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ickly youngest member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27)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126화
마차가 부서졌다.
하지만 내가 발에 부상을 입어 말을 타는 것도, 걷는 것도 여의찮았기에 우리는 마차가 필요했다.
– 저택에 돌아가서 마차를 가져오라고 할 테니, 기다려.
오셀로는 이런 말을 하고 마차 끌던 말 하나를 빌렸다.
– 내일 해가 뜨기 전까지 오겠다. 내 동생 털끝 하나 건드려 봐.
말도 안 되는 협박을 에반에게 한 뒤, 그는 곧바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그래서 나는 에반과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물론 에반과 단둘은 아니었다.
윈체스터가의 호위병들과, 테일러스에서 따라온 에반의 호위병들도 있었으니.
그들은 신분상 우리와 함께 식사하지는 않았고 저들끼리 밥을 먹고 있었다.
“…….”
하늘에 별이 가득 박힌 새카만 밤, 우리 주위로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각자의 접시에는 곡물 수프와 구운 고기가 있었고 말이다.
에반과 마주 앉아 하는 식사 분위기는 조금 무거웠다.
식기끼리 부딪치는 작은 소리도 유독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어색해…….’
오셀로의 심술궂은 시비가 그리울 정도로 말이다.
“그대의 가족들은…… 그대를 배우 소중히 여기는 것 같군.”
문득 식사를 하던 에반이 입을 열자 나는 흠칫했다.
“네…… 아버지께서 제게 많이 신경 써 주세요.”
처음에는 윈체스터 가문에서 어찌 살아나갈까 걱정이 많았는데, 지금은 걱정이 무색하게…… 아니, 과분할 정도로 다들 나를 챙긴다.
“오셀로, 그대의 오빠는 더욱 그러하더군.”
“오셀로 오빠는…… 그냥 심술쟁이예요. 절 놀리기 위해 사는 사람 같다니까요.”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
에반은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벽안에 담긴 눈빛의 의미를 읽을 수 없었다.
민망하리만큼 조용한 정적이 지난 뒤 그가 입을 열었다.
“그대의 오빠를 질투한다면…… 터무니없는 거겠지.”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었다.
“네?”
내 되물음에 그가 옅게 웃었다.
어쩐지 조금은 씁쓸해 보이는 미소였다.
“사랑이란 늘 터무니없고 비이성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술에 취한 것처럼 행동하더군. 그 때문에 자신이 믿는 정의까지 저버리면서.”
모닥불이 타닥, 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래, 인간이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 본질이 무어건 간에.”
두서를 알 수 없는 에반의 말에 그의 과거를 떠올렸다.
에반은…… 판타지의 완벽한 주인공이었지만 여자를 사랑했던 적은 없었다.
물론 그에게 고백하거나 매달리는 여자는 많았지만, 늘 돌 보듯 무심했다.
죽은 페르메티스에게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회귀하는 동안은…… 호기심에라도, 기회가 없었나요?”
“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싫었어.”
“…….”
“여러 번의 회귀를 반복한 뒤에는 무기력이 나를 지배했고.”
나는 에반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의미 없는 것으로 보였지. 전부 부질없이 사라질 것들.”
불꽃의 색깔에 에반의 머리 색이 조금 옅어 보였다.
짙푸른 그의 눈동자 색조차,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 무엇도 내게 맹세하지 않아서일지도 몰라.”
“…….”
“나보다 오래 살아가겠다고.”
순간 숟가락을 들고 있던 내 손이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에반이 말하는 대상이 누군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심장이 작은 소리로 박동하고 있었다.
에반의 눈동자 표면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나는 서서히 입술을 열었다.
“만약 제가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한다면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어.”
에반의 눈에는 깊은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날 그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이 꼭 그렇게 만들 거라는.
에반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언젠가 그대가.”
그가 몸을 일으키자 그의 눈이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달싹이는 붉은 입술뿐.
“세상에 단 한 사람만 택할 수 있다면, 그게 나였으면 한다.”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가 더욱 커졌다.
“누구에게도 그건 양보할 수 없을 거 같아. 설령 가족일지라도.”
그리고 그때 에반이 검을 뽑았다.
곧장 몸을 돌려 달빛에 은은하게 비치는 청명의 날을 휘두르자, 풀숲에서 갑자기 뛰어나온 멧돼지가 이에 맞고 풀썩 쓰러졌다.
에반은 느린 속도로 검을 검집에 넣고 몸을 돌렸다.
나는 돌아서는 에반을 바라보며 문득 특별 엔딩을 떠올렸다.
에반과의 특별 엔딩에서 결국 둘만 남게 된 우리, 그리고 페르세토스의 부하가 된 에반의 모습…….
‘만약 페르세토스를 물리치지 못하면, 정말 그게 현실이 되는 걸까.’
모닥불의 타오르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 * *
[이름 : 샤샤 윈체스터(LV.16)] [직업 : 고급 구원자] [특성 : 메키우스의 열쇠] [능력치: 체력 69 / 근력 77 / 이능 91 / 지능 89/ 생명력 72]오셀로의 말대로 다음 날 동이 트기 전, 마차가 도착했다.
얼마나 오셀로가 못살게 굴었는지 마부는 핼쑥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체력이 늘어난 만큼…… 여행이 피곤하지는 않네.”
윈체스터가의 넓은 마차 안에서 나는 상태창을 보고 중얼거렸다.
여독이 쌓일 만한 거리였지만, 그리고 어제 부상까지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힘들지 않았다.
“어쩌면…… 생전보다.”
환생하기 전의 삶을 문득 떠올렸다.
그때도 몸이 약했고, 과도하게 알바를 해서 그런지 빈혈도 심했었다.
조금만 먼 거리를 가도 피곤했었는데…….
지금은 확실히 내가 경험해 본 어떤 때보다 컨디션이 좋다.
‘그런데 오셀로는 왜 마부와 함께 오지 않은 거지.’
성격 같아서는 자기가 직접 마차를 몰고 와도 모자랄 텐데.
어디 탈이 나기라도 한 건가.
똑똑-
마차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말을 탄 에반이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건…….”
“금초롱꽃이야.”
황금색의 방울처럼 생긴 꽃을 받아 든 나는 ‘우와’ 하고 눈을 빛냈다.
“알고 있어요. 엄청 희귀한 건데, 어디에서 발견했어요?”
“어젯밤 잠이 오지 않아 절벽에 갔었다.”
이건 모든 독을 중화하는 해독제였다.
정말 찾기 힘든 건데…….
“귀한 건데, 저한테 줘도 괜찮아요?”
내 말에 그가 피식 웃었다.
“튼튼하지 못한 마차에 태웠던 유감의 선물이야.”
그렇게까지 말하니 받을 수밖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네, 그럴게요. 이건 제가 잘 쓰도록 하죠.”
나는 마차의 창문을 다시 닫고 그것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나중에 이걸 알약으로 정제해서 고급 포션과 조합하면 좋은 물건이 될 것 같다.
오후쯤이 되어서야 우리는 윈체스터 저택에 도착했다.
그리운 내 집! 오랜만이야!
* * *
돌아온 이후에도 나는 편히 쉬지 못했다.
차라리 밤중에 도착할 걸, 하고 조금 후회되는 순간을 맞고 있다.
“간만에 공작 전하와 하시는 저녁 식사이니까요.”
“하지만 이래서는 무거워서 음식에 코를 박을지도 몰라.”
나는 내 머리에 온갖 보석들을 장식하는 마야에게 불평했다.
하녀들도 열심히 나를 치장하고 있었다.
“아가씨가 떠나시고, 아가씨가 떠나신 방향을 얼마나 자주 바라보시던지…… 공작 전하 말이에요.”
“에이, 설마. 아버지는 그렇게 한가한 분이 아니시라고.”
“공녀님은 소중히 키운 따님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세요.”
“그래, 마야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어떻게든 나를 제일 예쁘게 꾸미겠다는 마야의 욕심은 이길 수 없다.
언젠가 말을 탈 때 입었던 바지가 간절했지만, 그런 걸 입는다고 했다간 마야가 거품을 물 것이다.
나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분홍빛의 드레스는 사랑스러웠고, 내 볼에는 보기 좋은 혈색이 돌고 있었다.
녹안은 은은하게 반짝이고…… 흠, 확실히 엄청 예쁘긴 하다.
“세상에, 너무 아름다우세요, 아가씨!”
내 생각에 맞추어 들려오는 어김없는 하녀들의 찬사.
“어떻게 이렇게 나날이 아름다워지실까요.”
“정말 사랑스러우세요.”
솔직히 말해서 워낙 자주 듣다 보니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래도 가식으로 칭찬하는 건 아니니까.
“테일러스에서 결혼을 서두르면 어쩌죠?”
“저는 어디에 가나 아가씨를 따라다닐 거예요.”
“저도요.”
“그만.”
마야가 하녀들에게 경고했다.
그러자 하녀들은 입을 꾹 닫았다.
잠시 후 마야는 씩 웃으며 내게 말했다.
“저야말로 아가씨의 평생 시녀랍니다.”
“너무해요. 아가씨를 독차지하려 하시다니.”
“맞아요, 너무해요.”
다른 하녀들의 볼멘소리를 마야는 무시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바깥에서 오셀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샤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