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8
18. 알아서 잘
민현웅은 야구가 쉬웠다.
그리고 야구를 하면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을 했다.
처음 민현웅이 ‘천재’라는 소리를 듣게 된 건, 성장이 시작된 중학생 때였다.
초등학생 때는 키가 또래와 비슷했고 타고난 힘으로 타격을 했다면 중학생 시절에는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까지 이어진 성장은 민현웅을 ‘천재타자’로 만들어 주었다.
그 누구도 민현웅처럼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라는 이름을 달아본 사람이 없었다.
민현웅은 지난 해에도 국가대표로 차출되어 U18 야구 월드컵에 출전했다.
또래에서는 민현웅만 한 재능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우물 안 개구리가 하는 생각이었음을.
“호크스 가고 싶으면 가.”
유행운은 심드렁하게 불판의 불을 켰다.
제로 콜라를 마시고 어느 정도 소화가 됐으니 다시 억지로 고기를 입에 넣을 생각이었다.
아직 해가 지기도 전이었으니, 고기로 배를 잔뜩 채우고 훈련장으로 가 웨이트를 할 생각이었다.
“넌 뭘 먹고 야구를 그렇게 잘하냐?”
민현웅에게는 유행운이라는 존재는 충격이었다.
타고난 체격과 힘으로 야구를 하던 민현웅이었기에 유행운은 외계인 그 자체였다.
오늘도 그 마른 몸으로 홈런을 두 개나 생산했다.
바로 앞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타구를 보며 민현웅은 온갖 생각을 다했다.
“내가 야구를 잘하나. 아직 한참 멀었는데.”
유행운은 고교시절의 기록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어느정도는 해야 한다.
프로 진출의 길은 고교 시절의 기록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고교 시절에서도 맥을 못 춘다면 프로에서는 답이 없었다.
2군 경쟁도 뚫기 힘들 것이다.
“오늘 경기에서 이주영을 두드려 팼는데, 그런 생각을 해?”
민현웅은 짐짓 놀랐다.
만약 오늘 본인이 홈런을 때렸다면 지금쯤 어깨가 하늘로 승천해 우쭐대고 있을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프로가면 이주영 같은 애들이 한 트럭이야.”
유행운이 적당히 구운 살치살을 앞접시에 놓으며 말했다.
“2군에서도 고등학생 시절에는 날아다니던 애들이야. 이주영처럼 전국구라고 불리던 애들이 널린게 프로고. 그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지금 홈런 한두 개 치는 걸로는 부족해.”
유행운은 항상 현실을 중시한다.
고기를 먹으면서도 미래를 생각하며 어떻게 야구를 해야할지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작년에 국대 달았을 때, 프로 2군하고 경기했는데 우리가 이겼는데.”
그럴 수 있다.
그 단순한 생각은 위험했다. 그 한 번의 경험으로 모든 걸 판단하기에는 세상은 변수가 가득했다.
“재작년 마린스 1라운드 지명된 투수, 기억나?”
“그 윤승찬 선배 말하는 거지?”
“어.”
윤승찬은 민현웅이 있었던 학교 출신이었다.
민현웅은 유성고 출신이었고 유성고는 야구부원이 경원상고보다 1.5배 많을 정도로 명문고였다.
“1라운드 1번 지명은 이재희였고.”
작년 1라운드 1번으로 대전 호크스의 입성한 이재희는 탈고교급 구위를 가졌다고 소문났다.
그리고 그 이재희와 끝까지 1번을 두고 다툰 사람이 윤승찬이었다.
“그 둘 다 어떻게 됐냐?”
“몰라.”
“넌 야구를 하는 사람이 맞냐? 그런 것도 안 알아보게.”
유행운이 적당히 먹을 만큼 고기를 굽고 불판의 불을 껐다.
“이재희는 제구난조로 2군에서 담금질 중이잖아. 제구 잡으려면 꽤 걸릴 걸. 윤승찬은 아예 1군에 발을 붙이지도 못했고.”
그게 현실이다.
물론 즉전감으로 신인이 활약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2군에서 몸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1라운드 지명이라고 해서 전부가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천재라고 불렸다고 해서 프로에서도 ‘천재’로 통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넌 그냥 하던대로 해도 돼.”
민현웅은 예외였다.
“네가 왜 자꾸 나한테 쓸데없는 얘길 하는지 모르겠는데, 너는 생각 없는 게 장점이야.”
유행운이 보기에도 지금 민현웅은 갑자기 생각이라는 걸 하고 있었다.
그게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알 수 없지만, 유행운이 아는 미래에서 민현웅은 늘 잘했다.
프로 진출 후에도 2군으로 시즌을 스타트하지만, 결국 여름에 콜업되어 백업을 넘어 주전까지 자리잡았던 재능충이었다.
“그럼 네가 홈런을 조금 덜 쳐야지.”
“뭔 개소리야.”
“네가 자꾸 앞에서 거포놀이를 하니까, 내가 지금 4번타자 놀이를 못하잖아.”
“뭔 개소리야.”
민현웅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번도 나는 누구한테 진 적 없어.”
“어련하시겠어.”
가방을 챙겨 벌떡 일어난 민현웅이 말했다.
“내일 경기는 내가 너보다 잘할 거야.”
낯선 경쟁심.
민현웅은 처음으로 야구를 하면서 누군가를 기필코 이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적당히 야구하고 적당히 성적을 내며 스트레스 없이 살던 민현웅이 처음으로 다른 생각을 하게되는 순간이었다.
“벌써 가게?”
“어. 나 배트 좀 돌리고 자게.”
“야.”
유행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 노력하지 마.”
재능충이 노력을 한다?
그럼 얼마나 더 발전을 할까.
“적당히 해, 적당히.”
유행운이 고기를 씹어 삼키며 경쟁자의 노력을 말렸다.
* * *
다음 날, 유행운의 모친은 휴일에도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선 아들을 배웅하고 소파에 앉았다.
“······.”
명함을 보는 눈에 어둠이 가득하다.
남편이 죽은 후 그의 아들은 어딘가 고장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방에 틀어박혀 잘 나오지 않았고 말수도 적어졌다. 달라진 건, 유행운의 모친 이선영도 마찬가지였다.
이선영은 바쁘게 생활을 하다가도 넋을 놓고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았다.
누군가의 죽음은 남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홧김에 없어지라고 말했지만, 진정으로 그걸 원한 적은 없었다.
아들은 어딘가 달라졌다.
어른스러워지기도 했고 말도 하려고 노력한다. 그 모든 시작은 야구였다.
다시 야구를 시작하는 아들을 뜯어 말려봤지만, 항상 그렇듯 자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다 말 거라고 생각했다.
야구를 그만둔지 오래되었으니, 아무리 재능이 있었다고 해도 퇴색되었을 거라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 다시 야구를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네, 유행운 엄마 이선영입니다.”
오늘 아들이 명함 하나를 가져왔다.
후원금을 받게 되었다며 밝게 웃는 얼굴을 보며 이선영은 갖은 생각을 해야만 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희 아들은 야구 안 할 거예요.”
전화를 받은 이태식은 뭔가 바쁜 사람처럼 느껴졌다.
명함에 적힌 ‘이사’라는 직함도.
유명 주류 회사 로고가 붙어 있는 것도 모두 낯설었다.
– 허허, 가끔 자식을 키우다보면 그럴 수 있어요. 나도 대학 보낸 자식이 있는데, 내가 못 본 재능을 남이 발견해주더라고.
이태식은 호탕했다.
호의를 거절하는 이선영의 말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행운이 재능을 못 보는게 아니라, 야구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어요.”
다시 한 번 이선영은 힘주어 이야기했다.
– 늦어?
그리고.
이태식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 야구를 하기에 늦은 애가 어제 홈런을 두 방이나 날리나?
이선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들이 경기를 했다는 건 알지만, 어떤 성적을 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 내가 자선사업가인 줄 아나본데, 나는 안 될 것 같은 애들에게는 투자 안 합니다.
이선영은 잠시 말을 멈추고 이태식이 하는 말을 들었다.
– 오늘 신월에서 경기 하는데 와서 직접 보는게 어떻겠소?
이번에는 권유였다.
– 직접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부모라면 그 정도의 노력은 해야하지 않겠소? 내 자식이 정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가린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확인한 후에 판단해도 늦지 않소.
통화를 마친 이선영은 소파에 기대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생각한다. 아들이 처음 야구를 했던 그 시작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남편이 있었다.
여자 문제도, 술 문제도, 하다못해 노름에도 관심 없었던 사랑했던 남자는 야구를 좋아했다.
서로 일이 바빠 애를 제대로 못 보는 상황이 되자, 이선영 모르게 아들을 리틀 야구단에 가입시킨 남편이었다.
그 때는 여유가 있었으니까.
돈은 궁하지 않았고 충분히 아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틈만 나면 야구장에 갔다.
가장 많이 갔던 야구장은 잠실이었고 남편은 서울 스타즈의 팬이었다.
그에 비해 아들은 굳이 팀 하나를 꼬집어 좋아하지는 않았고 야구 잘하는 선수를 좋아했었다.
두 사람이 주말에 손 잡고 야구장에 다닐 동안, 이선영은 밀린 집안일을 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 갖는 걸 좋아했으니까.
“내 욕심이야?”
감은 눈을 떴다.
야구를 반대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돈’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아들이 야구를 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저려서.
유니폼을 입고 있는 그 모습만 봐도 마음이 아파서.
자꾸만 무책임하게 떠나버린 그가 생각나서.
“내가 나쁜거야······.”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더 이악스럽게 굴었다.
독해야만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오랜 결혼 생활동안 손에 남은 건 없어서 자꾸만 과거를 그리워해서 못되게 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걸 알면서도 이선영은 그 단순한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결국 이선영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화장대 위에 놓은 차키를 들고 집을 나섰다.
* * *
신월야구장.
낮 12시 경기를 앞두고 유행운은 몸을 풀고 있었다.
엄마에게 명함을 주었지만, 사실 계속 마음에 걸려 있었다.
끊임없이 ‘돈’ 때문에 야구를 반대한다던 엄마였다.
이제 그 돈 문제에서 벗어나면 어떤 태도를 보일지 미지수였다.
“행운아, 생각이 너무 많다!”
따악!
가볍게 펑고를 받고 있던 유행운이 미간을 좁혔다.
확실히 지금 생각이 많기는 했다.
항상 수비를 할 때 첫 발 스타트가 빨랐는데, 오늘은 연습이라고 해도 조금씩 늦어지고 있었다.
“정신 차리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공을 포구하고 옆으로 휙 던진다.
계속 몸을 움직였다. 경기에서 유격수가 실수를 하면 타격이 두 배로 몰려온다.
더블카운트 하나를 못 잡으면 투수가 입는 데미지도 생각해야 한다.
특히 오늘 등판하는 선발투수 임승우는 백유진과 비교해서 수준이 떨어진다.
“이지!”
마지막 타구까지 처리한 유행운이 심호흡을 하며 글러브를 벗었다.
적당히 땀도 흘렸고 스트레칭을 하여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민현웅은 답지 않게 특타를 하고 있었는데, 눈빛이 평소보다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노력하지 말라니까.”
그 말과 동시에 더그아웃에 들어온 유행운은 이온음료를 먹으며 상대 분석지를 읽었다.
“행운아.”
오늘 선발 투수를 어떻게 상대할지 고민하는데, 류진운이 다가오며 발을 툭툭 건드렸다.
“왜?”
“타격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뭘 그런 걸 물어.
“잘.”
단순했다.
“알아서 잘 하면 됨.”
아주 심플한 대답이었다.
류진운의 표정이 시무룩해진다.
상위타순에 위치한 류진운은 경기에서 제몫을 하고 싶지만, 쉽지 않았다.
어제 경기에서 무안타였던 류진운은 따로 남아 특타를 진행했지만,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전문 타격코치도 아니고. 코치님도 있는데, 내가 뭐라 말하는 건 좀 그렇긴 한데.”
유행운이 한숨을 쉬었다.
남에게 충고 따위를 하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다가온 류진운을 보니 또 가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너 타격할 때, 다리가 흔들려.”
“나?”
“어, 하체 부실.”
“그랬나?”
야구선수에게 하체는 중요했다.
민현웅만 봐도 하체가 튼실하다. 하체에 힘이 있어야 타격을 할 때, 자세가 무너지지 않았다.
“당장 하체를 키울 수 없지만, 그건 나중에 알아서 생각하고.”
마저 음료수를 마신 유행운이 말을 이었다.
“그냥 딱 생각을 해. 뒷발 고정한게 흔들리지 않도록, 허리도 제대로 돌려주고.”
말은 쉽지만, 쉽지 않다.
류진운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감이 좋은 타자에게 조언을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오늘 네 앞에서 밥상 차려줄게.”
그 말에 유행운이 피식 웃었다.
“오냐. 제발 그래다오.”
이 대답은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