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58)
◈ 158화. 곡부를 앞두고
무리에 섞인 적모개는 자연스럽게 반대편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태연한 태도와 달리 그의 가슴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금성표국주가 대체 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현실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적모개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이걸 빌미로 오대표국과의 협상을 물리칠 수도 있지 않을까.’
가능하다면 상천과 충돌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복잡한 생각 속에 걷던 적모개가 시꺼먼 그림자와 맞닥뜨렸다.
정신이 든 적모개가 곧바로 비켜섰다.
“이런, 미안하오.”
“별말씀을.”
다소 나른한 목소리에 고개를 치켜드니 선홍빛 입술을 가진 선이 고운 사내가 웃고 있었다.
‘뭐 이렇게 여인처럼 생긴…….’
시선을 거둔 적모개는 빠르게 골목을 벗어났다.
뒤를 힐끔 쳐다본 사내는 이내 운화결의 장원 앞에 도착했다.
“왔느냐?”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의화전이 다시 소집될 모양이더군요. 손을 써뒀으니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요?”
의화전은 위사영이 맹주에 취임하기 전, 수장들이 의견을 취합하기 위한 기구였다.
운화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그런데 여기서 무얼 하시는가요?”
그는 상처 난 손등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런 꼴로 들어갈 수 있겠느냐?”
“설마 또 아가씨 때문에?”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었기에 짐작이 간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설지량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아가씨께는 저와 비무를 한 것으로 하지요.”
* * *
서둘러 맹으로 돌아온 적모개를 동초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분타주. 유소협이 깨어났어요.”
“다행이로군. 어서 가보자.”
그들에겐 궁금한 것이 많았다.
두 사람은 빠르게 의방으로 들어섰다.
탕약의 쓴 냄새로 자욱한 방 안.
벽에 기대앉아 있던 유대하는 두 사람이 들어오자 힘겹게 손을 들었다.
“오셨습니까?”
적모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몸은 좀 어떠시오?”
유대하의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견딜만합니다.”
입술을 달싹이던 유대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걷고 싶습니다.”
이제 막 일어난 사람이 걷고자 한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전음을 보낼 수 없는 상태로군.’
적모개는 유대하가 매우 중요한 얘길 하고자 하는 것을 눈치챘다.
“내가 부축하지. 갑시다.”
의방을 나선 세 사람은 텅 빈 대연무장에 도착했다.
“여긴 숨을 곳도 없으니 안전하오.”
은은한 달빛이 머무는 공간.
사방이 탁 트인 장소였지만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누가 온다면 바로 알아챌 수 있을 테니까.
“분타주.”
유대하의 나직한 목소리에 이어 동초개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놀라지 말아요.”
“알았다.”
유대하는 이곳에 오며 생각했던 것을 머릿속으로 재차 정리했다.
“소공자께서는 지금 중원에 계십니다.”
“중원이라니? 폐관에 든 게 아니었단 말이오?”
재차 주변을 살핀 유대하가 마치 속삭이듯 말했다.
“소공자의 진짜 신분은 상천의 천주. 천하가 말하는 무면산왕이 바로 그분입니다.”
미간을 좁힌 적모개가 나직이 침음했다.
“음.”
동초개가 물었다.
“안 놀라요?”
“네가 놀라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반응이 무미건조해서 재미가 없네.”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성도에 머물며 사천에서 생활한 게 십 년이 훌쩍 넘었다.
마도림의 상황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생사조차 모르던 소공자가 나타나 일 년 만에 천하십대고수의 자리에 오른 것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은거고수에게 무공을 배웠나 싶었는데 상천의 천주였다니.’
적모개는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진 유대하의 말은 그의 귀를 의심케 하기 충분했다.
“분타주. 상천의 진짜 정체는 바로 은곡입니다.”
“뭐요?”
“팔황문과 같은 뿌리를 가진 그곳 말입니다.”
“……어? 억!”
동초개는 마치 예상한 사람처럼 그의 입을 잽싸게 틀어막았다.
“역시 이럴 줄 알았지.”
부릅뜬 적모개의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은곡이라고? 상천이?’
적모개는 동초개의 손을 치우고 물었다.
“농담이 아니란 말이오?”
동초개가 투덜댔다.
“거지한테 농담을 해서 뭐해요?”
“넌 좀 가만있어. 인마.”
그를 밀어낸 적모개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자라목을 하고 물었다.
“진짜요?”
“진짭니다.”
천하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유대하는 상천의 역사와 자신들이 꿈꾸는 이상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적모개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소협. 대체 내게 이 이야기를 해준 연유가 무엇이오?”
“사실은 상천이 무림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기 위해 분타주의 도움을 좀 받을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일을 겪고 조금 달라졌습니다.”
“아까 그 일 말이오?”
유대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만난 그자. 상천의 무인이 아닌 그자가 은곡과 같은 무공을 갖고 있었습니다.”
“…….”
적모개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유대하는 분명 전쟁에 반대했던 은곡은 모두 상천의 그늘 아래 들어왔다고 했다.
‘설마 팔황문의 잔당들이 아직 살아 있단 말인가? 그것도 오대표국에?’
벌떡 일어난 적모개가 돌아서다 말고 멈칫했다.
‘잠깐. 그 사실을 알리자면 상천이 은곡의 무공을 익혔다는 것도 설명해야 하지 않은가?’
진무립은 의미 없이 허송세월하던 자신을 중원으로 돌아오게 해준 은인이다.
그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섣불리 행동할 일이 아니다.’
그는 다시 몸을 돌려 유대하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유소협.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우선 그분께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전달해야 합니다.”
“혹시 개봉에 산채와 이어지는 전서구가 있소?”
유대하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막 자리 잡기 시작한 상천이기에 정보망이나 연락망이 거미줄처럼 촘촘한 것은 아니었다.
적모개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누군가는 직접 가서 연락을 취해야겠군.”
적모개의 말에 동초개가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제가 산동으로 가겠습니다.”
유대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동소협도 다치지 않았습니까?”
“이까짓 거, 침 좀 바르면 낫습니다.”
씩 웃은 동초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서두르는 게 좋겠어요. 지금 바로 출발합니다.”
* * *
개봉을 나선 동초개가 산동으로 향할 무렵이었다.
얼마 전 산동에 들어선 진무립 일행은 왜구의 습격에 맞서고 있었다.
전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마차의 지붕.
팔짱을 낀 진무립은 벌떼처럼 몰려드는 왜구를 느긋하게 바라보았다.
강을 낀 들판, 오백에 달하는 왜구와 맞선 무인은 고작 백여 명이다.
싸우는 자들은 진무립과 함께 온 대별채의 무인이 아니었다.
인근 산채에서 소식을 듣고 나타난 이들이 왜구를 물리치는 것이다.
‘참으로 대단하구나.’
전투를 지켜보던 대행수 송현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산동에 접어든 뒤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깊숙이 쳐들어온 왜구는 벌써 다섯 차례나 공격을 가했다.
그 엄청난 숫자에 가슴 철렁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습격을 받을 때마다 귀신같이 인근 산채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이런 식이라면…… 정말 표국이 필요 없지 않을까?’
상천의 산채는 천하 각지에 산재한다.
화령과 남궁세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강남 무림에도 그 산채가 있을 정도였다.
만일 상천과 손을 잡을 경우, 상행이 상천의 영역만 지나간다면 도적의 습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표국이 어째서 그토록 상천을 경계하는지 알 것 같구나.’
송현의 머리가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찰 때였다.
진무립의 곁에 선 젊은 청년, 산동을 책임지는 양산채주 시평이 목청을 키웠다.
“놈들의 포위가 무너진다! 십 조는 우회해서 적장의 목을 쳐라!”
그 말에 열 명의 녹의인이 번개같이 움직인다.
밑에서 지켜보던 단려화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대놓고 말하면 들키지 않을까요?”
“몇 번 겪어봤는데 못 알아듣습니다.”
“아아.”
시평의 말대로 빠르게 포위를 뚫고 나간 무인들이 순식간에 적장을 베었다.
수장이 무너지자 우왕좌왕하던 왜구들이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차 주변을 지키고 있던 백하진과 한천유가 진무립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진무립이 데려온 녹의인들은 얼마 전 은곡에서 나온 젊은 무인들이다.
고된 수련 끝에 무림에 출두했는데 지켜보기만 하자니 몸이 근질거리는 모양이다.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라.”
“감사합니다.”
예를 갖춘 그들이 몸을 날리더니 도망치는 적을 추격했다.
시평이 감탄하며 말했다.
“신법은 제법인데요?”
“너희들과 같은 과정을 거친 아이들이다. 무림의 기준에선 차고 넘치는 실력을 가졌지.”
무림의 기준과 상천의 기준은 다르다.
“아직은 부족하단 말씀이군요.”
“저들과 기존의 무인들이 다른 것은 실전 경험이다. 어릴 때부터 생존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야 했던 너희들과는 다르니까.”
시평이 아차 싶은 얼굴로 물었다.
“윽. 설마 제가 괜히 온 겁니까?”
실전 경험을 채워줘야 할 왜구들을 모조리 자신들이 소탕했으니 괜스레 미안한 것이다.
“너는 네가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고개 저은 진무립은 턱짓으로 우두커니 선 송현을 가리켰다.
“대행수의 표정을 봐라.”
넋 나간 얼굴로 전장을 지켜보는 송현은 머리가 복잡해 보였다.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오른 수문화가 말했다.
“상계의 소문은 무림의 소문 못지않게 빠릅니다. 저들이 우리의 능력을 지켜봤으니 앞으로 계획이 수월해질 겁니다.”
잦아드는 비명과 쇳소리만큼이나 도망치던 왜구들이 빠르게 줄어간다.
왜구를 조심해야 하는 것은 정면에서 상대할 때뿐.
등을 돌린 왜구들은 결코 상천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맹렬하게 몰아치던 부하들이 순식간에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을 무렵, 남서쪽의 관도에서 수백의 기병대가 나타났다.
종삼품 지휘동지 백환이 놀란 백미를 추켜올렸다.
“또 저들이란 말이냐?”
한발 늦은 것이 벌써 다섯 번째다.
왜구의 대규모 습격 소식을 입수한 산동성 도지휘사사는 총력을 다해 전투 준비에 나섰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산더미 같은 왜구의 시신들만 마주치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부진 체구의 중년인, 천호장 경도문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살다 보니 산적이 왜구를 물리치는 해괴한 일도 있습니다.”
“흑전원에서 저들을 인정해준 연유를 알 것도 같구나.”
어쨌든 관병의 손실 없이 왜구를 격퇴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일사불란 집결한 무인들이 멈췄던 수레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지붕에 선 누군가가 이쪽으로 손을 흔든다.
우리가 잡았으니 치우는 건 너희들이 해라.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그들의 속내를 파악한 경도문이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 어쩌다 보니 뒤처리를 하려고 따라다니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어디로 가는 길이라던가?”
“무리에 동진상단의 행수가 있는 걸 보면 제남까지 가는 모양입니다.”
“곡부를 지나겠군.”
“아마도 그리될 겁니다. 만나보시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백환은 뭔가 떠오른 듯 말머리를 움직였다.
“다섯 번이나 우리의 일을 대신해 주었으니 인사는 해야겠지. 이곳을 부탁하겠네.”
“예. 금방 처리하고 뒤따르겠습니다.”
관병의 등장으로 시평을 제외한 무인들은 산채로 돌아갔다.
속도를 붙여가는 표행의 후미로 한 기의 인마가 따라붙는다.
그를 발견한 한천유가 마차 옆으로 달려왔다.
“천주님. 관인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진무립의 시선을 느낀 수문화가 떨떠름하게 물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황제의 부하가 왔으니 이쪽도 부하가 나서야 격이 맞지.”
“그냥 귀찮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귀찮다.”
“그냥 가다 보면 알아서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관인과 얽히면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때 마차 밖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본인은 연주위의 지휘동지 백환이라 하오! 잠시 멈춰보시오!”
우렁찬 목소리에 두용청은 고개를 갸웃했다.
“연주위 지휘동지 백환?”
수문화가 물었다.
“아는 사람이오?”
“분명 들어본 적이……. 아!”
그는 생각난 듯 무릎을 쳤다.
“백대인은 대량표국주의 손위처남입니다.”
진무립은 곧장 창문을 열었다.
“마차를 세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