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81
알라베스 산.
현 발할라에서 존재하는 ‘필드’ 중에서 최상의 난이도를 지닌 곳. 발할라 플레이어 중에서 그것에 부정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최상위 랭커들조차 살아남기 힘든 곳. 그들이 모여 있는 길드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춘 공략대를 보내면서 산을 정복하려고 했지만, 여태까지 알라베스 산의 중턱을 넘은 길드는 아무도 없다.
루카스가 이끌고 있는 불칸도 실패했고, 레이크가 이끄는 파라곤도 실패했다. 발할라가 오픈하고서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알라베스 산은 그 어떤 플레이어에게도 정복되지 않았다.
“알라베스 산을 넘으면 제노미아라는 도시가 있어. 그곳에 가서 키라이스라는 NPC를 찾아.”
“잠깐.. 알라베스 산을 넘으라니!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야.”
“..당신이 직접 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침묵하고 있던 가람이 입을 열었다. 레하브에게 욕을 들었기 때문인지, 가람은 레하브를 상대로 말을 높이고 있었다.
“나는 갈 수 없어.”
그 말을 하면서 레하브는 쓰게 웃었다. 하지만 레하브의 대답에도 가람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왜 갈 수 없다는 겁니까? 당신은 뛰어난 마법사인데. 나나 저 녀석보다는 당신이 가는 편이 더..”
“그러면 퀘스트가 아니지.”
레하브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차갑게 뜨여진 레하브의 눈이 가람과 라덴을 바라보았다.
“너희는 발할라의 NPC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군. 이 세계의 주역은 우리가 아니라 너희야, 플레이어. 우리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많은, 귀찮은, 그런 제약들에 속박되어 있어.”
NPC는 자신이 NPC임을 부정할 수 없다. 플레이어라고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NPC는 죽음에서 다시 부활할 수 없다. 발할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NPC의 제약은 저것들이다.
거기서 하나 더.
“나는 분명 너희보다 강해. 아마 지금 발할라를 하고 있는 플레이어 수준에서, 나보다 뛰어난 마법사는 없을 거다. 알라베스? 좀 엿같은 곳이기는 하지만, 정 오르려고 한다면 오르지 못할 것도 없어. 제노미아? 갈 수 있어. 하지만 나는 안 가. 아니, 못 간다.”
레하브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로브 안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꾸물거리던 손이 꺼낸 것은 낡은 담배 파이프였다. 레하브는 함께 꺼낸 쌈지에서 담뱃잎을 꺼내더니 파이프의 안쪽에 천천히 잎을 쌓아 넣었다.
“왜냐하면 이 퀘스트의 주역이 되어야 할 것은 NPC인 내가 아닌, 너희 플레이어기 때문이야. 나는 퀘스트를 전해주는 역할을 가진 중간 NPC일 뿐이지. 내가 퀘스트를 수행할 수는 없는 거다.”
생각해 보면 여태까지 만났던 NPC들도 그랬다. 카타레나 발레르.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받아 온 가혹한 성적 학대 때문이었다.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으면서 카타레나는 자신이 직접 아버지를 죽이려고 들지는 않았던 것일까.
다크 세인트, 아라포니아도 그랬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나서면 될 것을, 굳이 라덴을 사용해서 세하라의 왕릉에 있는 비밀의 방, 그곳에 있는 수정 구슬을 확보했다.
물론 확신할 수는 없다. 어쩌면 카타레나도 아버지인 졸코트 발레르의 암살을 시도했었으나 실패했기에, 그래서 플레이어의 손을 빌리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라포니아도 그녀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단순히 ‘귀찮아서’ 라덴을 보냈던 걸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번 은둔자 퀘스트. 유성은 적극적으로 라덴을 도와주지 않은가.
“퀘스트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사건이야. NPC인 내가 직접 나서서 사건을 해결하면 참 쉽겠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이 세계는 NPC가 아닌 너희 플레이어를 위한 세계니까.”
허공에서 튄 불씨가 파이프 안으로 떨어졌다. 레하브는 파이프를 천천히 빨아들이면서 웃었다.
“그러니 나한테 따지지 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 엿 같은 퀘스트를 만들어서 뿌리는 이 게임의 운영진에게 따지라고.”
*
레하브의 집을 나왔다. 레하브의 집 앞에서 가람은 몇 번이나 이번 퀘스트에 대해 루아노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고 부탁 아닌 협박을 했다.
그리고 나서 라덴과 가람은 헤어졌다. 알라베스 산을 넘는 것. 그 이후부터는 서로가 알아서 하기로 암묵의 합의를 본 것이다. 사실 가람도 라덴과 함께 퀘스트를 수행할 생각은 없었다.
가람은 강하다. 라덴보다 레벨이 높고, 라덴보다 가진 것이 많다. 가람이 쓰고 동원할 수 있는 것과 라덴이 쓰고 동원할 수 있는 것에 차이가 많은 이상, 가람이 사람 좋게 라덴을 데리고 다닐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문제는 나로군.’
루아노스는 황혼의 추적자 퀘스트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러나 루아노스는 지금 세하라의 왕릉을 공략하는 것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루아노스는 이 퀘스트를 수행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다른 상위 랭커가 이 퀘스트에 접촉하는 것을 방해할 생각이라고 했었다. 라덴은 작게 혀를 차면서 머리를 뒤로 젖혔다. 어쩌면, 라덴이 알리지 않아도 루아노스는 이미 가람이 보하미르에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떠봐야 하나?’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루아노스를 떠보려고 했다가 실패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얌전히 있다가 루아노스가 가람을 포착하고서, 그를 통해서 가람을 핍박하기라도 한다면 라덴의 입장이 난처해진다.
[바빠요?]결국, 라덴은 루아노스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또 뭔가요?]루아노스의 대답이 돌아왔다. 세하라의 왕릉. 루아노스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흑접과 불칸의 공격대는 아직까지 세하라의 왕릉 5층에 남아 있었다.
[혹시 공략이 얼마나 진행되었냐, 그런 것을 물을 생각이라면 절대로 알려주지 않을 거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물어볼 생각도 없었는데요. 그냥, 보고를 하려고.] [..보고?] [황혼의 추적자 퀘스트. 완료했어요. 듣고 싶지 않아요?]루아노스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놀란 것이겠지. 라덴은 입맛을 다시면서 루아노스의 반응을 기다렸다.
[..왜 나한테 그걸 알려주겠다는 거죠?] [알려줘도 될 내용이기도 하고. 부탁하고 싶은 것도 있어서.] [또 무슨 부탁을 하려고요? 지난번에 당신이 세하라의 왕릉에서 난리를 벌인 덕에 공략 진행이 얼마나 늦춰졌는지 알아요?]루아노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세하라의 왕릉의 위치가 흑접과 불칸 이외의 누군가에게 알려졌다는 것. 루카스는 혹시 모를 습격을 경계하였고, 덕분에 흑접과 불칸은 던전 공략을 잠깐 동안 멈추고서 던전을 살피면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다른 첩자는 없을 테니 계속해서 공략을 진행하자고 말할 수도 없고..! 도대체 세하라의 왕릉에는 왜 왔던 건가요?] [뭐.. 지나간 얘기는 너무 하지 말자고요. 나 때문에 피해를 본 것은 크게 없잖아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그것보다 재밌는 얘깃거리가 있는데. 이건 어때요? 보하미르에 가람이 와 있어요.]루아노스가 가람의 상황을 파악했을지, 파악하지 않았을 지는 라덴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라덴 쪽에서 루아노스에게 가람에 대한 정보를 넘긴다.
[나와 같이 황혼의 추적자 퀘스트를 수행하게 되었죠. 같이.. 라는 것은 조금 다른가. 뭐, 일단 같이 레하브를 만나기는 했어요.] [나한테 이 말을 해주는 이유는?]침묵하고 있던 루아노스가 물었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라덴이 아무 이유 없이 자신에게 이 정보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가람이 이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고, 루아노스님만 알아줬으면 해요.] [..왜죠?] [내가 가람과 접촉했으니까요. 나는 가람에게 협박을 들었어요. 만약 자신이 황혼의 추격자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나를 매장해 버리겠다고.]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 아닌가요?] [나야 입을 다물고 있을 생각이지만, 루아노스님이 그랬었잖아요? 보하미르를 감시하고, 방해할 생각이라고.] [맞아요. 가람이 보하미르에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루아노스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역시 그렇겠지. 라덴은 입맛을 다셨다. 독불장군으로 행세하던 가람과는 달리 루아노스는 이곳 저곳에 연줄이 많다. 당장 흑접은 이빨이라는 하위 길드를 가지고 있었고, 그 이빨조차도 규모가 얼마나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가람도 여러 가지로 조심은 한 모양이지만, 그 정도 거물의 움직임은 주목한다면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죠. 최근 가람이 통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도 하고.]
[루아노스님 외에 누가 그걸 알고 있습니까?]
[내 입을 막고 싶은 건가요?]
[난 매장당하기 싫거든요. 루아노스님도 그렇지 않아요?]
[바이스의 가람 따위가 하려 드는 매장을 진짜 매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만약 가람이 당신을 매장하려 든다면, 라덴. 당신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흑접으로 투신하면 되는 거예요.]
[나는 루아노스님과 협상할 생각은 없어요. 루아노스님의 입을 막고 싶을 뿐이지.]
[어떻게?]
[나도 하나 가지고 있잖아요? 루아노스님을 협박할 건수를.]
그 말에 루아노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라덴이 이렇게 나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내가 세하라의 왕릉 위치를 당신에게 알려 준 것을 말하는 거죠?] [역으로 루아노스님은 내가 세하라의 왕릉의 침입자라는 것을 쥐고 있죠.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나한테 그게 큰 협박건수는 아니거든요. 당장 가람이 나를 매장하려 들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거기에 불칸 하나 더해진다면.. 뭐.. 많이 빡 세지기는 하겠지만.] [좋아요. 그렇다면 거래하죠.]루아노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도 이번 기회에 자신이 라덴에게 세하라의 왕릉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는 사실을 묻고 싶은 것이리라. 애초에 그를 빌미로 하여 루아노스를 협박할 생각도 없었기에, 라덴은 흔쾌히 대답했다.
정확한 내용은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저것만으로도 루아노스를 경악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알라베스 산. 그 산이 얼마나 끔찍스러운 곳인지 루아노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친 퀘스트로군요. 알라베스 산이 플레이어에게 공략되려면 못해도 몇 달은 필요할 거에요. 지금 랭커들 수준에서 알라베스 산 공략은 불가능해요.] [공략이 아니라 산을 넘으라는 조건이기는 한데.. 뭐..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해요. 블랙 벨트 때문에 알라베스 산 저편으로 갈 수도 없고.]뭔가 아귀가 안 맞는다. 라덴은 황혼의 추적자, 그 연계 퀘스트를 보았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퀘스트가 너무 빡세기 때문이었다. 상위 랭커를 위한 스토리 퀘스트라고는 해도, 현 시점에서 플레이어는 알라베스 산을 넘을 수가 없다. 그런데 퀘스트의 내용은 알라베스 산을 넘는 것이라니.
‘앞뒤가 안 맞아. 블랙벨트라도 없다면 알라베스 산을 빙 돌아서 갈 수라도 있을 텐데..’
마치, 이 퀘스트는 블랙 벨트가 없는 상황을 위한 퀘스트 같잖은가.
“..잠깐.”
라덴의 사고가 정지했다. 머릿속에서 루아노스가 뭐라고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라덴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었다. 멈춘 사고가 다시 움직인다. 앞 뒤가 맞지 않는 퀘스트. 중간 부분이 생략된 스토리.
은둔자 퀘스트.
‘연계.. 아니야. 애초에 에픽 스토리 황혼이, 정상적인 스토리 라인의 전제조건으로서 히든 스토리인 은둔자 퀘스트의 클리어를 두고 있다면..?’
은둔자 퀘스트는 알라베스 산에 봉인되어 있는 악희와 관련되어 있다. 어쩌면, 알라베스 산에서 쭉 이어지는 블랙 벨트가 은둔자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사라질 지도 모른다.
그 뒤에는? 알라베스 산을 우회해서, 알라베스 산 뒤편에 있는 도시 제노미아로 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라덴은 그에 대해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발할라 스토리 라인에 가장 가까운 것은 나일 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라덴의 머리를 덮었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