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32
ⓒ 목마
입산-3
‘이거 엿 됐네.’
라덴은 걸음을 멈추고서 미간을 찡그렸다. 알라베스 산에 들어오고서 8일. 바로 어제 산에서 감각을 되찾았고,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는 중이다. 감각이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원체 험하고 몬스터의 출현이 잦은 산이라서, 라덴은 몇 번이나 길을 잃고 헤매면서 간신히 전진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였지’
라덴은 표정을 풀지 않고서 나무를 살폈다. 나무에는 라덴이 보기에도 확실히 알 수 있을 만큼 노골적인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당연히, 라덴이 새긴 표식은 아니다. 누군가가 이 나무에 표식을 새겨 놓은 것이다.
이 나무뿐만이 아니다. 자세히 찾아보면 주변에 표식은 잔뜩 있었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라덴은 턱을 어루만지면서 생각에 잠겼다. 산을 오른다는 것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주변을 살피는 것에 조금 게을렀던 것일까.
‘몬스터가 새겼을 리가 없지. 다른 플레이어가 새겨 놓은 표식이야.’
그러니까, 도대체 누가
‘뭔가의 상징인 것 같기는 한데, 봐도 잘 모르겠어.’
그렇다면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는 수밖에. 라덴은 친구 목록을 열어 보았다. 지금 상황에서 라덴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알라베스 산에 도전했던 경험이 있는 레이크 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레이크는 접속 중이었고, 그의 위치는 보하미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크의 답변이 돌아왔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아, 다름이 아니라 뭐 좀 물어보려고요. 알라베스 산에서 어떤 표식을 발견했는데…]라덴은 나무에 새겨진 표식의 형태를 설명해 주었다. 옆으로 뉘인 칼과 그 밑을 받치고 있는 방패. 라덴의 설명을 듣고서 레이크는 잠깐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확실합니까]조금 늦게 대답이 돌아왔다. 레이크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긴장이 어려 있었다. 라덴은 다시 한 번 표식의 형태를 확인했고, 머리를 끄덕거렸다.
[예.] […운이 없으시군요. 옆으로 누운 칼과 그것을 받치고 있는 방패. 그것은 랭킹 7위인 자카이드의 길드, ‘헌터즈’의 상징입니다.] “제기랄.”라덴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 나왔다. 가장 피하고 싶었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다른 길드나 플레이어와 접촉하지 않고, 조용히 알라베스 산을 넘고 싶었는데. 다른 길드도 아니고 최상위 랭커인 자카이드가 이끌고 있는 헌터즈의 영역을 침범해 버렸다.
‘아니, 애로우즈가 아닌 것이 다행인가.’
최소한의 위안거리일 뿐이다. 라덴은 투덜거리면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레이크의 말에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레이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한 것이다.
라덴은 헛웃음을 흘리면서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유명하다는 것이 꼭 좋은 일은 아니다. 특히나 이 경우에서는.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라덴, 당신이 원한다면…] [아뇨, 괜찮아요. 말했잖아요 괜한 빚을 지어두고 싶지는 않다고.]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라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 말에 레이크는 잠깐 동안 침묵하더니,
[그런데. 저한테 이런 정보를 듣는 것은 빚이 아닌 겁니까]의문을 가득 담은 뉘앙스로 그렇게 물었다. 그 질문에 말문이 막힌 것은 라덴 쪽이었다. 잠깐 동안 우두커니 서있던 라덴은, 헛기침을 하더니 괜히 시선을 피했다. 바로 앞에 레이크가 서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 정도면 내가 갚을 수 있는 수준의 빚이니까 괜찮습니다.] […편리한 논리로군요. 어찌 되었든, 잘 알겠습니다.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연락을 해주십…]귓속말에 귀를 기울일 수 없게 되었다.
노골적인 발소리들이 들려온다. 라덴은 레이크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귓속말을 끊었다. 일단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감각을 활짝 열고서 상황을 살핀다.
그들은 살기를 내비치지는 않았다. 그들은 많은 숫자로 라덴의 주위를 포위했고, 일정 거리에서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라덴은 주먹을 쥐었다 펴면서 주변을 쓱 돌아 보았다.
헌터즈.
랭킹 7위, 자카이드의 길드.
그들은 철저하게 던전 공략, 레이드 PVE에 특화되도록 구성되어 있다. 엄선된 탱커진, 힐러진, 원거리, 근접 딜러. 길드 내에서 자체적으로 공격대를 운영하고, 그 안에서 다시 1군과 2군, 3군을 나누면서 길드 내에서 길드원들을 경쟁시킨다. 랭킹 3위인 샤오만의 볼트나 2위 카란의 불독은 각각 하나의 직업군으로만 구성되어 있지만, 헌터즈는 PVE를 위한 밸런스가 잘 잡혀 있는 길드다.
쉽게 말하자면 적으로 돌렸을 때에 까다로운 길드다.
특히나 지금같은, 포위 된 상황에서는.
“투왕”
포위한 인원들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다른 길드원들과 비교해서 유독 눈에 띄는 갑옷을 입은 남자였다. ‘백린 유스티티아.’ 현재 발할라에서 존재하는 경갑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성능을 가진 갑옷이다. 게다가 허리에 걸고 있는 칼은 ‘화룡 파브니르.’
경갑과 무기뿐만이 아니라 목걸이, 반지, 신발, 벨트, 그 외의 모든 장비가 최상급의 에픽 아이템이다. 자카이드. 헌터즈의 길드장인 랭킹 7위의 플레이어. 금발을짧게 자른 푸른 눈의 서양인이었다.
“…거, 꼭 그렇게 별명으로 불러야 합니까”
라덴은 자카이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투덜거렸다. 그 말에 자카이드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라덴의 중얼거림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투왕 라덴. 아닌가”
“아니, 맞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꼭 그렇게 투왕이라고 불러야 하냐고요.”
“투왕을 투왕이라고 부르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지”
자카이드가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하고서 물었다. 그 말에 라덴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말 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자카이드님 맞죠”
“그래. 내가 헌터즈의 길드장인 자카이드다.”
자카이드는 가슴을 활짝 펴면서 대답했다. 라덴은 시큰둥한 얼굴로 그런 자카이드를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략해서 오십 명 쯤 되려나. 아니,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헌터즈는 대형 길드다. 자카이드가 호출한다면 저기서 몇 십 명은 더 몰려 올 것이다.
‘보아 하니 우호적인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
레이크가 경고했던 것처럼.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발을 움직였다. 라덴의 발이 뒤로 미끄러진 순간,
“어이쿠.”
자카이드가 손을 들어 올렸다. 파바박! 라덴을 둘러싸고 있던 이들 중 궁수 클래스를 선택한 헌터즈의 길드원들이 활에 시위를 걸었다.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투왕.”
“…움직이지 않는다면 공격하지 않을 겁니까”
“그건 아니지. 보아 하니 너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이곳은 우리 길드의 영역이야. 우리 영역을 함부로 침범한 것은 네 쪽이고, 우리는 당연히 침입자인 너를 징벌할 수 있지.”
“영역은 무슨. 알라베스 산은 플레이어들에게 공개 된 사냥 필드인데. 당신네 길드가 이 산을 사기라도 했습니까”
“사지는 않았지만 먼저 선점은 했지. 괜히 발악하지 말고 포기해, 투왕. 그보다 죽기 전에 이야기나 조금 하자고.”
자카이드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면서 라덴을 바라보았다.
“왜 이곳에 왔지”
“산이 이곳에 있어서.”
라덴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주먹을 쥐었다.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다. 레이크가 경고했던 대로다. 자카이드는 아무래도 투왕 라덴을 잡았다는 명예를 얻고 싶은 모양이었다.
“…지금 상황에 농담을 하는 건가”
“딱히 농담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라덴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감각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이곳에 향하는 살기를 캐치하기 위해서였다.
“뭔가 이유가 있어서 이곳에 오른 것이겠지.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어때 뭘 하고 싶어서 이곳에 온 거냐, 투왕. 이곳이 우리 길드의 영역임을 알고서 침범한 것인가”
“알았으면 돌아갔겠죠. 괜히 트러블을 겪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렇다면 운이 없었군. 나는 운이 좋았고. 뭐, 말하고 싶지 않아도 상관없어. 어찌 되었든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이거든. 아… 하나 충고하는데, 로그아웃으로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난 많은 길드원들을 데리고 있거든. 이곳을 포위하고 네가 접속할 때까지 포위망을 유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야.”
스르릉. 자카이드의 허리춤에 메어져 있던 검이 뽑힌다. 화룡 파브니르의 시뻘건 칼날이 열기를 발한다. 자카이드는 능숙하게 파브니르를 빙글 돌리면서 라덴에게 향했다.
“서로 얼굴 붉히는 것보다는, 어때 얌전히 죽는 것이. 그편이 너에게도 낫지 않나 투왕. 저항해서 죽는 것보다는 포기하고 깔끔하게 죽는 것이 네 명예에도 보기 좋을 것 같은데.”
라덴은 잠자코 자카이드의 말을 들었다. 살기는 캐치되지 않는다. 헌터즈의 길드원들은 자카이드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전에는 공격할 의사가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라덴은 혀를 차면서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 진짜.”
“뭐”
“그러니까, 내가 아까도 말했잖아. 왜 굳이 별명으로 부르는 것이냐고.”
혹시 잘 말한다면 보내주지 않을까 싶어서 예의를 챙겼는데. 자카이드가 지껄이는 꼴을 보아하니, 하늘이 무너져 내려도 라덴을 얌전히 보내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라덴 쪽에서도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다.
우선, 라덴은 동영상 녹화 기능을 켰다.
“나 그 별명 되게 싫어해.”
분위기가 바뀐다. 느물거리며 웃고 있던 자카이드의 표정도 변했다. 랭킹 7위. 그런 위치에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자카이드는 파브니르를 놓지 않고서 반대쪽 손을 들어 올렸다.
“그래 싫어하는 줄은 몰랐는 걸.”
“너, 별명 있냐”
라덴이 물었다. 길드원들에게 신호를 보내기 전에, 자카이드는 라덴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없다.”
“그렇다면 내가 네 별명을 만들어 주지. 내가 가진 투왕이라는 별명처럼 말이야. 네 별명은… 지금부터.”
라덴의 무릎이 굽혀졌다.
“등신이다.”
“…뭐”
“네 별명 말이야. 등신이라고. 이 등신아.”
파악! 라덴의 몸이 위로 뛰어 올랐다. 자카이드는 라덴이 내뱉은 모욕에 분노하는 것보다 먼저 길드원들에게 공격 신호를 내렸다. 라덴의 몸에 새빨간 원이 그려진다. 궁수의 스킬인 레드 타겟이다. 타겟에 록 온, 그 즉시 궁수들이 화살을 쏘아냈다.
공중으로 뛰어 오른 라덴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의식했다. 레드 타겟. 쏘아낸 화살을 확실하게 목표에게 적중시키는 스킬. 고정 파티의 일원이었던 로사나가 사용하던 것을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다.
레드 타겟은 절대적인 스킬은 아니다. 타겟에 들어 온 목표가 빠르게 움직인다면, 레드 타겟에서 벗어 날수 있다. 라덴은 공중에서 발을 움직이면서 허공답보를 펼쳤다.
“잡아!”
자카이드가 고함을 질렀다. 궁수들은 연이어 시위에 화살을 걸었고, 후방에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스태프를 들어 올린다. 탱커 진이 앞으로 달린다. 라덴을 붙잡기 위해서였다. 그 뒤를 근접 딜러들이 뒤따른다.
“햐.”
공중에 떠오른 라덴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을 내려 보면서 탄성을 내질렀다.
“이건 오랜만이네.”
판타지아 시절이 떠올랐다. 파라곤 길드와 시비가 붙어 그들의 공격을 받았을 때. 그 이전에도 라덴은 몇 번이나 다른 길드나 파티 등, 다수의 플레이어들과 적대했던 적이 있었고 그들의 공격을 받았었다.
‘다굴 맞는 것은 서량 이후로 처음인가’
열 명이 넘는 인원에게 공격당한 것은 서량 이후로 처음이다. 판타지아에서는 곧잘 있던 일이었지만, 발할라에서는 이번이 두 번째.
안타깝게도, 라덴은 서량에서 공격 받았을 때와는 여러 가지로 달라져 있었다.
지금, 발할라의 라덴은 판타지아의 라덴과 버금갈 정도의 스펙을 이루었으니까.
입산-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