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56)
56화 합의금
청림에서 가장 큰 두 개의 궁이 청화궁과 영선궁이다. 한쪽은 무공을, 한쪽은 술법을 담당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조직이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오화대서고, 초화당, 의약당, 경영각 등 다양한 곳이 존재한다.
그중 초화당은 청림의 재정에 지대한 영향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주로 수입(收入)의 측면에서.
청림이라는 대문파의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금전이 필요하다. 초화당의 제자들은 강호의 각종 영산을 돌아다니며 기화요초들을 뽑아 온다.
그것을 다른 문파에 파는 것만 해도 막대한 수입이 된다. 무당, 화산, 소림은 그런 면에서 청림의 우수고객들이었다.
전부 파는 것은 아니고, 영선궁의 연단방과 의약당이 연단을 만드는 데도 많이 사용했다.
림주가 말한 ‘홍백하수오(紅白何首烏)’는 절강 지방에서 구해 온 영약이었다.
무당의 자소단을 만드는 데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대단한 물건이다.
“림주님, 홍백하수오는…… 무당 장문인이 긴히 부탁한 것입니다. 다음 달까지 납기일이 정해진 것이어서.”
“어허. 그들도 도인 아닌가. 장문진인의 자비로운 성품은 내가 잘 알지. 아마 시일이 늦어져도 이해해 주실 것이야. 허허허.”
림주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반면 초화당주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보고 있는 이강이야 재미있는 꼴이었다.
‘갑 중의 갑이네요.’
「갑(甲)? 그것이 무엇이냐.」
‘자기 마음대로라고요. 납기일도 마음대로 늦춰 버리고. 영약 공급을 아주 꽉 쥐고 있네요.’
생각보다 이쪽에서 청림의 힘이 더 센 듯했다.
소림도 무당도 막대한 돈을 지불할 텐데, 정작 갑은 영약 공급을 틀어쥐고 있는 청림이었다.
‘공급 우위 시장. 어지간하면 갑질 당할 일 없는 좋은 회사.’
「오늘따라 요상한 이야기들을 하는구나.」
이강이 그런 잡념에 빠진 사이, 또 다른 사람이 나섰다.
“림주님, 송구하오나 한마디 올리겠습니다.”
“무엇이냐, 도금.”
경영각을 맡고 있는 도금 진인이었다.
“납기일을 늦춘다면 위약금을 물어야 합니다. 그 위약금만 해도 적어도 은자 천 냥은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어허!”
림주가 도금 진인을 꾸짖었다.
“도인이 금전에 매달려서야 되겠느냐. 흐르는 물처럼 살거라.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였다.”
“……그, 그게 제 일이온지라.”
“예산은 충분히 넉넉한 것으로 안다만.”
“그렇긴 하오나.”
“그럼 되었다. 더는 말하지 말거라.”
경영각의 각주는 훌륭한 살림꾼임이 분명했다. 은자 천 냥의 손해가 무척이나 속상한 듯 슬퍼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강은 기분이 더 좋아졌다.
‘돈까지 많아!’
여러모로 맘에 드는 점이 점점 늘어났다.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청림주는 만족스럽게 수염을 쓰다듬더니 말했다.
“그러면, 내가 홍백하수오를 챙겨 줄 테니. 나중에 가져가서 달여 먹거라.”
“그럼 감사히…….”
“아니 됩니다!”
제3자가 쩌렁쩌렁 외쳤다.
이강은 림주의 표정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굳었다 풀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허허, 또 누구냐.”
목소리가 은근히 살벌했다.
“저입니다 림주님.”
이곳에 있던 다른 일대 제자가 말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휴영전의 문을 열고 나타났다.
“아, 도견이구나.”
도견,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다.
당장 어젯밤, 이강을 구해 준 두 노고수가 ‘도견 사제가 있어서 다행이지’라는 등의 말을 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강은 다른 이유로 놀랐다.
‘저 사람은 분명.’
괴상하게 틀어 올린 머리.
허리춤에 매달고 다니는 긴 대나무 막대. 그리고 그 대나무 막대에 촘촘하게 박힌 금색 침.
분명 천하사대신의 중 하나. 드넓은 강호에서도 가장 유명한 의원 중 하나였다.
금침으로 시전하는 그의 침술은 죽어 가는 사람을 되살린다고 들었다.
“금침의괴(金針醫怪)…….”
이강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금침의괴는 그것을 들었는지 씨익 웃었다.
“녀석, 멀쩡한 사람 보고 괴물이라니.”
“아, 금침의성(金針醫星).”
“으히히, 웃기는 놈이로다. 그래, 내가 그 금침의성이다.”
이강의 태음절맥을 고치기 위해서 백씨세가는 수많은 의원을 수배했다.
천하사대신의 중에서 정파에 속한 자는 천주신의와 금침의괴 둘이다. 하지만 둘 다 워낙 행적이 묘연해 초청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만날 줄이야.
“도견을 아는가 보구나, 이강.”
“예. 설마 청림의 분이실 줄이야.”
“도견은 의약당주를 맡고 있지만 평소에는 강호를 주유하지. 내가 불러들였단다.”
“림주님이!”
이강이 청림을 찾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불렀다는 말인가.
“그래, 네 몸 상태를 봐야 할 것 아니냐.”
이강은 크게 감동했다. 몸을 고쳐 주겠다던 말은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것 참 신비한 몸이로다.”
그런 목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어느 순간 금침의괴가 이강의 맥을 짚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해도 피하기 어려웠을 정도로 쾌속한 움직임이었다.
“확실히 꼬인 운명이야.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지만 요절할 몸이니.”
“그보다 도견. 안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홍백하수오를 먹으면 이 아이에게 독이 될 겁니다.”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초화당주와 림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홍백하수오는 양기가 충만한 영초 아닌가.”
“예, 그렇기에 양기가 허한 절맥증에는 본디 하수오가 특효지요.”
하수오(何首烏)는 양기가 충만한 식물이다. 그중에서 이파리가 붉은 홍백하수오는 최고의 영약이었다.
“그러면.”
“홍백하수오는 영초로써는 보기 드물게 태양(太陽)의 성질을 가졌습니다. 그냥 하수오와는 다르지요.”
“허어.”
“보통 절맥이 아니라 태음(太陰)절맥인 몸입니다. 조금 몸 상태가 괜찮았다면 모르지만…… 방금 진맥해 본 결과 오히려 독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도견 네 의술이 더 늘었나 보구나.”
“조금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금침의괴는 제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면, 아무래도 홍백하수오를 사과의 의미로 줄 수는 없겠구만.”
림주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초화당주의 얼굴이 환해졌다. 경영각주는 도사답지 않게 주먹을 불끈 쥐기까지 했다.
금침의괴가 한마디를 덧붙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데, 아예 백씨세가의 가주께 선물로 보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으응? 그건 무슨 말이냐.”
“강호를 주유하면서 철혈무정 백류산 가주의 지병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지요.”
이강의 귀가 쫑긋했다.
그의 아버지는 불치의 폐병을 앓고 있다.
이강만큼 급한 상태는 아니지만, 이대로라면 가주직에서 은퇴해야 할 중병이었다. 꾸준히 관리를 받고 있지만 완치는 못 하던 것이었다.
“심하통(心下痛)에 결흉증(結胸症)이 있으시고, 허혈이 있으시지. 맞나?”
“예. 그러십니다.”
이강은 공손히 대답했다. 어려운 의학용어였지만 의술도 공부했던 이강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결핵, 혹은 폐로(肺癆)라는 병인 것 같은데. 마침 그 질병에 대해 연구 중이었습니다.”
“그러면, 홍백하수오가…….”
“분명 폐로에 뛰어난 효험을 보일 것 같습니다. 말씀만 하시면 홍백하수오로 영약을 만들지요.”
“허어! 그 말썽만 피우던 도견 네가 진정 도인이로구나! 그러도록 해라.”
이강의 얼굴이 환해졌다.
초화당주와 경영각주의 얼굴은 다시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미 명분을 잃은 그들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강은 기꺼웠다. 사대신의와 연을 트게 된 것은 홍백하수오보다도 귀한 것이었다. 아버지 백류산을 위한 약까지 받아 가게 되었다.
금침의괴는 심지어 즉석에서 이강의 다리에 침을 놓아 주기도 했다.
“뼈가 완전히 부러진 것은 아니야. 다만 금이 간 듯하니 몸의 치유력을 높일 수밖에. 침을 놓은 곳이 아프지는 않나?”
“예, 괜찮습니다.”
“거 참. 분명 아플 텐데 내색 하나 안 하는 게 신기하구나.”
과연 금침의괴의 침술은 명성에 걸맞았다.
순식간에 다리의 통증이 확 줄었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몇 주 있으면 뼈가 붙을 것이라고 했다. 세가로 돌아갈 때는 마차를 탈 테니까 걱정할 것도 없었다.
“영약으로 폐로를 완치할 수는 없겠으나…….”
금침을 회수한 그가 조용히 말했다.
“림에서의 일이 끝난다면. 아마 다음 해에는 너희 세가를 한번 방문할 수 있겠구나.”
“그러면.”
“백 가주님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면. 수찬이에게 자비를 베푼 네게 보답할 수 있겠지.”
“그 통통한 아이 말입니까.”
“그래, 그놈이 내가 의약당에 꽂으려고 벼르고 있는 놈이거든. 제법 눈썰미가 좋아서.”
육수찬이라는 꼬맹이는 이강에게 덤벼들었었다. 이강이 만약 검을 뽑았다면 크게 다쳤을 것이다.
금침의괴는 이강에게 빚을 갚으려 하고 있었다.
불사신검이 클클 웃었다.
「고집부리면서 검을 뽑지 않은 게, 어떻게 또 도움이 되었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이강은 빙긋 미소 지었다.
운이 좋았다.
* * *
그리고 약 보름이 흘러. 금이 간 정강이의 뼈가 붙었다. 부목을 제거하니 무척이나 상쾌했다.
내공을 쓸 수 없는 이강의 몸은 일반 양민과 다를 바 없었다. 겨우 보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다리를 고친 것은 금침의괴의 도움이 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원인이 더 있었다.
“역시, 쌍두귀호 내단은 효험이 엄청나네요.”
이강의 안색은 광택이 돌다 못해 빛이 났다.
“하하, 그러십니까?”
능지평이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청림은 약속대로 쌍두귀호의 내단을 정화해 주었다. 금침의괴는 이강의 내단 복용을 침술로 돕기까지 했다.
그 덕에 그의 몸은 청림으로 출발하기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빙의로 인한 진원진기의 고갈도 복구했을 정도였다.
“예, 기운이 펄펄 나는 것 같습니다.”
영약에 대한 이강의 집착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밑 빠진 독과 다름없는 몸이라고 해도, 그 안에 물만 제대로 넣어 주면 상관없는 일 아닌가.
영약은 물, 그것도 달콤한 감로수와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영단(靈丹)이 그의 품속에 있었다. 그것도 홍백하수오와 쌍두귀호의 내단을 섞어서 만든 귀한 영약이.
이강은 진리연에게 쌍두귀호의 내단 중 하나를 넘겼지만, 진리연은 놀랍게도 정화한 내단을 기꺼이 넘겼다.
준명 일행에 의해 이강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결정한 일이었다.
「그것도 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버지 드릴 건데.’
「입에 침이나 닦고 말하거라.」
이강은 입가를 스윽 닦았다. 침이 고이는 것이야 생리현상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 출발하겠습니다, 이강 공자님.”
“예.”
“가자!”
능지평의 명령에 마부석에 앉은 비연대원이 마차를 출발시켰다.
세가에서 출발했을 때만 해도 단출한 인원 구성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열댓은 되는 비연대원들이 이강을 호위하고 있었다.
“자, 잠시만요!”
그리고, 누군가가 저 앞에서부터 달려왔다.
이강은 손짓을 해 마차와 호위들을 멈추었다.
“뭐냐.”
“오늘 떠난다는 이야기 듣고, 얼른 뛰어왔어.”
마차 앞에 옹기종기 모인 것은 세 명의 소년들이었다.
준명, 육수찬, 그리고 명걸.
이강은 마차의 창가에 팔을 얹고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아침 수련은 하지 않고?”
“우리는…… 징계 중이거든.”
그들의 행색은 거지꼴이나 다름없었다.
유수린만 해도 며칠 내내 징계를 받았던 참이다. 제 의지가 아니었다고 해도 격노충에 물려 손님을 공격했던 이들은 큰 징계를 받았다.
“꼴들이 말이 아니야.”
이강은 피식 웃었다.
“우리는 괜찮아. 그보다. 다리는 어때?”
“다 나았다.”
“다, 다행이다.”
안도하는 소년들의 얼굴에는 명백한 죄책감이 깃들어 있었다.
이강은 물끄러미 준명을 보았다.
“그래서, 인사하러 왔나? 할 말 없으면 비켜라.”
“이거…….”
준명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종이로 감싼 것이었는데 아직 따듯했다.
“진흙을 발라서 구운 오리야. 가는 길에 먹으라고.”
겨우 한 마리. 하지만 오리구이는 분명 따듯했다.
이 쌀쌀한 날씨에 따듯한 오리를 진흙에 구워 오기 위해서는 새벽같이 일어났을 것이다. 여기까지 열심히 달려온 것이 분명해 보였고.
“이거는 우리 아버지가 만드신 육포.”
“우리가 직접 모은 꿀도 있어.”
셋의 얼굴이 유독 엉망이다 싶었는데, 벌에 쏘여 부은 듯했다.
이강은 말없이 미소 지으며 그들의 호의를 받았다.
“가지요, 능 대주.”
“그러지요.”
마차가 다시 출발했다.
이강은 창가에 슥 얼굴을 내밀었다.
세 소년은 저 뒤편에서 소심하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능지평이 조용히 말했다.
“인정이 깊은 소년들이군요.”
“그러게요.”
“저런 자들을 곁에 두면 나쁘지 않겠지요.”
능지평은 이강이 청림으로부터 입문 제의를 받은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공자님이 떠나시면, 하준 공자께서 쓸쓸해하실 텐데.”
“하준이는 혼자서도 잘 하지 않겠습니까. 저 없었을 때도 잘 지냈을 것 같고.”
이강은 백하준을 떠올렸다.
청림의 아이들과 하준의 나이는 비슷하다. 그런 면에서 하준은 그들보다 상대적으로 믿음직했다.
그래서 이강도 하준을 믿고 임무를 맡긴 것이 아니던가. 하오문도와 연계해서 정보를 수집하라며.
그런데, 능지평이 은근한 어투로 중얼거렸다.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예?”
그 말투가 은근히 신경 쓰여서 이강이 되물었다.
하지만 능지평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하준을 가르쳐 온 그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아직 아이라는 것을.
「두 번째 살고 있는 자손이야 당연히 빠릿해야겠지만. 겨우 열둘 먹은 동생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 흘흘.」
비웃는 불사신검.
이강은 순간, 백하준이 걱정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