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369)
369화 폐허가 된 곤륜파 (2)
그의 앞에 나타난 고요자는 곤륜의 도인이다.
사부인 유정신과 연이 있는 자로서, 처음에는 악연이었지만 그 이후로는 사이가 좋아진 이이기도 하다.
사실 처음에는 고요자를 못 알아봤다.
봉두난발의 광인 같은 모습이 마치 마인 같았다.
그를 알아본 것은 그가 곤륜의 비검술을 썼다는 사실과, 돌개바람을 일으킨 육인호풍환우법(六人呼風喚雨法) 때문이었다.
고요자는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피 칠갑을 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들은 순간부터 벼락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괜찮으십니까?”
“이강 도장…… 배, 백 도장이 맞군.”
고요자는 눈물을 주륵 흘렸다.
그러고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크흑, 끄으윽!”
손으로 땅바닥을 긁는다.
손톱이 부러지고 피가 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패이는 땅바닥이 고요자의 분통한 심정을 말해 주는 듯했다.
이강은 고요자가 자신의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고요자가 다시 일어섰을 때 이강은 질문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이강의 곁에 있는 담현도 갈동탁도 그것이 궁금한 듯했다.
역시 정사연합이 곤륜파에 꾸린 방어선은 만만하지 않았다.
침공을 서두르기 위해 급조된 마교의 선봉대라면 쉽게 뚫을 수 없을 정도였다.
고요자는 검게 죽은 눈으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따라오시게.”
그러고는 비틀, 몸을 돌려서 이강이 향하던 궁 내부로 진입했다.
이강은 그를 뒤따랐다.
담장 내부에는 익숙한 공간이 나왔다.
곤륜 장문인 육두선인이 처음 이강을 맞이했던 그곳이었다.
하지만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던 바닥은 마치 폭약이 터진 듯 곳곳이 터져나가 있었다.
그리고 정면의 건물에는 거대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그 구멍의 모양이 꼭…….
“……손자국?”
여래신장에 비할 크기는 아니었지만 분명 사람의 손 모양이다.
“사부님…… 장문진인을 시해한 자가 쓴 무공의 여파이네.”
놀라운 일이다.
저런 위력의 장법은 장풍을 구사하는 신승에게조차 불가능하다.
사람이 어찌 여래의 무공을 흉내 낸다는 말인가.
“마교의 무인처럼 보였지만, 글쎄…….”
고요자는 염세적으로 웃었다.
마교에 그런 자가 있다면 분명 궁주 급일 터.
이강은 고요자의 앞에 누군가의 봉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스승님일세.”
봉분은 작았다.
작아도 너무 작았다. 이곳에 시신이 널려 있지 않았다면 봉분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하반신만 남았더군.”
고요자의 주먹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주먹에서 핏방울이 뚝, 뚝 떨어졌다.
하반신만 남은 스승의 시신을 수습한 심정은 어떠했을까.
“원래는 아무것도 건드릴 생각이 없었네.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니까……. 기습을 위해서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옳겠지.”
고요자는 이강을 갑작스럽게 기습했다.
그것이 충동적인 행동은 아닌 듯했다.
저런 광인의 모습으로 홀로 남아 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이강 일행을 마교의 무인들이라고 착각한 듯했는데, 이미 마교의 무리들이 완전히 휩쓸고 지나간 이곳에서 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이강이 그것을 물어보기도 전에 고요자가 다시 몸을 돌렸다.
“따라오시게, 왜 이곳이 그리 쉽게 무너졌냐고 물어보았지.”
이강은 잠자코 고요자의 인도를 따라갔다.
고요자가 향하는 방향으로 갈수록, 이강은 기묘한 냄새가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탄내가 심하네.”
“그렇군요.”
“불길이 이쪽에서 올라온 것 같은데.”
담현의 말대로였다.
불이 무언가를 태우면서 나는 매캐한 냄새. 그것이 유독 심했다.
곤륜의 오래된 건물들은 처참하게 불타서 반쯤 무너져 있었다.
그리고 고요자는 불타 버린 곤륜의 산문 앞에 멈춰 섰다.
매캐한 냄새는 이제 코를 찌를 정도였다.
“보게나.”
고요자가 손가락질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행은 그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비탈 아래에는 여전히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다.
나무들은 모두 타서 재가 되었다.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어지면 스러지는 것이 불의 이치인데 그것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는 듯 진홍빛 혀를 날름거렸다.
“저것이 곤륜산을 태웠어. 마교의 놈들이 오기 전부터 매캐한 연기가 들이닥쳤지.”
“화공이군요…….”
그러나 화공(火攻)이라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특히 그 상대가 몸이 날랜 무림의 고수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소이다. 물을 부어도 꺼지지 않더군. 사람의 몸에 붙으면……. 고수라고 해도 쉽게 당했고.”
“평범한 불이 아닌 듯합니다.”
이강이 눈을 찌푸렸다.
불꽃에서 범상찮은 기운이 느껴진다.
“팔열지옥에 대해 들어 보았나? 초열지옥은?”
“알고 있습니다.”
팔열지옥은 본디 불가의 개념이지만, 곤륜의 도인들은 중원의 도가문파보다 더 광범위한 지식을 습득한다.
청림 소속인 이강 역시 아는 것이었다.
“업화(業火)에 대해서도 알겠군. 저것이 그 업화이네. 마교의 방사가 끌어낸 듯해.”
업화의 불꽃.
달마가 화룡의 허물을 먹고 얻은 불꽃을 업화의 불꽃이라 하였다.
허나, 사실 그게 진짜 업화는 아니었다.
업화란 지옥에서 죄인들의 혼백을 불태우는 불꽃.
달마가 뿜어낸 것은 그 업화의 원형(元型)과는 한참 떨어진 것이었다.
“불꽃은 살아 있는 것처럼 사문을 덮쳐 왔지. 아무리 고수들이라고 해도 불을 베어 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강기 공을 쓰지 않는 이상 업화의 불은 끌 수 없었네.”
그렇다면 대혼란이 일어날 법했다.
“그리고 무너진 진형으로 마교의 선봉대가 들이닥쳤지…….”
담현은 이강과 고요자의 눈치를 보더니 스윽 산비탈 아래로 내려갔다.
지옥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업화의 불꽃이란 어마어마하게 보기 어려운 것이다.
가까이서 어떤 것인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리라.
이강과 고요자는 담현을 내버려 두고 다시 돌아갔다.
“마교의 선봉대는 마랑천의방(魔浪千毅房)이라는 자들이었네. 고수들이 끼어 있지만 그리 대단하지는 않은 놈들이지. 그런데 그놈들이 곤륜을 휘저었어.”
그리고 그들의 선봉에는 대단히 강한 이들이 있었다.
고요자는 그때의 일을 설명했다.
북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사람이 터져 나가는 소리였다.
마랑천의방을 이끌고 있는 천의방주는 초절정 고수였고, 곤륜의 가장 강한 고수들과도 능히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자였다.
그러나 저런 굉음을 내는 이는 그가 아니었다.
검은 옷을 입은 거구의 사내였다.
정사연합의 정보력은 약하지 않았다.
마랑천의방이 선봉대라는 것도 알았고, 그들이 쉽사리 곤륜을 넘어서지 못하리라는 것도 예상했다.
하지만 저 사내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그의 검은 손이 누군가를 강타할 때마다 꼭 한 명씩 죽어 나갔다.
보아하니 절대고수가 분명했다.
마교의 절대고수는 모든 인적 자원을 동원해서 경로를 추적 중이었다.
헌데, 어디서 저런 자가 갑자기 튀어나왔단 말인가.
이곳에는 절대고수를 막을 수 있는 절대고수가 없었다.
그러나 절대고수를 상대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는 충분한 수준의 초절정고수들이 있었다.
고요자는 악을 질렀다.
“한매도룡검진(寒梅屠龍劍陳)을 펼쳐라!”
숨을 훅 들이켜니 몹시 뜨거운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온다.
가슴이 답답했다.
연기가 매캐하고 사방에 불똥이 흩날리고 있다.
“검진을 펼쳐라! 철대완권 대협의 곁으로 뭉쳐!”
정사연합에서 이곳으로 온 무인들의 책임자는 철대완권(鐵大宛拳) 왕재도였다.
초절정고수의 끝에 다다른 이로서, 곤륜 장문인 육두선인에 버금가는 고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가 지금 흑의 사내를 상대하고 있었다.
규격 외의 강한 인물은 진법을 이용하여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곤륜 무인들은 쉽게 그의 곁에 모일 수 없었다.
가장 강한 이들은 적의 수뇌라고 여겼던 천의방주를 상대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진형은 이미 무너졌으며, 업화의 불꽃은 소통을 방해했다.
마침내 철대완권이 최후의 절초를 내질렀다.
그리고 그는 흑의 괴인에게 일장을 얻어맞았다.
맞은 것은 복부였는데, 그 등짝이 터져 나갔다.
즉사(卽死).
방어선의 책임자가 적의 고수에게 죽었다.
칼 소리와 비명 소리가 난무하는 장내에서, 고요자는 직감했다.
“이, 이런…….”
마교와의 첫 격전은 그들의 패배로 끝날 것이다.
매캐한 연기처럼, 어두운 감정이 속에서부터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때였다. 맑은 천둥 같은 목소리가 울린 것은.
“정사연합의 무인들은 들으라-!”
어찌 그 목소리를 몰라보겠는가.
고요자의 사부인 육두선인이었다.
“진형을 유지한 채 전선을 뒤로 물린다! 약속된 장소로 집결하라!”
이 지옥 같은 환경에서도 명징하게 울리는 목소리.
그것은 육두선인의 목소리에 담긴 웅혼한 진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고요자는 곧바로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장문인의 제자이자 차기 장문인이다.
곤륜의 초절정고수로서 제자들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또한 분명 육두선인은…….
그때, 육두선인의 곁으로 달리는 고요자의 뒤통수로 철시(鐵矢)가 날아왔다.
티잉!
누군가가 나서서 검으로 철시를 쳐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날아오는 강궁은 초절정고수에게도 큰 위협이 되었다.
고요자는 방심했던 스스로를 자책하며 감사를 표했다.
그 대상은 침착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젊은 검수였다.
“고맙소, 소협!”
“아닙니다, 진인.”
패배의 기색이 짙은 상황이지만 하준의 태도는 냉철했다.
배분도 경륜도 훨씬 낮은 이였지만 고요자는 오히려 용기를 얻었다.
“믿음직하군……!”
역시 그 이강의 동생이다.
이곳에는 젊은 무인들 역시 존재했다.
이제 더 이상 후기지수(後起之秀)라는 표현으로 담을 수 없는 이들.
그중에서도 특히 빼어난 인물이 바로 백하준이었다.
고요자와 하준은 육두선인의 곁으로 달렸다.
육두선인은 마인들의 시체 사이에 서 있었다.
그는 달려오는 자신의 제자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이놈아! 내 지시를 무시하는 것이냐!
그의 사부는 여전히 고요자를 못난 제자 취급했다.
이번에도 그런 것일까 싶었는데, 들려오는 전음의 내용은 달랐다.
-철대완권이 죽었으니 저 괴인을 감당해야 할 것은 나이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하지만 육두선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이들을 이끌어야 한다!
철대완권이 죽었으니 지휘권을 가진 것은 육두선인이다.
그리고 육두선인의 다음으로 지휘권을 가질 사람은 바로 고요자였다.
-가라! 당장 이들을 데리고 떠나! 나도 합류하겠다.
육두선인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고요자의 원래 성격이라면 스승의 말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 고요자는 이를 악물고 몸을 돌렸다.
“보중하십쇼!”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고요자와 하준은 전선을 종횡무진하며 정사연합군의 퇴각을 도왔다.
초절정 고수 둘이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나서자 퇴각이 더 수월해졌다.
서걱!
고요자는 자신의 앞길을 막는 마인 한 명의 목을 날렸다.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고 외쳤다.
“가라! 가!”
부상을 입은 사파 무인을 정파 무인이 등에 짊어 메고 달린다.
이곳 방어선이 무너졌을 경우의 퇴각 경로는 당연히 준비되었다.
저 아래로 내려가면 귀진곡이라는 협곡이 나온다. 그곳을 전부 지나가고 나면 계곡을 무너뜨려서 적들의 진격을 저지할 것이다.
고요자가 하준과 함께 달려가려던 순간이었다.
하준이 얼굴을 찡그렸다.
고요자는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가 경악했다.
“저, 저놈들이!”
정사연합의 젊은 무인들 중에서도 죽고 다친 자가 많이 있었다.
그런데 마교도들 중 몇이 부상을 입은 젊은이들을 점혈한 채 끌고 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런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곤륜의 어린 제자들을 짊어지고 도망치는 이들이 보였다.
노식이 그런 마교도들을 저지하고 있었다.
“노식-!”
고요자는 당장 그쪽으로 나아가려 했다.
그것을 하준이 막았다.
“제가 노식과 함께 저자들을 막겠습니다. 먼저 가십쇼!”
고요자의 등에는 아직 열다섯밖에 되지 않는 그의 어린 제자가 업혀 있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아래에 집결해 있을 연합의 무인들을 지휘할 의무가 있었다.
고요자는 표정을 굳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합류하게!”
하준은 검강을 뿜어낸 채 달려 나갔다.
고요자는 비탈을 달려 내려갔다.
귀진곡에서 돌아보니, 곤륜파는 활활 불타고 있었다.
사문의 제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망연자실했다.
내려오는 길로 마교도들이 뒤따르는 것이 보였다.
시간이 급했지만 고요자는 기다렸다.
하지만, 하준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왜, 왜 오지 않는가.”
“가야 합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리고 그 말이 맞았다.
“크윽!”
책임을 지고 행동해야 할 것은 고요자였다.
고요자는 입술을 짓씹더니, 괴어 두었던 암석의 지지대를 무너뜨렸다.
곧, 천둥 치는 소리와 함께 귀진곡이 무너져내렸다.
연합의 무인들을 퇴각시킨 뒤.
고요자는 발이 빠른 무인들과 다시 한번 곤륜파로 올랐다.
허나 그 어디에도 하준과 노식은 보이지 않았다.
마교도들이 납치하던 젊고 어린것들도 사라져 있었다.
육두선인은 하반신만 남아 있었고 사부를 죽였을 흑의 괴인도 보이지 않았다.
고요자는 울부짖으며 마교도들을 베고 또 베었다.
그리고 포위당해 죽을 뻔한 뒤 몸을 숨겼다.
가시덤불 속에서, 자신이 구하지 못한 이들을 떠올리며 칼 같은 분노를…….
거기까지 들었을 때, 이강이 제지했다.
“잠깐만요.”
“……아.”
고요자는 어느새 울분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눈가를 닦은 뒤 이강을 보았다.
이강은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래서…… 하준과 노식이 말입니다.”
도무지 끝까지 참고 들을 수 없는 내용이 나왔다.
이강은 확인하듯 물었다.
“마교로 납치되었다는 겁니까?”
“……그렇네.”
고요자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