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58
(57)
“솔직히 터놓고 말할게. 레안드로스가 그렇게 반대할 줄은 몰랐어. 한 번도 봐주지 않았다고! 32번이야, 32번의 대련 전부 다!”
“고, 공작님. 33번째의 기적을 기대해보심은.”
“32번이 저 꼬라지가 났는데 33번이 생기겠어?!”
32번째 지원자가 누워있을 간이 의무실 방향을 삿대질하자 아른트가 시무룩해졌다.
“아니면 레안드로스 경을 다시 설득해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걘 타협이라는 게 없어, 협상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야.”
우리가 호위 기사 공고 초안을 짰을 때 레안드로스가 옆에 있던 게 문제였다.
조건을 물끄러미 보더니 그 밑에다가 말릴 새도 없이 새로운 조건을 추가한 것이다.
자신과 대련을 거쳐 실력을 증명한 사람만 가능하다는 조건.
-저와 검조차 맞대지 못한다면 성의 보초를 맡기기는커녕, 밭작물에 낫질이나 할 수 있을까 의심을 먼저 해야 할 겁니다.
-그, 그래?
처음에는 의심하지 못했다.
회사도 면접을 볼 때 인적성 검사며 인터뷰를 거치니까.
그런 걸 고려했을 때 레안드로스의 제안은 타당해서 별 생각하지 않고 넘겼는데.
첫 번째 지원자가 성에 왔을 때, 레안드로스가 몸소 맞이하러 나갔다.
지원자를 유심히 보던 레안드로스는 다짜고짜 그를 보수도 못 한 연무장에 끌고 가더니 딱 한 마디만 하더라.
-와라.
그리고 어떻게 됐냐면,
말 그대로 지원자를 복날 개 패듯 팼다.
지원자가 왔다는 말에 우르르 달려간 나와 고용인들, 그리고 아른트까지 기겁할 만한 광경이었다.
결국 공작가에서는 급하게 의원을 수배하고 지원자를 치료했고, 레안드로스는 아른트의 노골적인 비난을 받았다.
그 후로 두 번째 지원자부터는 형식적으로나마 목검을 가지고 대련을 실시하기는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은 형식.
레안드로스는 언제나 진지했고, 진지한 레안드로스와 7번 이상 검을 맞댄 이는 없었다.
7번도 사실 잘한 축이지.
대부분은 간을 보기도 전에 떨어져 나갔으니까.
내가 여러 번 설득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레안드로스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자신과 제대로 맞설 수 없다면 실전에서도 쓸모없을 게 분명하다고.
그러니 이건 필요하다고.
“……이제 어쩌지.”
하지만 이러다가 호위 기사는커녕 지원자를 패고 쫓아낸 공작가로 소문이 날지도 모른다고!
아른트는 안타까운 눈으로 머리를 싸맨 내게 서류를 내밀었다.
“에이슬링에서 보낸 서류입니다. 당분간 호위 기사 모집은 중지하시는 게 어떨까요?”
“나한테 일을 하라고 하는 거지?”
“저를 승격시키고 일을 맡기는 것보다, 당장은 공작님께서 직접 하시는 편이 더 빠르지 않을까 사료되옵니다만?”
“너도 똑같이 미워.”
그깟 사인을 해주는 일, 뭐가 그렇게 어렵고 중요하다고 나한테 꼬박꼬박 시키는지.
우울하게 서류를 받아 팔락팔락 넘겼다.
빠르게 지나가는 글자 사이에서 익숙한 단어가 보였다.
“이건.”
“에이슬링 상단에서 며칠 전 공작님께서 지정해주신 장소로 조사단을 파견했습니다.”
“그랬지. 거기서 측량인가 뭔가를 해서 사업에 적합한 수의 마수가 있는지 확인한다고 했잖아.”
“맞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마수가 인근 숲에 분포하고 있어서 곤란한 모양입니다.”
에이슬링 상단이 전달한 보고서 원문과 함께, 주변 지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쓰여 있었다.
하르트만이 전성기 시절 보유하고 있었던 임야지대는 아주 넓었다.
그중 상당 부분은 왕실에서 반환 보류를 내리고 있었지만, 성과 함께 산맥과 연결된 지대는 반환을 완료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조차 지금의 내가 다 파악하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땅이었다.
“보르미인가.”
“맞습니다.”
“원래 사람과 거리를 두는 마수일 텐데. 사업을 하면서 우리 쪽에서 영역을 침범하게 되는 경우를 미리 방지하고 싶은가 봐.”
보르미는 1회차 삶에서 사냥터 쪽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어영부영 넘기는 바람에 저 아래쪽까지 내려간 모양이었다.
괜히 귀찮게 됐네.
“그런데, 내가 어렸을 때는 이런 적이 없지 않았나?”
공작부인의 일기장에서는 마수로 인한 피해를 기록해두지 않았다.
굳이 그걸 개인 일기장에 썼을 필요가 없었거나, 아니면 자신의 계시로 마수를 조종할 수 있었거나.
둘 중 하나겠지.
“기억하십니까? 마님께서 워낙 계시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적재적소에 최적의 인원을 배치해 마수들이 거주지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셨거든요.”
“흠.”
“물론 그것 외에도 신전과 협약을 맺어 성기사단에게 산맥을 일부 개방하는 것처럼 소탕을 유도하신 부분도 있고.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었죠.”
“요 몇 년간은 난리통에 그런 걸 할 사람이 없었겠네.”
이를 어쩐다.
공작부인이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공작가의 군사력에서 비롯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만한 규모의 기사를 데려올 수 없다.
그러면 이번에도 방법은 그뿐인가.
“아른트, 혹시 불놀이 좋아해?”
“예? 아뇨? 전혀요.”
“……그렇구나. 레안드로스 좀 찾아봐. 할 말이 있어.”
* * *
둘을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 방법이 아니면 숲을 통째로 불살라버리겠다는 내 말에 아른트와 레안드로스가 두 손을 들어버렸으니까.
날이 갈수록 성격이 불같아지신다는 아른트의 투덜거림이 들리긴 했지만, 결과만 좋으면 됐지.
보르미가 흘러 내려온 루트를 알고 있으니 사냥 계획도 척척 세워졌다.
사냥을 할 곳은 당연히 그 사냥터다.
내가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겪은 장소.
대신 이번 삶에는 아른트를 밖으로 빼는 게 아니라, 나와 함께 전망대로 가기로 결정했다.
해가 질 무렵의 주황색 하늘, 그리고 손에 들린 커다란 램프.
레안드로스는 우리를 높다란 전망대까지 데려다준 후에 사라졌다.
든든한 호위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니 기분이 이상했다.
“고, 공작님. 여기 너무 스산하고 무섭지 않으십니까?”
“그런가?”
아른트는 램프를 꼭 끌어안은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 그를 보다가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전망대가 오래되었으니까 흔들리면 바로 뛰쳐나가도록.”
“그런 말씀 하시 마세요!”
“나는 살아나지만 넌 아니잖아. 나보다 네가 조심해야 할걸?”
“그걸 또 왜 말하세요, 그만 말하시라니까요!”
역정을 내는 걸 보고 결국 푸하하 웃어버렸다.
한참 웃으면서 아른트를 놀리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아른트는 램프에 불을 붙이고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천장의 고리에 달았다.
멀리서 오싹한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아른트가 램프로 움직임이 보이는 위치를 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열심히 작업하는 아른트의 뒤에 앉아서 숲을 구경했다.
구경이라기보단 감시였다.
언제 변종 보르미가 나올지 모르니까.
그렇게 되면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아른트를 대신해 먼저 미끼가 되어 줘야 했다.
잠시만, 전망대에서 떨어지는 게 더 아프나?
아니면 갈기갈기 찢기는 게 더 아픈가?
갑자기 고민되네.
한참이나 열심히 생각하다 보니 완연한 밤이 되었다.
아까보다 보르미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빈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갈까?”
“그게 좋을까요? 경에게 그만하라고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오늘 내로 다 하려면 끝이 없어. 몇 차례씩 찾아와서 소탕한 후에 다음 지역으로 옮겨야 할 거야.”
“네,”
아른트가 램프를 고리에서 내리려 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주시하던 방향, 전망대의 뒤쪽에 있던 나무 사이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금세 그림자 속으로 숨어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른트. 레안드로스는 지금…… 이 근처에는 없지?”
“네. 사냥이 끝나면 전망대로 오신다고 하셨으니, 지금 오지 않을까요? 램프는 끄겠습니다.”
“아냐. 끄지 마.”
“네?”
“끄지 말고, 천만 덮어둬. 여기서 주변 볼 수 있게. 그리고 레안드로스가 오면 내가 간 방향을 알려줘.”
“공작님?”
“먼저 간다.”
뒤에서 아른트가 ‘공작님!’하고 불렀지만 나는 바로 전망대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삐걱이는 사다리에서 거의 미끄러지듯 내려오자 어두운 주변이 불길하게 조용했다.
어쩔 수 없지.
판단을 마친 나는 무작정 전망대와 레안드로스가 있는 방향과 반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아른트를 발견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했으니까.
나무가 드문드문하던 길이 곧 빽빽하게 수풀이 들어찬 숲으로 변했다.
그제야 달리기를 멈춘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부엉이가 우는 음산한 소리, 가끔씩 푸드덕거리며 날갯짓하는 소리.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서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괜찮아, 아직까지는 괜찮아.
그렇게 되뇌며 숨을 고르는 사이에 시야가 약간 아찔해졌다.
그리고 코에서 주르륵 흐르는 것.
“아.”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망토 앞섶에 툭툭 떨어지는 코피를 막으며 서툴게 닦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땀 냄새, 체취는 그렇다 치자.
하지만 이렇게 피 냄새까지 풍기면서 다니면, 혹시 보르미가 아닌 다른 것도 이 영역에 들어와 있다면.
이번은 어떻게 죽어야 하지.
차갑고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죽은 자의 손만큼 싸늘하고 부드러운 공기가 내 이마를 쓸어 넘겼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조용한 전조.
만일 내가 오늘 죽어야 한다면, 지금이 딱 적기일 텐데.
바로 그 순간,
무언가가 내 어깨를 덥석 움켜잡았다.
“저기.”
“으아아아악!”
“죄-억!”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겁에 질려서 제대로 보지도 않고 되는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이상하게 경쾌한 ‘퍽!’ 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스르륵 쓰러졌다.
그제야 나는 내 어깨를 잡은 게 괴물도, 강도나 도적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바닥에 쓰러진 사람은 고작해야 20대 청년으로 보였는데, 몰골이 상당히 지저분했다.
그가 입은 철 갑주는 상당히 더러운데다가 흠집이 많이 나 있었다.
갑주뿐만 아니라 입은 사람도 그랬다.
얼굴도 그렇고, 여기저기 부상의 흔적이 제법 많이 보였다.
마른 풀과 나뭇잎이 황색 머리에 덕지덕지 붙은 채로 기절한 그와 내가 내지른 주먹을 번갈아봤다.
설마, 이거 맞고 쓰러진 거야?
대체 왜?
이번 회차에서는 알고 보니까 핵주먹, 이런 스킬 같은 걸 얻게 된 건가?
내가 멍하게 스스로의 주먹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멀리서 공작님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 사람을 어디 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아른트와 레안드로스가 헐떡거리며 나무 사이를 헤치고 달려왔다.
“공작님, 제발 무사하신…… 어?”
“……?”
주먹을 들고 코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나.
그리고 땅에 쓰러진 갑옷남.
아무것도 없는 주변.
아른트와 레안드로스가 나를 쳐다봤다.
나도 그 두 사람을 쳐다봤다.
아른트가 혼란스러워하며 물었다.
“공작님께서, 그 주먹으로, 저 사람을 때려눕힌……? 이게 가능한……?”
“아냐!”
설마 그랬겠냐!
그리고 가능한 거냐고 물어보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