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379)
제379화
#379. 누나, 머리 다쳤어?
처음 각성했을 때 성선제는 아무런 재능도 없는 그저 그런 헌터에 불과했다.
각성과 동시에 깨달은 특성도 아리송했다.
위시.
갈망하면 이루어진다니.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한때 유행했던 열정 페이 같은 뜻인가. 노력해서 랭크가 오르면 그거야말로 사기였다. 랭크업이 단순히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니까.
재능도 특성도 받쳐주지 못한 성선제는 초보 헌터들을 위한 커리큘럼을 소화하는 당시에는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커리큘럼 이후, 그가 두각을 나타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을 자는지 의문스러운 그의 노력도 대단했지만, 성장 그래프는 그보다 더욱 가팔랐다.
트레이닝 과정을 거치면서 빠르게 성장했고, 차츰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늘었다.
그러던 중 헌터들이 늘 그렇듯 성장의 계기가 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때 현 슬레이어의 길드 마스터 사문혁이 그를 눈여겨보게 됐다.
이후 성선제는 슬레이어에 지명돼 연수를 거쳐 입단했고, 현재에 이르러 차기 길마로 내정 받기에 이르렀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S랭크를 노리는 건 현재로선 강무혁과 주세아 외엔 모르는 일이었다.
심지어 길마인 사문혁조차 S랭크의 가능성을 높이 보지 않았다. 한번 포기했기에, 아니 포기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성선제는 그 어느 때보다 성장을 열망하고 있었다. 목이 말랐다. 갈망했다.
이제 남은 건 랭크업을 위한 계기였다.
“얼마 남지 않았어. 이제 곧이다. 곧…….”
슬레이어 길드의 최정예 헌터는 출발 준비를 마치고 헬기로 이동하기 직전이었다. 성선제는 마지막 헬기에 탑승할 예정이었다.
그때 강무혁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무혁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문경새재로 출발하십니까?
“예. 충주까지 헬기로 이동 후 차량으로 환승할 예정입니다. 주세아 길마는요?”
-이쪽도 출발했습니다. 고을지 헌터가 빠르게 이동시킬 겁니다. 목표 지점 근처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일루전을 포착할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원정대에 바로 합류하진 않습니까?”
-처음부터 나섰다가 일루전이 다시 모습을 감추기라도 하면 그것만큼 곤란한 일이 없겠죠.
“하긴 뇌 속성 특성을 가진 일루전으로서는 주 길마를 상대하기 껄끄러울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작전 개시 전에 주 길마에게 연락하도록 하죠. 제가 없는 동안 슬레이어에서 상황을 보면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주십시오.”
-주인 없는 집에서 주인 노릇 하면 밉보일 텐데요?
“이쪽 친구들에겐 미리 말해뒀습니다. 능력 좋은 친구들이고 말귀는 잘 알아먹으니까 문제 될 일은 없을 겁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그럼, 즐거운 사냥되시길.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비서가 기별을 넣었다.
“팀장님. 헬기 도착했습니다.”
“곧 올라가지.”
성선제는 책상 옆에 기대어 둔 검을 챙겨 들었다. 그는 사무실을 나가기 직전 뒤를 돌아봤다. 이상하게 강무혁과의 통화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항상 사람 긴장하게 한다니까. 별것도 없는데 신경 쓰이게 하는군.”
성선제는 피식 웃으며 사무실 문을 닫았다.
다시 열고 들어올 때는 S랭크가 되어 있기를 바라며.
* * *
“뭐야? 왜 인터넷이 안 돼?”
김성현은 스마트폰을 높이 들어 허공에 휘저었다. 하지만 아무리 장소를 바꿔봐도 인터넷이 되질 않았다.
“어라? 이젠 안테나도?”
“에효, 북포천이 그렇지 뭐. 시골 구석탱이에서 인터넷이 안 되면 어쩌자는 건지. 쯧쯧!”
최미란은 허리에 양손을 올린 채 턱을 한껏 치켜들고 어깨를 으쓱했다.
“뭘 그렇게 으스대는 거야? 인터넷이 안 된다는데.”
“지금 인터넷이 문제냐? 응? 무려. 응? 이 누님께서. 응? 랭크업을 했는데! 짜란!”
최미란은 뒤로 돌아 두 손으로 벽을 가리켰다. 그녀가 향한 곳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예예. 랭크업 축하드립니다요.”
“이건 뭐 엎드려 절받기도 아니고. 야, 넌 내가 꼭 이렇게 티를 내야 축하하냐?”
“근데 그거 아시죠? 저도 B랭크로 승급한 거.”
“이게 꼭 초를 쳐요. 너하고 나하고 같냐? 이 랭크가 어떤 랭크인 줄 알아? 무려 1년을 기다려 받은 스포츠카를 몬스터한테 제물로 던져주고 얻은 거라고.”
최미란은 북한산 게이트 사건을 떠올렸다.
북포천에서 오크에게 애마 1호를 폐기처분당하고 북포천에 갇혀 쓸 곳 없는 돈으로 마련한 애마 2호 빠방이는 이름까지 붙여주고 천년만년 함께하려 했지만, 결국 그리핀 폐차업자에게 가져다 바쳤다.
이후 목숨이 왔다 갔다 한 전투를 치른 끝에 두 사람이 얻은 건 랭크업이라는 달콤한 과실이었다.
수년간 C+랭크에 발목 잡혀 있던 최미란으로서는 충분히 차와 맞바꿀만한 성과였다.
“그러게 그냥 국산 차 아무거나 타지. 괜히 비싼 차 사서 날려 먹어.”
“인마, 헌터가 체면이 있지. 아무거나 타고 다녀? 때깔이 좋아야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 않는 거야.”
“무시당하고 싶지 않으면 A랭크 되면 되겠네.”
“이 자식아, 내가 그게 되겠냐? 현실적으로 좀 봐라. 현실적으로. 너 그렇게 허황된 꿈을 꿔서 어쩌려고 그래?”
김성현은 순간 헷갈려졌다. 내가 허황된 거야, 아니면 누나가 자기객관화가 잘 된 거야? 어차피 내가 되겠다는 것도 아닌데. 그는 여기서 꼬투리 잡았다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적당히 호응해주기로 했다.
“아무튼, B-랭크 축하요, 누님! 앞으로 B+까진 꼭 되시길 기원합니다!”
“이노무새끼가 악담을 해라. 악담을 해. B+이 뭐냐? 기왕 쓰는 거 A+이라고 하지. 난 뭐 고랭크 꿈도 못 꿔?”
“…….”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야야, 농담. 농담. 뭐가 됐든 고맙다. 내가 너무 신나서 그래.”
“그래, 만년 C+따리에서 랭크업했으니까 내가 이해해야지 뭐.”
“그래서 선물은?”
“…….”
“선물이 필요한 거였습네까?”
옆에서 맥주잔에 와인을 가득 따르고 있던 이숙영이 물었다. 그 모습을 본 최미란이 중얼거렸다.
“저 비싼 와인을…….”
“내래 단장 동지 주재 축하 대회라 들어 왔습네다만, 어째 단장 동지는 안 보입네까?”
“하하, 이숙영 동무. 선물은 그냥 해본 말입네다. 편히 즐겨주시라요.”
“최미란 사냥꾼 동무는 어째 북한말을 쓰십네까?”
“헉! 나도 모르게…. 그 말투 중독성 있네요. 하하. 근데 이숙영 헌터도 요샌 표준말 잘 쓰더니 원래대로 돌아갔네요?”
“윽! 아.닙.니.다↗ 오.랜.만.에.술.을.마.셨.더.니.그.렇.습.니.다↗”
이숙영은 최미란의 지적에 일반 술로는 취하지도 않으면서 취한 척을 했다.
그동안 이숙영은 길드 적응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자연스럽게 아이언윌의 길드원으로 인정받으려 옛 남한 지역의 ‘라이프 스타일(중요 체크. 생활 습관 같은 한국말로 하면 안 됨. 여기선 미제 단어를 쓰는 게 중요.★★★)’과 ‘패션’, ‘개그 포인트’를 연마해왔다.
궁극적으로는 길드의 최상위 권력인 강무혁의 오른팔이 되는 게 목적이었다. 그런 자신이 말투를 고치지 못하다니. 노오력이 부족했다.
이숙영은 부끄러움에 자리를 모면하려 딴말을 했다.
“여하튼, 강무혁 단장 동, 단장님이 안 계시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숙영은 긴장하고 또박또박 표준말을 내뱉곤 빠져나가려 했다.
최미란이 그녀를 막아섰다.
“어허, 어딜 가려고요? 저 몇 년 만에 랭크업 했어요. 축하해줘요. 그리고 이거 단장님 주최 맞다고요. 저 현수막 보이죠? 저게 무려 단장님이 직접 제작해서 보낸 거라고요. 축하한다고요. 그치, 성현아?”
자리를 피하려 했던 김성현은 불씨가 자신에게 튀자 움찔했다. 그는 이내 머리를 긁적이며 체념하곤 최미란을 대변했다.
“맞아요. 단장님이 축하한다고 본사에 현수막까지 걸어주셨더라고요. 드디어 벽을 뚫었다면서 영상으로 축전까지 보내셨던데요? 그래서 좀 많이 놀랐었죠.”
“봐봐요. 내 말 맞죠?”
“오오, 어쩐지 걸개 자태가 범상치가 않더니…. 금실 들어간 걸개는 내 또 처음 봅니다. 혹시 단장님 축전 영상도 볼 수 있습니까? 내가 의심하는 게 아니라 단장님의 영도력… 크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럽니다.”
“물론이죠. 파티 말미에 시사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역시 최미란 사냥꾼… 헌터. 그럼, 식순 전까지 술 한잔 마시고 있겠습니다.”
“윽, 저 비싼 와인을 원샷으로…….”
이숙영이 아예 자릴 잡고 술을 마시자 최미란은 김성현에게 귓속말했다.
“야, 프로젝터 좀 빌려와.”
“이 시간에요?”
“시간이 어때서?”
“지금 자정 넘은 건 알고 있죠?”
“그게 왜?”
김성현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프로젝터 빌리려면 관리팀 직원한테 물어봐야 해요. 한밤중에 갑자기 불러서 축하 파티하는 것도 어이없는데, 단장님 축전 영상 시사회 같은 뻘짓한다고 직원을 깨웠다간 무슨 욕을 먹으려고요?”
“그러면 어떻게 해? 이러다가 이숙영 헌터 가버릴 텐데. 자정이라 부를 사람도 몇 명 없었단 말이야.”
최미란의 말대로 길드에서 대여한 넓은 파티룸엔 헌터가 몇 명 없었다. 그마저도 대부분이 B랭크 이하 저랭크 헌터였다. 게다가 희한하게 모인 이들은 길드에서도 아웃사이더에 가까운 자들이었다.
예를 들어,
‘김수정, 유성우.’
과거 남포천에 침투한 오크가 어린이집을 공격했을 때 이를 막은 공로로 강무혁이 길드에 영입한 프리랜서 헌터들이었다.
랭크는 낮지만, 센스가 좋아서 요즘 들어 부쩍 주목받고 있었다.
‘단장 추천에 랭크업. 여기까지 보면 인싸지만, 이상하게 겉돌고 있지. 다른쪽 루트로 입단한 동기들하고 사이가 안 좋은가?’
그 밖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길드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헌터들이 파티룸을 채우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곳은 아싸들의 집합소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 아싸 대마왕은 최미란이었고. 김성현 본인은 아싸 빵셔틀쯤?
‘그래도 전우라고 버릴 수도 없고.’
김성현은 자기 처지에 서글픔을 느끼며 말했다.
“그러니까 왜 자정에 파티를 하는데?”
“아메리칸 스타일 몰라? 원래 파티는 밤에 하는 거야.”
“이게 밤입니까? 새벽이지.”
“원래는 저녁에 하려 했는데, 게이트 터지는 바람에 분위기 뒤숭숭해서 눈치 보느라 밀린 거잖아. 이건 불가항력이었다고. 그나마 이제 거의 진압돼서 하는 거고.”
“그럼, 내일 하면 되잖아요.”
“너 같으면 크리스마스이브 날에 랭크업 축하 파티 오겠냐? 고랭크도 아니고 이제 겨우 B-인데?”
“하아, 누나는 진짜 주제 파악을 잘한다니까.”
“만년 C+ 헌터의 생존법이지. 너도 배워둬. 사회생활에 도움이 돼.”
“내가 말을 말아야지.”
김성현은 최미란이 말한 사회생활을 그리 신뢰하지 않았다.
강무혁 단장 부임 첫날 주차장에서 시비 붙었던 것도 그렇고, 구 태성 길드 내 정치 싸움에서도 라인을 제대로 타지 못해 이리저리 휘둘렸었다.
어쩌면 최미란에게 필요한 것은 랭크업이 아니라 눈치가 아닐까 생각했다.
“야, 너 지금 나 사회생활 더럽게 못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윽!”
“훗, 쨔아식! 내가 랭크가 없지, 눈치가 없는 줄 알아? 인마, 결국에는 단장님께 붙어 살아남았잖아. 지금 원정대 라인 중 아이언윌에 남은 헌터가 몇 명 있냐? 너하고 내가 유일해. 도경훈 대장도 단장님한테 찍혀서 완전히 나가리됐고.”
“그, 그건 그렇네.”
“결국, 강한 자가 사는 게 아니야. 사는 자가 강한 자지. 고로 이 누님은 강하다 이거야.”
“와아, 소름. 나 설득당했어.”
“알았으면 프로젝터나 빌려와.”
김성현은 저도 모르게 최미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자신을 원망하며 방을 나서려 했다.
그때 파티룸 문이 열리며 누군가 먼저 안으로 들어왔다.
최미란은 새로운 손님의 얼굴을 알아보고 반색하며 맞이했다.
“어휴, 이게 누구야? 백성빈 헌터님이시네?!”
원정대 소속 헌터 백성빈. 힐링팩터라는 사기급 특성을 지닌 헌터. 강무혁 단장이 직접 영입했고, 이진주 원정대장도 눈여겨보고 있는 유망주.
주세아 길마 제자로 통하는 고을지를 제외하면, 사실상 길드에서 최고의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러니 최미란이 반길 수밖에.
‘아싸. 백성빈 헌터 정도면 그래도 파티 분위기가 좀 나겠구나.’
김성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 사람을 초대했었나? 초대했다 해도 왜 온 거지? 이런 자리 즐기는 사람이 아닌 걸로 아는데. 등에 칼을 메고 있는 걸 보니 임무 끝나고 온 것 같네.’
최미란이 반기며 인사하러 다가설 때였다.
“누나! 피해!”
“응?”
벡성빈이 갑자기 휘두른 검에 최미란은 피를 뿌리며 뒤로 엎어졌다.
“으윽…….”
최미란은 고통에 겨워 신음을 흘리면서도 방어태세를 갖췄다. 왜 공격당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백성빈은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마무리 일격을 날리려는 했다. 찰나 김성현이 달려들었다. 묵직한 발차기가 백성빈의 머리를 노렸다.
백성빈은 팔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발에 상당한 마나가 담겼던 듯 그는 주춤거리며 뒤로 세 걸음 밀려났다.
김성현은 그대로 뒤로 물러나 최미란을 끌어당겼다. 백성빈이 쫓아 들어가려 하자 한 박자 늦게 이숙영이 날아와 막아섰다.
“니 뭐하는 간나새끼네?!”
이숙영의 좌우로 김수정과 유성주도 자리했다. 순식간에 대 헌터 진형을 갖춘 것이다.
나머지 헌터들이 백성빈의 공격에 놀라 어찌할 줄 모르는 가운데 공격당한 최미란이 울분을 토하며 중얼거렸다.
“생일빵, 아니 랭크빵 치곤 너무 심하잖아. 아얏!”
“누나, 머리 다쳤어? 이게 어디가 랭크빵이야?”