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305
상했던 내장이 치유되는 것이 느껴진다. 거대한 힘이 몸 안을 가득 채우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구현되어 흘러넘친다. 비약에 의존할 정도로 멸풍 대주는 약하지 않았지만, 상대는 비약에 의존해야 할 만큼의 강자였다.
여기서 죽인다고 해서 크게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상대는 플레이어니까. 죽여도 다시 부활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죽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저 플레이어 한 명 때문에 전황이 뒤집어져버렸다.
“크아아아!”
이전보다 족히 두 배는 커진 힘이 라덴을 덮쳤다. 라덴은 정면으로 쏘아지는 신력을 노려보면서 무릎을 낮추었다.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서량으로 후퇴해 주세요.’
[서량으로… 말입니까?]
‘네. 아마 지금으로서는 그곳이 가장 안전할 겁니다.’
라덴은 레이크에게 그렇게 전하고서 주먹을 쥐었다.
할 수 있다. 그것은 강렬한 확신이었다. 파앙! 라덴의 발이 땅을 박찼다. 마치 공간을 도약하듯, 라덴은 멸풍대주의 공격 궤도에서 벗어났다. 그는 허공의 발판을 밟아가며 멸풍 대주의 공격 궤도 바깥에서 파고들어왔다. 콰콰콰! 멸풍 대주가 양 손으로 잡고 있던 창이 크게 회전하면서 신력을 흩뿌렸다. 우산을 적신 빗물이 흩어지듯 사방으로 네브람의 신력이 비산했다.
그것은 공중에서 궤도를 바꾸며 무수히 많은 탄환이 되었고, 확실한 살의를 담아 라덴을 덮쳤다. 아직 강신의 지속 시간에는 여유가 있다. 라덴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아하베스의 신력이 부풀었다.
꽈아앙! 라덴이 내지른 일격이 공중에서 폭발했다. 라덴을 덮치려던 네브람의 신력이 허무하게 요격되었다. 꾸우욱. 허공답보의 발판을 밟은 라덴의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공중을 질주한다. 라덴은 내리꽂히는 벼락처럼 멸풍 대주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멸풍 대주는 까득 이를 갈면서 창대를 휘둘렀지만, 라덴의 발이 움직이는 것이 더 빨랐다. 쩌어엉! 라덴의 발뒤꿈치가 멸풍 대주의 창대를 두드렸다. 멸풍 대주의 몸이 지면 아래로 푹 꺼졌다.
“크아아!”
멸풍 대주가 포효했다. 창대는 라덴의 공격을 받아 부러질 듯이 휘어졌지만, 부러지지는 않았다. 멸풍 대주의 창이 반 바퀴 회전했다. 라덴의 몸이 공중에서 창대와 함께 돌았다. 멸풍 대주의 손 안에서 직선의 창대가 꿈틀거렸다. 그 즉시 수백 개로 분영 한 공격이 라덴을 향해 쏘아졌다.
찰나의 찰나. 그 순간에서 라덴은 잠깐 고민했다. 마주 공격해서 요격해 줄까? 아니면 피하고서 파고들까. 그것도 아니면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눌러줄까.
라덴이 선택한 것은 후자였다. 꽉 쥔 오른 주먹에 거대한 힘이 깃든다. 신룡격으로 강화한 타격에 전사경이 가미되었다.
새하얀 빛이 공간을 꿰뚫었다. 라덴이 내지른 주먹이 만들어낸 빛이었다. 번쩍 터진 빛이 모든 것을 꿰뚫고, 이윽고 빛이 일그러지면서 소용돌이쳤다.
콰드드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멸풍 대주의 가슴팍에 바람 구멍이 났다. 그는 검은 피를 토하면서 비틀거렸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끝없이 솟구치는 신력이 멸풍 대주의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크… 으욱…!”
상처가 끓는다. 재생이 시작되었다. 라덴은 숨을 한 번 내뱉고서 가볍게 발을 튕겼다.
지옥같은 연타가 시작되었다. 라덴은 멸풍 대주의 몸에 바짝 붙어서 쉼없이 연타를 퍼부었다. 멸풍 대주는 이를 뿌득뿌득 갈면서 신음을 삼켰다. 그는 어떻게든 라덴의 연타에 저항하려 들었다. 막거나, 피하거나, 반격하거나. 하지만 그 무엇도 소용이 없었다. 라덴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멸풍 대주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라덴은 주먹의 궤도 하나하나를 수정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지만 멸풍 대주에게는 아니었다. 그가 대응하기에 라덴의 공격은 너무 빨랐다.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무겁다. 일격 일격이 내장을 뒤흔들고 신력을 찢어낸다. 신기가 공급해 오는 신력과 비약을 통해 반 화신 화 된 몸뚱이로 버티고는 있지만, 말 그대로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런, 이런 일이…!’
비약을 마시게 되면 네브람에게서 신력을 직접 공급받는 화신이 된다. 물론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멸풍 대주는 다섯 괴물에 준하는 힘을 얻은 상태다.
그런데도 상대가 안 된다. 도대체 저 플레이어의 저력이 어디까지인지조차 파악이 안 된다. 힘과 속도, 그 모든 것을 보았다고 생각하면 놈은 더 빠르고, 더 강해져 있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지금도 그렇다. 놈의 속도는 더 빨라져 있다. 연타에 실린 힘은 더욱 무거워져 있다. 멸풍 대주의 머리가 핑핑 돌았다. 시야 한쪽 끝에서 플레이어들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지만, 그는 멸풍 대원들에게 명령조차 내릴 수가 없었다. 대원들은 어떻게든 플레이어를 막으려고 들었지만, 멸풍 대주가 신경 썼던 다섯 명의 플레이어가 선두에서부터 길을 열고 있었다.
“커윽!”
참았던 신음이 비명이 되어 터졌다. 멸풍 대주의 몸이 땅을 뒹굴었다. 연타에 맞아 분해되었던 몸은 재생하고 있었지만, 멸풍 대주는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교주에게서나 느껴 보았던 무력감이 멸풍 대주의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안 죽냐?”
라덴이 조금은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물었다. 멸풍 대주는 이를 갈면서 몸을 일으키려 들었다. 그런 멸풍 대주를 향해 라덴이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콰앙! 라덴이 걷어 찬 발이 멸풍 대주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그럼에도 멸풍 대주는 죽지 않았다. 비약의 효과는 아직 지속되고 있다. 반 화신 화 된 지금의 멸풍 대주에게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원한 불사는 아니다.
“아… 으으으…”
라덴은 머리를 재생해 내는 멸풍 대주를 보면서 눈가를 찡그렸다. 악희도 그렇고, 멸풍 대주도 그렇고. 불사자와 싸우는 것은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까다롭다.
‘은검의 경우와도 다르고.’
은검은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해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갔었다. 하지만 멸풍 대주는 아니었다. 얼굴이 창백하게 죽어 있기는 했지만, 멸풍 대주는 네브람의 신력을 통제하고 있었다.
‘슬슬 시간이 되겠군.’
은검의 경우에도 그랬다. 계속해서 상처를 재생하던 은검이었지만, 시간이 흐르고서는 상처를 재생할 수 없게 되었다. 은검이나 멸풍 대주가 마신 비약은 지속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놈을 죽이고 수도 상황을 살펴야 겠어. 그리고 제노미아로 간다.’
플레이어들은 서량으로 보냈지만, 라덴은 우선 제노미아에 들를 생각이었다. 그곳에 보냈던 이종족들의 군대가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고, 제노미아에 혹시 다른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닐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라덴은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라덴이 멸풍 대주를 잡고 있는 동안, 레이크는 플레이어를 데리고 무너지기 직전이었던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서량으로 이동을 끝냈다.
“…허억! 헉! 허억…”
멸풍 대주가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는 슬슬 자신이 얻은 힘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설마 비약을 먹고서도 상대가 안 될 줄이야.
“…네가 플레이어 중에서 가장 강한 건가?”
그렇게 묻기는 했지만, 멸풍 대주의 질문에는 확신이 실려 있었다. 굳이 거짓말을 해 줄 필요는 없다고 느꼈기에, 라덴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역시나. 멸풍 대주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너를 보니 확실히 알겠어. 플레이어는… 안 돼. 너무 위험해.”
멸풍 대주가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각오했다. 죽음을 각오한다 한 들 저 플레이어를 완전히 죽일 수 없다는 것쯤은 알았지만, 그것이 멸풍 대주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네브람의 신력은 아직까지 대주의 몸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
“그럴 필요 없다.”
멸풍 대주의 각오가 물을 끼얹은 불처럼 사그라졌다. 그는 흠칫 놀라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았고, 머리를 돌린 것은 라덴도 마찬가지였다.
교주가 시선의 끝에 서있었다. 멸풍 대주는 빙그레 웃고 있는 교주의 모습에 기겁하고서 즉시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라덴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멸풍 대주의 행동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네 목숨은 신의 것이고, 나의 것이다. 내 허락없이 죽음을 각오하지 말라.”
“죄, 죄송합니다!”
대주가 꿀꺽 침을 삼키면서 대답했다. 교주는 그 대답을 들으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교주의 걸음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라덴은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바로 앞에서 교주가 다가오고 있는데, 라덴은 그에게서 그 어떤 존재감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황제는?”
“죽였습니다.”
“다른 귀족들은?”
“알크레토 후작은 이미 수도를 떠난 상태였습니다. 벨레로크 후작의 목은 베었습니다.”
교주가 질문할 때마다 멸풍 대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오가는 대화를 보면서 라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황제는 죽었다. 알크레토 후작은 죽지 않았다. 벨레로크 후작은 죽었다. 오가는 문답을 통해서 라덴은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제국의 주인 자리가 비었다. 황제 대리를 수행하던 드루고라 공작의 신변에는 문제가 생겼다. 알크레토 후작은 수도에서 도주했고, 벨레로크 후작은 죽었다. 그것은 즉, 차기 황제가 누군가를 지지하던 귀족들의 파벌이 분해되었음을 의미한다.
“맞아.”
교주가 라덴의 생각을 읽었다. 라덴은 흠칫 놀라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교주와 시선이 마주 친 순간, 라덴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해 버렸다.
“차기 황제가 되는 것은 2 황자다. 1 황자는 적당한 때를 보아 치울 것이고.”
2 황자. 귀족간의 파벌 다툼에 껴 있지 않던 2 황자를 교주가 언급했다.
“2 황자는 제국의 황제가 된다. 나는 그 뒤에서 2 황자를 조종하게 되겠지. 간단한 일이야. 드러난 주인이 되는 것보다는 그림자가 되어 지배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거든.”
교주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알린다 한 들 라덴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교주가 계속해서 말했다.
“이종족들을 수하로 거두었구나. 설마 플레이어가 악희를 패퇴시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취할 수 있는 것은 취해 둘 생각이었거늘…”
교주가 웃는 낯을 하고서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되지 않았음에도, 그리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라덴의 존재에 자그마한 기쁨마저 느끼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
“황혼의 교주.”
교주가 대답했다. 교주. 대답을 듣고서 라덴의 의식이 하얗게 물들었다. 뜬금없이 최종 보스와 맞닥트린 꼴 아닌가.
“어찌 할 테냐?”
교주가 라덴에게 물었다.
“나와 싸울 테냐. 드루고라 공작은 나와 싸웠고, 패배했다. 그리고서는 차원의 틈에 봉인되었지.”
드루고라 공작의 신변에 어떠한 문제가 생겼음은 라덴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교주가 드루고라 공작을 쓰러트린 장본인이라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었다.
“너는 어찌할 테냐. 플레이어를 봉인할 수는 없겠지만, 시도 해 볼 가치는 있을 듯 한데.”
[싸워서는 안 돼.]
판테온이 머릿속에서 경고했다.
[자네는 강해. 하지만 아직 저 괴물과 싸울 정도는 아니야.]타당한 경고였다. 그렇다는 것쯤은 라덴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교주와 싸우는 것에 승산은 없다.
“오딘의 신기를 가지고 있군.”
교주가 판테온을 힐긋 보면서 말했다.
“자네라는 존재에게 조금 흥미가 일기는 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교주가 손을 들어 올렸다. 네브람의 신력이 교주의 팔을 휘감았다. 신기를 통해, 그리고 비약을 통해 네브람의 신력을 끌어 왔던 멸풍 대주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하고 순수한 힘이 교주의 손에 모였다.
“도망치겠나?”
교주가 웃었다.
마치 도발하는 것처럼.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