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29
ⓒ 목마
서량-3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백설은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주면서 라덴을 두들겨 팼다. 유성에게도 실컷 두들겨 맞은 적이 있었지만, 그나마 인도적인 차원의 고통을 주었던 유성과는 다르게,
백설의 폭력은 야만적이었다.
격의 차이. 폭력의 차이. 백설에게 두들겨 맞는 동안, 라덴은 그것들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안 된다. 레벨 90. 발할라를 즐기는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상위권이라고 할 수 있는 레벨이다. 레벨 뿐만이 아니라 장비 스펙도 최상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검은 수도 사원과 붉은 고대 유적에서 싸우는 동안 얻었던 악세사리로 장비 파밍을 이미 끝내 두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대가 안 된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했다. 공격에 전부 회전격을 넣었고, 양자택일도 사용했다. 백호 무술관에서 배운 스킬들과 무투가의 스킬, 고유 특성, 장비의 특수 스킬. 그것을 모두 사용해서 싸웠는데도.
“흠.”
해가 지고 있었다. 붉게 변한 하늘을 올려 보던 백설은 뺨에 묻은 피를 쓱 닦아냈다. 백설의 피는 아니다. 라덴의 피다. 체력 회복을 빠르게 하는 유혈 특성이 이 경우에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
피를 잔뜩 흘리고, 팔 다리가 몇 번인가 뜯겨졌다. 죽지는 않았다. 슬슬 죽겠다 싶을 때마다 백설이 공격을 거두고, 포션을 먹으라고 시켰기 때문이다.
“많이 컸군.”
자신이 쏟아낸 피 웅덩이 속에서 엎어진 라덴은, 석양을 등지고 서서 그런 말을 내뱉는 백설을 올려 보았다. 뭔가 폼을 잡고 그럴 듯한 말을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이 경우에 도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 줘야 할지 알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까”
통증은 거의 없다. 플레이어는 통증을 제한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력감은 진짜였다. 무투가 랭킹 1위, 전체 랭킹 6위인 류가미를 쓰러트렸다. 나름대로 압도… 했다고 생각한다. 류가미가 전력을 다해서 덤볐을 때에도, 라덴은 상당히 여유가 있었었다. 흑백 레아스의 특수 스킬인 백색 거울도 사용하지 않았고, 아카이드 숲의 고독한 정복자 타이틀에 달린 특수 스킬인 늑대갈기도 사용하지 않았다. 셰도 케이프의 그림자 걷기와 그림자 뛰기도 사용하지 않았고, 광란 중첩에도 여유가 있었다.
전사경. 회전격을 처음부터 사용했더라면 조금 더 빨리, 여유롭게 끝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 않았던 것은 간단한 이유였다.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강해졌어. 조금은.”
석양을 등진 백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력감이 몸을 짓누른다. 격의 차이, 폭력의 차이.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백설은… 백설은. 적어도 라덴이 직접 이 몸으로 느꼈던 것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무식하며 야만스러운 폭력의 집합체였다.
“내가 너보다 몇 백 배는 더 강할 뿐이지.”
탁. 백설은 무복의 허리띠를 조이면서 말했다. 라덴은 헛웃음을 흘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HP가 빠르게 회복되고는 있었지만, 무력감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어땠습니까”
“뭐. 감상이라도 말해달라는 거냐”
“이 정도로 두들겨 팼으면 뭐라도 느꼈을 것 아닙니까”
“너는 그렇게 두들겨 맞으면서 아무 것도 못 느꼈냐”
“관주님이 빌어먹게 강하다는 것은 잘 느꼈습니다.”
“그걸 이제야 알다니, 너도 참 멍청하군.”
백설은 쯧쯧 혀를 차면서 손을 털었다. 손을 흠뻑 적셨던 핏물이 후둑거리며 떨어졌다.
“센스가 좋아. 배우는 것도 빨라. 반사신경도 좋아. 힘과 속도가 마음대로 바뀌던데, 그걸 컨트롤하는 것도 뛰어나. 변칙성도 있어. 솔직히 네가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왔을 때에는 놀랐거든. 공중을 뛰어다니는 것도 좋았지.
공방의 밸런스도 좋고 회피와 반격도 깔끔해. 강기를 조절하는 것도 좋았고. 백호 무술관의 스킬을 펼치는 것도 좋았어.”
백설이 빠르게 말했다. 마치 이미 생각해 두었던 것처럼. 라덴은 입을 반쯤 벌리고서 백설이 하는 말을 들었다.
“과감하면서도 무리한 모험은 걸지 않아. 맞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도 않아. 고통이 없어서일까 흠,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군. 역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것에도 망설임이 없어. 잔혹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상대를 때릴 줄 알아.
허초를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상대를 압박할 줄도 알아. 당장을 보면서도 큰 그림을 본다. 네 승리라는 그림을.”
이것은 극찬인 것일까. 라덴은 잠자코 백설의 말을 들었다. 백설은 벌리고 있던 입을 다물고서 턱을 어루만졌다.
“…단점은”
“없어.”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하는 말에 라덴의 입이 벌어졌다.
“넌 강해. 싸움에 관해서 타고났을 정도야.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강해. 너를 처음 제자로 들였을 때에도 재능이 있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재능이 있는 정도가 아니군. 일 년 사이에 이만큼이나 강해지다니, 플레이어란 참 불공평하다니까.”
“단점이 없다고요 그런데 왜 진겁니까”
“왜기는. 내가 너보다 강하니까지.”
왜 당연한 것을 묻고 그래 백설의 질문에 라덴은 할 말을 잃었다. 멀찍이서 싸움을 보고 있던 청아와 호량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백설은 우두커니 서있는 라덴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말했다.
“저녁이나 먹자.”
“…아… 네.”
그 말에 라덴은 자각했다. 청아의 저녁 식사. 라덴이 뿌린 씨앗이 재앙이 되어 라덴의 목구멍으로 기어들어올 때가 목전이었다. 라덴은 꿀꺽 침을 삼키며 말했다.
“저, 저녁은 제가 만들겠습니다.”
“뭐”
“저… 점심은 청아 사형이 만들었으니까. 오랜만에 막내답게, 저녁 당번은 제가 할게요.”
라덴은 필사적으로 그렇게 말했다.
백설에게 두들겨 맞는 것보다 청아의 음식을 먹는 것이 더 싫었기 때문이다.
이틀 정도는 여유롭게, 발할라를 막 시작했을 때처럼. 그런 기분을 느끼면서 서량에서 이틀을 보냈다. 이틀 동안 3월이 끝났고, 하루가 더 지나서,
4월 2일.
“유의가 알라베스 산을 넘은 모양이야.”
백호 무술관을 떠나려고 마음먹었을 때, 백설이 그런 말을 해 주었다.
“예”
“편지가 왔어. 알라베스 산을 넘어서 키아미르라는 도시에 도착한 모양이야. 무풍은 볼 일이 있다면서 아직 떠도는 중인 것 같고. 흠, 키아미르라… 아는 도시냐”
“…모릅니다. 알라베스 산을 넘은 플레이어는 여태까지 한 명도 없었어요.”
여전히 알라베스 산은 플레이어의 발을 허락하지 않았다. 알라베스 산을 중심으로 뻗어진 블랙 벨트도 해금되지 않았다. 백설은 라덴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머리를 갸웃거렸다.
“표정이 왜 그러냐”
“…저도 알라베스 산을 넘어야 하거든요.”
황혼의 추적자. 황혼이 공개되고서 시즌 두 개가 지났지만, 최초에 황혼 스토리가 추가된 이후로 히어로 사는 시즌 업데이트에 추가 힌트나 스토리를 언급하지 않았다.
“나도 슬슬 바깥 구경이나 해보고 싶은데. 도와줄까”
호량이 물었다. 조금, 라덴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호량의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백호 무술관에서 지낸 이틀 동안, 백설 뿐만이 아니라 청아, 호량과도 대련을 겪었다.
호량은 강했고, 청아 역시 강했다. 지금의 라덴보다 더. 유의가 알라베스 산을 넘는 것에 성공한 것처럼, 호량이 도와준다면 라덴도 알라베스 산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괜찮습니다.”
생각 끝에 라덴은 그렇게 대답했다. 미련한 대답이라는 것은 라덴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편하게 알라베스 산을 넘는 방법이 생겼는데, 라덴 본인이 그것을 걷어 차 버린 것이다.
“왜”
질문한 것은 백설이었다. 라덴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뺨을 긁적거렸다.
“…유의 사형 혼자서 알라베스 산을 넘은 거잖아요 전 유의 사형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도 백호 무술관의 제자니까, 혼자서 넘어보고 싶어요.”
“좋아.”
라덴의 대답에 백설이 씩 웃었다. 호량도 낄낄거리면서 웃는 소리를 냈다.
“도와 달라고 했었으면 네 엉덩이를 걷어 찼을 거야.”
“내가 호량 사형 성격 모를 것 같아요 엉덩이 걷어 차일까봐 싫다고 한 겁니다.”
라덴이 투덜거리면서 대답했다. 청아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허리에 손을 얹었다.
“우리 막내가 참 잘 컸다니까. 이제는 충분히 남자다운 걸.”
“…예전부터 남자는 남자였는데…”
“마인드의 문제야, 마인드.”
인정받았다는 뜻이겠지. 라덴은 피식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보고겸, 인사할 겸 백호 무술관에 잠깐 돌아왔고… 그 걸음걸이의 보상을 얻었다는 기분이었다.
“다음에는 지금보다 더 커서 와라.”
백설의 말에 라덴은 씩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슬슬 서량을 떠날 때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황혼의 추적자 관련 퀘스트를 추적하면서, 다른 퀘스트를 찾아 볼까. 라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백호 무술관의 문으로 향했다.
“그러면,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그런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대문을 열었다. 등 뒤에서의 배웅을 듣고, 대문을 닫았을 때.
“응”
세상이 뒤집어졌다.
콰당탕! 갑작스러운 공간 이동에 라덴은 땅을 뒹굴 수밖에 없었다. 신음을 흘리면서 몸을 일으키기 전에, 라덴의 눈에 방 안의 풍경이 비추었다. 조명이 어둡다. 뭔지 알 수 없는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언젠가 맡아 보았던 냄새였다. 사실 추리할 필요도 없었다. 라덴이 알고 있는 인물 중에서, 이렇게 갑작스러운 공간 이동을 펼치면서 라덴을 납치할 인물은 한 명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라포니아님…!”
“꼴사나운 등장이로군.”
당신이 이렇게 한 주제에…! 라덴은 속에서 끓는 욕지기를 삼키면서 몸을 일으켰다. 아라포니아는 처음 마났을 때와 같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알 수 없는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갑자기 뭡니까…!”
“말투가 건방져. 몇 달 동안 만나지 않았다고 해서 네 주제를 잊은 것이냐”
언짢다는 듯이 말하고 있지만 아라포니아는 웃고 있었다. 라덴은 속내를 알 수 없는 아라포니아의 웃음을 보면서 크게 숨을 삼켰다.
“그럴 리가 없죠, 다크 세인트님.”
“눈치가 빠른 것이야 말로 네가 타고난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일 거야.”
짝짝. 아라포니아가 박수를 치면서 이죽거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람 라덴은 한숨을 내뱉으면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까 몇 달 동안 부르지도 않으셨잖아요.”
“심부름거리가 없었기에 부르지 않았을 뿐.”
“그렇다면 이번에는 심부름거리가 있다는 거네요.”
“그렇지. 역시나 눈치가 빠르구나.”
여기서 파악하지 못하는 쪽이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이 아닌가. 라덴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턱을 괴었다. 아라포니아는 빙글거리며 웃는 얼굴을 하고서는 곁에 두었던 두개골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너도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나는 언제나 너를 보고 있단다.”
“…별로 기분 좋은 말은 아니네요.”
“네 기분 같은 것을 이 몸이 신경 쓸 이유는 없지 않느냐. 흐음, 백호 무술관이라. 네가 그곳에서 실컷 두들겨 맞는 것도 보았지.”
“…제가 맞는 것을 보는 것이 재미있습니까”
“무료함을 달래기에는 제법 괜찮은 유흥거리였다. 백설. 상당히 강하더구나. 서량에는 청성 말고 대단한 위인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세상은 넓어. 거짓으로 만들어진 세상이라고 해도.”
아라포니아는 무엇이 우스운 것인지 낮은 웃음소리를 냈다.
“알라베스 산을 넘는다. 그래, 너는 그런 퀘스트를 가지고 있었지. 마침 잘 되었구나. 내가 너에게 주려는 심부름도 알라베스 산을 넘으라 하는 것이었으니.”
“…직접 가시는 편이”
“이 몸은 불가능이 없을 정도로 위대하지만,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들… NPC들이 그런 것처럼 귀찮은 제약에 묶여 있어서 말이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거야.”
아라포니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자그마한 쌈지 주머니가 아라포니아의 손바닥 위로 올라갔다.
“이것을 가지고 알라베스 산을 넘어, 제노미아로 가거라. 그곳에 있는 대신전의 주교 로만에게 이것을 가져다주고 공양하라 하여라.”
“…그게 뭔데요”
“안을 열어 보는 것은 네 자유다. 하지만 버려서는 안 돼. 잃어버려서도 안 돼. 알고 있을 테지 내가 너에게 심부름을 부탁하는 것은 내가 너에게 가진 신뢰의 증거. 네가 실패한다면… 신뢰는 사라지겠지.”
“보상은”
신뢰가 어쩌고 하여도 퀘스트는 퀘스트. 보상은 확실히 받아야 한다. 라덴의 직접적인 질문에 아라포니아는 빙그레 웃었다.
“너도 슬슬 레벨이 되었으니, 이것은 어떠냐.”
“…무슨”
“네가 원할 때, 한 번에 한해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시즌 던전의 위치를 알려주도록 하마.”
아라포니아의 말에 라덴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시즌 던전에 대한 정보. 그것은 발할라 유저, 특히나 매 시즌마다 던전 탐색에 전력을 기울이는 최상위 랭커와 길드들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정보였기 때문이다.
발할라는 일 년에 네 번, 네 개의 시즌에 돌입할 때마다 열 개의 던전을 업데이트한다. 일 년에 사십 개의 던전이 추가되는 것이다. 하지만 발할라의 세계는 원체 넓고, 던전의 입구가 대놓고 드러난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새 시즌에 열 개의 던전이 모두 공략되는 경우는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다.
“…콜.”
망설일 것도 없이 라덴은 아라포니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서량-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