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37
037/ 아카이드 숲
“이 자식!”
얼굴에 뿌린 모래는 해로이를 주춤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라덴은 해로이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뛰고 호흡이 거칠다. 이렇게 열 받은 것은 오랜만이었다.
‘방심했어? 씨발, 방심한 것이 문제인 거야.’
다른 플레이어보다 우월한 스펙을 가졌다는 것에 너무 안일했다. 이 게임에서 PVP와 PK는 몬스터 사냥과 똑같은 의미를 갖는다. 게임 자체가 PK에 우호적이란 말이다.
이런 숲속, 파티도 없이 혼자 돌아다니고 있으면 사냥꾼의 표적이 되는 것이 당연한데. 그것도 생각하지 않고서, 몬스터 잡을 생각만 하였으니 방심하는 것이 당연하지.
게다가 기습을 허용한 주제에 대응도 너무 안일했다. 원거리에서 활을 쏘는 엄호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봄버 샷을 처 맞다니. 최근 두 달 게임을 했다고 해서 예전 감각을 완전히 되찾았다고 착각했던 걸까.
거기까지. 라덴은 자책을 멈추었다. 일단은 지금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 먼저다. 부상은? 왼 팔은 지금 당장은 쓸 수 없다. 상처가 회복하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포션을 마시면 회복은 할 수 있겠지만, 포션을 마실 틈은 없다.
그렇다면 아쉬운대로 한 팔로 상대하면서 유혈 특성을 믿는 수밖에. 해로이의 손목을 잡고 있던 라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관절기에 대한 교육. 그것을 떠올리면 아픈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백설에게 지독히 당한 탓이었다.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상대에게 관절기는 유효한가?
상황에 따라 다르지. 라덴의 질문에, 백설은 그렇게 대답했었다. 관절에 힘을 주고 있다면 당연히 꺾는 것은 힘들다.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상대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쪽이 꺾는 힘을 상대가 버틴다면 꺾을 방법이 없으니까.
‘센스.’
라덴의 손이 해로이의 관절을 왼쪽으로 꺾었다. 힘을 불어넣는 것은 천천히, 마치 예고하는 것처럼. 내가 지금 네 손목을 왼쪽으로 꺾을 거야.
당연히 해로이는 손목이 꺾이지 않기 위해 저항한다. 왼쪽으로 꺾이지 않도록, 오른쪽 방향으로 힘을 주면서. 그 저항감이 걸리는,
‘덜컥’하는 소리.
거기서 방향을 바꾼다. 역회전하는 것이다. 힘이 들어가는 방향에 거스르지 않고, 해로이가 힘을 주는 방향을 바꾸기 전에 그대로 꺾어 버린다.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맨 손으로 상대의 관절을 박살내는 것이니까. 가장 먼저 스스로의 마음이 저항한다. 여기서 꺾으면 관절이 아작 날 거야. 그렇게 해도 돼?
보통의 경우에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라덴에게는 아니었다. 애초에 PVP 전문인데다 PK에 거부감도 없다. 게다가 지금은 머리에 열이 올랐다.
우둑.
“아윽!”
게임이다. 실제 육체가 아닌 아바타다. 느낄 수 있는 통증에는 한계가 있고, 통증의 정도가 심해진다면 게임의 시스템이 자동으로 통증을 커트한다.
하지만 해로이가 지른 신음은 진짜였다. 멀쩡하던 관절이 박살나는 것은 뼈 안에 얼음을 쑤셔 넣은 것 같았고, 아픔보다는 놀람이 비명의 이유가 되었다. 잡혀 있던 해로이의 왼 손이 축 늘어졌다. 손가락에 감각이 없다.
‘일단 하나 봉인.’
관절을 박살낸 몸뚱이가 아바타라는 자각은 확실히 갖는다. 현실의 몸이라면 관절 박살난 순간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고 나뒹굴겠지만, 게임인 이상 통증도 적고 관절을 박살내는 것으로 한쪽 손을 봉인할 수 있는 시간에도 한계가 있다.
‘체력 회복 속도 치면 길어야 5분 정도. 아니, 고유특성이나 스킬 쪽도 있으니까..’
아예 잘라내는 것이라면 모를까, 관절을 꺾는 정도로는 체력에 큰 손실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 끌기로는 충분하다. 손목 관절을 아작내는 것으로 해서 치명상을 이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아직 쓸 수 있는 팔은 오른 손 뿐. 조건은 같다. 서로가 똑같이 왼 팔을 쓸 수 없다. 사실 아주 같지는 않다. 지금 해로이의 손은 자신의 눈가로 가 있으니까.
그 틈. 라덴의 손이 위로 튀어 올랐다. 채찍처럼 휘두른 손등이 해로이의 목젖을 때렸다. 갑옷으로 보호되지 않은 목젖은, 레벨과 상관없이 유효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급소 중 하나다.
“켁!”
통증도 통증이지만 막히는 호흡에 당황하게 만든다. 비틀거리며 물러선 해로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개새..”
넌 떠드는 것보다 반격했어야 해. 라덴은 그런 훈수를 삼키면서 허리를 비틀었다. 짧게 갈긴 훅이 해로이의 턱을 갈겼다. 아바타는 쓸데없이 리얼하다. 턱을 맞는다면, 실제로 턱을 맞은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해로이의 눈동자의 빛이 흐려졌다. 여기서 틈. 라덴의 무릎이 움직였다.
“맙소사.”
독수리의 눈으로 그걸 보고 있던 여자, 로사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라덴의 무릎이 해로이의 사타구니에 처박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로사나는 여자이긴 했지만, 괜히 자신의 다리를 오므리면서 몸을 떨었다.
“억!”
실제 몸이 아니니까 통증은 얕다. 하지만 해로이는 입을 쩍 벌리고서 비명을 질렀다. 멀쩡하던 사타구니에 순간 감각이 사라지는 것은 놀라기에 충분했던 탓이다. 라덴의 손이 확하고 치켜 올라갔다.
호령환의 손톱이 라덴의 손끝에서 튀어나왔다. 콰악! 내리찍은 손톱이 해이로의 양 눈을 찍었다. 이 역시 통증은 적다. 하지만 시야를 완전히 빼앗는다. 해로이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후욱!”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왼 팔 손목, 그리고 양쪽 눈. 아직 부족하다. 행동의 자유는 빼앗았지만 체력 포인트를 0으로 만들기에는 부족하다.
“으아아!”
해로이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미친 듯이 손을 휘둘렀다. 멀쩡한 오른손에 달린 클로가 허공을 할퀴었다. 라덴은 방심하지 않았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그런 마인드로 한 대 정도 맞아줄 수는 있겟지만,
기왕이면 아무 것도 안 주고 뼈를 취하는 것이 나으니까.
‘뭐야 이게..!’
눈 앞이 새카맣게 물들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을 당했다. 그건 확실히 알고 있다. 그나마 보이는 것은 상태창 뿐. 체력은 계속해서 줄고 있고, 욱신거리는 통증이 끊이질 않는다.
공격당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반격하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미친 듯이 팔을 휘둘러 보지만 공격이 닿는 감촉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한 대만.. 한 대만, 좀..!’
해로이의 고유특성은 ‘피바람’이다. 이 특성은 자신의 공격으로 만들어낸 상처의 회복력을 저하시켜서 지속적인 출혈 데미지를 주는 특성이다.
거기서 연계할 수 있는 특성은 ‘부식.’ 입힌 상처를 곪아 썩게 만드는 것으로, 출혈 데미지와는 다른 지속 데미지를 준다.
즉, 해로이의 고유특성은 대부분이 지속적인 도트 데미지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러니까, 한 대만 제대로 들어간다면 어떻게든 된다. 피바람과 부식 이외에도 지속 데미지를 주는 특성은 더 있고, 중첩된 데미지를 크게 뻥튀기 시키는 특성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 한 방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무리 손을 휘둘러 보아도 공격이 닿지 않는다. 한 대만 때리면 어떻게든 되는데.. 해로이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되는대로 휘두르는 공격. 방어는 이미 버렸나. 라덴은 해로이의 품 안으로 파고 들면서 손톱을 세웠다. 콰드득! 라덴이 뻗은 손이 해로이의 옆구리를 쥐어뜯었다. 뜯겨진 살점의 아래에서 피가 뿜어졌다.
라덴은 의도적으로 해로이에게 강한 치명타는 주지 않고 있었다. 데미지가 적은 일반 공격을 거듭해서 집어넣으며, 피가 흐르는 상처를 많이 만든다.
광란 중첩을 올리기 위해서였고, 유혈 특성으로 자신의 체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봄버 샷에 당해 줄어들었던 라덴의 체력은 대부분이 회복되었고, 넝마가 되었던 왼 팔도 멀쩡하게 회복되었다.
‘궁수 쪽이 조용하군. 상황을 보는 건가?’
아니, 공격할 수 없는거야. 라덴은 그를 확신했다. 처음 목을 꿰뚫렸던 화살은 공중에서 방향을 틀었었다. 라덴이 경계하는 것은 그런 화살이었지만, 궁수는 그런 화살을 쏘고 있지 않았다.
‘처음 한 발이 끝. 고유특성이군. 쿨타임이 있는 건가.’
그렇다는 것은 정면에서 들어오는 공격만 조심하면 돼. 앞으로 쏘아내는 화살의 궤적 변화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렇게 파악하되, 라덴은 완전히 방심하지는 않았다. 일단 그는 해로이 측에 바짝 붙었다. 해로이의 몸을 방패막이로 쓰기 위해서였다.
‘체력은 충분히 찼고..’
그럼에도 해로이를 끝내지 않은 것은, 궁수의 위치를 확실히 알기 위해서였다. 화살 한 발 정도는 더 쏴줬으면 싶은데. 라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해로이의 오른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양 손을 써서 해로이의 오른쪽 팔꿈치를 박살냈다.
“아아악!”
결국 해로이는 양쪽 눈과 양 팔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너 뭐하는 거야?! 오빠 처 맞는 거 계속 보고만 있을 거야?!] [나보고 뭐 어떻게 하라고? 네가 바짝 붙어있어서 각도 안 나온단 말이야..!] [먹이사냥 특성 초기화 아직 멀었어?!] [아직 한참 남았어. 나한테 지랄하지 말고 저 새끼나 좀 떨쳐 봐..!] [그게 말처럼.. 악!]라덴의 무릎이 다시 한 번 해로이의 사타구니를 걷어 찼다. 아바타가 아닌 진짜 몸이었다면 진즉에 고자가 되었을 것이다. 어깨를 부들거리며 떨던 로사나는 입술을 잘근 씹으며 활을 들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답도 없어. 일단 쏜다. 너채로 꿰뚫어 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이 미친년이, 오빠 죽이겠다는 거야?!] [그럼 어쩌려고? 그냥 내버려 둬도 저 새끼가 너 패 죽일 텐데. 차라리 내가 너랑 저 새끼 잡고, 아이템 챙기는 것이 나아.] [이런 씨..!] [쏜다.]시위에 화살이 걸렸다. 독수리의 눈으로 라덴을 포착하고서, 거기에 특성 중 하나인 ‘발톱 관통’을 건다. 이 특성을 사용하고서 쏘아낸 화살은 한 번에 한해서 방어력과 모든 저항을 무시하고 꿰뚫는다.
거기에 궁수 스킬인 스턴 샷. 발톱 관통으로 해로이와 저 새끼를 꿰뚫고, 스턴 샷으로 경직을 준 뒤에 연사를 쏴서 마무리한다. 완벽하군. 로사나는 자신이 세운 계획에 스스로 감탄하면서 시위를 놓았다.
스턴 샷이 걸린 화살이 빠르게 튀어 나갔다. 궁수 직업의 보정인 ‘궁사의 기본’은, 평생 활 한 번 잡아 본 적 없는 플레이어도 레벨만 오른다면 활의 달인으로 탈바꿈시킨다. 조준은 완벽했다. 거기에 발톱 관통 특성으로 방어력과 저항력도 무시하니까, 화살은 로사나가 생각한 대로 저 둘을 한꺼번에 꿰뚫을 것이다.
[살기가 감지되었습니다!]로사나도, 해로이도. 재수가 없었다. 라덴이 가진 ‘포식감지’ 특성은 일종의 예지력이다. 대응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개인 피지컬에 달렸지만, 라덴의 피지컬로 대응은 어렵지도 않다.
‘화살!’
라덴은 그것을 느낀 즉시 상체를 크게 뒤로 젖혔다. 헐떡거리던 해로이는 멈추지 않고 들어오던 연타가 멈추자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서 섰고, 등 뒤에서 날아 온 화살이 해로이의 가슴을 꿰뚫었다.
“켁!”
그 기세가 줄지 않고 쏘아진 화살은 나아간 방향 그대로 앞으로 전진 했다. 대응이 조금만 느렸다면 라덴도 해로이처럼 화살에 꿰뚫렸을 것이다.
‘찾았다.’
라덴은 급히 머리를 들어 화살이 날아 온 방향을 잡았다. 스턴 샷을 맞아 해로이의 몸뚱이가 뻣뻣하게 굳었다.
‘경직이군. 오히려 잘 됐어.’
라덴은 거의 눕듯이 뒤로 젖힌 몸을 튕기며 일어섰다. 그리곤 해로이에게 바짝 붙어서 놈의 허리를 잡았다.
“몸 좀 빌리자.”
방패는 따로 가지고 있지 않으니, 고기방패라도 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