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61)
박 실장이 터덜터덜 걸어와서는 유연서의 앞에 파일을 내밀었다. A4용지를 엮어놓은 파일은 두께가 상당했다.
“보고 뭐라 하지 마라.”
“잘 쓰여 있으면 내가 뭐라 하지 않지.”
유연서가 파일을 집어 무릎 위에 올려놓자, 곤란한 듯 보이는 세 사람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유연서가 고개를 홱 돌려 이태겸을 쳐다봤다. 그런 거 없다며?
“아니······ 욕은 안 쓰여 있어. 진짜로.”
욕만 안 쓰여있지 다른 건 쓰여 있다? 다들 한통속이었군. 유연서는 코웃음을 치고는 파일을 열었다.
‘욕을 하든 말든 상관없어.’
과거에 했던 일은 내가 한 일이 아니고······. 어차피 그가 이 파일을 보려는 것은 기억 동기화 없어도 본체의 정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파일은 헤일로 미디어에서부터 최초로 시작했고 일 년에 한 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유연서의 다소 변덕스럽고 더러운 성격을 예방하기 위한······.)
‘뭐 이렇게 장엄하게 시작하냐.’
필체에서 연배가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하니 한 대표가 쓴 게 분명했다. 근데 그냥 컴퓨터로 작성해도 될 것을 직접 수기로 작성하다니······ 근데 내용이 왜 이래?
“벼, 별 내용 없어.”
한 대표는 모른 척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다가도 파일을 읽는 유연서를 흘끔 쳐다봤다.
(이걸 왜 쓰라는 거지?)
(일하기 싫어)
진짜 별 내용 없네.
(엿 같아서 못 하겠습니다. 저도 나름 다른 기획사에서 일한 경험 있는 경력직인데요 차라리 아이돌을 맡는 게 몸은 바빠도 정신 건강에 이로울 거 같습니다. 퇴사합니다.)
이유는 알려 주고 퇴사하지. 유연서는 다음 장으로 넘겼다.
(5번입니다. 왜 5번인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박 실장님께 미리 얘기는 들었는데 아직은 괜찮습니다. 오히려 조용하시던데요.)
유연서가 박 실장을 쳐다봤다. 별생각 없이 바라본 것인데 지레 찔린 박 실장이 시선을 피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갑자기 똥개훈련 시키는데 원래 이런가요?)
(오늘은 좀 기분이 괜찮은 거 같네요. 밥 사 먹으라고 돈 주심.)
(아니 갑자기 화내는데?)
이유를 알 수 없는 하소연이 계속됐다. 인수인계 용도로 만든 것보다는 그냥 일기나 다름없었다. 그냥 스트레스 풀 용도로 만든 파일 아니야?
(5번입니다 더러워서 못 해먹겠습니다.)
엿 다음엔 더럽다라······ 얼마나 싫었으면 필체까지 흐트러져 있었다. 유연서는 계속해서 다음 장으로 넘겼다.
(6번임 W 브랜드 초청 행사 거절 이유는 옷이 싼 티 나서.)
(W 브랜드도 몇백만 원 하는 명품 아닌가? 아무튼, 앞으로 W 브랜드와 관련된 것은 안 하는 게 좋을 듯.)
(7번. 배우의 선호하는 커피 원두는 예멘 모카 마타리. 핸드드립으로. 아이스는 꼭 얼음 다섯 개만.)
(원두를 취급하는 가게가 없으니 미리 타서 텀블러에 담아줘야 할 듯. 내가 매니저를 하러 온 것인지 바리스타를 하러온건지.)
(아무튼, 이걸 어기면 크게 화내며 다시 타오라고 하니 주의.)
나름 유용한 정보도 있었다. 이 부분은 형광펜으로 강조 표시까지 해 놓은 상태인데, 형광펜 외에는 갑자기 화내고 짜증 내는 유연서에 대한 한탄이 많았다.
(12번)
(얼굴은 드럽게 잘생겼네.)
12번, 이태겸이다. 그가 고개를 들어 이태겸을 쳐다봤다.
(배우는 비 오는 날씨를 유독 싫어하는 듯)
(흰색을 싫어하는 것 같음. 정확히 말하면 흰색 옷? 광고 촬영 왔는데 상대 모델이 흰 치마를 입고 왔음 그런데 다른 거로 갈아입고 오라고 갑자기 화냈음)
오······ 일하긴 했네. 물론 그 뒤는 원래 이렇게 성격 더럽냐는 한탄 글이 많았지만.
(너무 빡쳐서 길가에 버리고 왔다. 난 퇴사한다.)
(소송당하면 어쩌지?)
(후에 이 파일을 보고 있을 n번째 매니저에게 말한다.)
(도망쳐)
유연서는 피식 웃고는 파일을 닫았다.
“재밌네.”
“그, 그래?”
눈치를 보던 한 대표와 박 실장, 이태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들은 성격 바뀌었다. 드디어 개과천선한 거냐 말을 얹었지만, 적어도 이 세 사람은 예전 유연서의 성격을 잊지 않았고 방심하지 않았다.
“이제 필요 없을 테니까 이 파일은 내가 가져가고.”
한 대표와 박 실장이 왜 이 파일을 사수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말만 인수인계를 위한 보고서지 그냥 유연서 뒷담화 파일이었다. 어차피 내가 한 일이 아니니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는데······.
‘조금 기분이 나쁜 거 같기도······?’
유연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그럼 미팅 잡을까?”
아직도 예능 프로그램에 미련을 못 버린 한 대표가 넌지시 물었다.
“그러든지.”
한 대표가 신나서 주먹을 쥐었고, 분위기에 휩쓸린 박 실장과 이태겸도 영문을 모르고 기뻐했다. 그 틈바구니에서, 유연서의 신경은 다른 곳으로 가 있었다.
‘형광펜······.’
마지막 장으로 갈수록 형광펜이 그어진 빈도가 낮고, 대신 유연서가 어떤 창조적인 방법으로 화를 냈고 갑질했다는 폭로 글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시간이 갈수록 성격이 나빠졌다는 건가?
‘이게 이희서의 환영을 본 것과 연관 있지 않을까?’
유연서는 파일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생각에 잠겼다.
***
내년에 방영될 JSTV의 ‘게스트 하우스에 어서 오세요’ 제작진은 출국을 앞두고 출연진의 사전 미팅을 시작했다.
“혹시 유연서 씨가 같이 출연하는 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연서 씨요?”
진수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몸은 괜찮대요?”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그가 고개를 젓고는 재빨리 다른 화제로 넘겼다.
“저는 좋죠. ‘드리밍’했을 때 호흡 잘 맞았거든요.”
“그래요?”
작가는 의외라는 듯 진수호를 쳐다봤다. 출연진 물망에 오른 다른 배우의 사전 미팅 때는 ‘내가 걔랑 마주친 적은 없어도 성격별로라는 소문은 엄청 들었거든······ 이거, 괜찮은 거야?’라고 면박을 받기도 했다.
유연서가 출연한다는 소리에 자긴 안 한다고 대놓고 말하던 사람도 있었다.
“드라마 촬영 기간이 길었잖아요? 아직도 ‘연서 씨’ 라고 말씀하시네요······.”
“연서 씨가 공과 사 구분은 확실한 거 같더라고요.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되레 걱정을 덜어주는 진수호를 보며 작가와 피디가 감동한 듯 진수호를 쳐다봤다. 역시 단기간에 정상에 오른 배우답게 성격도 아주 좋았다.
‘둘이 붙여놓으면 그림 좋겠네······.’
이 피디는 기분 좋은 듯 웃었다.
그리고 드디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유연서 씨.”
유연서가 미팅 장소에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매니저로 보이는 후드티 남자와 정장을 반듯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저게 소문의 유연서 개인 비서인가.
“작가, 서혜원입니다.”
“이재학 피디입니다.”
일어서서 악수를 청하는 제작진에게 무심한 표정으로 악수한 유연서가 자리에 앉았다.
“이 피디님, 우리 대표랑 무슨 사이에요?”
“네?”
“아니, 하도 이 프로그램 나와달라고 애원하길래. 둘이 친한가 했죠.”
자연스럽게 말 거는 유연서를 보니 시작이 좋을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 피디가 웃으며 대답했다.
“친한 선후배 사이입니다.”
“아······ 어쩐지 제발 나와 달라고 사정사정하면서 이 피디 볼 면목이 없다고 막 그러던데.”
“그 형이 그랬어요? 저한테는 연서 씨 출연 다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유연서는 피식 웃었다. 한 대표 허풍이 좀 있는 성격이구나.
“그럼 질문해도 될까요?”
“네, 하시죠.”
“여행 가셨을 때 게스트 하우스에 묵은 적은 없으시죠?”
일단 여행 자체를 안 가봐서 모르겠는 데라고 생각한 유연서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없죠.”
이 피디와 서 작가는 알겠다는 듯 입을 벌렸다. 하긴 재벌 3세인데 남들이랑 같이 침실을 공유하는 게스트 하우스를 가겠나? 최고급 호텔만 가도 모자를 시간에. 하지만 예의상으로 한 번 더 질문했다.
“그럼 주로 호텔에서······?”
“글쎄요, 별장에서 머물렀던 거 같은데.”
“벼, 별장······.”
가족끼리 바닷가에 갔던 어릴 적 기억이 생각난 유연서가 무심코 말했다. 이 피디와 서 작가는 말을 더듬었다.
물론 주성의 배경이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긴 하지만, 비슷한 금수저 진수호는 사회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교육자 부모님의 철학이 있어서 알바도 해보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머물렀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유연서는 유연서였다.
“집에 있을 때 밥은 어떻게 해결하세요?”
“누가 해 주고 가는데요.”
“아······ 그렇구나.”
서 작가는 할 말을 잃었다. 이어서 이 피디가 질문했다.
“그럼 직접 요리해 보신 적은 없고요?”
“글쎄요······ 간편식 데워 먹기? 아, 이건 조리구나. 없어요.”
말이 짧은데 신기하게 기분 나쁘게는 느껴지지 않는 화법이었다.
“그럼 청소나 빨래도 한 번도 안 하셨고요?”
“그걸 제가 왜 하죠?”
해줄 사람이 있는데.
정말 몰라서 질문하는 것 같은 유연서의 모습에 제작진이 입을 다물었다.
‘아, 빨래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하도 피를 토하다 보니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됐다. 물론 그마저도 몇 번 하다가 말았다. 피 묻은 수건이나 옷, 카펫 등등을 빨래하는 것보다는 버리는 게 차라리 나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돈은 썩어 넘치도록 많았고.
“그······ 저희 기획서는 읽어보셨죠? 휴양지에서 본격적으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일인데······.”
“네.”
“적응하실 수 있겠어요?”
“어떻게든 되겠죠.”
정말 아무 생각 없는 대답에 서 작가는 곤란함을 애써 숨겼고, 이 피디는 웃음을 참았다.
‘이거 우리는 좋은 장면 나올 거 같아서 좋긴 한데······ 다른 출연진들 속 타겠는데.’
이렇게 생활력이 없으면 유연서 몫의 일감은 다른 출연진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 게스트를 더 섭외하거나 규칙을 바꿀까 이 피디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원세븐의 김이준 씨도 저희 출연 제의에 긍정적이던데······.”
“그런데요?”
“안 불편하시겠어요?”
내가 왜? 유연서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어차피 서로 묵은 오해도 풀렸는데 불편해할 이유가 있을까?
“그쪽이 괜찮으면.”
오히려 불편한 건 원세븐 쪽일 것이다.
유연서의 대답에 서 작가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들었다.
‘사이 괜찮은가 보네? 그새 화해했나.’
제작진은 며칠 전 김이준과 사전 인터뷰를 했을 때,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유연서, 걔가 괜찮으면요.]그리고 김이준도 유연서와 똑같은 대답을 했었다.
“근데 걔네가 탑이에요?”
‘게스트 하우스에 어서 오세요’는 내로라하는 대한민국의 톱스타들이 한적한 외국의 섬에서 본격적으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예능이었다. 유연서는 배우 커리어로는 톱 배우라 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화제성과 파급력은 대한민국 최고급이니 한데 묶였다.
“원세븐이요? 네, 뭐······ 역주행 터진 뒤로 치고 올라왔죠. 요즘 4대 보이 그룹으로 묶이거든요.”
“오······.”
어쩐지 단막극 한 번 나온 이한결이 바로 주연에 꽂히는 것도 그렇고, 제발 봐달라고 우는소리 하면서도 뒷돈 챙긴 건 늦지 않게 착실히 들어오더라니······ 이건 임승현의 수완이 좋은 것인가? 아무튼, 잘 됐다.
‘물어볼 것도 있고.’
그가 제 발로 찾아가서 아이돌 데뷔하고 싶다고 말한 시기가 2010년 7월. 18살 때의 일이었다.
‘유연서 파일’로 짐작하건대, 원래 유연서의 성격은 시간이 갈수록 더 안 좋아졌다. 그렇다면 더 어릴 때는 어땠을까?
‘딱 30%가 되면 그만 해야지.’
기억 동기화를 중단하기로 맘먹은 이상 다른 곳에서 과거의 조각을 수집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