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36
036/ 아카이드 숲-3
안 좋은 예감은 묘하게 잘 맞는다.
그레이 울프의 고기는 욕이 나올 정도로 맛이 없었다. 게다가 다루는 것도 까다로웠다. 조금이라도 과하게 익힌다면 고기는 가죽 씹는 것마냥 질겼고, 적당히 구우면 한 입 베어 물때마다 비린 피맛이 심하게 났다.
게다가 무슨 수를 써도 누린내는 잡을 수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소금이나 후추라도 챙겨 올 것을. 그런 후회가 들었지만, 그렇다고 소금이나 후추 같은 조미료를 사러 알제른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빌어먹을.”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고기를 씹을 수밖에. 아무래도 이번에는 굽는 것이 조금 과했나보다. 라덴은 질긴 고기를 꾸역꾸역 씹었다. 그러면서 알제른으로 돌아간다면, 반드시 요리 관련 전문 기술을 익히겠다고 결심했다.
아카이드 숲으로 들어온지 이틀.
골드 벌이가 꽤 되기는 했지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비싼 텔레포트와 귀환석 비용을 생각하면 적자다. 사실 돈을 아끼고 싶다면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하지 말고 걸어다녀도 되기는 하지만, 두 달 안에 카타레나의 시험을 달성해야 하는 라덴에게 시간은 금과 같았다.
그리고 언제 돈이 나가는 구석이 생길지 모르는 게임이다. 호령환의 내구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었기 때문에, 내구도가 떨어져서 알제른으로 복귀할 이유도 없다.
그러니 일단은 아카이드 숲에 처박혀서 레벨을 올린다.
Name: 라덴
LV.28
Title: 짐승의 마왕
백호의 호랑이
무도가
Race: 인간
Sex: 남성
힘 96(+31) 민첩 56(+28) 지력 10(+10) 체력 55(+20) 마력 10(+11)
이틀 동안 라덴의 레벨은 3 올랐다. 섭식으로 인한 스탯 수급도 있으니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레벨 업이 진짜.. 엄청 빡세.’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원래 레벨보다 거의 두 배는 높은 사냥터에서 몬스터를 잡고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레벨이 빠르게 오르지 않고 있었다.
‘일반 몬스터가 주는 경험치의 양은 크게 차이가 없어. 보스 레이드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일까.’
사실 이건 배부른 고민이었다. 애초에 발할라는 레벨 업이 빡세기로 유명한 게임이다. 현재 한국에서 최상위 랭커로 분류되는 루아노스의 레벨도 97이고, 한국 랭킹 1위인 루벡의 레벨이 102다. 그리고 세계 랭킹 1위인 레이크의 레벨은 120.
발할라가 오픈하고서 거의 일 년하고도 반이 넘었는데, 제일 높은 레벨이 120이란 것이다. 그것은 발할라의 레벨 업이 빡세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그레이 울프가 주는 경험치는 던전의 정예 몬스터랑 비슷해. 이틀에 레벨 3 올린 것이면 나쁘지 않은 속도지만..’
레벨이 오를수록 요구되는 경험치의 양은 많아진다. 몬스터의 경험치는 그대로다. 결국 사냥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은 스탯의 우위로 동 레벨 플레이어들보다 앞서나가고 있지만,
‘최상위로 가면 이것도 안 먹힌다.’
추가 스탯이 붙은 아이템과 칭호.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라덴 뿐만이 아니다. 라덴보다 이미 훨씬 앞선 곳에서 달리고 있는 랭커들은, 추가 스탯이 붙은 칭호와 아이템을 독식하고 있을 것이다.
라덴은 그런 놈들과 경쟁해야 한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겠군.”
결심을 세웠다. 그레이 울프는 아카이드의 숲에서 출현하는 몬스터 중에서 가장 약한 놈이다.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몬스터는 강해지고, 강해지는 만큼 경험치는 많이 준다.
발할라가 빡센 레벨 업을 패널티로 두고서도 세계 제일의 가상현실게임으로 군림한 것은, 몬스터와의 전투 자체가 압도적인 재미를 주기 때문이었다. 레벨을 올리는 것이 빡세다고 해도 사냥 자체에서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사냥터를 뒹굴고 던전을 뛰어다니게 된다.
‘다음 몬스터는 맛있으면 좋겠다.’
이런 소소한 컨텐츠 때문이기도 하지만.
*
아카이드의 숲은 닥사 존으로 유명한 만큼, 많은 플레이어들이 찾는다. 그들 대부분은 갓 레벨 40을 넘은 플레이어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숲에서 다른 플레이어와 파티를 맺거나, 아니면 파티를 맺은 상태로 숲에 들어오곤 한다.
하지만 이 숲의 모든 플레이어가 몬스터를 노리는 것은 아니다.
“온다.”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매의 눈.’ 이 고유특성은 시선이 닿는 곳이라면 거리에 상관없이 보고자 하는 것을 바로 코앞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게 만든다.
“누구야?”
다른 가지에 앉아 있는 남자가 물었다. 옆에 내려놓았던 활을 들어 시위를 걸던 여자가 대답했다.
“혼자야.”
“혼자? 다른 파티원들은 없어?”
“아무도 없어. 적어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아.”
“그렇다면 아무도 없는 것이겠지.”
매의 눈 자체만 두고 본다면 좋은 특성이라고는 할 수 없다. 먼 거리를 가깝게 보는 것. 그런 것은 마법이나 다른 스킬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기 나름이다. 매의 눈 특성과 연계 되는 다른 특성. ‘먹이 사냥’은 매의 눈으로 포착한 상대에게 가하는 첫 번째 공격을 무조건 적중시킨다. 여자는 화살을 건 시위를 당기면서 남자 쪽을 힐긋 보았다.
“일단 공격한다?”
“원샷 할 수 있어?”
“그건 해 봐야 알겠는데.. 입은 갑옷이 좀 좋아 보이거든. 무기도 없고, 지팡이 든 것도 아니고.. 권법가 쪽인가?”
“일단 한 번 쏴봐. 나도 바로 준비할 테니까.”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등허리에 걸어 두었던 클로를 손에 장착했다. 여자는 남자가 무장을 끝낸 것을 확인하고서, 매의 눈으로 포착한 먹잇감을 다시 돌아보았다. 가늘게 뜬 눈으로 먹잇감을 보면서, 여자는 아랫입술을 핥았다.
발할라의 시스템은 PVP나 PK에 우호적이다. 어느 쪽이든 승자 쪽에게 보상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플레이어를 죽이고서 얻는 경험치는 꽤 짭짤한 편이기도 하다. 특히 레벨이 30이 넘어가고서 부터는 플레이어를 쓰러트리면서 얻는 경험치는 크게 늘어난다. 스탯이 오르고, 더 좋은 장비를 착용하면서 죽이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냥터에서 혼자 다니는 놈이 멍청한 거지.”
그러다 보니 PK를 전문적으로 하는 플레이어들도 생기는 법이다. 기습만 잘 한다면 죽이기도 쉽고, 몬스터보다 경험치도 많이 주고, 운이 좋다면 좋은 장비도 드랍하니까.
‘기왕이면 저 갑옷이 떨어지면 좋겠는데.’
여자는 그 생각을 하면서 시위를 놓았다.
[살기에 노출되었습니다!]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것을 경계하면서 걷던 도중이었다. 라덴은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에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몬스터? 어디.. 생각이 멈춘다. 라덴은 바로 앞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보고서 기겁하여 몸을 비틀었다. 포식감지 스킬의 경고가 아니었다면 보지도 못하고 꿰뚫렸겠지만, 일단 대응은 했으니..
“윽?!”
빗나갔어야 할 화살의 궤도가 공중에서 바뀌었다. 결국 화살은 애초에 노렸던 대로 라덴의 목을 꿰뚫었다.
“커헉!”
라덴의 입에서 피가 뿜어졌다. 호흡이 턱하고 막힌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올라온다. 라덴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진짜 몸이었다면 목이 화살에 꿰뚫리는 것으로 죽었겠지만, 이 몸은 진짜 몸이 아니다. 아바타의 죽음은 체력 포인트가 0이 되었을 때 뿐이다.
라덴은 급히 목에 박혀 있는 화살을 뽑아냈다. 결과적으로 상처는 벌어지고 피는 더욱 많이 쏟아졌지만, 체력이 높고 체력 회복속도가 높은 라덴은 이 일격으로 죽지 않는다. 라덴은 인벤토리에서 꺼낸 포션을 입 안에 부으면서 몇 걸음 더 뒤로 물러섰다.
“버텼네.”
여자는 혀를 차면서 활에 시위를 한 번 더 걸었다. 노렸던 대로 정확하게 목을 꿰뚫었는데 버틸 줄이야. 단순 딜러라고 생각했는데 탱커인 것일까?
“난 엄호로 빠질 테니까, 네가 가서 마무리 해.”
여자는 다시 활에 화살을 걸었다. 먹이사냥 특성은 쿨타임에 들어가서 지금 바로 사용할 수는 없다. 여자의 말을 듣고서 클로를 장비한 남자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이게 뭐야..!”
기습. 라덴이 알기로 이 숲에 화살을 쏘는 몬스터는 없다. 그렇다면 화살을 쏜 것은 플레이어라는 말인데. 라덴은 줄어 든 체력이 회복되는 것을 확인하고서 자세를 낮추었다. 화살이 날아 온 방향은 정면. 매복이 있나?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바로 위 나무에서 푸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살기에 노출되었습니다!]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한 남자가 라덴의 머리 위로 뛰어 내렸다. 낙하와 동시에 크게 휘두른 클로가 라덴의 머리를 노렸다. 라덴은 이를 악물고서 허리를 크게 뒤로 젖혔다. 클로가 라덴의 가슴팍을 스쳤다.
땅에 발이 닿은 남자가 곧바로 자세를 잡았고, 공격을 퍼부었다. 바짝 붙어서 클로를 휘두르고 찌른다. 라덴은 눈을 부릅뜨고서 들어오는 공격을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빨라..!’
라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습 탓에 페이스를 빼앗겼다. 게다가 남자의 공격은 라덴이 대응하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레벨이 높은 놈이야.’
대응이 아주 힘든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덤빌 수도 없었다. 상대는 못해도 둘. 어디 있는지 모를 한 명이 화살로 라덴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화살의 엄호가 무서워서 공격을 계속 양보했다가는 빼앗긴 페이스를 다시 역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억지로라도 뚫어야 돼.’
빠르게 찌른 클로가 라덴의 얼굴로 날아왔다. 라덴은 뒤로 물러서는 대신에 과감히 앞으로 몸을 밀어냈다. 클로의 칼날이 라덴의 뺨을 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풍압에 얼굴의 반쪽이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라덴은 쥐고 있는 주먹을 남자의 복부로 내질렀다.
반격에 대호격타가 섞인다. 레벨보다 압도적으로 커다란 데미지가 남자의 배에 꽂혔다.
“커흑!”
남자가 피를 토하며 뒤로 나뒹굴었다. 라덴은 그 즉시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살기에 노출되었습니다!]다시 경고. 화살이다. 틈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라덴은 정면을 향해 팔을 들어 올리고서 남자에게 달려드는 속도를 죽이지 않았다. 화살 정도는 팔 하나로 막아낼 생각이었다.
오판이었다. 붉게 빛나는 화살이 라덴의 팔뚝에 꽂혔다. 라덴은 빛을 발하는 화살을 보고서 눈을 부릅떴다.
“이런 씨..”
봄버 샷. 궁수 클래스에서 익힐 수 있는 스킬이다. 이 스킬은 이름 그대로, 쏘아낸 화살을 폭발시킨다.
욕설을 채 끝내지 못하고 라덴의 몸이 폭발에 휘말렸다. 뒤로 크게 밀려난 라덴의 몸이 나뒹굴었다. 폭발에 휘말린 왼 팔이 넝마가 되어 있었다. 넝마라고 해 봐야 모자이크 처리가 된 모습이지만,
자신의 왼 팔이 모자이크에 덮여 있는 것을 보는 것은 그리 즐거운 기분은 아니었다.
[괜찮아?]해로이는 여동생의 목소리를 들으며 몸을 일으켰다. 설마 이런 식으로 한 방 먹을 줄이야. 그는 입 안에 고인 피를 퉤 뱉어 내면서 라덴을 향해 다가갔다.
“괜찮아. 체력이 좀 많이 줄기는 했는데.. 크. 새끼 주먹 진짜 맵네.”
[레벨 몇일 것 같아?]
“한 45? 아니, 그보다 높으려나.. 50 정도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 보면 레벨 꽤 되는 놈 같은데.”
해로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쓰러진 라덴을 향해 다가갔다. 죽었나? 해로이는 머리를 갸웃거리면서도 클로를 높이 들어 올렸다. 확실하게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으아아아!”
바닥에 엎어져 있던 라덴이 대뜸 고함을 지르더니 허리를 튕겨 몸을 일으켰다. 해로이는 당황하지 않고 클로를 휘둘렀다.
하지만 클로가 휘둘러지는 것보다 라덴의 손이 움직이는 것이 더 빨랐다. 촤아악! 뭔가가 해로이의 얼굴을 때렸다. 크게 뜨고 있던 해로이의 눈이 찡그려졌다.
“뭐, 뭐야?!”
모래? 해로이는 눈에 들어 온 모래에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다짜고짜 모래를 뿌린 라덴은 움직이지 않는 왼 팔을 크게 휘둘렀다. 콰드득! 흔들리던 왼 팔이 채찍이 되어 해로이의 얼굴을 갈겼다.
“이, 개새끼들!”
라덴은 씨근거리는 숨을 내뱉으면서 모래가 엉겨 붙은 오른 손을 크게 흔들었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해로이에게 바짝 붙었다. 어디서 쏘아질지 모르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너희 뭔지는 모르겠는데, 내 자존심을 아주 박살내 주는구나..!”
라덴은 거친 목소리로 외치며 해로이의 손목을 붙잡았다.
뭐하는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은 라덴을 죽이기 위해 확실하게 움직여 주었다. 그렇다면 라덴 그에 맞는 대응을 해줄 수밖에.
지저분한 PK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