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26)
“······하, 이 미친 새끼.”
유연서의 턱에서 뿌드득, 이빨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유은호와 백서준이 지척으로 다가왔다.
“뭔데?”
유연서는 말없이 편지를 옆으로 넘겼다. 내용을 살핀 유은호의 표정도 싸늘하게 굳었다. 백서준이 몸을 움찔 떨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쭉 친구로 지내왔지만, 유은호의 저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도련님, 읽어봐도 됩니까?”
그리고 그것은 임승현과 백서준에게 넘어갔다.
사랑하는 내 아들 연서에게.
로 시작하는 편지는 요즘 티비에 나와서 활약하는 네 모습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고.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맺음말은 ‘너의 아버지’였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아버지가 자식 사랑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유건민이 워낙 팔불출로 유명하니까.
하지만 형제의 반응으로 보건대, 이건 유건민이 서프라이즈로 준비한 게 아니다.
편지를 다시 건네받은 유연서는 그것을 꾸겨버렸다. 이건 유건민의 필체가 아니다. 게다가 아버지는 자신이 얼마나 돈을 많이 들여 아들들에게 신경 쓰고 있는지 동네방네 소문내는 스타일이다. 재벌답게 돈으로 해결하는 유건민이 소속사에 조용히 편지를 전달할 정도로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그놈이다.”
그는 자신을 아들이라 부르던 음습한 목소리를 절대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유연서는 편지를 쓴 사람이 그 경호원으로 위장한 스토커라는 어떠한 예감이 있었다.
“허, 이거 또라이 새끼 아냐?”
백서준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 편지를 쓴 사람과 이희서를 죽인 범인을 연관 짓는 것은 아직 심증뿐이었지만, 진짜 아버지도 아닌 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 자체로 소름 끼쳤다.
“태겸, 이거 언제 받은 거야?”
유연서의 응급실행으로 임승현과 이태겸의 묘한 연대가 생겼었다. 이태겸은 눈동자를 굴리며 기억을 쥐어 짜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한꺼번에 주려고 계속 쌓아놨었거든요. ‘국새’ 중반부 이후니까······ 그래도 한 달은 넘지 않았을까요?”
이들이 뭘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이태겸은 쭈뼛거리면서 말했다. 아무튼 잘 가져온 거 맞겠지?
“일단 회사로 가자.”
“바로? 근데 CCTV 아무나 못 보지 않아?”
유연서의 시선이 백서준에게로 향했다.
“경찰 아저씨.”
이태겸이 경찰이셨어요? 라고 작게 질문했다. 하지만 백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 되지?”
없어도 만들어야 할 거야. 언뜻 살의까지 느껴지는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백서준은 묵묵히 겉옷을 챙겼다. 수상한 것을 발견한 이상 조사는 해 봐야 하니까······ 눈빛에 쫀 거 아니다. 진짜로.
그들이 소속사 건물에 도착하자, 마침 건물 관리인이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CCTV를 보고 싶다고요?”
퇴근 시간이 늦어진 관리인은 백서준의 경찰 공무원증을 보고는 CCTV 실로 안내했다. 내부가 좁아서 백서준만 들어가고 남은 사람들은 밖에서 대기했다.
“이 건물은 영상 보관 기간이 어떻게 됩니까?”
“그······ 아마 보름이면 없어지는 거로 알아요.”
“그래요?”
백서준이 고개를 돌려 입구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핸드폰을 붙잡고 있던 이태겸이 말했다.
“방금 직원한테 확인해 보니까 저저번달 말일부터 팬들 편지 받았대요.”
“애매하네······.”
그 사람이 어느 날 몇 시에 온 지 몰라서 백서준은 임승현에게 받은 외장 하드로 남아있는 CCTV 영상 전체를 복사했다.
“근데 CCTV는 왜 보세요? 무슨 일 있어요?”
“아······ 저 앞에 사람들 때문에요. 요즘 많죠?”
“어휴, 그거 때문에 귀찮아 죽겠어.”
관리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국새’가 대박이 터지니 소속사를 찾아온 사람들도 불어난 시청률만큼 늘어났다고 한다.
처음에는 여느 때처럼 입구 근처를 배회하면서 주변 상권의 매상을 올려줬지만, 점점 입구를 지나쳐오더니 대뜸 유연서가 어딘지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말이 안 통하니 답답하다며 관리인은 제 가슴을 쳤다.
“그렇게 많이 옵니까?”
“네. 여긴 보안 게이트도 없는 건물이라, 엄한 사람이 침입해서 사고라도 치면 제가 곤란해지거든요.”
그리고 그 피해는 관리인이 받게 될 것이다. 그는 직원인 척 속여서 애먼 사무실에 잠입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연예인의 삶을 전혀 모르는 백서준이 혀를 찼다. 입구에서 엿듣고 있던 유은호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유연서가 배우치고 특수한 편이었다.
“아, 그렇다고 저분에게 뭐라 하는 거 아닙니다. 무작정 찾아오는 사람을 어떻게 막아요, 나도 드라마 재밌게 봤어요.”
관리인은 입구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유연서의 눈치를 봤다. 유연서는 지금도 돌아가고 있는 CCTV 화면을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저 너머에 있는 범인을 노려보는 것처럼.
“혹시 수상해 보이는 사람은 없었나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여기 들락거리는 사람이 얼만데.”
“감사합니다. 이것만 다 복사만 하고 갈게요.”
경찰이 문단속까지 약속하자 관리인은 별 의심 없이 퇴근했다.
“그나저나 이거 다 보려면 시간 꽤 잡아먹겠는데?”
“잘됐네. 어차피 쉬기로 했으니까. 나한테 줘.”
어차피 그 사람의 얼굴을 아는 건 유연서뿐이었다. 다만, 화질이 좋지 않아서 제대로 걸러낼 수 있을지 불투명했다. 그 사람이 그날 마주쳤던 경호원이 아닐 수도 있다. 그냥 좀 수상한 팬일 수도······.
‘아냐, 뭔가 있어.’
유연서는 이상하게 고조되는 감정을 꾹 눌렀다. 이건 원래의 유연서가 느끼는 감각일까? 아무튼 무시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영상을 다 복사하고 주차장으로 향한 그들은 마침 건물 밖으로 나서는 한 대표와 박 실장과 마주쳤다.
“어?”
“두 분 퇴근 안 하셨어요?”
“앞에서 한잔하려고······ 근데, 이분은······.”
한 대표는 경이로운 것을 보듯 유은호를 올려다봤다. 그리고는 옆에서 팔짱 끼고 자신을 쳐다보는 유연서를 번갈아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연서 형입니다.”
“이야······.”
유은호는 이희서와 유건민을 적확히 반반씩 닮아 좀 더 선이 굵은 느낌이었다면, 유연서는 이희서 쪽이 더 강했다. 서로 닮았으면서도 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게, 이 집 자식 농사 잘했네 부모는 안 먹어도 배가 부르겠네. 아, 그 부모는 이미 배가 부르시겠구나. 재벌이니까······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을 맡긴 한 대표가 홀린 듯 입을 열었다.
“혹시, 배우 해볼 생각 없습니까?”
유연서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가 어떤 지랄을 하는지 이제는 눈 감고도 감지할 수 있는 한 대표가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아닙니다. 초면에 실례가······ 예능, 예능 출연은 어때요? 형제 둘이서 어디 해외여행이나 캠핑 같은 거 가서······.”
“한 대표,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지?”
유연서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신들린 듯 나불대던 한 대표는 이태겸에게 귓속말을 했다.
“쟤 왜 저래?”
“지금 건들면 안 돼요.”
“또 도진 거야?”
“대표님······ 그냥 가세요.”
이태겸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편지를 읽던 유연서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한 사람이었다. 놀람에서 혐오 그리고 살의로 발전하는 분위기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유연서는 한 대표와 박 실장을 지나쳐 차로 향했다. 한 대표는 황급히 소리쳤다.
“잠깐만! 연서야, 너 진짜 쉴 거야?”
“어.”
“아니 왜?! 지금 네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데······!”
한 대표, 국뽕 기사를 너무 많이 봤네. 유연서는 한숨을 쉬며 이태겸에게 고갯짓했다. 적당히 치우지 않으면 너도 치워버릴 수 있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이태겸이 한 대표와 박 실장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한 대표는 끌려가면서도 다시 생각해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기 유연서 있는 거 다 밝혀지게 생겼다.
“재밌는 사람이네.”
“······가자.”
유은호는 제발 화보라도 하나만 찍자! 라고 고함치는 한 대표를 끝까지 바라보다가 동생의 재촉에 차에 올라탔다. 유연서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을 거듭했다.
‘왜 이렇게 관심을 끌었지?’
마치 내 눈에 들고 싶어서 안달하는 것처럼.
‘그리고 왜 지금이지?’
유은호는 생각에 잠긴 동생을 흘끔 바라보고는 운전에 집중했다.
***
“일을 쉴 정도로 심해?”
집에 도착하면 기억 다시 보기로 그 사람의 특징을 살펴보려고 했던 유연서는 제 방문 앞에 선 형의 물음에 몸을 돌렸다.
“뭐가?”
“······그거.”
동생의 증상을 차마 입에 담지 못하는 유은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것에 시달리는 건 난데 왜 형이 더 이상한 표정을 짓는 건지······ 예전이라면 이해를 못 했을 테지만, 지금은 얼핏 알 것도 같았다.
“아니 별로······.”
차마 걱정하는 사람 앞에 대고 ‘어, 조금 심하더라. 연기할 때 불쑥 나타나서 NG를 몇 번 냈어.’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대충 말끝을 흐렸다.
애초에 그걸 말한 건 박금주에게 빚을 지워서 도움을 얻어내려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녀가 붙여준 비서 박정호가 일을 아주 잘해주고 있어서 만족했다.
하지만 형이 엿듣는 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가능하면 몰랐으면 좋았다.
‘잘못도 안 했는데 죄책감이 생기네.’
박금주를 생각하자 가슴이 따끔거렸다. 마치 이희서의 사고가 나 때문이라고 자책하던 느낌과 비슷했다. 그는 형이 문 앞에서 버티고 있든 말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러면 활동은 계속해라.”
“범인 잡아야지.”
“나랑 서준이도 있잖아.”
“형들도 바쁘잖아.”
“연서야.”
도저히 통하지 않아서 유은호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걸 어떻게 말할까 생각하며 제 눈썹을 긁었다. 곤란하면 눈썹을 긁는 게 버릇인가보다.
“나는 네가 이렇게 인기 많은 거 처음 본다.”
“원래도 많았는데.”
“그게 아니라······ 긍정적인 면에서 말이야.”
교통사고가 나기 이전에는 모든 사람이 유연서를 욕하고 조롱했다. 그때도 팬들은 있었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꽤 좋지 않았을 시절 말이다. 그는 동생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얼핏 알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가끔 백서준과 만날 때면 옆 테이블에서 유연서의 이름이 들린다. 좋은 쪽으로 말이다. 부하직원들의 입에서도 동생의 팬을 자처하며 긍정적인 반응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었다.
“이때가 아니면 못 하는 일도 있어.”
“······.”
“괜히 기회 놓치지 말고.”
기회는 만들면 되는 건데······ 라고 반박하려던 유연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유은호가 말하는 기회는 썩어 넘치는 돈을 더 벌 기회가 아니라, 더 심층적인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배우로서의 기회 혹은 황금기를 누리고 즐길 시간 같은 것 말이다.
“평소처럼 해. 너 대신 조사할 사람 많다.”
유은호와 백서준이 바쁘다면 임승현도 있고, 박정호도 있다. 게다가 이태겸도 생각지 못했는데 실마리를 발견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네가 갑자기 안 하던 짓 하면 그쪽에서도 수상함을 느낄지 몰라. 조심해야지.”
직접 죽인 사람이 아니라, 죽음을 사주한 사람 말이다. 보안이 철저한 저택에서 한 사람을 자살로 위장했을 정도로 철두철미한 사람이다. 설마 방심하고 있지는 않겠지.
“생각해보고.”
“그래. 자라.”
묘하게 달라진 동생의 반응을 보고 유은호는 제 말이 먹혔다고 확신했다. 그는 조심히 방문을 닫았다.
‘일단······ 편지를 쓴 사람부터 찾아야지.’
벌떡 일어난 유연서는 방문을 잠갔다.
“베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