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412)
412화 대막, 와룡분지 (1)
담현에게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고요자는 다른 일로 바빴고, 팽무아는 자신의 아버지를 껴안고 눈물을 찔끔찔끔 흘렸다.
그것으로 그녀의 심지가 굳지 않다고 탓할 수는 없었다.
덩치가 산만 한 갈동탁이 제 아버지를 껴안고 엉엉 울었기 때문이었다.
“아부지! 크허허허어!”
“이, 이놈아아!”
산적들에게도 가족의 정은 있다.
물론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그들의 해후는 극적인 면이 있었다.
갈사혁은 몹시 늙었지만, 적어도 몸뚱이만큼은 젊은이 이상으로 건장했다.
게다가 늘 달팽이 기름을 몸에 치덕치덕 바른 탓에 젊어 보이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젊음에 대한 집착은 진작에 사라진 듯했다.
치장을 덜한 갈사혁의 외견은 본래의 나이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늦둥이 자식의 변화가 더욱 컸다.
비대했던 갈동탁은 살이 쭉 빠졌다.
그렇다고 안 좋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파묻혔던 이목구비가 뚜렷해지고, 원래도 장신인 덕에 맵시가 살았다.
헌앙한 청년영웅, 과장을 조금 붙이면 그렇게까지 보였다.
하지만 아비인 갈사혁의 눈에는 영 다르게 보인 듯했다.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살이 쭉 빠졌냐! 꼭 죽을 병에라도 걸린 듯하구나.”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그보다 아버지가…….”
“아이고오!”
체구가 큰 것이 참 산적의 덕목이라고 하였나.
그 말이 갈동탁의 헛소리는 아니었던 듯하다.
그러나 가장 비통해하는 것은 다른 이였다.
죽어 가는 노식이 쓰러져 있었다.
그곳에 거지들이 우글우글 몰려 있었다.
개방도들이었다. 심지어는 용두방주마저 있었다.
“노식 이놈아…….”
용두방주의 얼굴은 복잡한 심사로 일그러져 있었다.
노식이 살아 돌아왔다는 것에 우선 기쁠 것이다.
하지만 그리 안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노식의 몸은 불에 타 버린 숯처럼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동냥하다 두들겨 맞아 죽으면 꼭 저리되던데.”
“물에 빠져 죽은 놈 같기도 하구만.”
나이 많은 거지들이 그리 중얼거렸다.
말이 곱지 않지만, 그것은 거지들의 질박한 성격에서 기인한 무신경함일 것이다.
용두방주는 결국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내 널 반드시 살릴 것이다.”
부상자가 많아 의원이 부족한 지금이다.
하지만 후개가 되지 못한 이 불쌍한 제자가 마교에서 살아 돌아왔는데 어찌 지원을 아낄까.
그런 감동적인 재회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웃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희망을 잃은 자들이다.
납치된 사람은 많았지만 돌아온 자는 적었다.
돌아온 이들이 파천도에서 어떤 실험이 자행되었는지 설명했으니, 대부분이 이미 죽었을 것이리라.
굳은 표정으로 얼어붙은 이들도 있었고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도 있었다.
담현은 철혈무정에게 직접 사정을 설명했다.
그의 아들들이 파천도에 남았다.
일행을 탈출시키기 위해 망설임 없이 다리를 부수고 물에 빠진 이강.
그리고 그런 형을 구하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든 하준까지.
담현은 철혈무정이 보일 반응을 상상하며 그리 말했다.
화를 낼 수도 있을 것이며, 비통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백류산의 반응은 그중 어떤 것도 아니었다.
“그런……가.”
“예, 뭐, 전 곧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담현은 진심으로 말했지만 다른 이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백류산 곁에 있는 이들이 조심스럽게 한마디씩 얹었기 때문이다.
“영웅적인 행적…… 대협의 기상이 있는 청년들이었군.”
“동료를 위해 희생을 무릅썼군요.”
그들은 백류산에게 이강과 하준을 칭찬하는 말을 건넸다.
아부는 아니었다. 사실상, 아들을 잃은 아비를 위로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 그런 아이들이었지.”
백류산은 무뚝뚝하게 답할 뿐이었다.
그 담담한 모습이 오히려 담현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이강의 사형이라 하였나.”
“내 아들을 도와주어서 고맙네.”
그리 말한 백류산은 포권을 했다.
그 모습이 한참 어린 담현에게 하기엔 과하게 공손하다.
담현을 포함하여 모두가 당황했지만 백류산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곳에 머물며 여독을 풀게. 오래 쉬지는 못하겠지만…… 내일 회전이 시작될 테니…….”
그는 그리 말하며 떠나갔다.
멀쩡한 척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명확해 보였다.
“……분명 돌아올 텐데 참.”
그 옆으로 도맹이 다가왔다.
“아비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자식 걱정이 마를 날이 있겠냐.”
“도사라 혼인해 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아는 척입니까.”
담현이 그리 핀잔을 주었지만, 도맹은 머쓱하게 코 밑을 쓸었다.
그것을 본 담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북해에 처자식이 있다.”
“허이고! 파문감이구만.”
“파문이라니, 림주께서 허락해 주신 일이야.”
청림은 도가문파지만 의외로 세속적인 면이 있었다.
도인의 혼인도 림주의 허락이 있으면 가능했다.
도맹이 딸내미 자랑을 하려 하자, 담현은 얼른 제자리를 피했다.
“됐습니다, 됐어요.”
피로했다.
담현도 큰 피로감을 느꼈다.
다만 쉴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막상 돌아오고 나니, 얼마 뒤 회전(會戰)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사연합의 전력과 마교에서 온 마교도들 전부가 분지 한군데에 모여서 싸울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전술이고 뭐고 없는 힘 대 힘의 싸움이다.
하지만 본디 무림인의 전쟁이란 그런 것이리라.
이렇게 대규모로 피를 흘리는 일은 긴 무림사에서도 드문 일이겠지만…….
담현은 잠시 누리지 못했던 휴식을 취하고자 했다.
막사 곳곳이 소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서 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가 대충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니.
“……처형식을 할 것이오. 연맹주께서 직접 나선다고 하시던데.”
“처형식?”
누구의 처형식이란 말인가.
게다가 철혈무정이 직접 주관한다니.
하지만 설명해 준 사람은 머뭇거릴 틈이 없다는 듯 얼른 떠나갔다.
담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군중들을 따라갔다.
처형식(處刑式).
관도 아닌 무림인들의 무리가 사람을 처형하고 말고 함을 우습게 여기는 자들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 현장에 자리한 자들은 결코 웃을 수 없었다.
‘처형대’에는 상처 입은 사내 한 명이 묶여 있었다.
눈가에 붉은 문신을 한, 누가 봐도 마인으로 보이는 이다.
그에게 군중의 모든 살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죽여라-!”
“역겨운 놈!”
사도련 소속으로 보이는 무인들이 원한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무림맹 측 무인들은 그나마 얌전했지만 눈에 핏발이 선 것은 매한가지였다.
담현은 왜 이렇게 분위기가 심각한지 알게 되었다.
사로잡힌 저자의 정체 때문이다.
무려 사천궁의 부궁주였다.
극마지경의 끝에 다다른 그자는 마교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절대고수에는 못 미쳐도, 마공을 익힌 자의 특성상 보통 위험한 인물이 아니다.
저자를 참수하여 연합 무인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려는 것일까.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피를 보면 흥분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니까.
그러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무인들이 마인의 구속구를 풀어 준 것이다.
게다가 점혈을 풀고 무기까지 쥐여 주었다.
부궁주의 무기는 두 자루의 쌍도(雙刀)였다.
그는 의심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슨 수작이지?”
그리고 그에 맞선 것은, 다름 아닌 연합의 수장인 백류산이었다.
“마교, 사천궁 부궁주, 혈귀도마 황겸.”
“네게 기회를 주겠다.”
백류산은 긴 장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담현은 곧 벌어질 일을 눈치채고 헛웃음을 지었다.
“기회?”
“나와 비무하여 승리하면 목숨을 살려 주겠다.”
“이는 나 정사연합의 수좌이자 연맹주 백류산이 보장한다. 무기를 들어라.”
“……나를 농락하나?”
혈귀도마는 비린 웃음을 지었다.
백류산의 제안을 조금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고수들이 있다. 사도련주를 포함한 절대고수들 역시 모여 있다.
탈출을 시도하면 곧바로 썰려 죽을 것이다.
“그딴 말을 믿으라고……!”
“당장 죽기 싫으면 믿는 것이 좋겠지.”
하지만 백류산은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검을 치켜들 뿐이었다.
결국 혈귀도마가 흉소를 터뜨렸다.
“자격도 없는 주제에 연맹주 자리를 꿰찬 놈이 주제도 모르는군!”
자격도 없다는 것은 백류산의 무공을 지적한 것이다.
천하십이존에 편입되긴 했지만, 절대지경에 오르지 못했다.
초절정고수의 극에 달한 그는 충분히 강하지만, 난세의 주역으로는 부족함이 있으리라.
혈귀도마 황겸은 분명 백류산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좋다! 지옥 길동무로 너라도 데려가마!”
분노와 함께 마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그것만으로도 극심한 내상을 입을, 뒤를 돌아보지 않는 잠력의 폭발이었다.
그의 두 쌍도에 석 자는 되는 붉은 도강이 확 치솟았다.
몸을 앞으로 솟구치는 동시, 쌍도를 좌우로 휘두르며 회전한다.
방어를 도외시한 동귀어진의 일격.
초식의 흐름을 완전히 무시한 강맹한 기세.
그 갑작스러운 공격이야말로 마인의 무서움이다.
조금 전까지 분노에 차 있던 관중들도 아찔한 탄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담현은 침착했다.
그는 보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사태를 위해 몰려든 절대고수들, 그들이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백류산이 움직였다.
검을 치켜든 채 한 발자국 걸어 나온다.
그 발걸음이 느릿하고 굼떠 도무지 패기가 안 보인다.
허나 아들들을 잃었다는 실의에 자포자기한 것은 아닐 것이다.
기묘한, 귀곡성 같은 것이 그에게서부터 울렸기 때문이다.
휘이이-
장내의 모든 사람이 백류산의 움직임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몹시도 슬퍼 보이는 검이었다.
불사신공, 천영검식. 백류산이 익힌 무공은 분명 강검(强劍)일진대…….
마치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을 견디는 표정으로, 그의 검은 혈귀도마의 코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빗나간 것은 아니었다.
혈귀도마의 몸이 허무하게 바닥을 굴렀기 때문이다.
우당탕하는 충격음과 함께, 극마지경의 마인이 쓰러졌다.
외상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저건…….’
담현의 눈동자가 커졌다.
비무를 지켜보고 있던 사도련주가 중얼거렸다.
“……소혼단장(消魂斷腸).”
넋을 잃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슬픔이라는 뜻.
담현은 그 소혼단장이라는 말이 무엇을 일컫는지 눈치챘다.
“초극절기!”
“저, 절대지경이다!”
백류산이 초극절기를 얻었다.
그것도, 검이 베고 지나가지 않았음에도 사람을 상하게 하는……
심검(心劍)을!
일검에 극마를 살해하는 것은 절대지경의 고수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류산은 기뻐하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으로 눈물 한 방울을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좌중은 알 길이 없었지만 그것은 그가 새로 얻은 초극절기의 작은 부작용 같은 것이었다.
새로운 절대고수가 탄생했다.
그 절대고수가 흘린 눈물은 군중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내일.”
백류산이 무인들 앞에서 나지막이 말했다.
“마교의 악종들을 처단할 것이다.”
숙연한 공기.
“검을 손질하고 싸울 준비를 하라.”
그리고 처형대를 둘러싼 간부와 고수들.
사도련주, 구파일방의 장문인들, 녹림맹주와 검각주까지.
모두 공손하게 포권했다.
“그리하겠소이다 연맹주.”
좌중이 일제히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전쟁 전날의 의식으로 이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슬쩍 빠져 있는 담현에게 전음이 들렸다.
-담현, 이리 와 봐라.
슬쩍 눈을 돌려 보니 멀리서 도맹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뭡니까.
-기회가 왔다. 이강 그 아이와 연락을 취할.
방법이 있는 것인가.
담현은 얼른 자리를 빠져나와 사숙들에게 향했다.
그리고 대막.
도망자들이 지나가고, 추적자들이 지나간 사막.
그들의 발자국은 바람에 흩어지고, 뙤약볕에 달궈진 모래언덕은 밤공기에 차게 식었다.
쏟아질 듯한 별들 아래.
아비의 마음에 슬픔을 너무 깊게 아로새겨, 절대지경으로 만들어 버린 불효자들이 사막을 걷고 있었다.
불효자 중 맏형을 맡고 있는 이강이 하늘을 보았다.
별이 쏟아져 내릴 듯하다.
공기는 맑고 투명해, 저 우주 바깥에 있는 항성들의 빛을 그대로 투과시키고 있었다.
하준은 모래언덕의 그림자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요연비는 멍하니 파천도 쪽의 방향을 보고 있다.
그리고 도천과 위세령.
저 먼 서역에서 온 영화제자들은 기묘한 짓을 하고 있었다.
“오오, 혜성이 온다!”
도천이 그리 소리쳤다.
이강이 무슨 짓이냐 물었더니, 도천은 대답했다.
저 먼 곳에 있는 영화제자들과 소통할 방법이라고.
“다들 모여!”
도천의 외침에 이강을 포함한 일행이 옹기종기 모였다.
대체 어떻게 소통한다는 것인지는 곧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