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188)
제188화
188.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지.
중국 랴오닝성 잉커우시.
잉커우시는 다롄시에서 동북쪽으로 170㎞ 떨어져 있는 항구도시였다.
마경이 확장돼 중국 본토와 랴오둥 반도를 분리한 이후 이곳은 최북단 접경지로 다롄시를 보호하는 전위 방어선 역할을 해왔다.
마경이 지척에 있는 만큼 몬스터와의 전투가 일상이었지만, 중국에서도 실력파로 통하는 역천 길드가 자릴 잡고 있었기에 도시가 몬스터에게 침탈당하는 일은 없었다.
도시를 지켜주기에 역천 길드는 잉커우의 인민들에겐 공산당 정부보다 더욱 신뢰받았다.
잉커우의 수호 길드라 불리는 만큼 화려한 50층 높이의 빌딩은 도시에서 역천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역천 길드가 잉커우의 상징이라면, 길드의 상징은 공동 길마를 맡고 있는 두 헌터였다.
두 길마는 모두 이름 대신 이명을 쓰고 있었는데, 백발 남자는 백귀라 불렸고 흑발 남자는 흑수라고 불렸다.
길드 빌딩 48층의 펜트하우스에서 이 두 사람은 긴급회동 중이었다.
“황룡과 낙일이 움직였다.”
“낙일에선 누가 나왔지?”
“심월.”
“황룡의 비원쥔. 낙일의 심월. 하? 관홍이 상당히 공을 들였군. S랭크 둘을 동원하다니.”
“그걸 가능케 한 수완은 확실히 경계할 만한 일이야, 흑수.”
“참고해두지. 하지만 황룡과 연수하는 건 이번뿐이다. 다음에 적으로 만날 땐 관홍을 먼저 없앨 거다.”
중국 헌터계에 대해 조금만 아는 이가 흑수의 말을 들었다면, 대번에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을 터였다.
황룡과의 연수.
역천 길드는 황룡 길드의 대항마였다. 황룡 길드에게 원한이 있는 자들과 그들의 지배를 거부한 세력들이 단합해 만들어진 길드가 역천이었다.
한시적이라고 하더라도 역천이 황룡과 손을 잡았다는 건 중국 헌터계를 들썩이게 할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니 백귀, 다시 한번 약속해라.”
“맹세까지 한 마당에 또 확인하길 원하나?”
“네 염원을 이루면, 역천은 온전히 내게 넘기겠다고.”
“백 번, 천 번 약속해주지. 이번 일이 끝나면, 난 사라져주마.”
“좋아. 그렇다면 나도 화끈하게 밀어주지.”
흑수의 말에 백귀가 관심을 보였다.
“대명 길드가 참전할 거다.”
“그 간만 보던 놈들이?”
“그들이 바람잡이 노릇을 해줄 테니, 너는 한반도를 장악해라. 네 고향으로 돌아가 마음껏 복수해라. 그게 내 마지막 선물이다.”
백귀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선물 고맙게 받도록 하지.”
* * *
4개국 협상은 이틀간 더 이어졌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세계헌터연맹조차 중국의 어깃장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 정도였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다 보니 협상이 이어질수록 감정싸움만 격해졌다.
이때 협상이 완전히 어그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쾅!
수행원으로부터 귓속말을 전해들은 중국 협상단 대표 류홍차이가 테이블을 부술 듯 내리치며 일어섰다.
“국장!”
류홍차이의 호통에 러시아 대표 프리고진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길래 그리 흥분했습니까?”
“협상을 하자 해놓고 뒤통수를 쳐?!”
“뒤통수요? 무슨?”
“마경에 있는 우리 측 게이트에…….”
류홍차이는 더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마경 게이트에 대해서 언급하는 순간, 이번 사건의 주모자가 자신들임을 자백하는 꼴이 될 터였다.
그는 끝내 항의하지 못하고 이를 바득 갈며 물러섰다.
“어디 두고 봅시다. 피를 흘리겠다면, 얼마든 받아주겠소.”
류홍차이가 협상장을 나가버리자 프리고진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프리고진 국장님, 무슨 일입니까?”
옆자리에 있던 차길주가 프리고진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크렘린 궁에서 생각이 좀 바뀐 듯합니다.”
“바뀌어요?‘
“아아, 오해하진 마세요. 한국에 대한 지지는 여전하니까. 다만, 몇몇 성질 급한 길드들이 벌써 움직였나 보더군요. 알지 않습니까? 헌터들 제멋대로인 거. 하여간 저희도 골치 아프게 됐습니다.”
전제부터 잘못된 변명이었다.
협상 도중 따로 보고가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그는 중국 대표의 항의에 당황하지 않고 대응했다. 이미 알고서 협상장에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미리 알고 있으면서 우리에겐 귀띔도 주지 않았단 거군요?”
“저도 함구하라는 명령을 받아서요. 한국과 다르게 저흰 기밀을 누설하면 총살당합니다. 항상 목을 내놓는 건 아니지만, 요즘 같이 살얼음판 시국엔 더욱 단호한 징계가 떨어지죠. 그래도 한 배를 탔으니 이젠 내용을 좀 공유해드려도 될 것 같군요.”
“어떤 겁니까?”
“약 10분 전, 러시아의 길드 연합군이 마경 게이트 네 군데를 동시에 쳤습니다. 게이트를 터트리기 전에 선수를 친 거죠.”
“연합군? 처음부터 공동 대응이라는 건 생각도 안 했군요.”
“그럴 리가요. 그저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윗사람들 변덕은 우리 같은 아랫사람이 막을 수 없으니까요.”
프리고진은 자신의 권한 밖 일이었다고 말하며 책임에서 벗어나려 했다.
차길주도 그에게 항의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알아서 수습하도록 하죠.”
“그럼, 이만.”
프리고진이 협상장을 나가자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던 일본 대표 사사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상이 쉽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깨질 줄은 몰랐군요. 아무래도 이제부턴 제 권한 밖인 듯하니 윗선의 얘길 듣고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사사키까지 나가자 협상 내내 거의 입을 다물고 있었던 연맹 관계자 역시 자릴 떠났다.
“연맹 역할도 여기까지로군요. 미스터 강에게 전해주십시오. 이런 자린 언제나 환영이지만, 성과 없는 자린 사양한다고.”
이내 홀로 남은 차길주는 강무혁에게 연락을 취했다.
“차길주입니다. 러시아가 마경에 있는 중국 게이트를 쳤답니다. 협상은 파투가 났고요. 아무래도 일이 급박하게 돌아갈 것 같습니다. 자칫 한국도 마경 전쟁에 휩쓸릴 수 있으니 빠르게 대응해야 할 겁니다.”
* * *
강무혁은 러시아가 움직였다는 말에 바로 한 인물을 떠올렸다.
‘다르덴.’
증거는 없으나 심증은 있었다. 협상과 싸움을 동시에 하는 게 그의 특기니까.
강무혁은 차르 길드 쪽에 다르덴과의 만남을 주선해주길 요청했다.
전화를 해봤자 저쪽에서 끊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중앙 정부가 지방 정부의 눈치를 살피는 요즘이라면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표 길드 부탁을 마냥 무시할 수 없을 터였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현재 칼자루를 쥔 것은 다르덴이었다. 강무혁은 상대 반응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다르덴이 자기 유리한 대로 움직이는 건 예상 범위 안이다. 뭔가 원하는 게 있으니 문제를 일으켰을 거야. 지금이라도 물릴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해.’
답변은 세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왔다.
-나진에서 보자더군요.
“언제입니까?”
-나진에 이미 도착해 있답니다.
안톤의 대답에 강무혁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르덴이 나진에 와 있다는 건 이해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모스크바에서 여기까지 올 시간을 고려하면, 적어도 하루 전에는 작전이 결정됐다는 뜻인데. 그 작자가 굳이 이곳까지 찾아올 필요는 없어.’
불길한 징조였다. 뭔가 자신이 아는 범위 바깥에서 일이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바로 만나보도록 하죠.”
* * *
한반도 동북 방면에 똬리를 틀고 있던 네 마리의 네임드가 제거된 이후, 통합 공격대와 의용 공격대를 비롯한 길드들은 전력을 다해 몬스터들을 몰아붙였다.
그렇게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사냥한 결과, 두만강 전선 탈환할 수 있었다.
정부는 영토 회복을 널리 알리며 막대한 예산을 들여 두만강 방어 라인 강화를 천명했다.
아직 군데군데 발견하지 못한 몬스터가 돌아다니고 있긴 했으나 고속도로는 안전을 확보한 상태였다.
강무혁은 동해안 도로를 따라 나진으로 향했다.
일행은 장득구, 노송린, 이숙영으로 단출했다.
“유령도시가 따로 없네.”
노송린은 텅 비어버린 도심을 보며 돌아보며 혀를 찼다. 몬스터를 몰아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민들이 돌아오지 않은 탓에 도시는 산간벽지보다 더 조용했다.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항구로 가자 다르덴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무혁은 차에서 내려 문을 세게 닫곤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저 양반이 겁도 없이.”
노송린이 급히 따라나섰다.
다르덴이 강무혁을 반겼다.
“화가 많이 났군.”
“화가 났다기보다 이런 짓을 저지른 이유가 너무 궁금해서 말이죠. 제가 제시한 보상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내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그쪽한테 한 방 먹은 후에 깨달은 게 뭔 줄 아나?”
“글쎄요? 깝치지 말자?”
“화 난 거 맞네. 입이 거칠어졌어.”
“헛소리하려고 먼 곳에서 찾아오진 않았을 거고. 본론부터 꺼내시죠.”
마침 바람이 불어와 다르덴의 아머 코트를 흔들어댔다. 그는 주머니에 양손을 넣어 아머 코트를 추스르며 말했다.
“아주 귀중한 교훈을 얻었지.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땐 욕심 부리지 말고 적당히 먹자. 도시 하나 꿀꺽하려고 너무 성급하게 접근했었어. 그 이후로 자중하는 중이지.”
“이번 일에 연관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들리는군요.”
“맞아. 이번 게이트 공격. 내가 벌인 일이 아니야.”
“결백을 주장하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닐 테고. 그럼, 왜 왔습니까?”
“경고하려고.”
“경고?”
“동토의 사신이 움직였거든.”
“!!”
강무혁의 콧잔등에 주름이 졌다.
“동토의 사신이라면…….”
“니콜라이 카멘스키. 시베리아 최고의 학살자가 마경에 발을 들였다.”
* * *
니콜라이 카멘스키.
이명은 동토의 사신.
러시아의 또 다른 S랭크 헌터였다.
러시아의 마경이랄 수 있는 시베리아 동토에서 주로 활동했기에 마경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그 명성만큼은 세계 헌터계에서 알아주는 인물이었다.
‘카멘스키가 어째서?’
강무혁은 그가 갑자기 마경에 뛰어든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다르덴이 왜 모스크바에서 여기까지 직접 왔는지 짐작할 순 있었다.
“카멘스키와 싸우는 중이었습니까?”
“싸운다기보다 감시를 당하는 중이었지. 통화는 엄두도 못 내고.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야.”
“상당히 많이 밀렸었나 보군요.”
“다 그쪽 덕분이야. 형님이 자릴 비운 탓도 컸고.”
“좀 억울하군요. 그건 제 잘못이 아니죠. 폭군이 싸돌아다니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누구 잘못인지 따지러 온 거 아니니까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말라고.”
“오늘따라 인자하시군요. 마치 뭔가 부탁이라도 하려는 듯.”
“쳇! 네놈은 눈치가 빨라서 짜증 나.”
“얘기해보시죠.”
다르덴은 잠시 망설이다가 겨우 입술을 뗐다.
“네가 마경에서 저지르려는 짓. 하나만 더 처리하자.”
“노. 협상은 결렬됐습니다. 마경의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강무혁은 단번에 거절하고 뒤돌아섰다.
다르덴이 급히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동시에 장득구가 검을 뽑아 다르덴의 턱 끝을 겨눴다. 노송린도 강무혁을 보호하려는 듯 팔을 들어 막아섰다.
“너희 단장 해치려는 거 아니니까 다들 살기 죽여.”
강무혁은 손을 들어 주변을 물리곤 말했다.
“내가 하려는 작전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제안한 거겠죠.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하라고 그런 제안을 하는 겁니까?”
“그쪽은 감당이 되고? 어차피 하나나 둘이나 마찬가지야.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지.”
다르덴의 번들거리는 눈이 강무혁을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