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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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리딩
“안녕하세요 작가님, ‘드리밍’의 감독을 맡을 이수지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정다희라고 합니다!”
정다희는 대본 리딩을 하기 전 ‘드리밍’의 감독이 된 이수지와 만나서 안면을 텄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도 신인이나 다름없어서······.”
이수지는 주로 단편 드라마 연출을 맡았고, 16부작 드라마는 ‘드리밍’ 처음이었다.
“조금 부담스럽네요.”
“저도요.”
‘드리밍’은 단번에 JSTV의 기대작으로 홍보되고 있었다. ‘가상 현실’ 게이트로 유명해진 데다가 출연 배우 진이 화려했기 때문이다.
“설마 진수호씨가 먼저 하겠다고 하셔서 좀 놀랐어요.”
“화려하게 데뷔하면 좋죠. 대본 집필은 잘되세요? 부담 때문에 너무 늦게 주시면 안 돼요.”
“당연하죠.”
이수지의 장난 섞인 말에 정다희가 의욕에 가득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고대하던 데뷔였다. 탑 스타 캐스팅에 부담스럽다고 일을 허투루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유연서 씨는 어때요? 작가님은 만나본 적 있죠?”
“있죠.”
유연서가 JSTV는 어떠냐는 제안을 했던 날에도 목격담이 떴었다. ‘유연서 카페에서 봤는데 여자 울리고 있더라’라는 유언비어까지 퍼졌는데, 사실 정다희 작가였다는 것이 밝혀지자 소문은 금세 사라졌다.
“소문대로 성격 더러워요? 이러다가 디렉팅도 제대로 못 보면 어떡하죠?”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소문 믿을 거 못 돼요.”
“진짜요?”
여러 선배로부터 유연서의 악명을 많이 들어왔던 이수지는 정다희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안 그런 척하면서 엄청 챙겨주시더라구요.”
“······그래요?”
“그러니 ‘드리밍’이 제작 편성까지 엄청 빠르게 결정됐잖아요.”
유연서가 최유진에게 대본을 건넸다는 건 소문으로 빠르게 퍼져서 정다희도 알 지경에 이르렀다. 무려 부회장에게 직통으로 보냈으니 편성 안 되는 게 이상하지.
“감독님도 디렉팅 막 하셔도 괜찮을 거예요.”
“농담하지 마세요.”
“아니, 진짜로요.”
뚱하고 새침한 얼굴로 다 받아줄걸? 정다희는 웃음을 참았다.
“연서 씨! 승현 씨!”
“또 보네요.”
유연서를 발견한 정다희가 살갑게 다가가자, 유연서와 함께 작품에 들어갔던 단역 배우나 소문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곧 나올 큰소리에 대비했다.
‘웃네?’
‘뭐야?’
하지만 지금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유연서는 성별 나이 가릴 것 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벽을 치기로 유명했다. 특히 정다희처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친한 척 다가오면 짜증 섞인 화를 내기도 했는데, 지금은 부드럽게 웃으며 받아주고 있었다.
‘둘이 사귀나?’
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의외의 모습에 충격받은 사람들은 정다희 뒤에서 유유자적 걸어오는 배우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내가 좀 늦게 왔니?”
“선생님.”
진수호도 벌떡 일어나 맞이했다. 극 중 진수호의 어머니 역할로 나올 중견 배우, 이선자였다.
“아닙니다. 저희가 일찍 왔어요.”
“그러니? 난 쟤가 벌써 있길래 늦은 줄 알았잖니.”
이선자가 유연서를 보고 고갯짓했다. 유연서는 지각은 안 했지만, 지각에 가까울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현장을 찾았었다.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길래 따라 일어났던 유연서는 이선자의 얼굴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마저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언짢아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네.’
그가 봤던 수많은 영상에서 얼굴을 비추던 중견 배우였다. 그리고······.
‘이희서랑 드라마 나왔던.’
‘행복한 작별’ 이후로 시청률 60%를 달성했던 주말 드라마 ‘감나무 아래’에서 이희서의 어머니 역할로 나왔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래. 오랜만이구나.”
이선자는 못마땅한 듯 유연서를 바라보고는 진수호의 옆에 앉았다. 이태겸이 스윽 다가와 유연서에게 귓속말을 했다.
“너랑 ‘인형’ 했을 때 만났었잖아. 모자 역할로.”
“아, 그래?”
이희서와 유연서 둘 다에게 어머니 역할을 맡았을 정도로 이선자는 자기 관리를 잘하기로 유명했다.
임승현이 묘한 눈빛으로 이태겸을 바라봤다.
리딩에 참여할 모든 사람이 도착하고, 조연출이 마이크를 잡았다.
“연출을 맡아 주실 이수지 감독님이십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합니다. 저로서는 첫 장편 드라마 도전인데,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다희 작가님.”
“안녕하세요! 좋은 기회로 데뷔작을 쟁쟁하신 선배님, 배우분들과 함께해서 영광입니다.”
씩씩하게 일어난 정다희는 자신이 대본을 집필했을 때에 대한 심정과 배경을 설명했다. 분위기는 좋았다. 일단 그렇게 호응 안 하던 유연서가 건성이어도 호응을 하고 있었다.
“김윤화 역을 맡아주실 이선자 선생님이십니다.”
촬영 현장은 의외로 감독과 작가, 탑 배우가 수평적이었다. 하지만 예외가 하나 있다. 바로 나이 많은 탑 배우였다.
“안녕하세요. 이제는 할머니 역을 해도 이상하지 않는데 엄마 역할로 섭외해 주셔서 감사해요. 늙었다고 너무 오냐오냐하진 마세요.”
그래서 배우 소개도 주연이 아니고 이선자 먼저 진행했다. 이선자는 자리에 앉은 채로 농담을 쳤다. 사람들이 웃으며 손뼉을 치고 환호했다.
“다음은 박시환 역을 맡아주신 진수호님.”
“안녕하세요.”
진수호가 벌떡 일어나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인사했다.
유연서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단역까지 눈을 맞추던 진수호는 한 사람은 어물쩍 넘어갔다. 바로 유연서였다.
조연출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춘백 역을 맡아주신 유연서님.”
“안녕하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담백하지만, 힘이 실려 있었다. 이선자가 의외라는 듯 유연서를 쳐다봤다.
대본 리딩에서는 극의 흐름을 파악한다. 배우의 캐릭터 해석이나 버릇에 따라 대본이 약간 바뀌기도 하고, 캐릭터 해석이 잘못됐다고 리딩 후에 배우가 바뀌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대본에 손대기로 유명한 유연서와 대본에 손 하나 안 대기로 유명한 진수호가 만났다.
사람들은 긴장한 얼굴로 유연서를 쳐다봤다. 촬영 현장이나 준비 과정에서 소란이 발생했는데 유연서가 있다? 백 프로 유연서가 원인이었다.
“네가 해결해야겠다.”
“제가요?”
하지만 유연서는 담담히 대본을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의자에 늘어져서 앉아있던 그는 갑자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맞은 편에 있는 진수호를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주인님.”
순식간에 표정을 바꾼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다. 몸동작이 묘하게 경직되어 있었고, 유연서의 욕 나오도록 잘생긴 외모와 어우러져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짧은 사이에 바뀐 분위기에 몇몇 사람들이 놀라서 유연서를 쳐다보고 있을 때, 진수호는 몰입을 깨지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유연서의 눈을 응시했다.
“너는 이름이 뭐지?”
“없습니다.”
유연서가 고개를 살짝 기웃거리며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마치 3D게임의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화면에서 보던 것 같은 동작이었다.
“그럼 내가 하나 지어줘야 하나?”
“그래 주시면 좋죠.”
“그럼······ 춘백이.”
“춘백, 입니까?”
“어, 이름이 촌스러울수록 오래 산다지?”
로봇 같던 표정에서 균열이 일어난다. 안드로이드가 인간적인 감정을 얼굴에 담는 순간이었다.
리딩이 얼추 끝나고 있을 때, 조용하던 유연서가 손을 들었다.
“저, 하나 의견 드릴 게 있는데.”
그러면 그렇지. 간섭 안 하면 그건 유연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대뜸 ‘대본 수정하죠’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의견을 드린다고 했다. 긴 리딩 시간에 지친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극 중 춘백이가 인간에 가까운 로봇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근데 대본만 봐서는 로봇 느낌이 전혀 안 나거든요.”
“그렇죠.”
유연서가 맡을 안드로이드 춘백 역할은 진수호가 맡은 박시환과 사건을 해결하면서 점점 인간다워진다. 하지만 가끔가다 모럴 없는 행동을 보이는데, 극을 중간부터 봐 왔던 사람이 ‘쟤는 왜 저래?’라고 혼동할 것 같았다.
“그래서 외적인 요소를 바꿔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저도 그거 생각하긴 했는데······.”
정다희가 손가락에 끼운 펜을 흔들었다.
“얼굴에 점이라도 찍을까요?”
“점은 너무 약한 거 같아요. 차라리 머리를 염색하는 건 어때요?”
유연서와 이수지의 대화에 정다희는 갑자기 멍하니 있더니 대본에 아무렇게나 휘갈기면서 말했다.
“염색하죠. 원색 계열이면 좋겠어요. 파란색 빼고 빨간색이나 초록색, 아니면 흰색도 좋고······.”
“빨간색이나 초록색은 자칫하면 화면에 너무 튈 것 같고······ 은발 괜찮겠다. 이름도 춘‘백’이니까.”
“그건 그거대로 신비로워 보이고 좋겠네요.”
“연서 씨는 어떠세요?”
작가와 감독이 바라는데 내가 어쩌겠나.
“하죠, 뭐.”
***
괜히 한다고 했다.
“따가우시죠?”
“괜찮아요.”
유연서는 애써 인상을 풀었다. 은발을 만들기 위해 탈색만 지금 몇 번 하는지 모르겠다. 이러다가 머리 빠지는 건 아니겠지?
“다 됐습니다.”
기나긴 탈색 끝에 원하는 머리색이 나왔다. 유연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와, 머리 엄청 상하겠다.”
“아직도 따가워.”
유연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기억 동기화 후유증 때문에 몸 상태도 별로 안 좋은데 탈색한다고 몇 시간을 앉아 있어야 했다.
“바로 촬영장으로 가자.”
“시간 아직 남았는데? 알았어.”
유연서는 의자에 몸을 눕히고 눈을 감았다. 아침에 했던 기억 동기화도 수확이 없었다. 새내기 시절 강의실에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기억, 그리고 유건민이 자신을 끌어안고 울던 기억이 다였다.
‘기분 나빠······.’
동기화가 어느 정도를 넘어서니 당시 유연서의 감정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어서 조금 괴로웠다. 슬픔에 잠식될 것 같았다.
잠시 선잠을 잔 끝에 ‘드리밍’의 촬영장에 도착한 유연서는 지나가던 스태프에게 고개를 까딱하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연서 씨도 일찍 오셨네요.”
연서 씨도?
그가 촬영장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진수호와 이선자가 의자에 앉아서 촬영장을 살피고 있었다. 주연인 진수호는 그렇다 쳐도, 이선자는 후반부에나 찍을 장면이 많은데 나와 있다니······ 역시 연륜은 달랐다.
“안녕하세요.”
“연서 씨, 안녕하세요. 머리 잘 어울리네요.”
“근데, 일찍오셨네요?”
“촬영 분위기나 흐름 파악하려고요. 연서 씨도?”
유연서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진수호와 이선자가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선자가 ‘인형’에서 마주쳤던 유연서의 태도 불량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라졌네?”
“제 머리가요? 아니면 성격이요?
“둘 다.”
“······좋은 쪽이겠죠, 선생님?”
“그래.”
대본 리딩 이후로 이선자는 성격이 유해졌다. 유연서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진수호의 옆에서 팔짱을 끼고 촬영장을 살폈다.
“그래서, 지금 뭐 찍고 있나요?”
“기억의 방 인서트 찍고 있대요.”
‘드리밍’은 16부작 드라마로, 초반부는 가상 현실 해결사 박시환이 사람들을 현실로 빼내는 것을 보여주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극 중 ‘기억의 방’은 사람들의 지난 기억을 보는 장치로, 사전에 사례자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들리는 곳이었다.
“······어?”
유연서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마 한 사례자의 트라우마를 보여주는 장면일 거다. 스태프가 옷을 입은 마네킹을 가져오더니 허공에 묶고 있었다.
그것도 목을, 매단 것처럼. 심장이 쿵쿵 뛰었다. 유연서는 오른손으로 제 입을 가렸다.
“잠깐······.”
“왜 그래요?”
진수호는 당황해서 이선자를 쳐다봤다. 이선자도 엉거주춤 일어나서 유연서의 얼굴을 살폈다.
기억 동기화의 후유증 같은 구토감이 올라왔다. 유연서가 고개를 푹 숙였다. 누가 목을 틀어쥔 듯 숨을 쉬기 어려웠다.
“저거 지금 꼭 찍어야 해?!”
결국, 크게 소리친 유연서의 말에 스태프들은 하던 일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시끄러웠던 촬영장은 단번에 싸해졌다.
“······씨발.”
욕을 내뱉은 유연서가 촬영장 밖으로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