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448)
448화 차력, 지천경 (4)
삼황오제(三皇五帝)라 함은, 여덟의 신적인 제왕을 의미한다.
은주시대 때부터 이미 위대한 삼황오제에 대한 전승이 전해져 내려왔다.
그 제왕들이 과연 인간의 제왕일까 하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천계에 있는 천신들.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하고 근원적인 세 천신, 삼청(三淸).
원시천존, 영보천존, 태상노군.
그 셋보다 아득히 오래되고 격 높은 이들이 바로 삼황오제였다.
그리고 삼황오제 중 오제(五帝).
그것들보다도 근원적인 세 대신격이 바로 삼황이다.
삼황 중 염제 신농(神農)은 소 머리를 한 신으로.
세상의 척박한 땅에 먹고 살 수 있는 작물을 만들어 냈다.
여와(女媧)는 하늘이 무너졌던 시절, 그것을 스스로 막고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탄생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태호 복희는 여와의 오라비이자 남편으로서, 처음으로 팔괘를 긋고 문자를 만들어 세상의 법칙을 세웠다고 하니…….
“팔괘, 그래 태호 복희가 팔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
“예, 읽어 보았습니다.”
대답하는 이강을 물끄러미 보며, 유정신이 설명했다.
“그것을 복희팔괘라 한다. 태호 복희는 봄과 생명의 시작을 주관하는 신이지. 즉…….”
팔괘(八卦)는 도와 술법의 근간이나 다름없는 체계이다.
그 팔괘를 두 번 겹쳐 그린 것이 바로 주역의 육십사괘(六十四卦).
팔괘만 통달하여도 못 할 술법이 거의 없다.
영화제자로서 술법을 배운 이강이지만, 그 뛰어난 오성으로도 팔괘에 대해 완벽히 알지는 못했다.
“복희의 힘을 빌리면, 저 천신들의 눈마저 속이는 술법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
그게 유정신과 영화제자들의 주장이었다.
태호 복희라는 대신격에게 제사를 지내고 공양을 올려서 대가를 받아 낸다.
“정확히는 복희팔괘를 내려받는 것이지.”
“팔괘라는 것이 물건처럼 내려받을 수 있는 겁니까?”
“태호 복희는 동시에 문자를 창조했다 전해지기도 한다. 가능한 일이야.”
이강은 무슨 말인지 단박에 이해했다.
부적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괴황지에 경면주사로 문자를 쓰는 것으로 술법을 담아낼 수 있는 법이다.
“중요한 일이군요.”
유정신은 빙긋 웃었다.
그의 앞에는 제단이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
“내일이 바로 길일이다.”
이러한 의식은 천지와 일월의 운행이 중요한 법이다.
의식을 치르기 적합한 길일(吉日)이 다가왔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다음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게 유정신의 설명이었다.
즉 단 한 번뿐인, 마지막 기회.
다행히 이곳에 남아 있는 청림도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의식은 문제없이 준비되었다.
유정신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강에게 물었다.
“담현은 어떠냐.”
“사형 말씀이십니까.”
이강은 차력의 수행을 멈췄지만 담현은 아니었다.
근 며칠간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차력에 매진했다.
“홀로 지천경에는 들었습니다만.”
유정신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담현은 결국 수련 끝에 지천경에 들어섰다.
사실 며칠 만에 지천경에 든 것 역시 대단한 일이었지만, 담현이 곧바로 깨우칠 것이라 기대했던 유정신에게는 아쉬운 결과였다.
“지천경에 들어도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하는군요.”
“……허어.”
이어져 나온 이강의 말에는 탄식을 흘렸다.
지천경에 들었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별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였다.
그 말은 담현의 영혼에 관심을 가지는 천신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놈이 속이 많이 쓰렸겠구나.”
“예, 저한테 지랄을…… 크흠, 성질을 부리더군요.”
안간힘을 써서 지천경에 드는 데에 성공한 담현.
하지만 은하수와 같이 무수한 별들을 마주했던 이강과 달리,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저 캄캄한 암흑뿐이었다.
담현은 땅을 치며 화를 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천신이 관심을 가지는 기준이 뭡니까?”
어떤 사람은 많은 별을 보고, 어떤 사람은 담현처럼 아예 별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술법의 재능 등과 연관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듯했다.
그랬다면 담현이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나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 유정신 역시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혼백과 관련이 있으리라는 짐작뿐이지.”
그렇기에 영화제자 중에서도 차력을 깨치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유정신은 씁쓸히 웃었다.
“담현은 놔두어라. 그 아이도 못 하는 것이 있는 법이겠지.”
그는 담현에게 차력을 전수하는 것을 포기한 듯했다.
그렇다고 담현이 포기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폐허가 된 화전민촌.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마을.
마적들이 휩쓸고 지나가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마을은, 백씨세가나 청림을 연상시켰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화전민촌에 번영의 흔적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한때 우뚝 솟아 있던 전각도 없었고, 말끔하게 정비된 석재바닥 따위도 없었다.
핏자국이 눌어붙은 흙바닥 위에 담현이 우뚝 서 있었다.
지천경이라는 곳은 사람마다 구현되는 모습이 다르다.
어떤 이들에게는 황량한 들판이,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이 살던 집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심상세계와 비슷한 방식이다.
담현의 의식이 떨어진 이곳은 바로 그의 어릴 적 고향이었다.
이렇게 마적에게 짓밟혀 사라져 버린.
“개 같은…….”
담현은 욕지거리를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지천경에 처음 들어왔을 때도 그랬다.
어린 시절의 안 좋은 기억. 하필 그 장소에서 눈을 뜰 줄이야.
담현은 기분이 몹시 더러웠지만, 그렇다고 할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는 오랜만에 자신이 못하는 것을 만났다.
담현이 얻지 못한 것이 무엇 있던가.
무공? 초절정 이상의 고수들과 함께하는 동안 담현의 무공은 여전히 절정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담현이 무능력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진원진기를 소모하여 이강의 생사현관을 타통하게 해 주었다.
그리하여 무공을 잃었으나 얻은 것 역시 많았다.
이강이 뛰어난 만큼 담현 역시 뛰어난 인간이었다.
한때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이대 제자 중에 담현만큼 술법에 통달한 자가 없었다.
아니, 이대 제자만 속할까.
담현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파고들었다.
술법은 물론이거니와 의술, 사법, 심지어는 마도(魔道)까지.
검증한 적이 없어서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담현은 자신이 어느덧 사부 유정신을 넘어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한 것만을 따지면 이강이 그보다 낫겠지만, 담현은 이강이 할 수 없는 것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건 안 되는 거냐.’
차력에서 설마 벽을 마주할 줄은 몰랐다.
지천경에 든 것도 사실 정상적인 방법을 쓴 게 아니었다.
담현은 사부가 알았다면 기함할 만큼 극단적이고 위험한 방법으로 스스로의 백(魄)을 뽑아낸 것이다.
그런데도 하늘에는 별 하나 없었다.
새카만 어둠만이 늘 담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누구와 겨루는 게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경쟁의식을 불태웠다.
그는 오늘 정말 끝장을 보자는 생각이었다.
당장 당일이 길일(吉日).
그를 제외한 이들은 태호 복희에게 공양을 올리는 의식을 치를 것이다.
그 흥미로운 구경을 포기할 정도로 담현은 진심이었다.
이곳은 지천경.
본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담현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하늘에 별이 없으니 스스로 별빛을 뿜어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별 다른 게 아니었다.
담현은 스스로의 백을 찢었다 붙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사람의 육신으로 비유하자면,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었다가 다시 붙이는 것과 비슷했다.
뿜어내는 붉은 핏방울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 듯, 담현 자신의 백을 찢으면서 나오는 광휘로 천신들의 관심을 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야속했다.
아무런 화답이 없이 어둠만이 지속되던 중.
그 담현마저 포기하려던 순간이었다.
반짝.
저 하늘에서 별빛 하나가 반짝였다.
담현의 얼굴에 화색이 떠오르더니, 곧 사라졌다.
‘……저 색은 또 뭐야.’
별빛은 흰색이 아니었다.
불길하기 그지없는 보랏빛.
자색의 별이 저 멀리서 반짝이고 있었다.
영화제자의 상징색과 같은 보랏빛이다.
담현은 본디 보라색을 좋아했지만, 저 별에게는 어쩐지 호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흉성(凶星).’
불길한 징조다.
저 별의 주인은 분명 선한 천신은 아닐 것이다. 혹은 대요괴일지도.
담현은 일단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을 멈췄다.
기다리고 기다린 별이었지만, 영 껄끄러운 놈을 만났다 싶었다.
‘사부님한테 말이나 해야겠군.’
이제는 담현도 제멋대로 굴지 않았다.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굳이 몸에 불을 붙여서 주변까지 불태울 생각은 없었다.
담현은 저 흉성과 접촉하기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때 유정신이 경고한 적 없는 일이 일어났다.
별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좁쌀만 하게 작았던 별이 쌀알만 하게, 그리고 콩 한 쪽 만큼.
나중에는 밤톨만큼 커져서 보랏빛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즉, 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안 되겠다.’
담현은 곧바로 지천경을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백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지천경에서 빠져나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이미 하늘을 가득 메운 보랏빛의 흉성이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 별로부터 목소리가 울렸다.
「불길한 빛을 내뿜더구나, 인간.」
담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할 소리.”
담현이 상대에게서 흉험한 기운을 느낀 것처럼, 상대 역시 담현에게서 불길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네 혼백에서는 악취가 난다.」
담현이 눈을 찌푸렸다.
상대가 천신일 게 분명해서 존대를 해 줬더니 초면부터 욕질이다.
「냄새나는 놈이 알짱거리니 아무도 관심을 안 주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계속 신경을 거슬리게 하더군.」
“……그럼 당신은 왜 왔는데.”
「건방진 인간아. 네가 그 찬란하게 밝은 인간 옆에 있었으니 와 본 것뿐이다.」
담현은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곧장 깨달았다.
이강은 밤하늘을 가득 메운 은하수를 마주했다고 말했다.
저 천신 역시 이강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담현 역시 본 것이고.
이강을 알지 못하니 담현을 찾아온 것이리라.
담현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지만, 천신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왜 왔는데요.”
「냄새나는 인간아. 네 몸을 빌려서 그놈을 한번 구경코자 왔다.」
“……한번 존안을 보여 주십쇼.”
그럴 성격이 아니었는데, 담현은 갑작스럽게 공손한 말투를 했다.
「그럴 생각이었다.」
보랏빛 별은 천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사람의 형태와 비슷하지만, 본질적으로 전혀 달랐다.
새파란 피부, 세 개의 머리, 여덟 개의 팔.
그 공포스러운 모습에도 담현은 겁먹지 않았다.
그저 씩 웃으며 말했을 뿐.
“토 나오게 못생겼네.”
담현과 천신.
‘이 자식.’
‘이놈…….’
둘은 동시에 생각했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이네.”
「마음에 안 드는 놈이군.」
그리고 담현이 손을 올려서 수인을 맺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백 하나만을 뽑아낸 상태에서는 천신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상대는 이미 인과율의 막대한 손실을 감행하고 지천경에 현현한바.
「저항을 멈추어라.」
그는 담현의 술법적 방비를 단번에 꿰뚫고 그의 몸속에 깃들었다.
담현의 몸이 보랏빛으로 빛나며 번쩍이는 순간.
밤하늘과 심상세계가 통째로 붕괴하고.
지천경이 깨어졌다.
담현의 육신이 두 눈을 번쩍 떴다.
안광에서 범상찮은 빛이 번뜩였다.
“아, 내 소개를 잊었군.”
담현의 몸을 탈취한 천신.
“내가 바로 나타이다. 이 오물아.”
나타태자가 스스로의 이름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