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31
ⓒ 목마
입산-2
혼자서 사냥터를 떠도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판타지아 때에도, 그리고 발할라를 시작한 초기에도. 라덴은 파티 플레이를 거부하고서 우직하게 솔로 플레이를 해 왔다.
그러다가 몇 달 전부터 인스턴트 던전을 돌기 위해서 파티 플레이를 하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한 파티. 경험치와 골드를 비롯한 전리품의 독점은 불가능했지만, 파티 플레이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다.
“빌어먹을.”
알라베스 산에 들어오고서 사흘.
라덴은 왜 이 산이 단 한 번도 플레이어에게 공략되지 않았는가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유성과 함께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르다. ‘길을 알고 있는’ 유성은 산 속에서 조금도 헤매지 않고 라덴과 알케나를 악희의 봉인지로 안내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길잡이가 없는 지금의 라덴은
‘방향감각이 엉망이야.’
단순히 위로 오르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사가 높은 곳으로 계속해서 간다면 산을 넘을 것이다. 쉽게 생각했다. 현실의 육체라면 모를까, 발할라라는 게임 속의 육체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잘 지치지도 않고, 빠르게 뛸수 있고, 높이 도약할 수 있다.
간단한 일이야. 그렇게 생각했고, 그 생각은 이틀만에 부정되었다. 분명 경사진 곳으로 오르고 있는데…
‘헤매고 있어. 뭐야 이게’
방향 감각은 엉망이고, 분명 경사진 곳으로 올랐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아래로 내려와 있다. 풍경은 계속해서 변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전에 보았던 풍경을 보고 있다. 아니, 방향 감각 뿐만이 아니다. 모든 감각이 엉망이다. 라덴은 욕설을 뱉으면서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에 대한 경고는 이미 들었었다. 레이크가 충고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알라베스 산에 들어서고,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감각이 망가진다고. 그래서 그들은 집단으로 움직이며, 장소를 일일이 체크해 가면서 길을 찾아왔다고.
‘감각이 엉키는 것은 산에 들어온 초반이 더 그래.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감각이 알라베스 산에서 적응한다고 했어.’
최상위 랭커인 에클레어와 자카이드, 잭헤드가 시즌 던전을 포기하면서까지 알라베스 산에 붙어 있는 것이 그 이유 때문이다. 기껏 산 속에서 감각을 적응시켰는데, 시즌 던전을 잡겠답시고 산을 나갔다는 적응시킨 감각이 되돌아 가 버린다. 이 넓은 대륙에서 시즌 던전을 반드시 찾는다는 보장도 없으니, 그들은 아예 시즌 던전을 포기하고 알라베스 산을 공략하는 것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니미. 하긴, 쉬울 리가 없지.”
라덴은 투덜거리면서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손을 내렸다. 혼자서 사냥터를 떠도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지만, 이 산에서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차라리 레이크에게 들었던 루트로 가볼까 아니, 그곳에 갔다가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시비가 붙을 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안 좋은 상황을 더 최악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살기가 감지되었습니다!]전반적인 감각이 망가졌어도, 포식 감지 특성만은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덴은 즉시 몸을 일으켰다. 사흘 동안 이골이 날 정도로 익숙해 졌다.
카아아!
울음소리와 함께 등 뒤에서 예리한 참격이 날아온다. 라덴은 크게 몸을 비틀면서 공격을 피해냈다. 섀도 맨티스. 알라베스 산에서 출현하는 몬스터다. 무리 생활은 하지 않는다. 놈들은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오면서 날카로운 갈고리 팔로 먹잇감을 사냥한다. 거리를 벌린 라데은 섀도 맨티스를 노려보았다. 거무튀튀한 갑각을 가진 거대한 사마귀라 라덴을 향해 갈고리를 들어 올렸다.
“난 벌레가 싫어.”
라덴은 그렇게 내뱉으면서 주먹을 쥐었다. 바퀴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라덴은 바퀴벌레에게 호의를 품는 극소수의 인간은 아니었다. 방 안에 벌레가 나온다면 기겁하면서 잡는다. 파리채를 휘두르던가, 신발을 휘두르던가, 둘둘 만 신문지를 휘두르던가.
지금의 경우에는 주먹을 휘두른다.
꽈앙! 라덴이 전력을 다해 내지른 주먹이 섀도 맨티스의 가슴을 가격한다. 회전격을 섞어 내질렀음에도 섀또 맨티스는 일격에 죽지 않았다. 알라베스 산은 현재 발할라에서 존재하는 최고 난이도의 던전이다. 인스턴트 던전이 아님에도 이곳에서 출현하는 몬스터는 인스턴트 던전의 정예 몬스터를 아득히 능가한다.
체력까지는 아니지만, 공격과 방어력은 몬스터 한 마리 한 마리가 보스 급에 필적한다.
섀도 맨티스가 무리 생활을 하지 않는 개체라는 것은 라덴에게 있어서 행운이었다. 이런 놈이 다섯 마리 정도 덤빈다면 라덴이라고 해도 꽁무니를 빼고 도망칠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한 마리라면.’
라덴의 발이 스텝을 밟았다. 순식간에 내지른 연타가 섀도 맨티스의 가슴을 갈긴다. 네 번. 처음에 날린 일격을 포함한다면 다섯 번의 공격을 박아 넣었음에도 섀도 맨티스는 죽지 않는다. 오히려 놈은 성난 소리를 내지르면서 양 팔을 라덴을 향해 휘둘렀다.
집중.
섀도 맨티스의 칼날이 라덴의 몸을 비껴 지나간다. 공격력, 방어력, 속도. 섀도 맨티스는 라덴이 잡아 왔던 인스턴트 던전의 보스 몬스터와 비교해도 큰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다.
하지만 보스 몬스터는 아니다. 까다로운 스킬을 사용하지도 않고, 체력 자체는 그리 높지 않다. 바짝 붙은 라덴은 활짝 펼친 손을 섀도 맨티스의 가슴으로 뻗어냈다.
쩌엉!
커다란 소리와 함께 섀도 맨티스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그렇게 거리가 벌어진 순간, 라덴의 주먹이 섀도 맨티스의 가슴에 꽂혔다. 파쇄권과 회전격을 동시에 먹여 주었다. 아무리 방어력이 높다고 해도 똑같은 부위를 지속적으로 타격한 이상 반응이 올 수밖에 없다.
쩌적.
섀도 맨티스의 가슴 갑각이 갈라진다. 계속해서, 멈추지 말고. 라덴은 호흡을 멈추고서 계속해서 주먹을 뻗었다. 타격이 거듭 될수록 섀도 맨티스의 몸이 뒤로 밀려나고, 놈이 밀려나는 만큼 라덴의 발은 앞으로 나아간다. 가장 좋은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일직선으로 주먹을 뻗었을 때에, 가장 강력한 타격을 먹일 수 있는 거리.
본능적으로 라덴은 그를 알고 있었다.
콰직!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섀도 맨티스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라덴은 참고 있던 숨을 내뱉으면서 주먹을 털어냈다. 끈적거리는 곤충의 체액이 라덴의 손에 엉겨 붙어 있었다.
“이래서 곤충이 싫다니까.”
아카이드 숲에서는 늑대와 원숭이가 싫어졌다. 그리고 알라베스 산에서는 곤충인가.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섀도 맨티스가 드랍한 아이템들을 챙겼다.
이런 식으로 사흘 동안 산을 떠돌았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섀도 맨티스에게 주의하면서, 움직일 수 있는 한계까지 산을 뒤지고, 방향을 잡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라덴이라고 해서 무적은 아니다. 섀도 맨티스가 무리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라덴이 섀도 맨티스 한 마리와 교전하는 중에 다른 섀도 맨티스가 나타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 싶을 때에, 라덴은 망설임없이 도망쳤다. 사실 이것이야 말로 라덴이 알라베스 산에 들어오면서 가진 자신감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라덴이 가진 스킬은 싸우는 것에도 뛰어나지만, 도망치는 것에도 뛰어나다.
알라베스 산에 들어오고서 엿새가 되었을 때. 그제 서야 라덴은 자신의 감각이 산에서 적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엿새나 걸릴 줄이야.”
라덴은 투덜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슷하게 보이던 산의 풍경이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평지를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라덴은 천천히 발을 움직여 보았다. 무릎에 걸리는 저항감, 조금씩 바뀌는 시야.
“빌어먹을, 내려가고 있었잖아!”
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지 답은 이미 알고 있다. 그렇게 되도록 감각이 망가져 있었으니까. 대체 얼마나 내려가고 있었던 거야 라덴은 급히 몸을 돌렸다. 산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그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었다.
나무나 바위에 표시를 남기는 식으로.
“허허…”
라덴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남겨 놓은 표식은 모두 확인했다.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군.”
엿새 동안 헛고생을 한 것이다. 라덴은 크게 한숨을 내뱉으면서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해도, 엿새 동안 산을 오르지 않고 제자리 걸음을 했다는 것은 라덴을 열받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래도 레벨은 올렸으니까.’
그나마 그것을 위안거리로 삼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라덴은 우울한 눈으로 산을 올라 보았다.
“…이제야 산을 오르는 셈이군.”
엿새나 들여서 말이야. 라덴은 투덜거리면서 뒷목을 잡았다.
‘그래도 감각이 안정되었으니까.’
지금이라도 산을 오르면 된다.
“쥐새끼가 들어왔습니다.”
그 말에 자카이드는 멈칫하고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쥐고 있던 검을 아래로 내리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쥐새끼”
“네.”
“몇 명이나”
“한 명입니다.”
보고자의 대답에 자카이드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바로 앞에 주저앉아 있는 길드원을 향해 포션을 던져주면서 투덜거렸다.
“쥐새끼 한 마리. 어느 길드 소속이지 잭헤드, 그 새끼가 또 비열한 짓을 하는 것 아냐”
“그럴 지도 모르겠지만… 쥐새끼가 어느 소속인지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길드의 표식도 없고, 레인저도 아니거든요.”
“그러면 뭐야”
자카이드의 목소리에 짜증이 실렸다. 그러는 와중에 자카이드와 친선 PVP를 해서 패배한 길드원은 자카이드가 던져 준 포션을 마셔 체력을 회복했다.
“에클레어, 그 갈보 년 쪽인가”
“그것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접촉하지는 않았고,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거든요.”
“어떤 놈인데”
자카이드가 대답을 재촉했다. 보고자는 잠깐 말을 멈추고서 경비를 서고 있는 다른 길드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전반적인 특징과 인상착의를 말해달라는 메시지였다. 자카이드는 팔짱을 끼고 서서 보고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 음…”
보고자는 지금 상황에 대해 도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에 말을 더듬었다. 자카이드는 그런 보고자의 얼굴을 노려보면서 눈썹을 꿈틀거렸다.
“뭔데 그래”
“그… 쥐새끼의 인상착의를 들었습니다. 아, 아니. 인상착의가 아니라… 쥐새끼가 누구인지에 대한 보고가 왔어요.”
“누구인지 뭐야, 누구인지 파악이 될 정도면 얼굴이 알려진 놈이라는 거잖아. 아, 하기는… 혼자서 이곳까지 왔을 정도라면 랭커겠지. 그래서, 누구냐 어떤 미친 랭커가 혼자서 알라베스 산을 오르고 있는 거야”
“그… 랭커가 아닙니다.”
보고자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대답에 자카이드가 끓는 속을 삭히면서 눈을 감았다.
“빨리 말해. 나 짜증내기 전에.”
“라덴이랍니다.”
보고자가 급히 말했다.
“뭐”
감고 있던 자카이드의 눈이 떠졌다. 라덴 자카이드가 그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라덴. 판타지아의 투왕, 몇 달 전에 무투가 랭킹 1위인 류가미를 두들겨 패면서 화려하게 복귀를 알린 그 라덴.
“라덴… 라덴이라고 쥐새끼가 라덴 그, 류가미 때려 잡은 투왕”
“예. 그… 경비로 나간 놈들이 하는 말은 그렇습니다. 그 라덴이, 알라베스 산을 오르면서… 저희 영역에 침범했답니다.”
“…허허.”
자카이드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알라베스 산에 한가한 랭커나 길드, 파티가 들어오는 일은 흔한 일이다. 한 번도 정복된 적이 없는 알라베스 산을 자신이, 자신들이 정복해 보겠다는 그런 부푼 야망을 갖고 들어오는 머저리 등신들.
그 중 극히 일부가 재수 없이 자카이드와 그의 길드인 헌터즈의 영역에 침범하곤 한다.
“…브라드. 여태까지 우리 길드의 영역에 들어 온 놈들을, 내가 어떻게 했었지”
“전부 죽였죠.”
보고자. 브라드가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자카이드는 팔짱을 풀고서 허리에 걸어 두었던 검을 잡았다.
“쥐새끼 한 마리가 배짱 좋게 알라베스 산을 오르고, 재수가 없어서 우리 길드의 영역에 들어왔다. 그래, 이런 경우가 몇 번인가 있었지. 그리고 난 그때마다 그 쥐새끼를 죽여버렸다. 다시는 우리 영역에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로 말이야.”
“….길드장님. 하지만 상대는…”
“상대가 뭐 그래, 상대는 라덴이지. 판타지아의 투왕! 레벨 82로 랭킹 6위였던 류가미를 두들겨 팬 투왕 라덴! 그게 뭐”
자카이드의 눈이 번뜩였다.
“놈이 투왕인 것은 투기장 안에서고. 여기는 투기장이 아니야. 알라베스 산, 나와 내 길드원들이 지배하고 있는 영역이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라덴을 리스펙트 해 줄 이유가 있나”
“…없습니다.”
“그러면 길드원들 준비시켜.”
자카이드는 허리에 걸어 두었던 검을 뽑았다. 그는 햇빛에 칼날을 비춰보면서 입가를 일그러트렸다.
“투왕 라덴에 대한 리스펙트로 말이야. 내가 직접 애들 데리고 죽이러 가 줄 테니까.”
입산-2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