른 척할 정도는 아니었다. 평범한 수준의 도덕심은 가지고 있으니까.
“저도 우리 애들이 더 중요하니까 전처럼 몸뚱이 내던지고 그러진 않을 겁니다. 다만 나중에 여유가 생긴다면 도와주고는 싶어요. 이젠 근원들이 아예 남도 아니고요.”
“남이다.”
“따지고 보면 빈이 가족들이고 그럼 제 가족들도 되는 거잖아요.”
어르신이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아니 그게요, 갓난애 넷이 굶주리고 있다고 생각을 해보시라니까요.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습니다만.
“그렇게 고생하고도 첫째 너는 변함이 없구나.”
“한유진 군이니까요.”
성현제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어르신의 눈총이 성현제에게도 날아갔다. 나와 빈이가 없었으면 뒤통수라도 후려쳤을 눈빛이었다.
“최소한 애 다 키울 때까지라도 얌전히 살아.”
“네. 그럴 생각이에요.”
진심으로 대답했건만 어르신도 성현제도 믿어 주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세 번째 근원은 변화가 있었다.”
“예? 정말이요?”
“희미하게나마 근원의 의지를 느꼈다. 역시 하나가 태어나니 나머지 넷에게도 영향을 준 모양이야.”
어르신이 시선이 울음을 멈춘 빈이에게로 향했다. 근원들은 서로 독립되어 있다. 각각의 세계들은 섞이지 않고 경계선을 두고 분리된 상태였다. 하지만 서로에게 영향을 아예 주지 않는 건 아닐 거라고 어린 혼돈과 등대지기는 추측했다.
비슷한 존재들 중 하나가 자아를 갖춘 존재로서 탄생했다. 자아를 지닌 어린 근원의 존재가 다른 근원들에게도 무언가 변화를 가져다주진 않을까.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 같습니까?”
만약 태어나기 전의 근원들이 미약하게나마 자아를 가진다면. 그로 인해 소통이 가능해진다면. 그럼 대화를 통해 근원들이 태어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양육자 칭호 외에도 새로운 방법이 분명 존재할 테니까.
“아직은 아니야.”
어린 혼돈이 짧게 고개 저으며 대답했다.
“다만 가능성은 보이고 있다. 그러니 첫째 너도 다른 근원들에겐 신경 쓰지 말고 애와 함께 네 몸이나 잘 돌봐라. 그게 다섯 번째 근원의 세계들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니.”
“그 말씀 해주시려고 이렇게 오신 거죠?”
“겸사겸사.”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빈이도 한번 안아 보시라 재차 권했지만 어린 혼돈은 되레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섰다.
“아직 너무 작아.”
“힘 조절은 누구보다도 잘하시잖아요.”
“다음에. 돌이라도 지나거든.”
“돌잔치 때 오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미리 감사합니다~.”
그때 다 같이 있으려면 역시 노력해서 올해 내로 집에 돌아가야지.
‘세 번째 근원이라.’
시그마가 머물렀던 곳이면서 인어여왕의 고향이기도 했다. 수속성의 근원이다 보니 예림이도 떠올랐다. 예림이의 정령인 산호도 그곳에서 왔으니까. 세 번째 근원이 태어난다면 어쩌면 예림이나 인어여왕과 비슷한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