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312
“…검왕?”
백설의 살의는 한센에게 향했고, 흑월은 검왕을 보았다. 검왕은 흑월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허공에 손을 뻗었다. 공간이 갈라지면서 패천의 손잡이가 튀어나왔다.
“그때는 놓쳤었지.”
기억하고 있다. 알라베스 산 초입에서, 검왕은 흑월을 보았었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던 검수. 저 정도로 실력이 좋은 검수를 보는 것은 무척이나 오랜만이었기에, 그 후로 시간이 꽤 흐른 지금으로서도 잊지는 않았다.
그때의 검왕은 패천을 뽑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뽑는다. 당시 흑월은 검왕을 상대로 싸우면서도 전력을 다하지 않았었다. 흑월의 목적은 검왕에게서 도망치는 것이었지, 검왕을 죽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상대는 죽일 수 없는 괴물이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흑월은 패천을 꺼내 쥐는 검왕을 노려보면서 허리에 걸린 신기를 뽑았다. 이름도 모르는 검이지만, 검을 쥔 순간 흑월은 상대가 검왕이라는 생각을 잊게 되었다, 신기가 전해주는 힘은 그 정도로 거대했다.
“불길한 검이로군.”
검왕은 흑월이 쥔 신기를 힐긋 보면서 중얼거렸다. 자색의 신력이 불꽃처럼 타오르면서 흑월의 강기와 뒤섞인다. 그때와는 다르다. 검왕은 패천을 미리 꺼내 쥐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베는 맛이 있을 것 같았다.
“날 아나?”
한센은 다가오는 백설을 노려보면서 물었다. 백설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다. 한센은 손에 쥐고 있던 스태프를 슬며시 앞으로 내밀었다.
“알지.”
네브람의 신력이 스태프를 휘감는다. 백설은 미소를 진하게 띄우면서 주먹을 쥐었다. 다행이다. 백설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만나기를 바라였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돼서. 그리고 놈이 생각했던 것보다 약하지 않아서.
때리는 맛이 있어야 패는 기분이 좋을 것 아닌가.
“내 제자가 너한테 신세를 졌었거든.”
“제자… 제자? 그렇군. 당신이 백호 무술관의 관주인가.”
한센은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납득했다. 백호 무술관의 관주 백설. 이름만 들어 보았다. 염화를 제압하고 검왕과 호각을 이루었으며, 한센이 직접 신경써서 세뇌했던 유의의 스승.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한센은 혀를 차면서 스태프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한센의 마력이 네브람의 신력과 공명하면서 공간을 일그러트렸다.
“만나서 반갑다.”
백설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호랑이가 뛴다. 서량이라는 우리를 뛰쳐 나왔다. 제약이라는 족쇄는 이미 끊어졌다. 통제되지 않는 백호가 송곳니를 드러낸다. 한센은 흠칫 놀라면서 재빠르게 블링크를 펼쳤다. 순식간에 펼쳐지는 공간도약은 인간의 움직임으로는 쫓을 수 없는 속도다. 블링크의 강점은 속도 뿐만이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것. 그것이 블링크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다. 공간을 말그대로 도약하는 것이고, 지정한 좌표로 순식간에 몸이 이동한다. 관절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근육을 쓰는 것도 아니며, 시선에도 무관하다.
한센은 백설의 머리 위로 이동하고서 즉시 준비해두었던 마법을 펼쳤다. 수십 다발의 마력 탄환이 한센의 주변에 나타났다. 단발로도 뛰어난 위력을 가진 공격이지만, 신력의 힘이 더해지면서 그 위력은 몇 배로 부풀었다.
‘거기냐.’
블링크는 예측할 수 없다. 그래. 모습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기척을 읽는 것은 백설에게 있어서는 쉬운 일이었다. 특히나 저렇게 노골적으로 힘을 내뿜는 녀석이라면 더더욱. 백설은 홱하고 머리를 들어 위를 보았다. 수십 다발의 마력 탄환이 백설에게 쏟아져 내린다.
빠르게 내리 꽂히는 공격이지만 백설에게는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백설은 탄환을 피하면서 위로 튀어 올랐다.
네브람의 신기는 모두가 가진 능력이 다르다. 멸풍 대주가 가진 창이 닿는 것을 모조리 소멸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한센이 가진 스태프는 무한한 마력을 공급해 주면서 마법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인 영창을 생략시킨다. 그것은 마법사에게 있어서는 꿈과 같은 아이템이었다. 수준 높은 마법을 마력의 부담 없이, 영창의 부담없이 남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시커먼 화염구가 한센의 앞에 나타났다. 최상위 화염계 마법인 헬 파이어가 다섯 개. 본래 헬 파이어는 하나를 만드는 것에도 긴 영창과 막대한 마력이 소모되지만, 지금의 한센은 그에 구애를 받지 않았다. 닿는 것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녹여버리는 초 고온의 화염구들이 백설에게 쏘아진다.
백설의 호신강기가 하얗게 타올랐다. 그는 호흡을 사밐면서 주먹을 뻗었다. 자연스럽게 펼쳐진 전사경이 공간을 비튼다. 풍경이 백설의 주먹에 말려 들어가면서 난폭한 와류를 만들었다. 꽈르르릉! 벽력이 터지는 것 같은 폭음이 울렸다. 다섯 개의 헬 파이어가 백설이 쏘아낸 와류에 맞아 폭발했다.
‘뭐 이런 무식한…!’
다섯 개나 되는 헬 파이어를 주먹질로 상쇄했다고? 한센은 혀를 내두르면서 계속해서 마법을 준비했다. 우선 거리를 벌린다. 블링크로 더 높은 공간으로 이동하고, 공중부양 마법으로 신체를 하늘에 띄운다. 파지직! 푸른 전류가 튀어 오른다. 막대한 양의 전류가 거대한 창이 되어 백설에게 내리 꽂힌다.
꽈과과광! 번개의 창과 백설의 몸이 충돌했다. 번쩍거리는 빛이 주변을 한 번 하얗게 물들이고 꺼진다.
한센의 눈이 부릅떠졌다. 백설은 상처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호신강기가 백설의 몸을 보호한 것이다. 겉보기에만 그랬다. 속이 뒤흔들리고 내장이 욱신거린다. 백설은 그 통증이 즐거워 웃었다.
‘높군.’
백설은 아득한 높이까지 떠올라 있는 한센을 보면서 생각했다. 마법사와 무투가의 싸움에서 마법사가 해야 할 일은 거리를 유지하는 것. 플레이어간의 PVP에서의 상식이지만, 그것은 NPC끼리의 싸움에서도 그렇다. 결국 마법사는 근접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센은 백설과의 거리를 벌리는 것에 주력하고 있었다. 문제될 것은 없었다. 마력은 무한하게 공급되고, 마법의 영창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한센은 마음껏 마법을 펼쳤다. 땅이 갈라지면서 굵은 넝쿨 줄기가 솟구친다. 그 끝에 달린 것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식인 식물이었다.
백설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크게 다리를 휘둘러 이쪽을 물려 드는 식인 식물의 머리를 걷어찼다. 폭발음과 함께 식인 식물의 머리가 사라진다. 한센은 공중을 날면서 계속해서 마법을 펼쳤다. 그의 장기는 세뇌, 그를 포함한 정신 마법 등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마법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법의 영역의 정점에 올라 괴물이 된 흑성 아라포니아만큼은 아니어도, 한센은 마법이라는 분야에서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정점에 가까운 대마법사였다.
근접 공격에 취약한 마법사가 단독으로 전투를 벌이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신경써야 한다. 블링크를 남발하면서 거리를 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력의 소모가 극심하고, 접근 속도가 빠른 상대에게 있어서는 그리 좋은 대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 ‘소환수’다. 혹은 직접 계약을 한 사역마. 당연히, 한센도 그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한센의 눈 안에서 시커먼 빛이 일렁거렸다. 땅 위에 시커먼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영창 과정 없이 소환 마법진이 만들어진다. 공간의 저편에서 한센이 부리는 마물들이 이 세상에 현신했다.
“저건 또 뭐야?”
백설이 투덜거리는 중에 마물들 날개를 퐐짝 펼쳤다. 가고일. 던전의 수문장으로서 플레이어에게 익숙한 몬스터지만, 한센이 불러들인 가고일은 플레이어들이 겪었던 가고일과는 격이 다르다. 가고일이 묵직한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백설을 쫓아 솟구쳤다.
가고일의 무리를 소환하고서도 소환 마법은 멈추지 않는다. 유령군마에 올라 탄 데스 나이트 군단이 소환되었다. 소리 나지 않는 말발굽이 시작된다. 유령군마들이 가고일의 뒤를 쫓아 백설에게 달려든다.
마물들을 소환하고서 한센은 블링크로 땅 위로 이동했다. 공중을 날고 있던 백설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가고일과 데스 나이트들을 보면서 혀를 찼다.
“이래서 마법사는 싫다니까.”
졸렬하게 도망 다니기만 하고. 백설은 천근추를 펼치면서 아래로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백설의 지척으로 다가 온 가고일들이 백설을 향해 삼지창을 찔렀다.
“우습게 보는 것도 아니고.”
백설의 주먹이 쥐어졌다. 소리가 늦게 울릴 정도로 고속의 연타가 뻗어진다. 가고일들의 머리가 박살나면서 암석 파편이 튄다. 백설은 양 손을 활짝 펼쳐 한 번 더 휘둘렀다. 흩어진 암석 파편이 백설의 손이 휘두른 방향을 따라 함께 움직인다.
그것이 백설의 무기가 되었다. 퍼버버벅! 암석의 비가 쏟아진다. 몸뚱이가 남아 있던 가고일들의 몸뚱이가 파편에 얻어맞아 박살났다. 하지만 아직 데스 나이트들이 남아 있다.
‘단순한 시간 끌기.’
저 정도의 소환수로 백설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소환수를 사용하는 목적은 거리를 벌리면서 상대가 접근하지 못하게끔 하는 것. 즉, 시간 끌기 용이다. 한센은 데스 나이트들을 파괴하는 백설을 향해 스태프를 뻗었다.
영창 과정이 생략된다고 해도 모든 마법이 즉시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이 마법의 경우도 그렇다. 백설의 머리 위, 까마득한 높이에서 네 개의 구체가 만들어졌다. 그것들은 넓게 펼쳐지고 각각 이어져서 사각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백설의 아래에 있는 땅 위에서도 똑같은 사각형이 만들어졌다.
“잡았다.”
한센이 확신을 담아 중얼거렸다. 백설의 상공에 있던 사각형 안에 마법진이 만들어진다. 신기를 통해 끌어 온 끝없는 마력이 마법진으로 이동하고, 정제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 그대로 떨어진다. 꽈아아앙! 백설의 머리 위에서 환한 빛이 내리 꽂혔다. 정제되지 않은 마력은 무식한 폭력 그 자체여였다.
내리 꽂힌 어마어마한 마력이 땅 위에 새겨진 마법진과 닿고, 그것이 끝없는 순환을 만들었다. 마력이 다시 백설의 머리 위로 이동하고서 떨어진다. 그것이 반복된다. 반복 과정에서 한센은 계속해서 마력을 주입했다.
시간 끌기로 밀어 넣었던 데스 나이트들은 첫 번째 순환도 견디지 못했다. 어마어마한 마력의 폭풍 속에서 백설의 몸이 요동쳤다. 그는 이를 악물고서 호신강기를 유지했다. 하지만 한센의 공격은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길어질수록 위력은 강해진다.
잠깐이라도 정신을 놓는다면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 속에서 백설은 간신히 주먹을 쥐었다. 내장이 뒤흔들리고 내력이 역류한다. 목구멍에서 솟구친 피가 백설의 입 안을 가득 채웠다. 피를 내뱉고 싶었지만 그럴 틈은 없었다.
‘짜증.’
백설의 얼굴이 포악하게 일그러졌다. 꽈아앙! 내지른 주먹이 허공을 갈긴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백설은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한센의 이마를 타고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 정도 되면 상대에 대한 경외감이 샘솟을 수밖에 없었다. 저 공격 속에서도 저항한다고? 한센은 빠득 이를 갈면서 스태프를 강하게 잡았다.
꽈아앙! 마법진이 박살났다. 마력의 순환이 멈춘다. 한센은 기겁하면서 다시 마법진을 만들려 들었다. 하지만 느리다. 피투성이가 된 백설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한센은 마법진을 다시 만드는 것을 포기하고서, 자신이 해야 할 대응방안을 생각했다. 블링크? 아니, 느리다. 한센의 주변으로 마력이 휘몰아친다. 견고한 마법의 벽이 한센의 몸뚱이를 보호했다.
“그만 좀.”
백설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는 피에 흠뻑 젖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있는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다. 꽈아아앙! 한센의 몸이 뒤로 쭈욱 밀려났다. 실드는 깨지지 않았다. 한센은 마력을 계속 공급하면서 실드를 수복했다.
그것을 보고서 백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휘둘렀던 왼 주먹을 내리고서 오른 주먹을 내렸다.
“막아?”
왼 주먹 대신에 오른 주먹을 휘두른다. 한센의 입에서 피가 뿜어졌다. 실드가 박살났다. 백설은 몸을 앞으로 쭉 들이 밀면서 한센에게 자신의 얼굴을 들이 밀었다.
“잡았다.”
백설의 머리가 한센의 코를 들이 박았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