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30
ⓒ 목마
입산-1
라덴이 받아들일 것임을 알았기에, 아라포니아는 빙그레 웃었다. 지금 라덴의 레벨은 90. 시즌 던전에 도전하기에는 부족한 레벨이기는 했지만, 플레이어들이 발견하지 못한 이전 시즌의 던전이라면 도전하기에 충분한 레벨이다.
하지만 라덴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전 시즌의 던전이 아니었다. 기왕 확실한 정보를 받아 던전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면, 이미 철이 지난 이전 시즌의 던전보다는 새로운 시즌에 공개되는 던전의 위치에 대한 정보가 훨씬 값어치가 높다.
‘인스턴트 던전이라면 모를까. 일반 던전이라면 입장하는 것에 레벨 제한은 없으니까.’
라덴도 최신 시즌 던전에 입장해 본 경험은 있었다. 세하라의 왕릉. 아라포니아의 첫 심부름을 받아, 불칸과 흑접이 공략 중이던 세하라의 왕릉에 몰래 들어갔던 적이 있다. 왕릉의 몬스터와 직접 싸워 본 적은 없었지만, 보스 몬스터가 아닌 던전의 일반 몬스터라면 라덴이 아주 잡을 수 없는 정도는 아니다.
‘정 안 되면 파티를 꾸리면 돼.’
다행히 라덴의 주변에는 라덴과 함께 파티를 해 줄 만한 플레이어들이 제법 많았다. 함께 레벨 90을 찍었던 고정 파티원들도 있었고, 그들을 제외하고도 라덴은 쟁쟁한 플레이어들과 안면을 터두었다. 현실에서도 인연을 맺은 새턴의 레벨은 현재 96이었고, 알케나는 라덴 이상으로 폐인처럼 발할라를 해대는 덕에 레벨 84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한국 랭킹 1위와 3위인 루벡과 루아노스. 전체 랭킹 1위인 레이크까지. 물론 그들은 각자 길드를 가지고 있기에 라덴과 함께 파티 플레이를 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제한을 가지고 있겠지만, 정 안 된다면 그들에게 지원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
‘역으로 정보를 팔던가.’
최상위 랭커와 길드들이 시즌 던전에 목을 메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즌 던전. 그곳에서는 여태까지의 던전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들이 등장하고, 당연히 그들은 여태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장비 아이템을 드랍한다. 하위권 플레이어들에게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지만, 레벨 차이가 크게 나지 않고 변동이 적은 최상위 랭커들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아이템을 손에 넣느냐는 넣지 못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하다.
레벨과 랭킹의 변동이 적고, 이미 장비 세팅은 파밍이 다 끝난 상태이기에 신규 아이템이 간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간절한 것은 간절한 것. 바란다고 해서 모두 마음처럼 된다면 세상에 자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3개월에 한 번씩 공개되는 신규 던전 10개. 그 던전을 두고 경쟁하는 최상위 랭커의 수는 몇 십 명이 넘는다. 랭킹 10위권 안의 최상위 랭커 뿐만이 아니라, 신규 던전을 두고 경쟁하는 랭킹의 순서대로 200명 정도. 거기에서 길드까지 더한다면 몇 백 명의 플레이어들이 10개의 던전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고작해야’ 몇 백 명의 플레이어들이 이 드넓은 발할라 대륙을 뒤지면서 던전을 탐색하는 것이다. 매 시즌마다 발견되지 않는 던전이 생기는 것도 이해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새 시즌 던전의 위치를 판다면… 어우, 도대체 얼마인지 감도 안 잡히네.’
사실 라덴은 더 이상 돈에 구애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 발할라 내에서 얻은 골드를 현금화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버추얼 피버에서의 방송으로 루벡에게 배분받은 수익과, 아스가르드에서 들어오는 수익.
하지만 돈을 떠나서, 신규 던전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큰 무게를 가지고 있는지는 라덴도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망설임 없이 아라포니아의 심부름을 받아 들인 것이다. 어차피 라덴은 알라베스 산을 넘어야만 했고, 황혼의 추적자 퀘스트가 가리키는 위치 역시 알라베스 산 너머에 있는 제노미아라는 도시다.
‘겸사겸사 하도록 하지 뭐.’
루아노스의 심부름도 제노미아의 대신전에 있는 주교 로만을 만나라는 것이었으니, 경로 상 꼬이지도 않는다.
“시간 제한 있나요”
“없다.”
라덴의 질문에 아라포니아는 빈약한 가슴을 활짝 펴면서 대답했다. 문득, 라덴의 머릿속에 루아노스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헤이드룬에서 보았던 루아노스의 사복.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던 그 파괴적인 복장과 몸매에 비해서 아라포니아의 몸매는 이 얼마나 가냘픈가.
“뭔가 무례한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그럴 리가요.”
라덴은 아라포니아가 마음을 읽을 수는 없다는 사실에 안심하면서 표정을 관리했다. 아라포니아는 그런 라덴의 얼굴을 뚱한 표정으로 보더니 머리를 끄덕거렸다.
“시간제한은 없지만, 기왕이면 빠르게 가주었으면 좋겠구나.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도움이 필요하느냐”
“제가 뭐하고 있는지 다 보셨다면서요”
라덴은 무릎을 털면서 몸을 일으켰다.
“안 도와주셔도 됩니다.”
“자신감은 좋군.”
아라포니아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라덴은 히죽 웃으며 몸을 돌렸다.
사실 이렇게 자신감을 내비칠 정도로 쉬운 일은 아니다. 알라베스 산은 현재 발할라 내에 존재하는 사냥 필드 중에서 최고의 난이도를 가진 곳이다. 신규 던전을 공략하는 최상위 길드들마저 몇 번이나 고배를 마신 곳이며, 길드를 갖지 못한 라덴이 알라베스 산을 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꼭 그렇지도 않지.’
물론, 라덴이 생각이 없어서 알라베스 산을 넘겠답시고 날뛰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있으니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우선, 라덴은 알라베스 산을 오르기 위한 준비를 갖추었다. 넘치다 못해 썩어나는 투기장 VP를 대량 사용해서 엘릭서를 구입했고, 전반적인 상태이상에 대응하기 위한 관련 약물도 대량 구입했다. 그 외에 산에서의 노숙을 위한 키트들도 구입했고, 식량과 물도 부족함 없이 구입했다.
“알라베스 산으로 가겠다고”
대장장이 알버트는 라덴의 말을 듣고 헛웃음을 흘렸다. 알라베스 산이 얼마나 악명 높은 곳인지는 NPC인 알버트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 방송 컨셉이 자살 방송인가 봐요”
“재수없는 소리 하지 마라.”
페페로의 질문에 라덴은 머리를 세차게 저으면서 대답했다. 확실히 페페로가 저렇게 말할 만도 했다. 알라베스 산, 그 불모지를 파티도 없이 혼자서 가겠다는 것이니까.
“내버려 둬라. 자기가 가겠다는데 누가 말리겠어 가서 재밌는 제작 소재 얻으면 나중에 그거나 들고 와 봐. 알라베스 산의 제작 소재는 구하기 힘드니까. 가지고 오면 싸게 만들어 주지.”
“나중에 무르지 마십쇼.”
“무르기는 왜 물러”
가지고 있는 장비 아이템을 모조리 수리했다. 라덴에게는 장비 아이템의 내구도를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는 ‘태세정비’ 스킬이 있었지만, 태세정비 스킬은 사흘에 한 번 착용한 아이템의 내구도를 절 반 회복시키는 스킬이다. 태세정비 스킬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보험으로 두는 편이 낫다.
“그런데, 왜 알라베스 산으로 가는 건가요”
페페로가 머리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라덴은 페페로를 믿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솔직하게 대답해 줄 수는 없었다.
“산이 그곳에 있으니까.”
그래서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그럴 듯한 명언을 읊어 주었다. 그 말에 페페로가 헛웃음을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미친놈.”
맞는 말이라 부정할 수는 없었다.
본격적으로 알라베스 산으로 오르기 전에, 라덴은 자신이 알고 지내는 랭커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알라베스 산을 혼자서 오르겠다는 라덴의 말에, 라덴이 알고 지내는 랭커들은 모두 다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너 미쳤어
루아노스와 루벡, 레이크는 라덴을 말리려 했지만, 라덴은 그들의 만류를 듣지 않았다. 한 번쯤 도전해야 하기는 했던 것이었고, 사형인 유의가 혼자서 알라베스 산을 넘었다는 말이 라덴에게는 꽤나 자극이 된 탓이었다. 라덴이 고집을 부리자 랭커들은 결국 라덴을 말리는 것을 포기했다.
루아노스와 루벡은 알라베스 산에 가본 적이 없었기에 조언해 줄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레이크는 알라베스 산에 도전해 본 경험이 많았다. 랭킹 1위, 레이크가 이끄는 파라곤 길드 역시 알라베스 산을 넘기 위해서 몇 번이나 도전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라덴은 레이크를 통해서 알라베스 산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산의 입구라 할 곳은 없었지만, 상위 랭커와 길드들이 서로 협력을 맺어 만들어낸 공략 루트. 그를 통해서 레이크는 알라베스 산에 출현하는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는 파악해 두고 있었다.
[하지만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알라베스 산은 여태까지 공략되지 않은 곳이니 만큼, 상위 랭커와 길드들이 주의를 두고서 관리하고 있거든요. 길드 소속이 아닌 라덴님이 그 루트를 사용한다면, 그들이 라덴님을 사냥하려 들 지도 모릅니다.] [텃세가 심하네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래도 시기 상으로는 나쁘지 않군요. 시즌 초기다 보니까 어지간한 길드들은 시즌 던전을 탐색하기 위해 주력 인원을 빼두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주의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주력 인원을 빼지 않은 길드들이 있거든요.]라덴은 레이크의 경고를 새겨들었다. 괜히 다른 길드, 다른 랭커와 마찰을 빚어서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알라베스 산의 공략에 목을 매고 있는 길드는 셋이다. 랭킹 4위의 프리스트 에클레어가 이끌고 있는 홀리데이. 랭킹 7위의 검사 자카이드가 이끌고 있는 헌터즈. 랭킹 11위의 궁수 잭헤드가 이끌고 있는 애로우즈.
도움이 되는 충고였다. 혼자서 알라베스 산을 오르려고 마음먹은 이상,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특히나 레이크가 말한 것처럼, 산지에서 다수의 궁수들과 충돌하게 된다면 상황은 최악이 된다.
‘조심해야지.’
레이크가 경고했던 것처럼 랭커들의 루트를 사용할 수는 없다. 몬스터에 대한 정보만 머릿속에 넣어두고, 라덴 본인이 직접 새로운 루트를 개척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산은 넓으니까. 설마 다른 플레이어들과 부딪히겠어’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라덴의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라덴은 그 불길한 생각을 애써 떨쳐냈다.
레이크와의 귓속말을 끝내고서, 라덴은 머리를 들었다. 거대한 산이 라덴의 앞에 있었다.
왜 산을 오르는가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에.
미친놈, 이라는 반응을 들었던 그 말을 다시금 새긴다. 라덴은 숨을 삼키면서 발을 뻗었다. 준비는 충분히 했다. 주저할 이유는 그 무엇도 없다.
지난 번에는 유성과 함께 산을 올랐었다. 선두에 섰던 유성은, 다가 오는 몬스터들을 모조리 격퇴하면서 라덴과 알케나가 몬스터와 마주할 수 없게 만들어 주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조력자는 없다. 라덴 혼자서, 알라베스 산을 넘어야 한다.
“쫄지 마.”
라덴은 산을 노려보면서 중얼거렸다. 고작해야 산일뿐이다. 겁을 먹을 이유는 없다. 라덴은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서,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수풀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라덴을 환영해 주었다.
입산-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