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342
전쟁이 끝난 후 – 2
히어로 사의 일처리는 항상 느끼던 것이었지만, 갑작스러우면서도 깔끔하고, 또 과격적이었다.
애초에 히어로 사는 발할라를 오픈하면서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이벤트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게 열었고, 대부분의 일은 플레이어나 NPC가 알아서 해결하도록 두었다.
히어로 사가 직접 개입하여 벌인 이벤트는 스토리 퀘스트의 도입, 이벤트 타워, 황혼 전쟁 정도가 고작이다.
그 앞선 이벤트들이 그렇듯이, 이번 이벤트 역시 히어로 사는 아무런 언질도 없이 갑작스레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해 버렸다.
하지만 그들이 발표한 이벤트는 전 세계의 발할라 유저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신 대륙
본래 하나 뿐인 대륙. 그 하나 뿐인 대륙을 지배하던 발할라 제국 이 외에, 다른 추가 대륙과 제국, 왕국들이 추가로 발표되었다.
본래부터 넓었던 게임 속 세상이 몇 배나 넓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 대규모 이벤트가 적용되는 대격변 패치는 하루 동안 발할라 서버를 멈추게끔 만들었으나,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갑작스러운 패치 공표에도 불만을 토하지 않았다.
“이건 기회야”
루카스는 홈페이지의 공지를 보면서 주먹을 불끈 주었다. 그는 여러 가지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루카스가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개입했던 황혼은 전쟁에서 패배했다.
물론 황혼을 지지했던 플레이어가 루카스 혼자만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보하미르에서 벌였던 학살이었다. NPC와 플레이어를 가리지 않고 벌였던 학살. 검왕과 백설, 다른 랭커들의 개입으로 보하미르 함락은 실패하였지만, 갑작스러운 보하미르의 습격으로 루카스에 의해 죽은 플레이어나 NPC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에 대한 비난이 그대로 루카스에게 향했다. 황혼이 승리했더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황혼은 전쟁에서 패배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길드 연합도 뒤흔들렸다.
자카이드와 잭헤드는 루카스가 연합의 리더였고, 그 과격한 보하미르 습격에 연합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킨 주범이라고 떠들어댔다.
덕분에 비난은 기름 끼얹은 불처럼 거세어졌다. 사실 루카스는 여태까지 수많은 비난을 들어왔고, 그 대부분의 비난을 뻔뻔하게 넘겨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넘길 수 있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전쟁에서의 패배. 그것은 루카스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
불칸 길드원들도 대규모로 이탈하였고, 연합은 붕괴되었다. 그나마 샤오만이 루카스의 곁에 남아있기는 하였고, 샤오만의 볼트 길드는 루카스보다 사정이 낫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도 언제 갈지 모른다. 대륙은 넓지만… 소문은 빠르다. 라덴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상, 루카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된다.
공지로 발표된 것들 중에는 제국의 황제 자리에 다섯 과물 중 하나인 환룡이 오르게 될 것이라는 것도 적혀 있었다.
‘환룡은 라덴의 후원자 격이야. 사실상 제국 전체가 라덴의 편이라고 봐야해. 이런 상황에서 제국에 남아있어 봐야… 나한테는 불이익밖에 없어.’
랭킹도 크게 떨어졌다. 황혼 전쟁에서 오딘 진영에 속해 있던 놈들 어마어마한 경험치와 추가 보상을 얻었기 때문이다. 최상위 랭킹에 턱을 걸치고 있던 라덴은 교주를 죽인 것으로 레이크에게서 랭킹 1위 자리를 빼앗았고, 루카스는 랭킹 10위권 너머로 밀려났다.
‘신 대륙. 신 대륙으로 간다. 어차피 지금의 대륙에서는 두각도 보일 수 없고, 라덴의 입김이 닿는 곳에 서는 힘을 키울 수도 없어.’
진지하게 1년 정도 발할라를 접을까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설마 신 대륙이 공개될 줄이야. 저곳은 기회의 땅이다. 위험 요소도 충분히 있겠지만, 지금의 대륙에서 아무런 이득도 얻을 수 없는 이상 신 대륙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개같은 새끼. 내가 이렇게 몰락할 줄 알아? 절대 안 그래. 절대 안 그 런다고.”
루카스는 충혈된 눈으로 모니터를 노려보면서 중얼거렸다. 아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는 급히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들었다. 가장 먼저 샤오만에게, 그 뒤에는 아직 불칸 길드에 남아 있는 주요 전력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우리는 신 대륙으로 간다. 거기서 가장 먼저 거점을 만들고 주요 포인트를 선점하는 거야. 뭐? 위험하지 않느냐고? 하! 위험은 걱정할 필요없어. 그래봤자 몬스터 나부랭이라고!”
루카스는 핸드폰을 붙잡고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초월자…”
정하란은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앞에 앉은 박민수는 긴장하여 조마조마한 표정이었다.
그는 갈증을 느끼면서 바로 앞에 있던 물잔을 들어 담긴 물을 꼴깍거리며 마셨다.
“그…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박민수는 그에 대해서 확실하게 언급해 두었다. 이런식으로‘인간’과 마주하여 있는 것은 처음이다.
김현성과는 만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김현성의 경우에는 앨리스에게서 먼저 납득을 얻은 후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번 일에 앨리스는 도와주지 않는다. 이것은 박민수가 처음으로 하게된, 임원다운 일이었다.
본래 앨리스의 연줄로 낙하산처럼 들어온 박민수는, 임원들 사이에서도 앨리스의 끄나풀 역할만 하면서 이런저런 잡일만 도맡아 했었다.
이번에는 아니다. 이것은 박민수가 처음으로 하게 된 임원다운 일이며, 이것은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임원들 사이에서의 박민수에 대한 평가가 갈리게 될 것이다.
즉, 이것은 박민수에게 있어서는 임원으로서의 터닝 포인트이면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그렇기에 처음 이 일을 도맡았을 때만 하여도 박민수는 결의를 다졌으나….
‘지, 진정되지 않아…’
그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진정이 안된다. 알케나. 정하란은, 자신의 앞에서 볼품없이 몸을 떠는 박민수를- 토끼를 보면서,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쓸데없이 넓기만 하고 가구가 적은 집. 이곳이 정하란이 살아가고 있는 집이다. 본래 그녀는 캡슐 하나만 덩그러니 놓은 원룸에서 살고 있었지만, 수입이 늘어나는 만큼 어느정도 지출이 필요하게 되었기에, 옮기고 싶지않은 이 커다란 집으로 이사를 해왔다.
사실, 김현성과 같은 멘션으로 이사하고 싶었지만.
“서… 선택은 정하란님이 하시는 겁니다. 저희는 어디까지나 정하란님의 의견을 존… 존중… 하겠습니다.”
토끼가 앞니를 딱딱 떨면서 말한다. 정하란은 그런 토끼의 얼굴을 보면서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갑작스러운 방문이었다. 저 토끼는, 정말로 갑작스럽게. 정하란이 살고 있는 집의 거실에 나타났다.
멍하니 TV 뉴스를 보고 있던 정하란은, 갑자기 출현한 남자에게 당황하기 이전에- 그 남자가 뿅하는 소리와 함께 토끼로 변신한 것에 더욱 크게 당황해야만 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전해 들었다. 아니, 전해들은 것이 아니라. 알게되었다. 정보, 기억. 그것을 전하는 것은 앨리스보다 격이 떨어지는 토끼에게도 간단한 일이었다.
발할라라는 거임의 목적. 초월자. 동조율… 솔직히 말해서, 정하란으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든 이야기였다. 그녀는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한 발할라라는 게임에서, 다섯 개의 검을 다루는 여검사로 활동하고 있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판타지 세계를 동경하거나 비현실적인 것을 믿는 성격은 아니었다.
“…으음…”
가만히 침묵하고 있던 정하란은 슬며시 손을 들어 올렸다. 정하란의 반응을 기다리면서 붉은 눈동자를 초조하게 깜빡거리고 있던 토끼는, 갑자기 정하란이 움직임을 보이자 흠칫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마음을 읽는 것은 토끼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토끼는 자신을 빤히 보는 정하란의 눈동자가 무슨 생각을 품고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잠깐… 실례해도 될까요?”
정하란은 예의가 없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호기심과, 그 나름대로의 확인을 해보기 전에 우선 토끼에게 양해를 구했다.
토끼는 조금 어리둥절 하기는 하였으나, 일단 머리는 끄덕거렸다. 이렇게 긴장하고는 있어도 토끼 역시 인간과는 격이 다른 존재다. 여기서 정하란이 어떤 실례를 저지르건간에, 아직까지는 인간인 정하란은 절대로 토끼를 해할 수가 없다.
“괜찮습니다.”
그래. 나는 초월자다. 격이 조금 딸리기는 하여도 초월자. 토끼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긴장을 완화하고 자신감을 되찾았다.
토끼의 생각을 알리가 없는 정하란은, 토끼에게서 허락이 떨어지자 살짝 머리를 끄덕거리더니 손을 뻗었다.
정하란의 손이 토끼의 양 뺨을 잡았다. 그러더니 그대로 양 뺨을 눌러 버린다. 도톰한 얼굴 살이 눈가를 누르면서 토끼의 눈을 조그맣게 만들었다.
“…으으음…”
정하란은 작은 신음성을 흘리면서 토끼의 뺨을 누르고 있던 손을 문질렀다. 토끼의 입이 헤 벌어지면서 커다란 앞니가 드러난다.
정하란은 손에 닿은 감촉에 조금 감탄하면서, 뺨을 누르고있던 손을 움직여 토끼의 수염을 잡았다.
“자, 잠깐…”
그쯤 돼서야 토끼는 정하란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깨닫고 제지하는 것이 너무 늦었다.
“아아악!”
정하란의 양 손이 토끼의 수염을 뽑아 버렸다. 토끼는 펄찍 뛰면서 아픈 비명을 내질렀고, 정하란은 수염이 뽑히는 감촉과 토끼의 반응에 탄성을 내질렀다.
“이, 인형탈인줄 알았어요.”
“아니라고 했잖아요!”
천장 높이까지 뛰어 올랐던 토끼는, 초월자다운 자제심으로 천장을 뚫고 튀어나가는 것을 간신히 막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수염이 뽑히는 것은 아파도 너무 아팟다. 토끼는 파들거리는 수염을 손으로 꾹 누르면서 울상을 지었다.
“대체 왜 못 믿는 겁니까? 머릿속으로 기억도 전해 주었는데! 다 이해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왜 납득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 납득은 했어요. 초월자나…발할라나, 그런 것들은요. 그런데 토끼가 걸어다니고 말을 한다는 것만은 납득이 안 되어서…”
“토끼가 걸어다니고 말하는 것이 뭐가 이상해요?!”
“보통은 이상하게 생각하죠. 아, 그래도. 방금 전에 확인해보는 것으로 납득했어요. 당신은 정말로 토끼로군요.”
정하란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런 정하란의 대답에 토끼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그래도 오히려 잘 되었다. 수염이 뽑히면서 느낀 통증 덕에 긴장이 싹하고 풀려버렸다.
“어쨌든…! 정하란님은, 선택하시면 됩니다. 계속해서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하실 것인지, 아니면 관련하지 않으실 것인지!”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저에게 불이익이 있는 건가요?”
“없…습니다. 불이익이라고 해봐야. 정하란님이 다시 없을‘기회’를 스스로 거부한 것 정도니까요. 하, 하지만… 이건 틀림없는 기회입다. 평범한 인간, 특히나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기회죠.”
긴장은 덜해졌지만 다급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정하란을 설득하지 못 한다면 임원들 사이에서의 토끼에 대한 평가가 박해질 것이다.
토끼는 어떻게든 정하란을 설득하기 위해서 생각을 정리하고, 그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설득을 위한 명분을 늘어 놓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토끼가 설득을 시도하기도 전이었다. 정하란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아, 그런데… 이거 하나는 확인하 고 싶은데요.”
“어떤.?”
“초월자가 되면, 50년 후에도 늙지 않는 건가요?”
정하란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전쟁이 끝난 후-3
대규모 패치가 끝난 후, 김현성은 발할라에 접속했다.
짧지만 대규모 전쟁을 거쳤던 제노미아의 평원은 멀정하게 복원되어 있었다. 교주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구멍들도 멀정하게 메워져 있었고, 염화가 통째로 태워 놓았던 땅도 그을음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피냄새도 없었고, 시체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제노미아의 도시는 여전히 확장된 모습 그대로였다.
아직까지 제노미아는 플레이어들이 다른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번 전쟁을 통해서 플레이어들은 제노미아의 텔레포트 좌표를 알게 되었고, 제법 긴 시간 동안 제노미아는 많은 플레이어들이 드나들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의 제노미아는 넓어도 너무 넓다.
하지만 확장된 도시는 천천히 줄어 들 것이다. 전쟁이 끝났으니 팔라레스 후작과 그가 이끌고 있는 보가르도 정규군은 수도로 돌아가던가, 아니면 제베른 숲 근방에 있는 보가르도 전투기지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이 제노미아를 떠난다면, 제노미아에는 많은 잉여 건물과 잉여 토지가 남게 된다.
‘. 잠깐. 제베른 숲…?’
거기까지 생각하고서, 라덴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잊고 있었다. 제베른 숲에서 데리고 온 이종족들! 라데은 화들짝 놀라 성벽을 향해 뛰어갔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라덴은 이종족들에게 전쟁에 참여하라고 명령했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그들에게 다른 명령은 내리지 않고 그대로 로그아웃 해버렸다.
교주를 상대하면서 라덴도 심적으로 많은 피로를 느꼈었기에, 이종족들에 생각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여, 영주님?!”
성벽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들이 놀란 소리를 냈다. 성벽까지 뛰어오른 라덴은 놀란 병사들 옆에 떨어져 내리고서 급히 물었다.
“이, 이종족들은 어디에 있어? 그 새끼들, 뭔가 사고를 친것은 아니지?!”
제베른 숲의 이종족들. 마의 증명을 통해 라덴에게 복종하게 되기는 했지만, 그들은 개개인의 무력도 상당한 편이고 본래 호전적이며 난폭한 놈들이다. 놈들은 라덴에게 복종하면서 라덴의 허락없이 인간을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는 하였지만, 만약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전쟁을 겪으면서 거칠어진 놈들이 대형 사고라도 친 것이 아닐까 하여 내심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이. 이종족들이요? 어… 그 놈들은 저쪽 아래에 있는데.”
라덴이 말을 걸었던 경비병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라덴은 대답을 들은 즉시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대장!”
성벽 아래로 떨어진 순간, 누군가가 커다란 목소리로 라덴을 불렀다. 배틀 오크의 족장, 므라쉬였다. 그는 큼직한 눈을 부라리면서 라덴을 향해 성큼거리며 다가왔다.
“어제는 말도 없이 사라지고. 대체 뭐하다 이제 오신 거요?”
“너 이 새끼. 뭔 사고 친 것 아니지?”
라덴은 다가오는 므라쉬를 보고서 일단 욕부터 내뱉고 보았다. 대뜸 욕을 먹은 므라쉬가 입을 반쯤 벌리고서 라덴을 바라보았다.
“사고…? 뭔 사고?”
“나 없는동안 개짓거리 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라덴은 목소리에 힘을 주고서 므라쉬를 노려보았다. 대책없는 의심에 므라쉬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쿵쿵치면서 머리를 크게 흔들었다.
“아니. 대장이 사고치지 말라고 하지 않았수. 그래서 얌전히 여기서 대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보자마자 욕부터 하는거요?”
“진짜 사고 안쳤어?”
“안 쳤소!”
“다른 놈들은 어디 있어? 라이칸슬로프, 뱀파이어, 다크엘프. 얘들은 어디서 뭐하고 있는 거야?”
“다크엘프 놈들은 도시 구경하겠다고 나갔고, 뱀파이어 놈들은 막사에서 관뚜껑 덮고 자고 있소. 라이칸슬로프 놈들은 저쪽에 뒹굴고 있고.”
므라쉬는 큼직한 입술을 삐죽이 내밀면서 뒤편을 가리켰다. 과연. 므라쉬가 말했던 대로, 라이칸슬로프들은 반인반수의 모습을 하고서 뙤약볕 아래에 뒹굴고 있었다.
지극히 짐승다운 모습이기는 하였으나, 라덴은 그것을 두 눈으로 보고 뭔가 김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사고 안 치고 있었구나.”
“마의 증명은 절대적이오. 우리는 전통을 중시하기에, 마의 증명에 패하여 복종하게 되었다면 절대로 그를 어기지 않소.”
“인간보다 낫군.”
라덴은 투덜거리면서 근처에 있던 의자 위에 털썩 앉았다. 당장 라덴은 해야 할일이 많았다.
환룡을 만나서 수도도 한번 들려야만 했고, 제노미아 영주 관저에도 한번 가서 알크레토 후작을 만나봐야 한다. 팔라레스 후작도 만나봐야 하는 것 마찬가지였다.
그 뿐인가? 신대륙이 공개되었으니 그쪽에 관련된 정보 알아봐야 했다.
“너희. 앞으로 어쩔 거냐.”
하지만 라덴은 그러한 일보다는 당장 눈앞에 있는 일을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솔직히 말하지. 나는 더이상 너희들에게 볼 일이 없어.”
이종족들은 전쟁에서 충분히 활약 해 주었다. 그들은 상위 랭커에 버금가는 무력을 가진 군대였고, 이종족들이 상위 랭커를 붙잡아 주지 않았더라면 플레이어나 NPC 측의 피해가 커졌을 것이다.
하지만 자들은 인간이 아니다. 다크엘프는 몰라도 뱀파이어는 인간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 넣어 피를 빠는 놈들이고, 라이칸슬로프나 배틀오크도 마찬가지다. 아니, 사실 다크엘프도 선량한 놈들은 아니다.
당장 라덴은 루그 마을에서 인간을 대수롭지 않게 죽여대던 젊은 다크엘프를 본적이 있었다.
“볼일이 없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를 더이상 수하로 거두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대답한 것은 므라쉬가 아니었다. 라덴은 소리가 난 방향을 돌아보았다. 다크엘프의 장로인 네로스가 라덴을 보고 있었다.
그이 뒤편에는 네로스가 데리고 왔던 젊은 다크엘프들이 눈을 빛내면서 라덴을 보고 있었다.
“그래.”
“마의 증명을 더이상 따지지 않겠다는 뜻이겠지요?”
“그래.”
“그렇다면 우리를 전부 죽일텐가?”
네로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물었다. 그는 더이상 라덴에게 말을 높이지 않았다.
오가는 이야기를 듣고서 므라쉬도 표정을 굳혔다. 그는 근처에 박아 두었던 자신의 거대한 도끼를 붙잡았다.
배틀오크들이 모여든다. 뒹굴고있던 라이칸슬로프들도 몸을 일으켰다. 오직 뱀파이어만이 잠에 취해 등장하지 않았다.
“아니. 죽이지는 않아.”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햇다.
마의 증명으로 복종한 덕분이기는 했지만, 이종족들은 라덴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전쟁에 참가해 싸웠다.
아무리 저들이 몬스터의 강인함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짧으면서도 격한 전쟁은 저들에게도 상당한 피해를 남겨 주었다.
꽤 많은 전사들이 죽었고, 부상자도 상당했다.
“…그렇다면, 우리를 다시 제베른 숲에 유폐할 텐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지.”
“그것을 원할리가 없지 않나.”
네로스가 이를 갈면서 내뱉었다. 라덴은 네로스와 다크엘프들을 물끄러미 보았다.
도시 구경을 하고 왔다더니, 그들은 어느새 새옷을 입었고 장신구나 음식따위를 품에 한아름 안고 있었다.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자유를 원한다면 자유를 주마.”
그말은 다크엘프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었다. 라덴은 배틀 오크의 족장인 므라쉬와 라이칸슬로프의 족장인 황금발톱을 보았다.
“너희에게 딱히, 인간을 죽이지 마라… 뭐 이런것을 강요하려는 것은 아니야. 너희는 인간이 아니니까. 육식동물한테 초식을 강요할 생각은 없어.”
“…그렇다면?”
“너희 하고싶은대로 살아라. 제베른 숲으로 돌아가도 좋고, 마음대로 떠돌아도 좋고. 단, 제노미아에서는 안돼. 이곳은 내 토지니까.”
라덴의 말을 듣고서 므라쉬는 꽉 쥐고 있던 도끼를 놓았다. 자유, 자유라. 제베른 숲에 갖혀있던 어린 시절부터 쭉 갈망하던 것이다.
므라쉬는 높다란 성벽을 올려 보면서 중얼거렸다.
“…얻고나니 부질없다는 생각마저 드는군.”
“그렇다면 다시 숲으로 갈테냐?”
“아니. 그럴 생각은 없수. …하지만 우선 숲으로 가야겠지. 동포들을 데리고 나와야해.”
“나는 솔직히 당신이 우리를 다 죽여 버릴 줄 알았다.”
“내가 개새끼도 아니고 그럴리가 없잖아.”
라덴은 투덜거리면서 의자에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내가 한말은 진심이야. 너희는 너희 하고 싶은대로 해라. 알아서 살라고. 다시 말하지만, 제노미아에서는 사고치지 말고. 나도 너희를 다 죽이고 싶지는 않거든.”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살아도 좋다는 말인가?”
침묵하고 있던 네로스가 입을 열었다.
“도시에 와본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야. 오랜만에 온 도시는… 여전히 북적거리더군. 아예 모르는 도시에서 사는 것보다는 어느정도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에서 사는 것이 낫겠지.”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거냐?”
“도중에 마음이 바뀌면 다른 도시로 떠날지도 모르지.”
“마음대로해. 그것까지는 내 알바가 아니니까.”
네로스를 물끄러미 보던 라덴이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야, 도시에서 살겠다는 것을 말릴 생각은 없다.
“난 간다.”
라덴은 더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전해 둘 이야기는 모두 전해두었다. 어쩌면 라덴이 하는 일은 포악한 몬스터 무리를 풀어 놓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들을 모조리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성인 것일까. 어쩌면 우유부단한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라덴은 신경쓰지 않았다. 라덴은 이종족들을 내버려두고서 몸을 돌려 영주관저로 향했다.
“가는군.”
므라쉬는 멀어지는 라덴의 등을 보면서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쉽게 풀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쩔거냐?”
“어쩌기는. 일단 숲으로 돌아가야지.”
“다른 아이들도 데리고 와야 할 것 아닌가.”
“애들 데리고서는 어디로 갈건데?”
“우리는 일단 도시에 남는다.”
네로스가 냉큼 말했다. 그 말에 므라쉬가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커다란 머리를 옆으로 기울였다.
“도시라. 도시에 남는 것도 괜찮겠군.”
“사고치면 저녀석이 널 죽일텐데?”
“사고 안치면 되잖나.”
“말은 쉽지.”
황금발톰이 므라쉬의 말을 들으면서 껄껄 웃었다. 그렇게 웃어대기는 하였지만, 황금발톱도 진지하게 제노미아에 남는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 배틀오크나 라이칸슬로프는 꼭 인간을 포식하거나 처죽이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종족은 아니다.
그들이 포악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 도시에는 그들의 포악함을 억눌러주는 딱 좋은 누름쇠가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이종족들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라덴은 영주관저에서 알크레토 후작을 만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알크레토 후작은 팔라레스 후작과 함께 있었다. 오고가는 수고가 줄어들었다.
“같이 계셨군요.”
라덴은 방안으로 들어오면서 말을 꺼냈다. 팔라레스 후작은 전쟁 도중에 팔이 잘렸었으나, 지금은 잘렸던 팔이 멀쩡하게 붙어 있었다. 잘린 즉시 에클레어가 치유 마법을 걸어주었던 덕분이다.
“전쟁 영웅께서 오셨군.”
팔라레스 후작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면서 입을 열었다. 라덴은 저말이 비꼬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피식거리며 웃기만 했다.
“드루고라 공작이 제국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라덴은 빈자리에 털썩 앉으면서 말을 꺼냈다. 그 말에 팔라레스 후작과 알크레토 후작의 눈이 크게 떠졌다.
드루고라 공작이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는 것은 플레이어에게는 홈페이지 공지로 전해졌지만, 정작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NPC에게는 전해지지 않은 탓이다.
“공작님이…?”
“뭐. 황족이 전부 죽어버렸으니… 그나마 황제의 자리에 어울리는 것은 드루고라 공작님 뿐이니까요.”
라덴은 드루고라 공작이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자기 덕분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는 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두분은 어쩌실 겁니까?”
라덴의 질문에 팔라레스 후작과 알크레토 후작이 서로 시선을 맞대었다. 잠깐 고민하던 팔라레스 후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보가르도로 바고 복귀할 생각이었는데. 공작님께서 새로이 황제가 되셨다면, 수도에 들러 그간의 일을 보고하는 것이 도리겠지.”
“수도로 돌아가야겠네.”
알크레토 후작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확실히. 지금의 제국을 이끌어가기 위한 황제의 자리에는, 공작님이 오르는 것이 맞아. 정통성… 하하! 몇백년 동안 제국을 수호해 온 유일한 공작인데, 정통성은 차고 넘치지.”
그렇게 말하는 알크레토 후작의 표정은 오히려 개운해 보였다.
“자네는 어찌할 텐가?”
알크레토 후작이 물었다. 라덴은 쯥하고 아랫입술을 빨면서 다리를 꼬았다.
“…수도로 가면 귀찮아질 것 같은데.”
“그래도 얼굴은 뵈어야 하지 않겠나.”
“…으으음… 도움을 받은 것도 있으니까…”
사실 모른척하고 가고 싶지 않기는 하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한 듯 싶었다. 환룡이 전해 준 용린과 추가 스탯 덕을 톡톡히 보았잖은가.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한번 들러는 보죠.”
얼굴만 보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