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80
쿠웅! 소리가 한 번 더. 고기의 벽이 경련하듯 부르르 떨었다. 바닥 역시 마찬가지라서, 그 위에 선 라덴과 가람의 몸이 휘청거렸다.
“뭐야?”
마법을 준비하던 가람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외치고 나서, 가람은 흠칫 놀라더니 라덴을 노려 보았다.
“너..! 그새 다른 새끼를 부른 거냐?!”
“안 불렀어요.”
사실이었다. 알케나를 불러서 유성을 데리고 와달라는 메시지를 보내려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그러려고 했던 것 뿐이지 아직 메시지는 보내지 않았다.
“그럼.. 이건 뭐야?”
쿠우웅! 세 번째 소리. 여태까지 울렸던 것보다 더 크게 공간이 진동했다. 당장이라도 덤벼 들 것 같은 괴물들도 행동을 멈추고서 우두커니 섰다.
“..오오.”
루이는 낮은 남자의 목소리로 감탄을 터트렸다. 가람을 데모니언을 자신 쪽으로 바짝 당기고서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 보았다. 라덴도 슬쩍 괴물들의 눈치를 보면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차라리 가람이 먼저 죽으면 도망이라도 칠 텐데.’
라덴에게는 텔레포트 링이 있다. 최악의 상황이 된다면, 그는 텔레포트 링에 저장 된 다른 도시의 좌표로 텔레포트해서 도망치면 된다. 사실 아까 전에도 그냥 도망칠까 생각은 하였지만, 아무래도 가람의 눈치가 보여서 그러지는 못했었다.
“너희에게는 좋은 일이군. 나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말이야.”
루이의 외침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실려 있었다. 무슨 소리야? 라덴이 그렇게 묻기도 전이었다.
푸확! 퇴로를 막고 있던 고기 벽이 폭발했다. 튀긴 살점이 철퍽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라덴과 가람은 긴장한 얼굴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후우..”
그런 한숨 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선 것은 흰색 로브를 입은 남자였다. 뒤로 넘긴 후드 덕에 얼굴을 확인하는 것은 쉬웠다.
“레하브!”
루이가 즐거운 목소리로 외쳤다. 레하브. 그는 갈색 머리를 대충 옆으로 넘긴, 수염이 듬성듬성 난 아저씨였다. 왼 손에 굵직한 나무 스태프를 든 레하브는 자신이 뚫은 입구로 들어오면서 투덜거렸다.
“오랜만에 집에 와보니 아주 개판이군.”
“다.. 당신이 레하브?”
라덴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 질문에 레하브는 당장은 대답해 주지 않았다. 대신, 그는 왼 손에 들고 있던 나무 스태프로 바닥을 가볍게 내리 찍었다.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와서 소란을 피우는 주제에, 이제는 집 주인 이름까지 마음대로 부르는 군.”
스태프로 찍은 곳에서 새하얀 파동이 번져간다. 시뻘건 색의 고기 바닥이 그 파동에 밀려나며 바닥의 본래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을 보고서 가람의 표정은 굳을 수밖에 없었다. 공간변환마법. 최상위 랭크의 흑마법사인 가람조차도 이 마법을 파훼하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레하브는 별 어려움도 없이 공간변환마법을 파훼하고 있었다.
‘강해.’
레하브가 보인 한 수는 그가 뛰어난 실력을 가진 마법사인지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적어도 레하브는 가람보다 높은 수준에 있는 마법사였다.
“조용히 숨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지?”
“내가 뭐 하러 숨겠어? 뭘 잘못했다고? 그리고 여긴 내 집이야.”
공간이 일렁거리며 변화했다. 고기의 벽은 사라지고, 라덴과 가람은 다시 어두컴컴한 복도로 돌아왔다.
복도의 끝에는 한 남자가 서있었다. 어린 아이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자홍색 로브를 입은 장신의 남자였다. 그는 금속 재질의 스태프를 왼쪽 어깨에 기대어 세우고 있었는데, 그가 끅끅거리며 웃을 때마다 어깨에 기댄 스태프가 흔들렸다.
“남의 집에서 뭐하는 거냐. 루이포드.”
레하브가 싸늘하게 식은 얼굴을 하고서 내뱉었다. 그 말에 루이포드는 턱끝으로 가람과 라덴을 가리켰다.
“네 손님을 죽이고 있었지.”
“손님? 누군지도 모르는데 손님은 무슨 손님? 죽일 거면 다른 곳에서 죽여. 내 집에서 소란 피우지 말고.”
“아니, 이젠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어. 레하브, 네가 돌아왔으니까.”
루이포드의 몸에서 시커먼 마력이 흘러 넘쳤다. 눈으로 보일 정도의 농밀한 마력이었다. 레하브는 마력을 뿜어대는 루이포드를 보면서 얼굴에 짜증을 가득 담았다.
“자아, 어쩔 테냐? 얌전히 따라오겠다고 한다면 죽이지는 않으마.”
“말이 웃긴데?”
레하브는 천천히 오른 손을 들어 올렸다. 스태프를 쥐지 않은 손, 그 손이 활짝 펼쳐졌다. 손바닥 안에 새겨진 육망성의 문신이 엷은 빛을 발했다.
“얌전히 따라오겠다고 한다면 죽이지는 않겠다고? 루이포드, 네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정도로 강했던가? 제발 따라와 주세요하고 무릎 꿇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말이야.”
라덴은 마법을 익히지 않았다. 하지만 레하브를 중심으로 몰아치는 힘의 격류는 마법을 익히지 않은 라덴도 알 수 있을 만큼 진했다. 라덴이 그렇게 느낄 정도였고, 가람의 반응은 그보다 더했다.
마법. 발할라의 세계에서 마법은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원소 마법에서부터 신의 힘을 빌리는 신성마법, 정령의 힘을 빌리는 정령마법, 흑마법, 소환마법 등등.
하지만 결국 마법의 기본은 마력을 다루는 것이다. 마력을 다루고, 영창을 통해서 마력을 다른 형태로 발현시키는 것이 마법이다. 실력 있는 마법사의 기본은 마력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다루느냐에 따라 갈린다.
가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뛰어난 실력의 마법사였다. 비록 발할라 내에서의 마법은 모두 스킬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마력 컨트롤은 스킬에서도 필요한 기교다.
‘저 정도 양의 마력을 자유자재로.. 대체 얼마나 강한 괴물인거야?’
가람은 경악을 삼켰다. 단순히 마력을 풀어내고 그를 회전시키고 있을 뿐이지만, 레하브를 중심으로 몰아치는 금색 마력은 가람이 감히 다룰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뭔 놈의 NPC가 저리도 강하단 말인가? 회자되는 다섯 괴물도 아니면서 저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니..!
“..호오..”
루이포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레하브가 풀어내는 힘은 루이포드를 위협하기에는 충분했다. 루이포드는 손에 잡힌 스태프를 어루만지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마력.. 그렇군. 빼돌린 유산을 가지고서 뭘 했나 싶었는데.”
“상황 파악 끝났나?”
레하브가 이죽거렸다. 루이포드는 쯧하고 혀를 찼다. 레하브는 본래부터 뛰어난 마법사였다. 거기에 황혼에서 훔치고 달아난 유산까지 확보하고, 그를 통해 더한 힘을 얻었다면..
“좋지 않군.”
루이포드는 중얼거리면서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레하브는 자신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마력을 컨트롤하면서 루이포드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지켜보았다. 높이 스태프를 치켜 든 루이포드가 레하브를 노려보았다.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지.”
투웅! 루이포드의 스태프가 바닥을 찍었다. 콰아아! 바닥을 뒤집고 튀어 나온 거대한 무언가가 루이포드를 집어 삼켰다. 루이포드를 집어삼킨 그것은 자신이 뚫고 나온 구멍으로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그 충격에 집이 크게 흔들렸다,
“빌어먹을. 바닥이 박살났잖아!”
레하브의 주변을 휘감고 있던 금색의 마력이 레하브가 들고 있던 스태프의 머리로 모이더니 레하브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런데 너희는 누구야?”
레하브는 들고 있던 스태프를 아래로 내리면서 물었다. 그 말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던 가람이 숙이고 있던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그는 긴장한 얼굴로 레하브를 노려보았는데, 레하브가 자신보다 몇 수는 뛰어난 마법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황혼의 추적자 퀘스트 때문에 왔는데요.”
“너희가?”
레하브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레하브는 제 표정을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 꼬리를 비틀고.
“퀘스트 조건이 쉬워도 너무 쉬웠군. 너희 정도의 플레이어가 퀘스트를 받았다니.”
표정으로 먼저 보여주었던 것을, 레하브는 친절하게도 다시 한 번 입 밖으로 내뱉어 주었다. 그 말에 가람의 어깨가 부들거리며 떨렸다. 가람이 가진 자존심이 레하브의 이죽거림에 통째로 긁혀진 것이다.
“그렇다고 당신이 거부할 수는 없지 않나요?”
라덴은 가람의 반응을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라덴은 내심 가람이 뻥하고 터져주기를 바랐다. 루이포드에게 농락당하면서 가람은 이미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었다. 여기서 레하브가 몇 마디 더 긁어준다면, 가람은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레하브에게 덤벼들 지도 모른다.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다. 가람은 실제로 그랬다. 그는 크게 숨을 삼키더니 몇 번 심호흡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내리 눌렀다.
“맞아.”
그리고 레하브도 더 이상 가람의 성격을 긁어내리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너희의 자격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너희한테 퀘스트를 전해주지 않을 수는 없지. 황혼의 추적자 퀘스트. 둘 모두 그 퀘스트를 가지고 있는 거냐?”
“네.”
“좋아. 내가 보하미르의 레하브다.”
레하브가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라덴의 머리에서 팡파레가 크게 울렸다.
[황혼의 추적자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라덴은 자신의 레벨을 확인해 보았다. 57의 레벨이 59로 올라 있었다. 라덴은 오른 레벨을 보면서 웃음을 삼켰다. 55레벨에서부터 시작되는 마의 장벽. 고작 며칠 사이에 레벨을 4나 올렸다. 아라포니아의 퀘스트와 히든 스토리로 추측되는 은둔자 퀘스트, 그리고 에픽 퀘스트인 황혼의 추적자 퀘스트를 완수한 덕분이다.
‘내 생각이 맞았어.’
단순 사냥과 던전 뺑뺑이만 돌았다면, 레벨 하나 올리는 것에 며칠은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 퀘스트 몇 개를 잘 잡은 덕분에 레벨 4를 며칠 사이에 올리게 되었으니 라덴의 얼굴에 웃음꽃이 필 수밖에 없었다.
라덴이 히죽거리는 동안 레하브는 시큰둥한 얼굴을 하고서 발을 움직였다. 라덴과 가람 사이를 지난 레하브는, 루이포드가 빠져나가면서 뚫어 놓은 바닥의 거대한 구멍을 보면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아까 그 녀석은 누구지?”
가람이 물었다. 버릇없는 새끼. 레하브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의자를 끌어다가 그 위에 앉았다. 그는 뻥 뚫린 바닥의 구멍을 노려 보면서 입을 열었다.
“루이포드. 황혼 휘하 처형대 소속의 마법사다.”
“..처형대?”
“황혼의 적과, 배신자를 사냥하는 사냥개들이지. 나는 원래 황혼 소속의 마법사였어. 그곳에 있다가 도저히 못해먹겠다 싶어서 배신하고 나왔지만 말이야.”
역시, 레하브는 황혼과 관련이 된 사람이었다. 이번 시즌에 들어서 황혼 스토리가 공개되기는 했지만, 황혼에 대해서는 아직 대부분의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 패치 로그의 설명으로는 발할라 제국을 전복시키려 드는 비밀결사대라는 것이 전부다.
“배신하고 나왔다고요?”
“그래. 그냥 나오기는 좀 뭐해서, 놈들이 애지중지하는 유물 몇 개를 훔쳐서 나왔지. 이래나 저래나 추격은 붙을 테니, 유물이라도 몇 개 확보해 놔야 내가 도망다니기 편할 것 아냐?”
“..황혼의 추적자. 그 다음 퀘스트는 뭐지?”
“너는 뭔데 말이 그렇게 짧냐?”
가람의 질문에 레하브가 얼굴을 확 일그러트리면서 되물었다. 그 말에 가람의 표정이 움찔 굳었다. 레하브는 보란 듯이 다리를 꼬면서 곁에 기대어 세워 놓은 스태프를 손으로 두드렸다.
“너 나보다 나이 많아? 너 나보다 마법 잘 써? 나보다 잘난 것 높은 것 하나도 없는데 왜 이리 말이 짧아?”
“이..”
“불만 있으면 덤벼. 이 버릇없는 플레이어 녀석아. 이 레하브님의 금색 마법을 보여줄 테니.”
쿠웅! 레하브가 스태프를 내리 찍으면서 내뱉었다. 뭐라 반박하기 위해 입술을 뻐끔거리던 가람은, 결국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꼴 좋다.’
알아서 숙이기를 잘했지. 라덴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몸을 떠는 가람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황혼의 추적자, 그 다음 퀘스트는 뭡니까?”
“그래도 이 녀석은 어른에 대한 예의를 아는 놈이로군. 좋아, 좋아.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면 얼마나 좋아? 나도 굉장히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란 말이야. 먼저 존중을 해 주면 나도 지랄하지는 않아요. 좋아, 알려주지. 황혼의 추적자 그 다음 퀘스트.”
“알라베스 산으로 가라.”
“..예?”
갑작스러운 말에 라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알라베스 산을 넘으라고.”
최악의 퀘스트였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